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98화 (98/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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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있게 나선 기사 지멘.

시작하자마자 뽑아든 검에 오러를 맺고는 외친다.

"받으시게!"

자신으로서는 전력을 다한 오러이기에 자신을 가지고 검을 부딪치려는 지멘이었다. 자신보다 낮은 경지로 생각되니 빨리 끝내고 자신의 무위(武威)를 뽐내고 싶은 것이다.

"허허 참. 패기는 좋군."

지멘보다는 늦게 검을 뽑았지만 금세 기사 첼로스의 검에서도 오러가 맺힌다.

기사 지멘보다 훨씬 완성되고 안정된 오러를 말이다!

"아, 아닛!"

대번에 첼로스의 오러를 보고 놀라는 지멘.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단 일격!

'투둑.'

일격에 기사 지멘의 머리가 잘려버린 것이다.

지멘이 자신보다 낮은 급이라고 생각하여 방심한 것과 함께 상급 익스퍼터 첼로스가 순식간에 전력을 다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

"허."

양측의 로우드나 슈모덴 남작 모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오러익스퍼터 중급은 되는 이가 한 순간에 죽어 나자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일기토가 끝이나고 기사 첼로스가 외친다.

"슈모덴 남작의 무위는 잘 알았다. 허허. 또 나설 이가 있나?"

완벽한 도발이다.

"이. 이익!"

슈모덴 남작으로선 화가나지만 아까처럼 호기롭게 아무나 보낼 수가 없었다. 오러익스퍼터 중급인 지멘을 한칼에 끝냈다는 것은 적어도 상급이란 소리다.

자신에게도 휘하에 상급의 익스퍼터들이 있긴 하지만, 혹시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급의 익스퍼터가 혹시라도 죽으면 큰 손해다.

그렇게 슈모덴 남작이 한참을 열을 내고 있으니 기사 첼로스가 다시 외친다.

"인물이 없나 보구나! 오늘은 이만 가겠다!"

기사 첼로스는 말머리를 돌려 다시 휴모뎀 성으로 들어갔다.

슈모덴 남작측에서야 짜증나지만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기토를 마친 기사를 뒤에서 공격했다가는 귀족 취급도 받지 못하니 말이다.

아무리 썩어있는 귀족들인 세습귀족이라지만, 아니 오히려 썩어있기에 남의 흉이나 명예에 흠집날만한 일만 생겨도 그 일을 두고 두고 귀족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 보듬기 보다는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승냥이들이기 때문이다.

"저, 저런!"

그러기에 여우같은 슈모덴 남작이라 하더라도 기사 첼로스의 뒤를 치지는 않았다. 화나서 열만 내고 있을 뿐이다.

**

일기토를 마치고 다시 성벽위로 올라오는 첼로스. 상대의 기세를 꺽고 돌아온 것이다.

로우드로서는 기쁠 수 밖에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랄 것도 없었네."

"어찌되었든 저쪽의 기를 꺾어 놓으셨으니까요."

"생각보다 적이 방심해서 다행이었어."

별거 아닌 듯 말하지만, 오러익스퍼터 중급을 단번에 꺾어버린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마 이 전투가 끝나고 나서는 기사 첼로스의 소문이 이곳 저곳에 퍼질 것이다.

"이제 적군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뭐 뻔하지 않겠나. 협상. 그렇지만 오늘은 이렇게 당했으니 내일 오겠지."

"그렇지요. 기다려 보지요. 이제 안달이 난건 저쪽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기사 첼로스의 활약이 한번 지나가고, 양측모두 더 이상의 교전은 없이 그날 하루가 지나갔다.

**

그리고 다음날. 기사 첼로스가 내일보자고 했던 이야기 때문인지 이른 아침부터 상대측이 전령을 보내왔다.

"왔군요."

"몸이 달아 올랐나 보이는구먼.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오는 것을 보면 말이야."

"모두 첼로스님 덕이지요."

"허허. 내 얼굴에 금칠은 그만하고 어서 들여보내세."

"알겠습니다. 성문을 열어줘라!"

로우드가 옆의 병사에게 성문을 열어주는 것을 허락하고 얼마 후, 슈모덴 남작측의 전령은 휴모뎀 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슈모덴 남작님의 전언을 가져 왔습니다."

"주게."

"넵."

어제 기사 첼로스의 활약을 봐서 그런 것인지, 슈모덴 남작 측 전령은 기세등등하다기 보다는 약간이지만 겁을 먹은 모습이다.

혹여나 로우드가 남작의 전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에게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모습이었다.

로우드는 그런 전령을 무시하고 남작이 넘긴 전언을 읽어 나갔다.

'친애하는 로우드 리세트 경.

-중략-

서로간의 약간의 오해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들었소.

이를 해결하기위해서는 원시적인 전쟁보다는 협상이 낫다고 생각하는 바, 우리 측에서 협상 테이블을 만들 터이니 이에 참석해 주었으면 하오.'

전에 성주들이 보낸 선전포고령에 비하면 아주 예의바른 전언이었다.

자신을 경이라 칭하는 것을 보면 자작인 로우드 자신보다 한 급이 낮은 남작이면서도 경이라 칭하며 동급으로 보고 있었다.

세습귀족이야 300년간 세습을 하면서 귀족의 등급을 벗어난 존재에 가깝긴 하지만서도 약간은 기분이 나빠지는 로우드이다.

자신도 어찌되었든 세습귀족이 되지 않았는가. 왕이 힘을 실어주는 상황 상 예외적으로 받은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기분 나쁜 것은 나쁜 것이고, 일은 처리해야 했다. 바로 협상말이다.

로우드는 전령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내일 정오. 대열의 중간에 마련된 곳에서 협상을 하겠다 전하게. 그리고 동석자는 서로 간에 1명으로 제한하고 말일세.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전쟁이라 전해주게."

애가 타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바로 슈모덴 남작인 것이다. 어찌됐든 영지를 뺏긴건 로우드가 아닌 슈모덴이기 때문이다.

**

전령은 슈모덴 남작에게 돌아가자마자 로우드가 말한 바를 전했다.

"슈모덴 남작님. 협상을 내일로 미루겠다합니다. 동석자는 1명으로 제한하며 이를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쟁을 한다고.."

"뭐, 뭐랏! 네놈이 가서 한 게 무엇이냐!"

자신이 계획한데로 되지 않는 것을 괜히 하급자인 전령에게 따지는 슈모덴 남작이다. 전령이 뭔가? 명령이나 전언을 보내는 이다.

전령인 그는 로우드에게 전언을 전함으로서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런 전령에게 슈모덴 남작이 괜히 화가 뻗쳐서 외친다.

"저 놈에게 태형을 내렷!"

"여, 영주님."

슈모덴 남작의 명령을 듣고 억울해하는 전령을 끌고 가는 병사들이다.

"넵."

병사들이야 전령이 안타까웠지만 어쩌겠는가? 병사들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괜히 불쌍한 전령만 할 일을 다하고 벌을 받는 것이다.

"씩씩... 이런 발칙한!"

한참을 막사내의 물건을 던져대며 화를 내던 슈모덴 남작이 정신을 차렸다.

18대 세습귀족으로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 그로서는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다.

어쨌든 저쪽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았다.

일기토로 기선을 제압하고 이렇게 하루를 연장하면서 자신을 애태우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루를 연장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로우드측에 말려서는 안 되었다.

슈모덴 남작이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일의 협상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남작측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로우드가 협상을 하루 미룬 이유? 다 성에서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작업을 위해서다.

로우드가 하고 있는 작업. 그것은 성에 있는 성주민들을 최대한 자신의 영지로 빼돌리는 것과 성의 황폐화 작업이다.

이미 전에 아크란 제국의 요새를 차지했을 때도 했었던 일이다. 황폐화하는 것은 같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바로 이주 작업이다.

"저희 리세트 영지가 좋은 것은 소문으로 듣지 않았습니까! 지금 오시면 원래 있던 성의 병사들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어서 오십쇼. 첫 해는 로우드 영주님이 집과 식량도 내 주실 것이며 세금도 이곳보다 20%는 낮습니다!"

군주의 시간 96편 - 미운 놈 떡 하나 뺏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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