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175화 (17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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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 조용한 카오딘 공작의 말. 오크의 준동으로 많은 피해가 있었다. 그 원인의 모든 것을 로우드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에게서 보상까지 요구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

'하..'

답답한 스웨드. 허나 저들의 말을 반박할 말도 억누를 힘도 없다. 그것이 지금의 왕정파의 현실이다.

비록 왕정파가 약간 우세하다고 평가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큰 차이가 아니다. 비등비등하다고 할 정도로 힘을 가진 서로이다 보니 도무지 억누를 수가 없다.

'이번에도 그를 이렇게 불러야 하는가.'

전에도 이랬었다. 슈모덴 남작령과의 영지전 이후에 로우드 리세트 자작을 불렀었다. 그때도 로우드는 모든 모욕을 뒤집어 썼고, 자신의 방식대로 해결을 했다.

국왕인 자신은 해준 것이 없었다. 구경만 했을 뿐이다. 헌데 이번에도 방법이 없다.

"그... 리세트 자작을 부르세..."

한글자 한글자를 겨우 목소리를 내어 말한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나, 왕으로서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카오딘 공작의 답을 끝으로 오크의 준동을 마무리하기 위한 회의는 끝이 났다.

왕의 칙령을 가슴에 담은 전령은 리세트 영지로 전력을 다해서 찾아갔다.

"왕의 칙령을 받으시오."

적당한 예를 취하고 왕의 전령이 건넨 것을 읽는 로우드.

'후우..'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금이다. 국왕 스웨드 모난 것도 없다지만 많이 잘난 것도 없는 왕. 자신을 세습귀족으로 만들어주었으나 다른 세습귀족들의 암투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왕. 그가 스웨드다.

'왕도 불쌍하군..'

가보지 않아도 지금 자신을 부르는 상황이 무엇인지 예상이 된다.

오크들의 준동을 책임질 만한 인물로 자신을 선택한 것이겠지. 왕정파도 귀족파도 결국에는 누군가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니 그런 것일게다.

거기다가 로우드 자신이 오크들을 이용해서 오크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좋은 핑계거리도 있지 않은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오크들이 준동한 것은 로드가 태어났고 준동할 시기가 되어서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됐든 로우드는 로우드대로 오크로드를 막아냈지 않은가.

'오크 준동을 막아냈더니, 거 참.'

물 빠진 것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 아닌가.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 할 것을 항상 자신에게 요구한다. 빈란드 왕국을 아크란 제국에서 구해줬더니 나르그 백작이 공을 가로채려고 하질 않나.

먼저 쳐들어 온 슈모덴 남작을 응징했더니, 욕을하고 말이다.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녀석들이 없다.

그래서 자신이 마음 먹었던 것이 아닌가. 이 리세트 영지를 떠나, 그 누구에게도 고개숙이지 않을 만큼 힘을 기르자고 말이다.

'이제 그 정도 힘은 길렀지..'

그렇다. 슈모덴 남작령을 차지하고, 온갖 마법무구로 병사를 무장시켰다.

자기 자신조차도 고서클 마법사이자 최상급 오러 익스퍼트. 충분히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을 만큼 강해진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이다. 온 세계를 상대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빈란드 왕국에서 자신을 쥐고 흔들만한 이는 없다.

"왕께 전하게."

"네?"

로우드가 전하라는 말에 당황하는 전령. 자신과 같이 출발할 것이라 여긴 로우드다. 그런 그가 왕에게 말을 전하라는 것은 같이 왕에게 가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하네. 마지막으로 말해주지. 왕께 전하게. 나는 영지를 떠나지 못한다고 말야. 겉으로는 괜찮더라도 속에 내상이 심해 거동이 힘들다 전해드리게."

부상이 심하다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이다. 딱 보기에도 로우드는 결코 부상이 깊지 않다.

오크 로드와의 대결 당시에 많은 마나를 소진해서 지쳤다 하더라도, 부상은 입지 않은 그다.

그저 부상을 핑계로 왕의 부름에 답하지 못한다고 말을 전하는 것이다. 자신을 가만히 둬달라는 표현을 간곡히 돌려서 말한 것일 뿐, 결론적으로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로우드다.

"... 알겠습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전해 받은 왕의 전령. 전령인 그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왕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빈란드 왕국의 끝 리세트 영지까지 온 전령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다시 왕국의 수도로 돌아왔다.

왕의 명령을 거부한 로우드의 소식이 왕국 전역에 퍼졌고, 왕의 위신은 떨어졌다.

"리세트 자작이 국왕의 부름에 거부를 했다더라."

"우리 빈란드 왕국은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귀족파들은 이것을 이용하려 했다. 정보원들을 풀고, 사실을 소문을 만들어내려 했다.

"리세트 자작이 오크의 준동을 이끌어 냈다!"

"모든 일이 리세트 자작 때문이다!"

그들도 잘한 것이 없음을 아는 왕국민들이기에 어느 쪽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아크란 제국으로부터 왕국을 구한 전쟁 영웅인 로우드를 이용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왕국민들은 로우드의 편을 들었다.

'오크의 준동을 막다 부상을 입었다면 왕국에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

'오크의 준동이 로우드 리세트 자작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 사실이겠는가. 모든 것이 귀족들의 계략이다.'

세습귀족들이 그동안 해온 일이 있기에, 여론은 오히려 로우드의 편으로 실려갔다. 그동안 애쓴 로우드의 공이 이런 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국왕의 위신은 떨어지고, 귀족들은 그것을 이용하려 하는 상황.

조금씩 흔들려 가던 빈란드 왕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챕터 5. 내분

오크로드와의 대결에서 부상을 얻었다는 핑계로 왕정파와 귀족파 어느 쪽의 요청도 무시한 로우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빈란드 왕국은 완전한 혼란으로 들어섰으나 정작 본인은 이를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행동을 이어갔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부관인 다리운을 통해서 오크들이 차지하고도 남아있는 블라디 후작령의 영지들을 차지해 나갔다.

왕도 귀족들도 혼란스러운 상태이기에 그것을 바라만 볼 뿐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새로운 영지를 차지하기 이전에 오크들이 휩쓸고 간 영지의 안정화도 다하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민심까지 로우드쪽으로 향해 있어 일의 진척은 느려지기만 할 뿐 빨라지는 기미가 없었다.

왕정파와 귀족파 양측 모두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백성들을 다독이기 위해 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재화를 가지고 있고,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의 근본은 나라의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기에, 백성들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본래 필요에 따라, 180도 행동을 달리하는 것이 정치가 아닌가. 완숙한 정치가인 왕정파와 귀족파 모두는 열심히 평소의 자신들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블라디 후작령의 영지는 그들이 보기에 말 그대로 계륵이다. 커다라고 풍요로운 영지는 탐이 날 지언정 바로 북쪽에 버티고 서 있는 오크들이 두렵다.

그러기에 차지하기에도 버리기에도 애매한 땅.

그런 영지를 차지하고 들어가는 것이기에 아무런 방해도 없이 로우드는 병탄 작업을 완료 할 수 있었다. 슈모덴 남작령을 정리할 때보다 쉬울 정도이니 더 말을 해서 무엇하랴. 그렇게 로우드는 순식간에 자신의 영지를 다시 한번 2배로 늘릴 수 있었다.

비록 오크의 준동 덕분에 많은 인원들이 피난을 가서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렵게나마 남아있는 영주민들도 있었다. 혹은 다시 돌아왔거나.

군주의 시간 172편 - 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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