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 데미안 】
카앙!!
데미안의 신살검과 주먹을 부딪쳐 본 아이젠의 평가는.
‘단단하다.’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신살검의 단단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살검이 얼마나 고강한 물건인지는 아이젠도 익히 잘 아는 바였다. 이강철이던 시절, 마지막 힘을 쏟아붓고 나서야 부러뜨릴 수 있었지 않나.
그와는 별개로 데미안의 몸 자체가 탄탄했다. 얇디얇은 저 몸 안에 군살이라곤 단 1g도 없을 듯했다. 온몸이 양질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좀 하나 본데.”
“당신도요.”
파앙! 튕겨 나온 아이젠은 곧바로 땅에 발을 디뎌 데미안에게 날아갔다. 아이젠은 주먹에 천연한 기운을 듬뿍 담았다.
‘박살!’
8성에 오른 아이젠의 박살은 단순한 박살이 아니다. 암석으로 만든 산이라도 통째로 부숴 버릴 수 있을 만한 파괴력을 지닌, 하나의 거대한 포탄이었다.
뻐억!!
아이젠의 박살이 데미안의 신살검에 가닿았다. 데미안은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이 주먹을 막고 서 있었다.
“소용없어요. 이리로 공격할 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미래시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현무가 알려줬나 보죠? 당신 손목 안에 깃들어 있는.”
“그래. 천 년 만인데 알아보나 보지?”
“어떻게 잊겠어요. 내 힘을 천 년이나 약화시킨 장본인들을.”
팡! 데미안이 아이젠을 뒤로 밀쳤다. 그리고 신살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아이젠이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려는데 문득 섬찟함을 느껴 펄쩍 뛰어 크게 물러났다.
신살검의 악한 기운이 아이젠을 집어삼킬 듯 용솟음치고 있었다.
“……!”
아이젠이 바라보는 신살검에는 오러 소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일전에 지하감옥에서 제이슨이 보여준 바로 그 기술이다. 부러진 칼날만큼의 오러가 형성되어 솟구치고 있었던 것.
만약 아이젠이 약간의 틈만을 두고 피했다면 그의 배는 오러 소드에 찢겼을 것이다. 내심 안심하는 아이젠이었다.
데미안이 형성한 오러 소드의 색은 초록. 즉 그것은 그린 오러였다.
“참철검술?”
“그래요.”
예전에 바네사가 모니카에게 해준 말이 있다. 그린 오러는 사용자를 가리지 않는다고, 배우고자 한다면 누구라도 익힐 수 있는 오러라고.
아이젠은 그 사실은 들은 바 없지만, 그래도 현무에게 이미 전달받은 일이 있어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아이젠은 사신강림을 발동해 몸 여기저기서 천연한 기운을 뿜어냈다.
“재밌겠는데. 덤벼봐, 그럼.”
“어떻게 이 힘을 제가 가지고 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가 보군요.”
“초대 가주님한테서 보고 배웠다든지, 아니면 뺏었다든지. 대충 그런 이유 아니겠어? 별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진 않네.”
“보고 배웠다? 그렇지 않아요. 배운 게 아니에요. ‘습득한’ 거지.”
팟! 데미안이 신살검을 사방팔방 휘두르며 날아왔다. 주변의 공기가 터지고 찢겨 나갔다.
“연공난무!”
“박살!”
카앙!! 또다시 아이젠의 주먹과 데미안의 신살검이 입을 맞췄다. 오러와 내기의 충돌로 파열음이 발생하고, 섞인 기운이 음속을 돌파하며 흩어졌다. 아이젠은 뒤이어 주먹을 휘둘렀다.
“권왕백무!”
뻐버버버벅! 아이젠의 주먹이 이번에는 정통으로 들어갔다. 데미안의 오른쪽 배가 움푹 파여 들어간 것. 하지만 데미안은 고통에 울부짖는 얼굴 따위가 아니었다.
“오러 아머.”
“그렇게 나오시겠지.”
“내겐 당신의 공격은 아무 의미 없어요. 연풍참.”
츠팟!! 데미안의 신살검이 길게 뻗어 아이젠을 베었다. 아이젠은 이가요새, 문자 그대로 요새 그 자체였으나 데미안의 연풍참은 그 요새의 성문을 뚫고 들어왔다.
짧게 베인 아이젠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내 공격은 효과가 있군요.”
“그러게.”
할짝― 철철 흘러내리는 이마의 피를 혀로 핥은 아이젠은 눈을 크게 뜨고 데미안에게 돌진했다. 데미안이 고개를 돌릴 때 아이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젠은 데미안의 목 아래에서 숨죽이고 숙여 있었다. 이내 그의 주먹이 솟구치듯 하늘로 올라왔다.
“악지섬!”
뻐억! 우드득! 데미안의 턱뼈가 단호하게 부서졌다. 그의 몸이 붕 뜨자 아이젠은 틈을 놓치지 않고 양손의 검지에 천연한 기운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데미안의 관자놀이를―
“뇌살!”
타앙!! 재빠르게 타격했다. 데미안의 몸이 공중에서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뒤틀렸다. 아이젠은 그를 향해 손날을 세울 따름이었다.
‘목을 베어주마!’
아이젠의 손날이 단도처럼 예리하게 데미안의 목덜미를 갈랐다. 촤악!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빗발쳤다.
“박살편!”
터엉! 마침내 데미안의 몸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보통의 적이라면 이대로 죽었을까 싶겠지만 데미안은 그렇게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아이젠은 사신강림을 해제하기는커녕 천수관음까지 시전해 몸에 있는 모든 기운을 끌어모았다.
구오오오오! 아이젠의 몸에 가득한 천연한 기운이, 어서 적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쳤다. 아이젠은 기운을 진정시키고 쓰러져 있는 데미안의 몸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기괴하게도 발끝부터 뒤틀리며 자리에 일어섰다. 마치 구체 관절 인형처럼 삐걱거리던 그의 몸이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일으켜 세워졌다.
흥! 하고 코를 푸는 데미안의 목소리는 천연덕스럽기 그지없었다.
“제법 하네요. 주먹을 쓴다는 게 하찮은 소문뿐인 줄 알았어요. 지안니의 검술에 버금갈 정도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아요.”
“목을 베었는데도 살아 있네?”
“안 베였거든요.”
그 말대로 데미안의 목은 잘린 자국 없이 멀쩡했다. 하지만 핏방울이 튀었는데?
질질― 그제야 아이젠은 손날에서 쓰라린 감촉을 느꼈다. 살갗이 벗겨져 나가 있었다. 아이젠의 손날은 데미안의 목살에 오히려 밀린 것이다.
뇌살 역시 통하지 않았다. 아이젠은 뒤틀린 두 개의 집게손가락을 어루만져, 뿌득하고 뼈 자리를 맞췄다.
“단단한 건 잘 알았다. 룡피금강불침이라도 배워 왔냐?”
“도강문의 무공 말이군요.”
“―! 도강문을 알아?”
“당연히 알죠. 전해 받았다고 했잖아요? 이 검.”
데미안이 싸늘한 미소와 함께 신살검을 들어 보였다. 인제 보니 신살검에서는 도강문의 악독한 내공이 배어 있었다.
“이 안에, 도강문 그가 잠들어 있어요. 현무가 잠들어 있는 당신의 아이기스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아요.”
“하지만 중원은 이곳 세계와는 분리된 다른 차원일 텐데.”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이 말하는 중원이 바로 여기예요. 이 땅 말이에요.”
“뭐?”
그 말을 듣고 아이젠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중원 무림? 무수히 많은 강호들을 배출해 냈던 바로 그곳이라고?
데미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 장소가 중원이라는 건 아니구요. 몇천 년 전쯤엔 바로 그 중원이란 곳이 있었죠.”
“그렇다면 이곳은, 중원으로부터 몇천 년이나 지난 세계였단 건가.”
“그래요.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아이젠.”
“응?”
“당신은 마치 그 몇천 년 전 중원에 살았던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요.”
“아. 어, 맞아. 나 거기 토박이 출신이야.”
“…뭐라고요?”
데미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지만 정작 아이젠은 태연했다. 사실 그가 이강철이었다는 사실은 숨길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뻔하기에 구태여 말하지 않았을 뿐.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죠.”
데미안의 눈동자가 흰빛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그린 오러를 실은 그의 온몸에서 칼날 같은 오러가 서리 바람처럼 쏟아졌다.
“발도지경, 참철발도!”
슈팟! 아이젠은 허리를 뒤로 크게 꺾었다. 거의 90도로 접힌 그의 상반신 위로 바람을 자르는 검기가 지나갔다. 이가요새가 있더라도 이 정도의 검기에 맞았다면 분명 몸이 두 동강 나 즉사했을 것이다.
‘빠르다!’
데미안의 검술은 빨랐다. 이번 한 번 피했다고 안심할 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젠이 몸을 일으켜 세우는 사이 데미안은 또다시 발도술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참철발도!”
“읏!”
슈팟! 슈팟! 슈팟! 아이젠을 향해 연속으로 발도가 날아들었다. 이런 엄청난 검기를 무슨 돌멩이 던지듯 펑펑 써댈 수 있다니.
아이젠은 무음목랑보로 피하는 데 급급했으나 회피만 해서는 답이 없다고 판단, 데미안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달려들었다.
그것은 데미안에게는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참철발도!”
슈팟! 데미안의 신살검에서 쏘아진 검기가 아이젠의 정수리에 가닿았다. 두 쪽이 나버려야 할 아이젠의 몸은.
팅! 검기를 튕겨냈다.
“앗?”
먹잇감처럼 보였던 아이젠은 사실 미끼였다.
“절세지경.”
그의 주먹에, 들불 같은 천연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철권!”
뻐억! 빠지직! 빠지직!
아이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찌른 주먹은, 마침내 데미안의 오러 아머를 꿰뚫었다. 데미안이 몸을 비틀더니 뻥!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치이익! 바닥에 등을 쓸며 넘어진 데미안은 잠시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함정이었군요.”
“그래, 데미안. 네 미래시로도 이 미래는 보지 못했나 보지?”
“그래요. 알아차렸군요? 미래시의 약점을.”
아이젠이 미래시의 약점을 눈치챈 지는 꽤 되었다. 사실 눈치채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미래시도 결국 눈으로 보는 거라면, 나랑 싸우고 있는 와중에 미래를 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 지금 내가 안 보일 거잖아? 그랬다간 내 주먹에 얼굴이 박살 나버리겠지.”
“맞아요. 저는 눈을 감을 때만 미래를 볼 수 있죠. 시야를 겹칠 수는 없거든요.”
데미안이 잠자리라면 겹눈으로 보았겠지만 그는 마혼이다. 그것도 인간의 형상을 한 마혼. 데미안은 바닥을 짚고 일어나 신살검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당신한테는 힘을 좀 더 써야겠네요.”
데미안의 분위기가 변했다. 아이젠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현무가 말했다.
[온다. 두 번째 각성이야.]
부웅! 데미안의 몸에서 그린 오러가 더욱 강하게 솟구쳐 올랐다. 데미안은 뱁새눈을 하고 데미안을 노려보았다.
“미래전시(未來全視).”
데미안의 조용한 읊조림과 함께, 아이젠의 신형이 사라졌다. 아이젠이 그가 각성하는 틈을 지켜봐 줄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젠의 주먹이 데미안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부숴 버리려는 찰나의 순간이 다가왔다.
‘권왕백무 : 관(貫)!’
그 순간, 아이젠의 주먹이 빗나갔다. 아니, ‘빗나가졌다’. 아이젠의 몸이 갑자기 반짝하고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분명 오른쪽에 서 있던 데미안은 어느새 왼쪽에 서 있었다.
부웅! 아이젠의 주먹이 맥없이 허공을 가르고.
푹! 데미안의 신살검은 깔끔하게 아이젠의 배를 파고들었다.
“…윽!”
“미래전시 : 얼터너티브(Alternative).”
[아이젠!]
아이젠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역시나 신살검은 이가요새의 방어를 간단히 뚫고 들어왔다. 배 쪽이 뜨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소장을 찔렸어. 위험해!]
“닥쳐, 현무. 쿨럭! 쿨럭!”
“미래전시는 ‘시점’의 대안을 마련하는 힘. 저는 방금 당신에게 머리가 터져 죽는 미래에, 당신의 공격이 빗나간다는 대안을 마련했어요.”
데미안이 창백하고 싸늘한 눈동자로 말했다. 아이젠의 시야가 흐려졌다.
“원하는 대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단 소리냐?”
“포함돼 있어요. 이제 알았나요? 당신은 앞으로 단 한 번도 제게 공격을 허용할 수 없단 사실.”
“웃기고… 있네!”
붕! 아이젠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데미안은 등을 젖히는 것으로 간단히 피했다. 데미안이 신살검을 뽑자 아이젠은 힘없이 털썩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끝났군요. 제국은 제가 넘겨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