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작의 말은 그게 다였다.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로우드는 약간의 섭섭함과 짜증을 느꼈다.
'지긋 지긋하다.'
로우드가 남작에게 드는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상사인 것을 말이다. 현대의 셀러리맨들이나 느낄 심정을 느끼면서 사는 로우드이다.
영주관을 나와서 병사들과의 해후를 나누고 모든 일이 끝이 났다. 나머지는 원래 지휘를 맡던 이들이 해결할 것이다.
절로 피곤함을 느낀 로우드는 평상시에 일이 끝났으면 들렀을 마법 재료 거래소도 가지 않고 여관으로 향했다. 쉬고 싶은 것이다.
여관방으로 들어선 로우드는 식사와 함께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섰다. 휴식을 취하기 전 로우드는 의문의 사내가 넘긴 책을 보았다.
"뭐야!"
책을 보자마자 로우드는 놀라서 외쳤다. 얇은 표지를 넘기고 본 또 다른 숨겨진 표지에 쓰여있는 책의 제목은 '발트 검술서' 였다. 단조로운 제목 그렇지만 로우드가 놀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녔다.
발트가 누구인가. 평민인 로우드도 알만큼 유명한 기사였다. 로우드가 살고있는 빈란드 국의 공주와의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한 일류 기사였었다. 그가 공주와 결혼을 했으면 무가로서 후작 위까지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유명했던 것이다.
그가 마의 숲이 위치한 국경에서 활약한 일은 아직도 젊은 음유 시인들에게 불리고 있을 정도였다. 어느 순간 실종이 되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말이 떠돌지만 대부분은 암살을 당했을 것이라 말한다.
검술서가 진품이라면 시간이 지나 검술이 발전 되어서 예전보다 격을 떨어질 수 있지만 최소 중급 이상의 검술서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것을 건냈다고 생각하지 못한 로우드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목숨 값이 참 비싼 사내였다.
이유야 어찌하든 로우드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술서를 미친 듯이 읽어나갔다. 소드유저인 자신이 살펴 보면 어느정도 진품인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시간. 두시간. 시간이 지나갔다. 몇 번이고 로우드는 검술서를 꼼꼼히 살펴 보았다.
'털썩'
모든 걸 살펴보고 로우드는 주저 앉았다. 밤을 세면서 까지 살펴본 검술서다.
'진짜다.'
로우드가 판단하기에 검술서는 진짜였다.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는 설명본이었다. 이 정도면 검술에 어느 정도만 알고 있어도 혼자서 익힐 수 있을 정도였다.
별달리 스승도 없는데다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검술도 없이 수련만 하고 있는 로우드에게는 가뭄 속에 단비와도 같은 검술서다.
'이제 익스퍼트도 꿈이 아니다.'
이 검술서만 있으면 자신은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설수 있다. 그러기에 로우드는 정말 기뻤다. 매일 자신의 곁에서 일을 하라며 요청하는 휠튼 남작도 지금 보면 이뻐 보일 심정이었다.
이런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고른 마을의 부모님이 계시지만 당장 가기에는 너무 멀다. 그래서 있다보니 생각나는 이가 자신의 여자친구 미리아였다.
안그래도 범죄자 소탕을 지휘하느라 로우드도 병사들과 대기하느라 영주 직할지에 있으면서도 미리아를 보지 못했다.
병사들만 시키기에는 로우드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빠르게 출동할 필요도 있었고 말이다.
로우드는 검술서를 얻은 기쁨과 미리아를 오랜만에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온통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로우드는 잠도 자지 못했지만 피곤함을 느낄세도 없이 몸을 대충 단장하고 마법재료 거래소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딸랑.'
언제나와 같이 종소리가 반긴다.
"어서오세요."
그런데 인사를 하며 들려오는 목소리는 평상시와 전혀 다른 목소리이다. 미리아가 아닌 다른 여성이 있는 것이다. 의아함을 느낀 로우드는 카운터에 있는 여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여기에 원래 있던 미리아는 어디있나요?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건가요?"
로우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미리아가 없음에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나 자신이 없던 사이에 몸이라도 아픈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설레였던 마음은 어느세 미리아에 대한 걱정스러움으로 가득찼다.
"아. 혹시 로우드씨이신가요?"
카운터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먼저 묻자 로우드는 그렇다하고 대답했다. 로우드 임을 확인한 그녀는 카운터 밑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로우드에게 건냈다.
"전임자인 미리아가 전해달라고 해줬어요."
"아, 네. 안녕히 계세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로우드는 급히 인사를 하고 거래소 밖으로 나왔다. 건내 받은 것은 봉투였다. 그가 급히 뜯은 봉투 안에는 편지가 있었다. 로우드는 재빨리 편지를 펼쳐 읽었다.
'안녕. 로우드?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이지?
거래소에 왔을 때 너도 많이 놀랐을 거라 생각 해.
나도 사실 여러 가지로 많이 고민을 했어.
항상 바쁜 너. 그리고 나는 언제나 기다리기만 했지. 이해를 하면서 말야.
나도 이제 지쳤어.
너가 없는 동안 한 남자가 왔어. 작은 상단을 운영하는 상인이더라.
나이는 좀 있지만 나만을 위해줘.
정실 부인은 아냐. 첩이지만 너보다는 날 위해줄 것이라고 생각해.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좋아할 때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어. 너무도 지쳐서 미안해.
잘지내.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랄게.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전 연인 미리아가-
'하아.. 진심이었는데.'
로우드는 혼란을 느꼈다. 항상 바빠서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그녀. 자신도 항상 미안했었다. 하지만 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사귄 이 작은 연인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가족만큼이나 소중했었던 것이다. 언젠가 여유를 더 찾으면 프로포즈를 하고 작은 연인과 함께 살겠노라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릴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가 떠나갔다. 검술서를 얻었다는 행복함에 가득차 있었던 로우드의 마음은 편지를 보고서 갈가리 찢어지는 듯 했다.
그녀가 떠났다.
검술서를 얻고 세상에서 가장 운수가 좋은 날이라 생각했던 어느 날이었다.
로우드는 연인을 잃었다.
챕터 13. 영지를 떠나다.
로우드가 베일리프를 맡은 휠튼 남작령의 고른마을. 로우드의 특산물 산업이 성공한 이후로 돈과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마을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불문가지.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마을 사람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한다.
"이 모든게 베일리프 로우드님 덕이지!"
마을 사람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베일리프인 로우드를 존경하고 따른다. 지금의 여유와 행복이 로우드가 베일리프가 된 뒤에 이루어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로우드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단지 마을 주민들은 모든 것이 고마울 뿐이다. 사람들에게 바램이 하나 있다면 로우드가 언제까지고 고른마을의 베일리프 직을 맡아주는 것이다. 이왕이면 마을이 좀 더 커졌으면 좋겠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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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튼 남작령의 영주관. 범죄 소탕을 마친 후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로우드를 건드는 남작이다. 아무래도 영주관에서 별달리 큰 일이 없이 보내다 보니 이런것에 로우드를 괴롭히거나 심술을 부리면서 지루함을 달래는 듯 했다. 아주 취미가 되버린 것이다.
당하는 로우드야 기쁠 리가 없다.
'지친다.'
요즘의 로우드가 영주관에 들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지쳤어도 해야할일은 하는 법. 휠튼 남작에게 인사를 건냈다.
"고른 남작의 베일리프 로우드. 영주님을 배알하옵니다."
'아주 그냥 배알이 꼴린다.'
로우드도 워낙 지치고 힘들었기에 속으로나마 이렇게 화를 삭힌다.
군주의 시간 32편 - 영지를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