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사이고 지휘관이니 혹시라도 무언가 건질게 있나 싶어 잡아 놓는 것이다.
이제는 이 요새전을 마무리 해야할 때!
로우드는 몸에 한껏 마나를 불어넣고 성문으로 향했다.
자신이 가야만 희생이 줄어드는 것이다.
"다리운 상황보고!"
급히 다리운에게 보고를 시키는 로우드.
"성문은 겨우 차지했으나 적병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내가 나선다! 부대 잠시 뒤로!"
"오오."
로우드를 존경하는 부대원들은 로우드의 말에 환호한다.
그리고 다시 등장하는 로우드의 가보!
"파이어! 볼!"
이쯤 되면 사기 아이템이다.
성문을 사수하기 위해서 모여 있던 병사들이 파이어 볼 2방에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버린다. 잔인하지만 적의 명복을 빌어 줄 시간은 없다. 지금은 전진해야 할 때!
"전진하라!"
마법에 놀란 적군의 앞으로 로우드가 뛰쳐 간다. 그리고 뒤이어 오는 로우드의 병사들.
몇 번의 로우드의 마법이 빛을 발하고, 다리운 부관의 보조 지휘가 빛을 발하면서 그날 저녁 아크란 제국의 요새 유다는 로우드의 병사들에 의해 함락되었다.
**
"포로는 어딨나."
요새 전투를 마치고 정리를 한 로우드는 부관에게 물었다.
"귀족들 용으로 만들어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사여서 쇠사슬로 묶어놓고 무기는 모두 압수했습니다."
이렐리안이 기사이기에 포로여도 대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알겠네. 그리로 가겠네."
"같이 가겠습니다."
"됐네. 취조를 할 생각이야. 하던 일 마무리하게."
"알겠습니다!"
부관들을 뒤로하고 로우드는 귀빈용 감옥으로 갔다.
로우드가 귀빈용 감옥을 열었을 때.
"퉷!"
갑자기 로우드의 얼굴로 침이 날아왔다.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을 못한 로우드는 그대로 이렐리안이 뱉은 침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비열한 놈! 네가 그러고도 사내냐! 사내냐고! 계집애라고 하면서 도발해 놓고 그렇게 이기면 좋으냐? 응? 아주 떼버리지 그래? 네 녀석 여자한테도 버림받았지?"
'젠장.'
여자한테도 버림받았냐는 말에 로우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곡을 찌른 것이다. 안 그래도 이렐리안과 그렇게 헤어진 것이 상처가 되었던 로우드다.
거기다가 그렇게 대결을 공정하게 진행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내심 성격상 양심에 찔렸던 로우드는 그것을 걸고 넘어간 것에 대해서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어쩌 잔거지?"
"왜? 아주 날 잡아먹을 눈빛인데? 아까처럼 야비하게 굴어보지 그래?"
짜증이 난 로우드는 겁을 주려고 했다. 안 그래도 그동안의 전투에 의한 살인으로 인한 전쟁의 광기에 짜증나고 힘들어하는 그다. 지휘관인 그도 사람인 것이다.
그런 로우드의 상태도 모르고 이렐리안이 계속 도발을 한다.
"왜? 덮치려고? 아주 눈빛이 뜨거운데? 어디 해보려면 해봐! 응? 야비하게 굴어보라고! 이 더러운 놈아!"
미리아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원망.
전쟁으로 인한 피로감과 광기.
그리고 이어진 이렐리안의 도발에 로우드도 순간 이성을 잃어서 외쳤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해주지!"
평상시와는 다른 눈빛으로 로우드가 이렐리안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돼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이렐리안이 당황한다.
"네, 네녀석. 정말 그러려는 게냐!"
이미 이성을 잃은 로우드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그만해. 나는.. 나는.."
이제는 서로 얼굴을 마주할 거리까지 로우드가 다가왔다.
"처, 처음이란 말.. 흡."
말을 하려는 입술에 로우드의 입술이 닿는다. 순간적으로 놀란 이렐리안이 대처를 하지 못한다. 잠시의 입맞춤 후.
"그래 원하는 대로 해주지!"
로우드의 말에 겁을 먹은 이렐리안.
"아, 아냐. 이래봐야 얻을 건 없단 말야. 그만해."
"왜? 도발한 것은 너잖아."
그리고 뒤 이어지는 로우드의 우악스러운 손. 평상시에 침착하고 진중한 로우드가 아니다.
남아있는 것은 그저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하는 로우드뿐.
"그, 그만."
"포로라면 이제 그만 포기해."
로우드의 짧은 말.
"아.."
그때서야 이렐리안은 상황을 파악했다. 저 남자는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인데, 처음인데.. 이렇게.'
이렐리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이런.'
그때서야 이성을 찾을 로우드는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여성의 최고 무기 눈물이 광기에 젖은 로우드에게 이성을 찾게 한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이렐리안이 외친다.
"그만. 그만하라고! 나한테 이래봤자 가져갈 것이 없단 말야!"
사과를 하기에도 그렇다고 취조를 하기에도 어색한 로우드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말했다.
"내일 계속 취조하겠다."
로우드는 뒤돌아서 나아갔다.
취조실을 나오고도 로우드는 몸에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 감정의 잔재들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이 열기와 광기의 잔재들을 걷어내고 싶었다.
로우드는 그대로 요새에 봐두었던 연무장으로 가서 미친 듯 검을 휘둘렀다.
전쟁에 의한 광기.
미리아 와의 헤어짐으로 남은 아쉬움과 원망.
지키려했으나 자신을 떠나간 부모님, 휠튼 남작의 심술.
여러 해 동안 꾹꾹 참아오고, 참아왔던 감정들이 로우드를 휘감았다.
그런 감정들을 담아 휘두르는 로우드. 미친 듯이 또 휘두르고 휘둘렀다.
그 모든 감정들이 그래야만 날아갈 것 처럼! 검에 미친 감정에 미친 사람처럼!
"아아."
무의식에 그리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걸 발산한 로우드는 황홀경을 느꼈다.
그건 여성과의 잠자리에서 느끼는 희열? 그런 것과는 달랐다.
자신의 감정을 맘껏 배출하고 깨달은 카타르시스였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꾹 눌러 담았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미친 듯 검을 휘두르던 그날.
환하게 밤을 밝히는 로우드의 검! 조금더 선명하게 완전해진 오러 블레이드.
로우드는 광기로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도달했다.
원망이든 광기든 지키려는 마음이든, 그 모든 것을 꾹 꾹 안에 눌러 담았던 것이 의식에서 합일 되면서 일어난 경지의 상승이었다.
그렇게 검을 든채 로우드는 그날을 지세웠다.
**
다음날 아침. 모든 것을 발산하고 홀가분함을 가진 로우드는 바로 포로인 이렐리안을 보러갔다.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게 된 계기. 이렐리안.
"뭐, 뭐냐! 나한텐 정말 가져갈 것이 없단 말이다!"
그녀는 어제의 일 때문에 겁에 질린 듯 했다.
"어째서지?"
자꾸 자신에게서 얻을 것이 없다는 이렐리안을 보고 로우드는 그제서야 궁금함이 들었다. 기사라면 몸값이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평민이다! 평민 출신이라고!"
"허!"
'평민이었던가.'
로우드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의 시대에서 그나마 지원을 받는 남자도 힘든 기사를 평민이면서도 검술로 기사에 오른 이렐리안였다. 이렐리안의 말은 귀족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얻을 것이 없다는 말인 것이다.
'평민이라면.'
로우드는 이렐리안이 평민이라면, 그냥 끌고 가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러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
검술실력이고 여성이고를 떠나서 자신의 감정을 발산시킨 것. 경지가 오른 것.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놀라면서도 이렐리안의 처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로우드의 속도 모르고 이렐리안이 계속 외친다.
"어차피 이곳 요새에 너희들이 침공하자마자, 전령은 떠났어. 이제 이 유다 요새에 너희 왕국에 공격나간 병사들이 돌아 올 것이다!"
이렐리안의 말대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군이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유다요새 공략전이 완전히 끝이 나고, 로우드의 이렐리안에 대한 새로운 처우 결정과 함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군주의 시간 61편 - 요새를 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