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주의 시간-7화 (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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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수련.

2서클에 들어서서도 로우드가 하는 일과는 전과 같았다.

새벽 육체단련으로 시작해서 밤엔 마법 수련까지 돌고 도는 쳇바퀴와 같은 하루였다.

남에겐 지루하기만할 일상이었다.

자신이 결심한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이러한 수련은 당연히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준비를 위한 과정도 축복이라고 느끼는 로우드였다.

그렇게 이어져가는 하루 하루.

로우드의 15세의 나날도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그는 깨어나자마자 아침 수련을 시작했다.

언덕까지의 일주. 다들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지라 새벽부터 일어나지만 바로 농지로 가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는 적었다.

한가롭게 언덕에 달려가던 때에 수련하는 로우드를 하지 말라며 말리듯이 하늘에서 비가 떨어졌다. 지나가는 소나기이기에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로우드는 흠뻑 젖었다.

로우드는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비."

하늘에서는 번개도 치지 않았지만, 로우드의 머리에서는 번개와 같은 깨달음이 번득 들었다.

'젠장. 망할 놈의 비를 잊고 있었어.'

비였다. 비.

전생(前生)에서 부모를 잃게 하고 치열하게만 살게 했던 비.

가족, 친구, 친척. 삶의 터전 마을까지도 모든걸 잃게 했던 것은 비였다.

16세에 들이 닥칠 끊임없는 비, 홍수 이어지는 전염병.

그 처절했던 기억. 그것을 지금의 행복에 취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잊지않고 준비해야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로우드는 준비해야했다.

자신의 첫 번째 무기인 미래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불행을 말이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나설 때가 되었다.

'내가 막는다. 어떻게든 꼭!'

**

그날의 모든 일정을 접고 로우드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인가.

전생(前生)에서 그때의 기억으론 아무도 홍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여름쯤 되면 이어지는 장마는 당연스래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될 것은 마을 제일의 머리를 가졌다는 베일리프도 몰랐다.

알았다면 대비를 했겠지.

지금은 가을 9월. 16세의 여름까지는 길어야 1년도 남지 않았다.

로우드는 깊게 생각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마을의 이주? 택도 없는 일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터전의 이동은 상상도 못하는 그런 일이다.

어른들에게 대비를 위해 알리는 일? 누가 믿을 것인가. 단지 15살짜리 어린애가 다음 해에 큰 홍수가 오니 대비하자고 하는 일. 나라의 현자쯤 되는 사람이 해서야 이루어지는 일일 것이다. 비에 대한 대비는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를 설득하거나 시킬 방법은 없었다.

결론은 혼자 해야했다.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화두로 로우드는 계속 고민했다.

하루가 지나서 이틀.

'방법이 없다. 방법이..'

로우드는 잠조차 잊고 계속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멍하니 안에만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서인지 그의 어머니는 쫓아 내다시피 로우드를 밖으로 보냈다.

현생에 와서는 어머니의 말은 철썩같이 듣는 로우드인지라 밖으로 나가면서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마을의 방책을 넘어서 옆으로 흐르는 강가에까지 도달했다.

리든 강.

16세의 여름 비와 함께 마을을 집어삼킨 강의 이름이다.

마을에는 그런 강의 지류가 지나가고 있다. 마을의 방책과 농지의 옆을 지나가는 큰 지류.

로우드가 사는 고른 마을은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마을이다 보니 당연히 강을 끼고 있다.

고른 마을은 한국의 강남과 같이 마을의 지대(땅의 높이)가 강보다 약간 낫다.

덕분에 장마가 지나고 약간의 범람 뒤면 퇴적물이 쌓이기 때문에 높은 밀 수확량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축복과 같은 범람과 낮은 지대가 16세의 여름엔 지옥의 열쇠가 된다.

순식간에 마을을 덮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낮은 지대였다. 강의 지대가 마을이 자리한 곳 보다 지대가 높다. 때문에 강에 물이 넘치면 그대로 그 물이 마을을 덮치게 되는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 강에 방둑이 만들어져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홍수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나다.

사람들이 죽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전염병이 생긴다.

'낮은 지대. 이걸 해결해야 해.'

로우드는 강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해결할지를 계속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이 전생(前生)(前生)의 자신에 비해 가지고 있는 것은 둘. 정보와 경험.

정보는 아직도 쓸모가 없었다. 이득을 취할수도 누군가에게 알릴 수도 없기 때문에.

남는 것은 하나였다. 경험으로 얻은 힘.

'마법.'

얼마 전에 현생의 첫 전투에서 무아지경에서 2서클이 되었다.

2서클. 1서클을 약 30회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을 가진 클래스이다.

1클래스 마법사는 1클래스 마법을 하루 10회 사용한다. 마력량이 그만큼 적은 것이다. 그러나 2클래스는 1클래스 마법을 하루 30회 사용할 수 있었다.

마력이 3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그래서 2클래스는 마법사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 클래스다.

가능한 마법은?

로우드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했다.

불을 붙이는 '파이어.'

마법의 화살 '매직에로우',

마찰력 계수를 0으로 맞추는 '그리스',

식물의 성장력을 높이는 '플렌트'.

땅을 파는 디그.. 디그..

'그래! 이거다!'

로우드는 퍼뜩 생각해냈다.

디그를 사용하는 것이다. 땅을 파면 되지 않겠는가.

강 아래의 땅을 마구 파서, 수심을 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수량이 늘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말이 2서클에 30회이지 모든 마나를 쏟아 붓고 나면 마법사는 기진맥진 하게된다.

마나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기분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매우 힘든 상태라 기분도 기분이지만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모든 마법사들이 꺼려한다.

지대를 낮추기 위해서 어느 마법사가 자신의 마나를 사용해 마법을 쓰겠는가.

그런 것을 감수하고도 마법을 쓸 마을 유일의 마법사 하나.

로우드 자신이 있었다.

디그로 강물의 수면을 낮추자.

스케일이 크다고 하면 클 일을 로우드는 시작했다.

자신의 현생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해낸다.'

**

우공이산[愚公移山] 현대에서 가끔 쓰이는 말이다.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라도 한가지 일에 매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야기는 이렇다.

둘레가 700리나 되며 북쪽에 있는 산 사이에서 사는 나이가 이미 90세에 가까운 우공(愚公)이란 사람이 있었다. 나이는 많은데 주위에 둘러 싼 두 산이 가로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자식들과 의논하여 산을 옮기기로 하였다.

흙을 운반하는 데 한 번 왕복에 1년이 걸렸다. 이것을 본 친구는 웃으며 만류하자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

하고 대답하며 끝내 일을 하였다.

친구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산신령이 산을 허무는 인간의 노력이 끝없이 계속될까 겁이 나서 옥황상제에게 이 일을 말려 주도록 호소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가장 힘이 센 이를 시켜 두 산을 들을 옴겼다는 이야기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우공이강[愚公移江]

말그대로 강을 옮기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로우드의 우공이강은 마을과 몬스터의 숲 사이에 있는 리든 강 한편에서 시작되었다.

군주의 시간 8편 - 홍수를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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