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134화 (13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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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세트에 있는 가족.'

이 순간 만큼은 가족의 얼굴이 죽어라 보고 싶었다. 허나 가족들을 지키려면 자신들이 죽어야 한다. 로우드가 살아야 리세트 영지가 살테니까.

'죽자.'

목숨을 버린 눈빛. 전우로서 그리고 같은 심정으로 이곳을 미친 듯이 달리고 있기에 말하지 않아도 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랴!"

오러 익스퍼트가 되고 강화 된 청력. 좀 더 가까이에 적들이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몬스터의 숲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300미터.

'아깝군.'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면 별탈 없이 숲에서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같이 따라 온 기사들 네명의 얼굴은 벌써 벌게졌다. 오러 익스퍼트가 된지 얼마 안된 레인저 기사단. 노력을 하고 깨달음을 공유해서 오러 익스퍼트는 되었다하더라도, 오러 연공법을 익힌 기간 자체가 너무 짧다.

마나가 이제 겨우 절반이 채 안될 것이다.

로우드가 명령한다.

"젠장. 가는 속도를 더해!"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봐야지. 단 한명이라도 살려야 한다.

"파이어 볼!"

자신의 뒤에 따라오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파이어 볼을 날린다.

허나,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허 젠장."

마법 방어구라도 갖췄는가. 혹은 기사 하나가 죽을 힘을 다해서 오러를 불어 넣고 파이어 볼을 중화시켜 버렸겠지.

방법은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의 한 수가 통하지 않은게 아닌가.

'한번이 안되면 두 번.'

죽다 살아나서 두 번째 사는 삶. 언제 쉽게 살았던가.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죽어라 마법검에 새겨진 파이어 볼을 날린다. 거리를 단 1m라도 벌리기 위해서.

헤이스트를 자신의 기사들에게 써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메모라이즈도 되있지 않고, 검은 사용자만 헤이스트를 써준다.

자기 혼자만 도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파이어볼이 날아옵니다!"

언제나 슈모덴 남작군을 괴롭혔던 로우드의 파이어 볼. 준비는 철저히 되어있다. 슈모덴 남작의 둘째가 자신의 마탑에서 스크롤을 가져온 것이다. 세겨진 마법은 3서클 파이어볼을 막을 수 있는 실드.

화염 마법인 파이어 볼을 자주 사용하는 로우드에 맞춰 제작된 것이다. 미리 맞춰왔기에 이 귀한 스크롤을 짧은 시간임에도 10개나 가져올 수 있었으리라.

스크롤은 제 몫을 해주었다. 로우드의 마법을 모두 막아 주었으니까. 상대도 마법검이 하루 충전량이 모두 소모되었는지 더 이상 파이어 볼이 날아오지 않았다.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 생각해서 멈췄거나.

로우드와 기사단 사이의 거리 60미터.

"좀 더! 잡아! 잡으라고! 활이 있는 기사들은 활이라도 쏘란 말야!"

로우드의 발목을 잡아야한다. 그러나 활을 전문으로 사용하는 기사가 어디있겠는가. 다들 사냥으로만 활을 사용할 뿐 전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챙겨온 이들이 없다.

오히려 화살은 저쪽에서 날아왔다. 적 로우드의 기사들이 날린 4발의 화살.

"크아아아악!"

화살에 오러를 심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엘프들이나 화살에 오러를 심을 수 있을터인데.

로우드 군에 들리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레인저 기사단. 그것이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실제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사의 갑옷과 마나로 강화된 몸을 저렇게 깨끗하게 꿰뚫을 리가 없다.

"젠장! 어서 속도를 더하란 말야!"

400의 기사가 말을 채찍질한다.

"이랴!"

남은 거리 20미터.

거의다. 거의다 왔다. 저들을 죽일 수 있으리라!

로우드 녀석!

"파이어 볼."

실드. 실드를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스크롤은 어디있나.

"젠장."

말의 방향을 돌릴 수도 없다. 바로 앞에 파이어 볼이 날아왔으니까.

'어떤 놈이야.'

이번에 실드를 사용할 녀석이 아까 화살에 죽어버린 녀석인가. 하필 그 녀석을 죽이다니 운도 좋군. 괜한 생각을 하며 그는 검에 오러를 불러 일으켰다. 실드로 안되면 오러로 자르기라도 해보자.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으아아앗!"

자, 잘렸나? 콰과광. 굉음속에 그 기사는 목숨을 잃었다. 3서클 마법 파이어 볼을 잘라버리기에는 그의 경지가 너무 낮았으니까.

그들과의 거리 10미터.

그리고 5미터.

"아아. 모두들 정말 고마웠다."

"나야 말로!"

로우드를 따라온 기사들이 갑작스레 이상한 말을 한다. 따라오는 적이 무서워, 공포에 미쳐버린 것인가?

아니다 자신의 레인저 기사단이 보통의 전투를 겪어 왔는가. 절대 이렇게 쉽게 미칠리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로우드는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다.

"영주님. 아니 로드(Lord)!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희의 가족을 꼭 지켜주시길!"

웃으며 답하는 녀석들. 그제서야 로우드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 녀석들. 자신 대신 죽을 생각인 것이다. 같이 가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위험하다지만.. 그건 안된다.

"린케, 포민, 히넨, 키드런!"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른다. 자신과 함께 해온 전우들. 이들의 이름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옥에서 만나겠습니다."

적과 로우드 쪽의 거리가 단 2미터 남았을 때. 4명의 기사들은 달리기 보다는 점프를 택했다.

그리고 뒤로 몸을 회전하며 공중에 선 상태로 화살을 날리는 그들.

"가십쇼! 미친 짓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너무 기다리지는 마십쇼."

미친 놈들. 니들이 하는 짓이 뭔지 내가 모를 리가 있나.

죽으려는 거다.

젠장. 최상급 익스퍼트가 되면 뭐하나! 마법을 사용하면 뭐해!

강해지면 무엇하냔 말이다!

자신의 사람들 하나 지키지 못하는 것을. 부모님에 이어 처음으로 잃는 것인가.

차라리 300의 인원들을 데리고 전투를 진행했어야 하는 것인가.

이미 이들을 구하기엔 늦었다. 상대와 너무 가까워져 버렸으니까!

"젠장하아아아알!"

자신의 레인저 기사단원들이 저들에게 부딪친다. 자신은 지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전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무력감.

'살자.'

그리고 복수를 하자.

자신이 슈모덴 남작의 아들을 죽이고, 수하들을 죽인 것은 상관 없다.

나 자신의 사람들이 죽은 것이 더욱 가슴아프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니까.

기다려라. 슈모덴 남작의 기사단.

처절히 복수를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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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작, 휴모뎀, 크람스 세 명의 어리석은 인물들이 시작한 탐욕스런 야합. 그리고 거기서 시작된 서로의 원한.

서로를 죽이고 죽인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로우드는 자신의 사람들을 잃었다.

'복수한다.'

너희 쪽의 사정은 중요하지 않다. 내 사람들이 죽은 게 중요할 뿐.

"영주님! 무사하십니까?"

초췌한 모습으로 달려온 로우드에게 다리우스가 달려온다. 그리고는 로우드의 뒤편을 바라보는 그.

혹시라도 같이 따라간 기사들이 살아왔을까 기대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들은 없다. 죽었을 것이다.

광기어린 적의 눈을 기억한다. 절대, 자신의 기사들을 살려줬을 리가 없다.

"나는... 괜찮다."

그래. 괜찮아.

네명이라는 인원이 나를 위해 희생했으니까.

로우드는 겨우겨우 울분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오늘만 쉬자."

"... 알겠습니다."

다리우스도 로우드와 같은 심정인지라 달리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단 네명이지만 처음으로 자신들의 전우를 잃었다.

오늘만큼은 슬퍼해도 될 것이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로우드의 첫 위기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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