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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90화 (190/201)

190화

【 총력전 】

리타스나트 공화국의 제2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 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성에서는 총 본단 회의가 열렸다. 공화국의 모든 원로들과 사령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리타스나트의 단일로서는 최대 전력이라고 여겨지는 지크프리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넓게 늘어선 총회의의 탁자 위로, 한 원로가 탕 손을 내려쳤다.

“데미안 집정관! 그대가 원하는 대로 우리는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였소. 말하자면 이 전쟁은 그대가 일으킨 것이지. 그런데 이게 뭐요! 밀리는 건 공화국이고, 제국은 나날이 우리 땅을 먹어 치우고 있지 않소!”

탁자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것은, 리타스나트의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 데미안이었다.

갓 20살은 넘겼을까? 하얀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그는 뽀얗고 눈 같은 피부의 소유자였다. 눈동자만은 검정이었으나 그 눈 역시도 세월의 풍파를 맞은 흔적은 없었다. 몸 역시 얇고 운동한 티가 거의 없다. 그가 남자라고 짚어주지 않는다면 여인으로 착각할 정도의 미모였다.

데미안은 칼집에 들어 있는 검을 매만지고 있었다. 원로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러자 원로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이보시오! 무시하는 거요?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묻고 있지 않소! 이런 건방진!”

원로는 데미안의 멱살이라도 붙잡으려 성큼성큼 걸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원로가 허공에서 발을 헛디디고 뒤로 쾅 넘어졌다. 바닥에 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원로는 그 자리에서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다른 원로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뜬금없이 갑자기 발을 헛디뎌 죽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모두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데미안이 여전히 검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레너드 원로께서 사망하셨군요. 저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다들 놀라실 거 없습니다.”

“…….”

데미안의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레너드 원로가 사망할 거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니? 그의 말은 시간 순서가 맞지 않았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데 데미안이 마저 말했다.

“제국은 지금 몹시 강대해졌네요. 그 제국을 상대할 사람이 없을까요? 하이젠베르크가 손을 듭니다.”

그 말대로였다. 데미안의 오른편에 앉아 있던 공화국군의 총사령관 하이젠베르크 대장은 데미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손을 들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지크프리트보다는 젊었지만 그 역시 벌써 오십을 넘긴 나이였다. 25년 전 유령전쟁 당시에는 서른 살이었고, 그때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앞머리를 길게 내린 탓에 두 눈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지크프리트 중장이 단일로서 최대 전력이라면, 하이젠베르크 대장은 그 다음가는 전력이다. 게다가 군략 면에서 보자면 하이젠베르크가 한 수 위였다.

“제가 총대장이 되어 제국을 치겠습니다.”

“그래요.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총력전을 하겠습니다. 다들 예라고 대답합니다.”

“…예!”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총회의장의 모두는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데미안은 문득 검을 칼집에서 빼냈다. 도신이 중간쯤에서 잘려 나가고 없었다. 부러진 것이었다.

그 검의 이름은, 가로되 신살검(神殺劍).

투신 이강철이 천마 도강문을 상대할 때 부러뜨렸던, 바로 그 검이었다.

* * *

라르페소성은 축제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거나하게 취한 병사들과 기사들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개중에는 저들끼리 신나서 춤을 추는 일도 있었다.

“공화국은 끝났어, 이제!”

“제국이 공화국을 이겼다!”

“이제 아틀란티스만 점거하면 제국의 승리입니다! 으하하!”

“이게 다 아이젠 님 덕분이지!”

“맞아! 망골대왕에 지크프리트까지, 그 두 사람을 단신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들은 끝도 없이 아이젠을 찬양하고 있었다. 사실 전부터 좋아했다는 둥, 망나니 소문은 다 거짓일 거라는 둥 떠들어대는 그들의 말이 성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정작 아이젠은 그 현장에 없었다.

아이젠은 성 밖으로 나와 한참을 걸어, 그곳에 있는 허허벌판 위에 서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적도심경과 함께였다.

적도심경의 색은 무색이었다. 이제 아이젠은 홍화도, 암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젠이 쓰는 것은 구태여 설명하자면 그의 천연한 기운이었다. 쇄지의 경지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흡.”

퍽! 아이젠이 적도심경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적도심경이 흔적도 없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아이젠은 허망하다는 눈으로 제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흐음.”

8성에 오른 지금, 아이젠은 기뻐해야 마땅하다. 물론 기뻤다. 전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8성에 도달했으니 기쁘지 아니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런 한편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생사경의 경지엔 어떻게 오르는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젠은 전생에 스물일곱의 나이에 8성에 올랐다. 이 역시도 엄청난 성과다. 다른 무림인들이 듣는다면 거짓말이라고 쏘아댈 만큼의 성과.

그러나 아이젠은 그 후로 몇 해 동안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8성에서 정체되어, 어쩌면 이보다 더 높은 경지란 실재하지 않는 것일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생사경은 있다. 그건 이강철의 본능적인 깨달음이었다. 이 세상 어딘가엔 그 경지가 존재한다는 믿음이기도 했다.

“아이젠.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오마르 대공전하.”

갑자기 들려오는 오마르의 목소리에 아이젠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마르 역시 제법 취했는지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기분 좋은지 숨소리 틈새로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딱딱하게 대공전하는 무슨! 자네 아비와 내가 같은 전쟁 출신이야. 삼촌이라 불러라.”

“…그건 좀 그렇지 않나요?”

“음, 그건 좀 그런가? 그럼 그냥 대공전하라 부르도록. 크하하하!”

퍽! 퍽! 오마르가 아이젠의 등을 세상모르고 때렸다. 아이젠은 취한 사람과 대화하는 취미는 없어 슬쩍 발을 뺐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이젠이 다시 성으로 돌아가려는데, 오마르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서봐라, 아이젠.”

“네?”

덥석! 오마르는 아이젠의 아이기스를 붙들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오마르의 손에서 오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이이입! 불길이 들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젠은 반사적으로 팔을 빼고 경계 자세를 취했다.

“무슨 짓입니까, 오마르 대공전하.”

“역시. 흠집 하나 나지 않는군. 그 물건, 평범한 팔찌가 아니지?”

“…….”

“귀신을 속여라. 크하하!”

턱! 오마르가 예리하게 빛나는 눈으로 아이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마르의 키가 약간 더 작았지만, 아이젠은 그에게서 지크프리트 이상의 고강한 내기를 느꼈다.

그런데 오마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고맙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네 덕에 제국이 공화국을 이기게 생겼군.”

“…아닙니다.”

“아니? 정말이다. 정말 고맙다. 불라트는 비록 저세상 가고 없지만… 그도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거야. 공화국은 이제 패할 일만 남았지!”

“음. 네.”

“음? 할 말이 있는 얼굴인데?”

“아, 그게요.”

아이젠이 손가락을 들어 올려 하늘을 가리켰다. 오마르가 올려다보자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안 들리십니까?”

“…뭐가.”

그렇게 말하는 오마르의 음성은 사실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아이젠이 답해주려는데, 라르페소성 쪽에서부터 테오발트, 마테오, 이스보셋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테오발트가 오마르가 보이자마자 소리쳤다.

“오마르 대공전하!”

오마르도 다급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테오발트가 말했다.

“들리십니까? 이 소리.”

“그래, 나도 방금 들었네. 이런 멍청한.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다니.”

네 사람의 시선이 아이젠 너머로 향했다. 아이젠 역시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이젠은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있었던 사실. 그것은 바로.

“수도가 빼앗겼으면 적들이 총력으로 덤벼오리란 사실 정도는 예상해야 했는데!”

오마르의 말대로였다.

두두두두두두…….

말과 마차가 바닥을 거칠게 가로지르는 소리.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것이기에 아이젠 정도 되는 강자만이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반 병사나 기사들은 들을 수 없는 적막의 소리다.

오마르가 이스보셋에게 소리쳤다.

“당장 제국군에게 정비를 알려라! 공화국이 총력전을 단행해 왔다! 지금 당장 전쟁을 준비해!”

“큼, 예, 대공전하! 죄송하오나 혹시 시간은……!”

오마르가 고개를 홱 돌리고 질렀다.

“3분!”

* * *

공화국의 위대한 전사, 하이젠베르크 대장.

그는 지휘관으로서도 뛰어나지만 일개 기마병으로서의 실력도 빼어나다. 만약 마상에서 싸운다면 그 대단한 지크프리트마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히히히힝!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애마 뮌헨에게 박차를 가했다.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빽빽한 공화국군을 뒤에 두고 선봉으로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라르페소. 아틀란티스에서부터 출발해 라르페소 하나만을 노리고 그들은 진격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높은 성벽의 라르페소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전군! 전투 준비!!”

쿵! 쿵! 쿵! 쿵! 쿵!

둥! 둥! 둥! 둥! 둥!

심장이 아플 만큼 울려 퍼지는 북소리. 하이젠베르크의 머리가 바람을 맞아 뒤로 넘어갔다. 그의 왼쪽 눈은 칼에 베인 자국과 함께 텅 비어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달리는 뮌헨 위에서 슬쩍 제 왼눈에 손을 얹었다.

‘오늘에야말로 제국과 끝장을 보겠다!’

하이젠베르크의 양 날개로 간부들이 모여들었다. 총 세 명의 간부는 말에 탄 채로 하이젠베르크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사리오 소장! 그대는 마테오를 상대하라!”

“존명!”

“워크맨 소장! 그대는 오마르를 맡는다!”

“바라던 바지요! 캬하하!”

“오거스틴 소장! 그대는 아이젠을 맡는다! 가장 강한 전력이라 예상되니 방심하지 마라!”

“무후후! 예! 대장님께서는 테오발트를 상대하십니까?”

“아니.”

하이젠베르크는 군사 행렬의 뒤를 쳐다보았다. 그 뒤에서, 사방이 보이지 않는 목제 마차가 보였다. 낡은 마차 안에 누가 있는지 하이젠베르크는 아주 잘 알았다.

‘마음 같아서야 테오발트를 상대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의 왼쪽 눈을 이 꼴로 만든 것은 바로 테오발트다. 그래서 테오발트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죽여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은 그 굴뚝같은 마음을 저버려야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소리쳤다.

“나는 적국의 수괴 레오를 맡는다. 다들, 각자 위치로!”

“위치로!”

투다다다다! 그들의 전진은 멈출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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