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30화 (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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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한 마음을 풀기 시작하니 이런 저런 말이 정신없이 나온다. 연애 초보인 로우드는 거기에 또 당황해서 횡설 수설 한다.

"저기 또 내가 일이 이런 저런게 있어서.."

그 뒤에는 미리아가 그동안 소홀했던 로우드에게 화를 풀고 나서야 이야기를 두런 두런 나눌 수 있었다.

'딸랑.'

몇 시간의 이야기 후 로우드는 거래소를 나섰다. 시간이 늦은 것이다. 평상시와는 다른 미리아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눈치가 없는 로우드는 뭐 어때 하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어찌되었든 오랜만에 본 미리아와의 시간이 로우드는 너무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영주 직할지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로우드는 내일을 위한 잠자리에 들었다.

**

영주 직할지에서의 이틀째.

'올 때마다 싫어지는 군.

로우드는 영주에게서 드는 거부감 때문에 영주관에 오는 것이 점점 싫었다. 그래도 아랫사람이니 시키는 데로 올 수밖에. 워낙 로우드가 자주 오는지라 문지기도 별말이 없이 로우드를 들여보내주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서 로우드는 영주실에 도착했다.

'똑똑'

시종이 영주실 문을 두드리고 로우드가 왔음을 알렸다.

"영주님, 고른 마을의 베일리프 로우드가 왔습니다."

답은 바로 들렸다.

"들여보내."

예전과 같이 영주를 만나기 전 기다리는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특산물 사업으로 영지에 돈을 벌어준 만큼 로우드도 대우를 받는 것이다. 다른 베일리프라면 이런 것에 좋아하겠지만 로우드는 아니었다.

'조용히 지내고 싶군. 오늘은 또 어떤 말을 하려나.'

요즘 워낙 휠튼 남작에게 시달리니 거부감만 든다.

"고른 마을의 베일리프 로우드. 휠튼 남작님을 뵙습니다."

시간이 지났어도 언제나와 같은 모습의 휠튼 남작이다. 아니 나이를 거꾸로 먹는듯 오히려 젊어보이기도 한다. 점점 단단해지는 모습의 남작이다. 그런 남작이 로우드를 보며 반색하고 반긴다.

"왔군. 아직도 고민 중인가?"

로우드가 항상 오면 하는 말이다. 어서 자신의 곁에서 일을 하라는 뜻이다. 번번이 거절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끈질기다.

"저를 불러주시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고른 마을의 베일리프 직이 좋습니다. 저에게는 천직이지요."

"아쉽군."

휠튼 남작이 평상시와 다르게 단 한 번의 요구만 했다.

'웬일이지.'

하고 로우드가 생각하고 있는 때에 휠튼 남작이 말했다.

"오늘 자네를 부른 것은 맡길 일이 있어서네."

"맡길 일이시라 함은 무엇인지요."

대답을 하면서 로우드는 궁금함을 느꼈다. 휠튼 남작이 자신에게 이렇게 무언가 맡기는 것은 드문 일이다. 자신에게 무엇을 묻는 것이라고 해봤자 뻔했었다. 자신의 곁에서 일을 하라는 것이나, 특산물에 관련된 질문 뿐이었다. 뻔한 레파토리 였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상시와는 다르다.

"일단, 어느 정도 검사로서 경지에 들어섰다지?"

경지라고 하지만 소드 유저 상급이다. 용병으로서는 대단한 실력이지만 기사가 되기에는 모자란 실력. 그것이 로우드의 현재 검술 실력을 평가하기에 딱 맞는 말이다.

18대 세습영주인 남작에게 이 정도의 검술 실력을 가진 자들은 생각보다는 많다. 일반 병사만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귀에 들어갔나.'

오크 토벌 때에 힘을 썼던 것이 소문이 난 듯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세 영주의 귀에까지 들어간 듯 하고 말이다. 영주의 질문에 로우드는 왠지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대답은 해야했다. 어차피 다 알고 말하는 것이니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미천한 소신이 어찌하다보니 소드 유저급에 도달은 하였습니다."

로우드는 얼마 전 자신이 상급인 것을 말하지 않고 어물쩡 말했다. 상급에 오른 것을 궂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후에 남작이 알았을 때 책이 잡힐 수 도 있으니 단지 소드 유저라고 뭉퉁그려서 설명한 것이다.

휠튼 남작은 로우드가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반응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정도 경지니 이번에 네가 할 일이 있다. 좋은 고른마을의 베일리프 직을 맡고있다 해도 지금은 바쁘지 않겠지?"

'심술이다. 저건.'

그동안 로우드가 모든 제안을 거절하니 심술이 난 듯했다. 어차피 바쁘더라도 남작이 시키면 자신을 굴러야하지 않나. 로우드의 실력까지 거론하면서 다른 베일리프라면 시키지도 않을 일을 시키려는 것이다.

"소신이 특산물 사업도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 그리 바쁘지는 않사옵니다."

"그래. 그래서 일을 하나 시키려고 하네."

평상시와 다르게 휠튼 남작이 뜸을 들인다.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면 이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자신의 신분으로 베일리프인 로우드를 괴롭히는 거에 만족하는 듯 하다. 분명 자신에게 오지 않아서 심술을 부리는 것을 느낀 로우드는 조금 긴장됨을 느꼈다.

저 영주가 뭘 하려고 하는가. 베일리프 시험을 볼 때부터 남작과 관련되면 좋지 않은 일만 생기는 로우드다.

"소신 최선을 다해서 하겠나이다. 말씀해주시옵소서."

한참을 뜸을 들이던 영주가 말했다.

"범죄자를 소탕하게."

듣자마자 로우드는 생각했다.

'이 인간이 심심해서 미쳤나?'

로우드는 정신이 멍해짐을 느꼈다. 자신은 베일리프이지 기사가 아니다. 영주의 말에 난감함을 느낀다.

"송구하오나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말 그대로야. 영지에서 범죄자 소탕을 하는걸 알고 있지?"

'직접 겪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멍청아.'

진중한 성격과 다르게 영주에게 유치한 욕까지 하는 로우드다. 그만큼 로우드도 많이 시달렸단 소리다.

로우드가 영지의 범죄자 소탕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전생에 직접 겪었던 범죄자 소탕이다. 자신이 범죄자는 아니고 단지 범죄자 밑에서 시달리며 구걸을하며 보냈기에 오히려 피해를 받기 보다는 자유를 얻는 혜택을 얻었었던 로우드다. 그러기에 자신도 범뵈자 소탕 자체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자신한테 시키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이런 로우드의 생각도 모른채 영주가 말을 계속했다.

"그걸 자네의 힘도 보태란 소리네. 영지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쁘지 작은 손이라도 빌려야 되지 않겠는가. 충성스런 고른 마을의 베일리프라면 하겠지? 기사들은 너무 바쁘고 큰 건도 아니니 베일리프 로우드가 남은 부분을 지휘해주게."

안하면 무언가 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심술을 부리겠다는 소리이다. 마을에 감시자를 붙여서 로우드를 피곤하게 하던지 기사를 하나 더 보내던지 하겠지.

그런 것을 당하는 것보다는 영지의 범죄 소탕령에 나서는 것이 좋다.

'젠장.'

로우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하기 싫지만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전생에서 덕을 봤던 범죄자 소탕령.

현생에서는 자신이 범죄자 소탕에 나서게 되었다.

**

로우드는 전생에 누가 지휘를 했는지는 모른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것을 알기에는 당장에 자신의 처지가 좋지 못했다.

여유가 있어야 주변도 살펴보고 하는 것이다. 구걸로 살아가는데 누가 지휘를 하고 무엇을 하는지 알게 뭔가. 단지 전생의 로우드는 건달들한테서 도망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이 떠난 그 후의 일도 몰랐다. 전생엔 소탕령으로 건달패가 흩어지자마자 자유를 얻고 고생을 좀 한 후에 용병이 되어서 영지를 떠났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10대였다.

로우드 자신의 나이가 20살이 되는 지금까지도 범죄자 소탕이 계속 이어지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군주의 시간 29편 - 의뢰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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