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128화 (128/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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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운의 말대로 그동안 로우드 군이 언제 유리한 적이 있었겠나. 항상 불리했고 항상 치열했다.

"재미있어. 아주 재미있어."

자신의 피를 타오르게 하는 적들이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이곳 에어안의 성주가 그러하듯.

살인을 즐기고, 전쟁을 즐기는 미친 살인광은 아닐 지언정.

자신의 피를 끓게 만드는 적은 반갑다.

**

로우드군이 에어안성을 차지하고 어디론가로 떠났을 때.

에어안 성주의 아들 샤드안은 슈모덴 남작령에 도달했다.

지급을 요한다는 샤드안의 요청에 바로 슈모덴 남작을 만날 수 있던 그.

급히 예를 취하고 슈모덴 남작에게 다급한 상황을 전한다.

"슈모덴 남작님! 에어안 성에 적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뭣이? 아직 적군은 체시드 성을 쳤다는 연락도 없었거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다그치는 슈모덴 남작.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적군이 쳐들어 온 것은 맞습니다. 에어안 성의 성주인 아버지는 죽음을 직감하시고 절 보냈습니다. 마법방어진도 무용지물 이었습니다. 적은 파이어볼을 대량으로 난사해서 성문을 부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저희의 성으로 전진. 제가 본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당했군. 완전히 당해버렸어."

슈모덴 남작, 유능하지 못한 성주들은 싫어할 지언정 유능한 에어안의 성주는 아꼈다.

자신이 슈모덴 남작가를 키워오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에어안을 키우는 것에 만족을 느끼던 에어안의 성주.

그런 성주이기에 슈모덴 남작도 충성에 대한 대가로 마법방어진을 설치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만을 보냈다.

결과는 뻔하지 않나. 성주는 자신의 성과 함께 죽었을 것이다.

그는 그럴 인물이니까.

"아까운 인재를 놓쳤군."

에어안 성주는 그리 쉽게 죽을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곁에서 전투를 수행해야하는 핵심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러 익스퍼트 상급이면서도 에어안의 성주로서 만족했던 그.

그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음에도 에어안에 뿌리를 박고, 에어안을 통치함에 만족을 했던 그다.

슈모덴 남작은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나의 부하이자 친우라 생각했던 인물이 에어안의 성주다."

"..."

슈모덴 남작의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는 샤드안.

"난 아들을 잃었고, 넌 아비를 잃었구나."

자조하는 슈모덴 남작.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 자신의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 없다. 이미 피로서 완전히 갈라진 양측 아닌가.

"일어나라."

"크흑. 예."

울음을 참던 샤드안. 핏발선 눈을 부릅뜨고는 주먹을 부르르 떤다.

아버지의 죽음이 원통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성주인 아버지의 명을 거부하지 않고, 배려를 하는 것. 그것 밖에 없었다.

"네 아비를 다시 살릴 방법은 없다. 난 신이 아니니까."

"..."

"그래도 적을 섬멸할 수 는 있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슈모덴 남작도 드디어 로우드를 인정했다.

자신의 적수로서 말이다.

그동안 방심한 자신이 패착의 우를 범해왔다면 이제는 아니다. 정신을 곧게 차리고 적을 쳐부술 것이다.

로우드라는 새로운 적을 말이다.

"적을 부숴버린다. 네가 만족할 만큼 말이다. 보좌관!"

"예!"

"병사들을 끌어 모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겠습니다!"

슈모덴 남작의 명령에 고무된 보좌관이 크게 소리친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멋있군요. 아버지."

"스피든!"

스피든 슈모덴. 슈모덴 남작 자신의 서자출신 둘째 아들.

슈모덴 남작가의 상징과 같은 붉은 머리칼을

서자는 자신의 핏줄로 인정하지 않는 슈모덴 남작가이지만, 그 가진바 능력이 워낙 뛰어나기에 거둬들인 아들이다.

어린 나이에 전략 전술의 학문을 독학으로 독파해버린 아들. 마법에까지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에 마법사의 탑 중 하나. 변환에 알터레이션(Alteration) 학파로 보냈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자신의 아들인 스피든의 경지는 5서클.

20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함을 손에 쥔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연락도 없이 자신의 영지에 왔다.

"어떻게 왔느냐. 연락도 받지 못했다."

"크큭. 언제 제가 연락을 하고 다녔는가요. 다 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기 전까지 스피든은 서자로서 많은 괄시를 받았다.

서자인 것도 서러운데 능력까지 뛰어난 스피든. 장자인 크라튼의 밑에서 온갖 고초를 당한 것이다.

그러기에 스피든은 둘째로 인정을 받았으면서도 아버지인 슈모덴 남작에 대해서 별다른 애정이 없다. 그저 자신에게 슈모덴 남작가로서 주는 편의가 있기에 옆에 붙어있는 것이랄까?

"재미 좀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미? 재미라고!"

슬쩍 슬쩍 표정짓는 음흉한 웃음이 슈모덴 남작의 신경을 건드린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이런 부분은 절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자신만만한 형. 크라튼은 어디 있습니까?"

"네 이놈! 다 알고 왔지 않느냐."

자신의 아들 크라튼이 죽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왕국 전체로 말이다.

자신의 주변에 둘러쌓여 있는 왕정파의 인물들은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것이다. 귀족파 계열은 국왕 스웨드에게 따지고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둘째인 슈미든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가진 바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문에 대한 애정은 없고 성격 또한 삐뚫어져 버린 자.

그런 이가 자신의 아들 스피든이다.

"이런. 역시 아버지는 크라튼 그만은 소중히 여기는 군요."

"네 놈! 너 또한 나의 자식인 것을 모르느냐."

"능력이 있었기에 자식이겠지요."

"크윽."

예리하게 찔러오는 스피든.

능력이 없었다면 서자로서 가문에서 축출 되었을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자조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둘이다.

어디서부터 그렇게 잘못되었을지. 이 둘 부자(父子)는 서로 다른 길을 오래전부터 걷고 있었다.

금새 표정을 고치고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스피든이 말을 돌린다.

"후훗. 좋아요. 좋아."

"뭐가 좋다는 것이냐."

조금은 힘이 빠진 목소리의 슈모덴 남작.

적인 로우드에게 이를 갈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힘이 빠졌다.

하나 남은 아들은 집안 그 자체에 대해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삐뚫어져 버렸으니까.

아직까지 전력은 자신이 높을 지언정, 로우드라는 녀석은 남작령 이곳 저곳을 휘젓고 다니고 있으며, 자신들은 아직 준비도 완전히 되지 못했다.

병사들을 더 끌어들이고, 전략 전술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원조를 취할 곳도 없다. 북부에 있는 블라디 후작을 제외하면 다들 국왕 스웨드와 가까운 왕성파이니까 말이다.

그나마, 블라디 후작도 귀족파에 가깝기는 하더라도 제대로 따지고 들어가면 중립파다. 그는 자신의 이익에만 예민하게 굴뿐이다. 자신의 영지가 이렇게 영지전을 하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혹여 모르지. 자신이 대가를 지불한다면 도울지도 모르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한다.

"아버지를 도울 자들이 없지 않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아들. 지금의 상황을 아들인 스피든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가 도우러 왔습니다."

"네가? 무슨 힘으로? 5서클 마법사는 아버지에게도 있다."

자신을 도우러 왔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고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군주의 시간 126편 - 정신차린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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