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 오거스틴 】
이번 제국과 공화국의 전쟁은 총력전이었다. 공화국에는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전군이 총출동했으며, 제국도 전면전으로 맞붙기로 엄포를 놓았다.
그를 위해 각 지방에 몰려 있던 인물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그 면면은 하나하나가 굵직굵직했다. 물론 아닌 이도 있었다.
그린우드 공작가 직계 가문의 한스, 바네사, 모니카, 사울.
그린우드 방계의 방주인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페르디난트, 콘라트, 알브레히트 및 그들의 자제.
창술명가 체호프 후작 가문의 두 아들인 세르게이와 이반.
천둥 잔니니 백작가문의 자제인 알리체, 라파엘라, 에디, 로베르토.
화염성가 코르비노 대공 가문의 아내인 카트린, 자제인 쟝, 리노.
유수황가 베네딕토 황제의 두 아들인 이아손, 포르모소와 딸 클레멘스.
그 외에도 각지의 유명 인사들과 이름난 기사들, 20세에서 49세 사이의 건장한 청년들까지. 모두가 최전선인 라르페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이젠 주인님.’
제이슨은 징발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인을 모시기 위해 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애초부터 따라나섰어야 했는데, 모니카를 보호하란 주인의 명령으로 가문에 숨어 있었다.
한편 제이슨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동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들 모두가 제국의 승리를 위해 전선으로 나서고 있었다. 표정이 어두운 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대부분의 얼굴은 전열로 불타는 표정이었다.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종식을 위해선, 공화국의 패배가 낙점되어야만 해.’
모두가 그런 얼굴이었다. 제이슨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념의 충돌은 반드시 다툼을 낳는다. 공화국이 없어져도 다른 국가 간의 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주인님의 힘이 필요하다.’
아이젠의 카리스마와 그 강렬한 주먹만 있다면. 공화국은 부서질 것이다. 다른 어떤 분쟁국들도 목소릴 내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철인 통치.
아이젠이라면 할 수 있다. 제이슨은 그런 묘한 기대감을 품은 채, 라르페소로 한시바삐 달렸다.
* * *
테오발트는 참철검술을 곧바로 최종 경지인 7성까지 끌어올렸다.
테오발트의 참철검 에레디아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공화국군을 갈랐고.
“끄악!”
“크헉!”
병졸들은 뭐에 당한 건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끝도 없군.’
그때 테오발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저 멀리 있는 목제 마차였다. 마차는 사방이 가로막혀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마찬가지로 안에서 밖을 내다보지도 못하는 구조였다.
‘뭐지? 저것은?’
테오발트가 의문을 품은 채로 에레디아를 휘둘러 마차를 향해 초록빛 참격을 날렸다.
트파파파파! 모래땅을 반으로 자르며 나아가던 참격은 선상에 있던 병졸들도 베어 죽였다.
“크악!”
“으억!”
콰직! 그리고 이내 목제 마차도 반으로 갈라졌다. 테오발트는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는 얼굴로 바라봤다.
그리고 안에서 나온 것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미소년이었다.
“……?”
테오발트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설마하니 그가 공화국의 집정관인 데미안이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테오발트였다.
데미안은 맨발이었다. 신발도 없이 모래땅에 발을 디딘 그는 몸에 상처 하나 없이 깔끔했다. 분명 테오발트의 참격이 마차를 반으로 갈랐는데 말이다.
“테오발트이시죠. 반갑습니다.”
“네놈은 누구지?”
“아. 초면이죠, 참. 저는 데미안이라고 합니다. 현재 공화국을 지휘하고 있는 집정관입니다.”
“……!”
테오발트가 주춤 경계하며 물러섰다. 데미안? 그 데미안이라고?
데미안은 25년 전 유령전쟁 당시에는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제국에서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름뿐이었다. 데미안이라는 그 이름 단 하나.
그런데, 그가 만약 25년 전부터 줄곧 집정관이었던 그 데미안 장본인이라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암만 봐도 스무 살을 넘기는 나이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평범한 인간이 아니거나, 엄청난 동안인 걸까? 테오발트는 멍청한 생각을 품으면서도, 에레디아를 손에 꽉 쥐었다.
‘참철발도!’
촤악! 그리고 발도술을 가했다. 적군 수괴가 눈앞에 있다면 공격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에레디아의 참격이 데미안에게 날아갔고, 데미안은 느릿느릿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신살검을 뽑아 들었다.
떨그렁.
데미안이 신살검 끝으로 참격을 쳐내자, 참격의 방향이 바뀌며 뒤편에 있던 공화국 병졸을 죽였다.
“참철발도를… 튕겨내다니.”
“이런. 말씀 나눌 시간도 안 주시네요. 서운하게.”
데미안이 신살검을 들었다. 도신이 중간부터 부러져 나가고 없는,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대한 힘이 느껴지는 독특한 무기였다. 데미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뭐, 이미 알고 있는 미래였지만. 역시 미래는 변하지 않네요.”
“무슨 소리냐? 미래를 알고 있기라도 했단 말이냐?”
“네. 저는 보이거든요. 가까운 미래가. 그리고 방금 또 보았습니다.”
“…무슨 미래를 보았지?”
미래를 본다는 데미안의 발언은 터무니없었으나, 테오발트는 왠지 궁금해져 반문했다. 데미안이 입을 옴싹달싹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테오발트, 당신의 패배가 보입니다.”
* * *
“매그넘 원 샷!”
퍼엉!!
오거스틴의 글러브가 화약 폭발과 함께 아이젠에게 덤벼들었다. 아이젠은 가볍게 손을 얹어 주먹을 막았지만 제법 묵직했다.
“무후후! 매그넘 투 샷!”
퍼엉!! 또다시 화약이 터지며 아이젠이 폭연에 휘말렸다. 뒤로 멀리 밀려난 아이젠은 천연한 기운으로 몸을 감쌌다.
‘이가요새.’
이가요새는 절세지경처럼 모든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하지만, 아이젠의 몸을 금강처럼 단단하게 만든다. 천마 도강문과 싸울 때 그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이가요새의 힘 덕분이었다.
이가요새를 뚫을 수 있는 건 도강문의 신살검 정도밖에 없고, 그 신살검은 아이젠이 이강철이던 시절 부러뜨려 놓았다.
즉 지금의 아이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물건은 그 무엇도 없다. 매그넘 글러브도 마찬가지다.
“안 아픈데. 좀 더 세게 안 되나?”
“무후후, 잘난 체하기는!”
퍼엉! 퍼엉!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오거스틴이 양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매그넘 쓰리 샷!”
퍼퍼펑! 그러자 오거스틴이 화약 폭발과 함께 쭈욱 날아가, 아이젠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뻐억! 으지지직!
몸이 거의 직각으로 꺾인 아이젠은 반작용으로 멀리 날아갔다. 그는 땅에 손을 쓸어 멈추었다. 부러지는 소리가 났으나 그것은 아이젠에게서 들린 것이 아니다. 매그넘 글러브가 갈라지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쯤이야 예상했다는 듯 오거스틴은 또다시 무후후 하고 웃었다.
“역시 지크프리트 중장님을 이긴 솜씨! 맷집도 단단하구만! 무후후!”
“그래. 보여줄 건 다 끝났냐?”
“그럴 리가 있나! 매그넘, 포 샷이다!”
오거스틴의 손에서 화약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이 향한 것은.
뻐억!!
자신의 머리통이었다.
“……?!”
아이젠이 놀라 주춤 결사신권의 자세를 잡았다. 오거스틴의 머리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걷히더니, 그의 만신창이 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목 위로 피투성이였고, 코뼈는 부러지고 입술은 터진 상태였다.
그 모습이 마치 선 채로 죽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거스틴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꺾으며 몸을 풀었다.
“무후후!”
“뭐 하는 놈이냐. 자해공갈이라도 하게?”
“더 대단한 일이지. 나는 ‘블러드 버서커’. 다칠수록 더더욱 강해지는 남자, 오거스틴.”
오거스틴의 눈동자에 핏발이 돋아났다. 피가 너무 진해서 눈이 제대로 보이긴 할지 의문이 날 정도였다.
“이제 나는 좀 전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졌다구.”
“보여줘 봐, 그럼.”
“그래! 무후후!”
팡! 오거스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더니 아이젠의 왼쪽에서 나타났다. 그의 매그넘 글러브가 화약 폭발을 일으켰다.
“매그넘, 파이브 샷!!”
콰과과과과광!
매캐한 연기로 몸을 두른 채 아이젠에게 달려들던 오거스틴은, 그 주먹이 날아드는 모습째로 아이젠의 오른손에 붙들렸다. 아이젠은 왼손으로 오거스틴의 등을 내려쳤다.
“철권!”
뻐억! 으드드드득!!
오거스틴의 등뼈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바닥에 엎어진 오거스틴은 고통을 호소했으나, 아이젠은 묘하게도 그의 오러가 좀 전보다 더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칠수록 강해진댔지?’
그거 참 기기괴괴한 능력이다. 오거스틴은 싱긋 웃더니 주먹을 올려쳤다.
“매그넘 식스 샷!”
퍼엉!! 재빠른 주먹에 아이젠은 턱을 허용하고 말았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붕 뜬 아이젠은, 피해는 없었지만 슬슬 오거스틴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진다고 생각했다.
“무후후! 내가 죽음에 임박할 때 난 지크프리트 중장님이나 하이젠베르크 대장님보다 더 강하다!”
“그래? 네놈이 내게 붙은 이유가 있었군.”
“무후후, 그렇다! 나의 임무는 전사. 난 오늘 네놈을 죽이고 장렬하게 전사한다!”
충성심이란 대체 뭘까? 대체 무엇이 이 오거스틴이라는 녀석이 죽음마저 불사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이젠은 생각했으나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 오거스틴은 그저 미치광이 호전광에 불과했다.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진가? 그래도 난 미치광이까지는 아니잖아.’
[야, 야!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때 현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쁜 와중에 들리는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반가운 아이젠이었다.
‘뭘 뭐 해? 싸우고 있잖아.’
[그럼 조심 좀 해! 상처 난 거 안 보여?]
‘뭐? 아.’
아이젠이 고개를 내려다보자, 아이기스에 나 있는 흠집이 보였다. 흠집은 마치 유리에 손톱으로 긁은 것처럼 작았지만, 아이기스를 얻은 후로 흠집이 난 것은 처음 보는 아이젠이었다.
“이야. 이거 흠도 나는 거였구나.”
[빨리 끝내버려. 저놈, 뭔가 심상치 않아.]
“나도 그러고 싶지.”
둘이 대화하는 사이 오거스틴은 눈빛을 흉흉하게 빛내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오거스틴의 매그넘 글러브가 또다시 화약을 터뜨리며 날아들었다.
“매그넘, 세븐 샷!”
퍼버버버버버벙!
화약 폭발이 거세게 덤벼들며 아이젠의 몸통을 가격했다. 아이젠은 슬슬 둔탁한 타격감이 몸 안에 쌓여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떨쳐내는 방법은 한 가지.
“가만 당해주니까 날 너무 호구로 보는데?”
오거스틴을 날려 버리는 것뿐이었다. 아이젠은 오거스틴의 머리통을 꽉 붙잡았다. 반동으로 오거스틴이 휘청거릴 때, 아이젠은 주먹을 꽉 쥐어 천연한 기운을 담아냈다.
“천차횡도.”
푸화악!
아이젠의 주먹에서 터져 나간 무채색이 오거스틴의 몸에 진득한 위력을 가했다.
오거스틴은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그의 입에서 타액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거스틴의 얼굴은 해맑기만 했다.
“무후후! 이로써 난 더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