(1)
조금은 아니 많이 감상적이다. 하지만 나를 감상적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고 또 힘을 내고 있다. 내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책임감, 우정, 기대, 사랑.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힘을 주고 있다. 낯간지럽지만 그것이 사실.
"그 모두가 있기에 힘을 내서 살고 있어. 그리고.."
"그만!"
그녀는 내가 뒤이어 할 말을 알고 있다. 그녀라고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는가.
그녀도 바보가 아니기에 왕이 죽은 뒤 겨누어질 칼날은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귀족파에게 있어 눈에 박힌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존재는 이제 나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이렐리안!"
힘찬 어조.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어깨를 꽉하고 잡는다.
"난 지켜야 해. 그 모든 사람들을!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힘이 날 수 있게 하는 그 모든 존재를 지켜야 해. 그러니 이해해주지 않겠어?"
".... 바보야. 로우드는.. 그 모든 것을 왜 혼자 짊어지려 하는 거야?"
"크큭. 짊어지려 하는 것이 아냐. 낯간지럽지만.. 지키고 싶은 거야. 다시는 소중한 이들을 허무하게 잃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 나는 전생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었다.
홍수에 부모님을 잃고 같이 어울려 살던 마을 사람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 뒤는?
그저 하루하루를 죽지못해 살아가는 멍청한 자식이 나였다. 그런 내가 다시금 삶이 주어지고 지켜야 할 이들이 생겼다.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이 말이다!
난 욕심쟁이다. 사랑하는 여인마저도 셋이 되고 지키고 싶은 자들은 그 이상이다. 영주민 하나 하나 마저도 지키고 싶다! 수천, 수만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나란 말이다.
"가야 해."
"..."
아무런 말이 없다.
"짊어지는 것이 아냐. 내 욕심이야. 난 이기적이지. 그 누구보다도!"
"아니야. 로우드를 세상 누구가 이기적이라 하겠어. 그러니까 여기서 가만히 지키기만 하면... 지키기만 하면. 흑.."
끝끝내 터지지 않던 그녀의 울음이 결국에 터져 버렸다. 아아.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사랑해. 그러니까 이해해 줘. 지금은 이말밖에 할 수 없어. 하지만 약속할게. 이번 일이 끝나고 그때는 그냥 이곳 작은 성에서 알콩달콩 살아보자. 응?"
"... 바보."
짧은 말. 아직도 계속되는 울음.
하지만 느꼈다. 이것의 이렐리안 그녀만의 허락이다.
"고마워."
그녀를 부서질 듯 강하게 껴안았다.
".. 이럴 땐 사랑해라고 하는 거라고. 바보. 사랑해."
"나도."
다시금 깊어지는 둘. 뒤에 이어질 둘만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전쟁터로 나설텐데 어찌 뜨겁지 않을까. 다만 일반적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인인 이렐리안도 전쟁터에 나선다는 것? 여장부와 같은 이 여인이 로우드를 두고 어디를 가겠는가. 그녀도 같이 한다.
*****
회의. 여럿이 모여 의논함. 또는 그런 모임.
그래. 지금은 의논을 해야할 때다.
이 왕국에 어디서 듣도 보도 못했던 존재가 나타났다. 그들이 이 세계에서 불리는 명칭은 '순백의 기사'. 아니 이 이름조차도 정확한 이름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부를 이름이 없기에 가져다 붙인 이름이다.
'그런 존재를 내가 상대해야 한다.'
가장 처음의 영지전이 그랬듯이 정보, 즉 아는 것은 힘이다. 그런데 지금은 적인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정보가 없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탁상공론이 아닌 진정한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 순백의 기사라 불리는 그들에 대해서 뭐 하나라도 건져야 한다.
언제 어디서 나온 것인지, 연원은 어디인지 그들이 어떤 이들로 구성된 것인지 그 모두를 연구하고 찾아낸다.
그것이 이번 회의의 목적.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자신의 친구 우른, 충실한 부관 다리운, 진정한 스승 첼로스, 영지의 천재 마법사 스피든 그 모두가 말이 없다. 아니 단, 한사람은 있었다. 모헤로 공작.
"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잠시 정리를 해보았네."
"무엇을 말입니까?"
"순백의 기사단."
순백의 기사단. 갑작스레 툭 튀어나온 존재들. 존재 자체가 수수께끼인 이들.
"그들에 대해 가만 생각해 보았지. 사실 우리가 패배한 이유 그리고 왕이 시해당한 이유는 모두 순백의 기사단들 때문이 아닌가. 그들의 전투방식은 이상했어.. 아주말이지. 그게 그러니까.."
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모헤로 공작이 맞다. 순백의 기사단이 없었다면 왕은 죽지 않았을 것이고 국왕파는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백의 기사가 나타나기 이전.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어느 측면에서 살펴봐도 국왕파가 귀족파에 비해 군사력이 높았다. 비록 한끗차라 표현할 정도이지만 그 누가봐도 국왕파가 우세였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전쟁은 병사들의 질로만 하는 것인가? 아니다.
제대로 된 지휘를 내릴 줄 아는 지휘관이 필요하다. 귀족파에는 세습귀족으로서 권력을 휘두룰 줄 아는 존재는 있어도, 지휘를 내릴 줄 아는 지휘관이 없었다.
하지만 국왕파는 아니었다. 지금 로우드의 회의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모헤로 공작을 보라. 그가 국왕파가 자랑하는 지휘관이었다.
로우드가 영웅으로 등장하기 이전, 시시때때로 왕국을 노리는 제국에서 왕국에 대대적으로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호사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모헤로 공작이 왕국의 수호신이지!"
"그가 있어 왕국이 지켜지는 것이 아닌가. 모헤로 공작가가 우리 왕국의 수호 가문이지."
그래. 대대로 수 많은 오러 마스터를 배출하고 동시에 지휘관으로서 한명의 공작으로서 활동한 공작가가 모헤로 공작가다. 다른 세습귀족들과 달리 왕국민들을 위해 싸워오고 수호한 이들이 모헤로 공작가인 것이다.
그런 모헤로 공작을 지휘관으로 삼고 있는 국왕파였다. 전력으로는 단 한끗차이만 있다고 할지라도 지휘관이 모헤로 공작이기에 국왕파가 우세로 점쳐졌던 것이다.
한데 작금의 상황은 뭔가? 모헤로 공작이 있음에도 왕이 죽었고 국왕파가 패배했다. 모헤로 공작의 지휘력이 갑자기 사라져서가 아니다.
그는 정말 잘 지휘했다. 지원이 필요한 곳에는 지원을 병력이 필요한 곳에는 병력을 내줬다. 적재적소에 배치를 할 줄 알았고, 전략 전술에 능통했다. 그럼에도 그가 패배했다.
그 모든 이유는 하나다. 바로 순백의 기사단 때문.
어디서 등장했을지 모르는 이 존재들은 단지 수백이 조금 넘는 인원을 가지고 있을 뿐임에도 전쟁의 판도를 바꿔 버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로우드도 단지 몇백의 인원을 가지고 전쟁의 판도를 바꿔 제국을 상대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로우드의 전쟁 수행방식과 순백의 기사단의 전쟁 수행 방식은 전혀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고? 바로 방법론적차이다. 로우드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서 승리를 일구어냈다. 기사대 기사의 전투 혹은 보통의 보병 대 보병의 전투를 용병들의 방식인 유격전과 게릴라 전술을 사용함으로서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는 제국의 병사들을 이겨냈다.
그리고 전투에 쓰이는 전술 이전에 로우드는 자신의 오러 연공법을 자신의 병사들에게 건넸다. 이는 자신의 것을 아끼는 여느 사람들과 다른 방식이다. 그 누구가 오러 연공법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건네겠는가?
군주의 시간 195편 - 출정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