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시간 182편 - 거절. 그리고 다시 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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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나. 반갑네."
로우드의 성에 있음에도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급히 온 로우드를 맞이하는 모헤로 공작이다.
'저것이 진정한 귀족으로서의 품격인가. 아니면 쌓아온 실력에 대한 자신감인가.'
블라디 후작에서부터 시작해서 휠튼 남작, 카오딘 공작까지 많은 세습귀족들을 만났다. 허나 회의장에서 만났을 뿐 일대일로 가까이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모헤로 공작이다.
국왕 스웨드와 독대를 여러번 한 자신이지만 공작 모헤로는 그동안 보아 온 어떤 귀족과도 달랐다.
본인 자신이 오러 마스터라고 알려진 자다. 그리고 국왕 스웨드의 장인이자 이 나라의 세습귀족이자 공작. 화려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모헤로 공작은 자신의 영지가 아닌 곳에 있음에도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차분한 표정을 하고, 고고하게 서있었다.
마치 이곳 자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것과 같아 보이는 그의 모습은, 로우드가 그려왔던 강자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비록 오크로드를 만나고 나서는 단일의 강함에 대해서는 그 기준이 달라진 자신이다. 허나, 모헤로 공작은 절대적 강함은 오크로드보다 부족할 지언정, 품격이 있고 고귀함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아쉬워서 찾아온 것은 모헤로 공작이지 자신인 것은 아니다. 비록 로우드 자신의 품격이나 검술 실력은 못할지 모르나, 상황 상 꿀릴 것은 없다.
"오랜만이네. 비록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나, 워낙 그대의 이름이 왕국 전역에 울려퍼지기에 친근하게 느껴지는군."
전형적인 무인이라 알려진 이에도 불구하고 혀는 매끄럽게 돌아간다.
"하핫. 제 위명이라 해보았자, 모헤로 공작님에 비해서는 부족하지요. 수백년을 이 나라를 수호한 가문이 모헤로 공작님의 가문이 아닙니까."
"과찬이네. 적어도 나는 20대라는 나이 대에 아크란 제국의 침공을 막아 본 전적은 없지."
"서로간의 덕담은 여기까지로 하지요."
"그런가. 나도 괜스레 혀에 기름칠을 했구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본론으로 들어가자 하는 둘. 이런 부분은 서로 처음으로 대화함에도 죽이 잘 맞았다.
"가타부타 다른 말은 하지 않겠네. 병력을 요청해도 되겠는가?"
병력을 요청한다라. 내가 수련에 집중한 사이에 빈란드 왕국에 크게 내전이 일어나 버린 것인가. 몇 년은 걸려서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었던 로우드다.
본디 전쟁이라는 것 자체는 한쪽이 상대편을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기 이전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하기 이기지 않으면 이긴 것만도 못한 손실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해보라. 죽어라 병력을 소모해서 새롭게 땅을 얻었다 치자. 그런데 땅을 얻느라 병력을 많이 소모한 승리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땅을 얻자고 많은 병력을 죽여 버렸기 때문에, 새롭게 얻은 땅을 지킬 수 있는 병력들이 없게 된다. 훈련을 필요로 하는 병력이라는 것은 모은다고 해서 바로 모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전투는 확실한 전력의 우위가 아닌 한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면 로우드처럼 보통 이상의 레인저 기사단과 같은 특수한 전력을 가지고, 전략을 통해 전력적 우위를 전환시키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 법이다. 어디까지나 로우드가 특이한 것이다.
"병력을 요청한다 하시는 것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수련에 집중하느라 왕국에서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공작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실례라 여기신다면 죄송합니다."
"허허. 우리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임에도 자네에게는 수련이 중요했군. 젊어서 인가, 아니면 야망이 있어서 인가. 어느 쪽이든 부러운 일일세. 나는 내가 가진 공작령을 지키는 것과 국왕 폐하께 충성을 받쳐 모시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국왕 전하를 모셔 공작령을 지켜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영지를 다스리는 저로서도 잘 알고 있으십니다. 모헤로 공작님께서 되려 대단하신 것이지요. 제가 하는 일은 하찮은 것입니다.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만나니, 말만 많아지는군. 딱히 혀에 기름칠을 한 것은 아니니, 덕담은 덕담으로 받아드리게. 상황을 설명하자면, 귀족파와 왕정파의 병력들이 서로 부딪쳤네."
"전면전입니까?"
"아니. 전면전은 아니네. 케이던 자작과 내 병력들이 맞 붙어서 서로 다투고 있는 상황이지."
자신의 병력들이 전쟁에 나가있음에도, 덤덤하게 말하는 모헤로 공작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천성인 듯 했다. 커다랗고 단단한 바위같은 사내다. 누구나 기대고 싶고 그 기대에 묵묵히 보답하는 인물이 모헤로 공작 일 것이다.
"저런. 유감이군요. 허나 전면전이 아닌 한 제가 나설 일은 없지 않습니까?"
슈모덴 남작령을 영지전으로 차지하고, 블라디 후작령을 수습한 자신이다. 거기다 더해 오크의 준동도 마지막으로 막은 것도 자신이 아닌가. 비록 오크들이 들고 일어난 것의 원인이 오크를 이용한 자신에게 있다 하더라도 막은 것은 막은 것이다.
로우드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왕정파는 아닐지라도, 왕정파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충분히 해냈다.
"그런가. 허나, 국왕 전하께서는 그대가 한번 더 힘이 되주길 원하네."
처음보았을 때 자신만만한 젊은 국왕이었던 스웨드. 그러나 지금은 귀족파와의 정쟁에 지친 왕일 뿐이다.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밑에서 지내겠다 여기기에는 그의 그릇이 로우드 자신을 닮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귀족파처럼 반역을 이끌어 낼 생각은 없으나, 왕을 따를 생각도 들지 않는다. 구지 말한다면 자신은 중립파에 가까울 것이다. 적당히 자신의 이득을 챙기면서도 왕의 일에 반하지 않는 정도. 딱 그 정도 만을 원한다.
"허허. 국왕께 많은 충성을 받친다 생각했거늘. 변했군."
"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저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말 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 뿐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는 로우드의 말이 부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 모헤로 공작. 세습귀족으로 태어나 국왕과 함께 많은 권력을 나눠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헤로 공작 자신은 정작 자유롭게 행동해 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의 사람들과 왕을 위해 평생을 받친 모헤로 공작이다.
"자유로워 보이는군."
"원하는 자유보다는 모자랍니다."
"부럽군. 자네 같은 성격은 한번의 대답이면 충분하지. 설득이 들을 리가 없을테니 말일세. 안 그런가?"
"거절을 하는 것은 죄송하오나.. 그렇습니다."
"정말 아쉽군. 조금이나마 일찍 자네를 만났으면 나의 사람으로 하려고 노력했을 것을 말일세."
"저도 평민일 적 모헤로 공작님을 만났다면 온 힘을 다해 따랐을 지도 몰랐겠지요."
"인연이라 생각해야겠지."
"감사합니다."
자신이 거절을 했음에도 모헤로 공작은 끝까지 매달리기 보다는 깔끔한 정리를 택했다. 자신이 중립을 택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로우드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 자네에게 충고하나 해도 좋나? 공작으로서는 빚을 지우는 것이고, 검사로서는 후배를 위해 해두는 일이라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