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193화 (19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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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체가!"

기사들의 검도 소용없었다.

저들도 분명 자신들과 같은 오러를 사용한다. 허나, 사용하는 검술이 지금까지의 상식과 차원을 달리한다.

자신들보다 항상 조금 더 예리하고, 조금 더 단단하다.

아주 작은 한끗 차, 허나 고수들 사이에서는 한 끗 차도 큰 법.

정확하게 한끗 차로 순백의 기사단은 모헤로 공작가의 기사단을 상대해 냈다.

기세 등등하게 전진을 외치던 모헤로 공작가와 왕정파의 병력들은 점차, 점차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존재들로 인해 전쟁은 귀족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로우드는 바깥의 상황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로우드가 오크들을 복속시키고 데려온 것은 영지의 사람들로서도 이해하기가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모든 오크들을 데려온 것도 아니다. 수없이 많은 수를 자랑하는 오크들 중에서도 단지, 수백의 오크들을 데리고 왔다. 전사로서 하이오크라 칭해진 오크 250에 오크 주술사 150을 데려왔다. 오크로드를 포함하면 400이 조금 넘는 수다. 수만의 오크들을 데리고 쳐들어 왔을 때보다는, 훨씬 적은 수다. 누가 봐도 그렇지 않은가.

* * * * * * * * *

오크로드와 쓰랄이 로우드의 왼편에 자리를 한 채로 로우드는 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로우드! 저 오크로드는 우리 영지의 사람들을 죽였단 말이라고."

회의장의 열기는 이미 과하게 올라가 있었다. 로우드 자신도 억지로 이들을 설득해서 온 것이다. 오크를 데려 온 로우드마저도 자신이 한 일이 꽤나 억지스러운 것을 알고 있는 상황인데 영지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아무리 여태까지 영지를 위해서 잘해 온 로우드라고 하지만, 오크들을 데려 온 것은 좀 다른 문제다.

"하아. 이 일이 문제라 여겨질 수도 있지. 하지만 이들을 봐."

로우드는 자신의 왼편에 자리한 오크로드와 오크주술사 쓰랄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자 로우드는 말을 이어갔다.

"저들은 이성이 있어. 일반적인 오크들과는 다르다고. 조금 강하다 싶은 오크족장도 물론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지. 하지만 어눌하고, 제대로 된 이성을 갖추지 못했어. 그러나 이들은 정말 달라."

몇 번이나 일반적인 오크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야기하는 로우드.

"저들은 자신들의 오크로드를 위해 충성할 줄 알아."

"허나, 오크로드만을 위한 충성이겠지. 영주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언제나 로우드의 편을 들던 첼로스도 이번만큼은 반대를 표하고 있었다.

"저도 지금의 일을 계기로 친하게 지내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서로 적으로만 봤다면 적어도 우리만큼은 저들을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들은 정말 일반적인 오크들과 다릅니다. 저들은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고,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크들이 벌인 일이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걸세. 지금 귀족파에서 하는 짓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저들이 쳐들어 온 것이야 어차피, 우리가 먼저 오크들을 이용했기 때문 아닙니까? 우리는 오크를 이용함으로서 잘못을 했고 오크들은 우리를 공격함으로서 잘못을 했습니다. 이미 서로간의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모두가 죄인이지요."

"그래도 우리는 인간일세."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의 입장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지요.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기에 모두가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저런 사람도 있는 게 인간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가진바 색이 다르다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의 군주로 불리는 인간으로서 저 하이 오크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저들만의 지역을 내줬으면 합니다."

"허허. 그래 저들은 인정한다 하세. 그럼 우리가 얻는게 뭔가?"

"그건 제가 말씀드리지요. 저희의 로드께서는 이런 말에는 약하시니 제가 나서겠습니다."

가만히 회의를 지켜보던 오크주술사 쓰랄이 첼로스의 말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말해보게."

첼로스는 한편으로는 당황하면서도 침착한 성격을 가진 이이기에 쓰랄에게 항변을 할 기회를 주었다.

"인간들은 서로 나뉘어 있다 들었습니다. 오크로드에게만 충성하는 저희 오크와는 달리, 서로 군주가 다르고 모시는 자가 다르다 들었습니다."

"맞네. 그게 지금 오크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저는 인간들에 대해서 다른 오크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니기에 전부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것은 알고 있다는 말이지요. 인간들에게는 이런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왕의 아래에 귀족이 있고 귀족들은 왕에 대한 충성을 대가로 자신들의 영지를 다스린다. 그게 지금의 인간들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까?"

"그렇소."

잘 모른다 말하지만 적어도 인간들의 나라가 돌아가는 핵심은 알고 있는 쓰랄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주제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오크들도 그 방식을 택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오크들. 그대들은 하이오크라 칭하는 우리들이지만 오크로드에 대한 충성심은 일반 오크들과 같습니다. 본능적으로든 아니면 의식적으로든 충성을 받치지요. 그건 모든 오크들에게 해당하는 법칙과도 같은 것입니다."

"흐음.."

"우리 오크들이 그대들의 영주제도에 맞는 형태로 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만의 영지에 머물러있듯 지금처럼 자치적으로 행동하겠습니다. 단, 그대들의 군주 로우드께서 전쟁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나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대들은 단지 우리들의 자치구를 인정하면 됩니다."

"허허.. 하이오크라 하는 게 허명이 아니었던가."

이것은 억지가 아니다. 세상에서 많은 수를 자랑하는 오크들을 모두 죽여버릴 수는 없다. 아무리 강대해진 로우드의 영지라 할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과 달리 오크들은 태어나는 수도 자라나는 숫자도 꽤나 높은 수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어나서 한달이면 걸을 수 있고 단 2-3년만 지나더라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간으로 치면 능히 한사람의 병사 이상의 몫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

그 점을 꼬집어 쓰랄은 영주제도에 맞는 형태로 들어간다 한 것이다.

"우리가 자치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인간들처럼 충성을 받치겠다 라는 뜻이군. 겉보기엔 좋네. 헌데 우리의 군주 로우드의 사후에는? 오크의 생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그대들의 로드는 신의 화신이라 불리는 존재. 과연 무기로 죽지 않는 한 얼마나 오랜 생을 가지겠는가?"

주술사 쓰랄의 주장의 맹점을 곧바로 찾아낸 첼로스다. 자치권을 인정하고 충성을 받아내는 것도 좋다. 헌데, 충성의 대상인 로우드가 죽어버리면 그 뒤는 어떻게 하는가?

자치권을 인정받은 오크들은 진화에 가깝게 발전해버린 하이오크들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개척하고 조금 더 발전해 나갈 것이다. 지금은 어찌 어찌 막아냈으나, 나중에 가면 모른다. 오크들은 오크로드가 있는 한 어떤식으로 발전을 할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당신들의 군주 로우드의 후손이 다스리는 곳은 쳐들어가지 않겠다. 이것은 신의 화신인 로드인 내가 약속한다."

"오크의 말을 어떻게 믿지?"

군주의 시간 190편 - 무시. 그리고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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