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네.'
"레인저 기사단! 준비!"
부관 다리운의 쩌렁 쩌렁한 목소리가 기사단원들의 귀에 꽂힌다. 군주인 로우드도 대단하다. 허나 언제나 군주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자신들의 전우이자 상사, 다리운. 그가 부른다.
"살자!"
로우드와 처음 전쟁에 나설 때부터 부대에 붙여진, 구호.
평민에서 시작해서 대영주가 된 로우드. 그리고 지금은 그의 기사들이 된 자신들.
앞서나가기만 하던 군주와 상사가 자신들을 부른다. 함께 하기 위해서.
'갑니다.'
형의 원수.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군주.
가봐야겠지. 저 오크들을 막기 위해서 라면 말이지. 그의 말에 따르는 부관, 스승, 기사들이 보인다. 언제나 혼자이던 자신과는 다르게 많은 이들이 옆에 있는 그.
'부럽다. 그리고..'
함께 하기에 저들의 군주이고, 나보다 위인 것이겠지.
잡설은 여기까지. 허약한 마법사의 몸을 이끌고 달려간다. 전장의 한복판으로.
자신들의 군주 로우드는 이미 홀로 앞서 달리고 있다. 적의 수뇌! 오크로드의 목을 꿰뚫기 위해서.
"어휴. 남자들이란.."
작게 한숨쉬는 이렐리안. 웬지 모르게 한숨이 나오지만, 그런 모습의 로우드라 할지라도 좋다. 조금은 몸을 아끼면 좋을텐데.
그리고, 이왕이면 나도 불렀으면 좋았잖아!
질투 아닌 질투를 하며 뒤따르는 이렐리안.
그의 부름에 전장에 인물들이 모여든다. 오크로드를 향해서.
****
"인간!"
오크들만의 투기가 담긴 목소리. 오크로드의 외침. 거칠고 포악해보이기 보다는 크고 용맹한 외침.
'나 이상.'
로우드 자신의 이상의 실력이다. 여태껏 상대해 본 어떤 이보다도 강한 존재. 그런 존재가 오크일 줄이야.
"네가 로드냐?"
로드라. 그래, 비록 나의 영지에 한정될 지언정, 여럿의 목숨을 책임지는 자이지.
"그렇다!"
지기 싫다. 녀석에게 밀리기 싫다. 그리고 나의 뒤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
"기다렸다."
기다려? 나야 말로 너를 기다렸지. 많은 준비를 하면서 말이야. 그래도 그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을? 나를 말인가?"
"인간! 인간은 나, 그리고 우리 오크를 이용했다. 그것이 내가 생겨나고 우리가 나서게 된 이유!"
"그러한가.."
뒤끝이 꽤나 일을 크게 벌이게 되었군.
"허나, 지금에 와선 상관없다. 난 즐겁다. 기쁘다. 행복하다! 황홀할 정도다. 인간! 너의 준비, 너의 강함, 너의 모습. 그 모든 것이 기쁘다. 투쟁하자. 싸우자!"
유창한 인간의 말. 짧은 단어의 나열들이지만 전해지는 뜻. 저게 발전 된 그리고 발전해 나가고 있는 오크의 모습인가.
'홀로 싸우는 전투. 그리고 투쟁.'
오크의 방식.
"준비!"
그리고 같이 싸우는 것. 힘을 합치는 방법. 그것이 인간의 방식!
"예!"
"가네."
짧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외침.
"간다!"
"그게 너의 방식인가?"
우리 오크들과는 다르군. 재미있어. 쓰랄이 말하는 인간들의 방식. 그리고 힘을 모으는 것.
"들어라!"
몸의 모든 투기를 담아 크게 외친다. 자신의 외침에 일제히 멈춰서는 오크들.
자신에게 충성하고, 싸우는 자들.
"보아라!"
오크의 로드. 신의 화신. 내가 싸우겠다. 이들을 물리치면 된다.
고작 천도 안되는 수로 나를 죽이겠답시고 몰려온 인간들. 이 녀석들을 물리치면 전투는 끝이난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면, 오크들이 지겠지.
'느껴진다.'
이 한번의 결투로 전투가 끝이 날 것이다.
얼마나 기쁜가.
얼마나 황홀한가.
단 한번! 단 한번의 전투로 결판을 낼 수 있는 전투라니!
기다린 보람이 있다. 이 단 한순간을 위해서라면 그동안 시시했던 모든 것도 용서해 줄 수 있다. 좋다.
"로드시여."
쓰랄의 울림이 뒤에서 들려온다.
"이 한번으로 끝을 내자."
"그것이 로드의 선택이시라면."
자신과 같은 종족. 오크들이 물러난다. 이 한번의 전투가 방해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막던 인간들도 물러난다. 수백의 병력만을 남기고서.
그들도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한번의 전투. 그것으로 끝을 맺기로 말이다.
****
'재미있게 됐군.'
부담스럽기도 하고 말이야. 오크다운 방식인가. 일기토. 아니 우리 인간 쪽은 수백 명이 자리잡고 있다.
저쪽은 오크 로드 하나이니 우리가 비열한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어찌됐든 좋다. 오크로드의 생각이 읽혀진다. 아니 그의 투기에서 그의 행동에 대한 의미가 읽혀진다. 그는 이번 한번의 전투로 모든 것을 끝마침 할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가 오크를 이용한 것도, 죽여 온 것도 말이다. 승리한 쪽이 정의다.
****
포악하다 말하는 오크도, 전쟁을 위해 모인 인간들의 병사도 모두 조용하다.
순식간에 갖추어진 공터. 인간의 대결이라면 보기 힘든, 아니 기사단 대 기사단의 대결에서나 볼 수 있는 구도다. 병사들을 앞 뒤로 두고, 전투를 진행하는 방식 말이다.
다만 일반적인 대결과 다른 점은, 한쪽은 인간이 아닌 오크. 그리고 다수 대 다수의 전투가 아닌 다수 대 한 마리의 오크 로드가 서로를 상대한다는 점이 일반적인 대결과 다른 점이다.
"준비됐나?"
기다려 준 것인가. 여러모로 일반적인 오크들과는 다르군. 보통의 오크였다면 이미 공격을 했어도 대 여섯번은 더 했을 것이다. 명색이 로드라는 것인가.
"저기 남은 하나는?"
오크 로드 녀석 말고도 하나가 남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오크 주술사인데, 전쟁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약간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래도 다른 오크들에 비해서는 많이 가까이에 있다. 그래도 다른 녀석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기에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왠지 앞에 있는 오크로드가 본질은 오크라 할지라도, 이런 것은 대답을 해줄것이라 여겨져서 묻는 것이다. 오크로드는 오크이면서도 인간 같음이 느껴지는 묘한 녀석이다.
"쓰랄. 주술사다."
답은해도 투박하긴 하군.
"나는 오크주술사요. 내가 대결에 나서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길. 로드의 뜻에 따라 승패를 기다릴 것이오."
호오. 저쪽은 꽤나 유창하게 말을 하는군. 보통의 인간 같아. 아니 보통의 인간이 아닌 교육받은 인간 같다. 말하는 대서 유창함과 지적 품격이 묻어나오니까.
"알았다."
승부에 나서지 않는 다는 말 믿어도 될 것이다.
거짓을 말하는 인간들과 달리 오크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오크를 떠나 이종족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드워프도, 엘프도 심지어 드래곤까지도 그렇다. 탐욕스러운 건 인간도 오크도 마찬가지이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부분에서는 오크들이 확실히 인간들과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시작해도 되나?"
준비를 했냐는 오크 로드의 말. 주위를 한번 바라본다.
부관 다리운, 스승 첼로스, 스피든, 이렐리안 그리고 기사단. 모두가 자기들만의 자리를 잡고 있다.
다리운에서부터 이렐리안 그리고 30여명의 레인저 기사단이 오크로드의 주변을 둘러 싸고 있고, 나머지 레인저 기사단은 바깥쪽에서 오크로드를 둘러 싸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인간들과 아닌 인간들의 차이는 하나. 무기의 차이. 가까이에서 오크로드를 둘러 싸고 있는 인간들은 검을 들고 있다. 근접거리에서 오크 로드를 상대해야 하니까.
그리고 둘러싸고 있는 인간들은 활을 들고 있다. 명색이 레인저 기사단 아닌가. 특기를 살려서 대형을 만든 것이다.
군주의 시간 168편 - 공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