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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87화 (187/201)

187화

아티팩트 에레디아를 든 테오발트와도 실력을 견주는 것이 바로 지크프리트다. 그것도 여든두 살의 나이에. 그렇다면 그의 검술은 바야흐로 신의 경지에 올라섰음이 틀림없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아이젠은 잠시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찰나 만에 사라졌다.

‘난 이겨.’

그 역시 투신이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실력자 아니던가.

‘결사신권, 결자해지 일수일도.’

패배할 이유는 없다. 물러설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싸우지 아니할 이유가 없다.

“간다, 지크프리트.”

“오게.”

파앗! 아이젠이 지크프리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전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려 2주간이나 계속되었다.

* * *

공화국 수도 라르페소, 그 성의 지하 5층.

공화국은 한 달에 한 번 이곳에 드나든다. 드나드는 이는 매번 바뀌지만 목적은 하나다. 지하 5층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클라우디아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

식사가 아니라 먹이라 부르는 이유는, 공화국 병졸들에게 클라우디아와 말을 섞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아가 무슨 말을 걸든 공화국군은 그녀를 무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먹이.

그렇다면 클라우디아와 말을 섞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고 하니…….

“카악, 퉤!”

그때 누군가가 거세게 침을 퉤 뱉었다. 공화국의 이름 모를 병졸이었다. 여기서는 편히 A라 부르도록 하겠다.

A는 20살의 신참 공화국군이었으며 그 이름조차 너무 흔해 듣는 이마다 바로 까먹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A는 자신도 공화국에서 전공을 세우길 바랐다. A의 무술 실력은 다른 신병들과 비교해도 형편없었지만 말이다.

“후우, 귀찮아.”

이번 달 클라우디아의 먹이 담당은 바로 A였다. A는 꿀꿀이죽과 다를 바 없는 적은 양의 음식을 접시에 담아 지하 5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있는 감옥에 접시를 배달하는 데 성공했다.

좁아터진 감옥은 십일자 모양의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고, 배식구는 외부와 통할 수 없도록 좁다. 클라우디아는 이곳에 벌써 5년 넘게 갇혀 있었다. A가 그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음식 왔다. 먹어라.”

A는 그 말만을 남기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문득 저 멀리 달빛을 받아 보이는 클라우디아의 뒷모습이 어딘가 아련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곳에 5년 동안이나 갇혀 있다면 사람이 미칠 법도 한데, 클라우디아는 흥분하는 기색도, 미쳐 버린 기색도 없었다. 그녀는 달빛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A는 괜히 심술이 나서 소리 질렀다.

“뭘 하고 있어! 빨리 먹으라고! 안 먹으면 접시 그냥 엎어버린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배식이다. 게다가 음식의 양도 충분치 않다면, 클라우디아는 오늘 이 끼니를 거르면 죽고 말 것이다. 물론 그랬다간 A에게 문책이 갈 테지만 A는 공갈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곳에 오래 있었는데도 그녀의 살결은 눈처럼 희고 고왔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

A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매혹되었다. 분명 50살을 훌쩍 넘긴 나이일 텐데 어찌 이리 고혹적일 수가.

그래서 타인과 말을 섞으면 안 된다는 명령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신병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였다.

“다, 다, 당신이 알 거 없잖아.”

“물론 그렇지만… 궁금해서요.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흐, 흥! 그렇게 궁금하다면 알려주지. 위에서는 지크프리트 중장님과 제국의 개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벌써 2주째 끊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지.”

“그렇군요……. 공화국에서 전력으로 달려든다면 그 ‘개’라는 분을 이길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는 건가요?”

“지크프리트 중장님께서 나서지 말라셨으니 별수 있나. …앗,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이런 얘길 하고 있지? 이 여자가! 빨리 밥이나 먹지 못해!”

“제국의 개라는 건 어떤 분이신가요?”

클라우디아의 목소리는 포근하고 따뜻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목소리 같았다. A는 어머니를 못 뵌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벌써 사무치게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클라우디아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듣게 되자, A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 어어? 이, 이게 왜 이러지.”

“괜찮아요. 이리 와요.”

“어어어…….”

A가 더듬더듬 클라우디아에게 다가서자, 클라우디아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A를 껴안아 주었다. 그야말로 자애 그 자체였다.

“군 생활이 많이 고되죠? 힘들어 말아요. 제가 항상 응원하고 있을게요.”

“으, 으흑흑…….”

“그래서, 제국의 개라는 건 어떤 분인가요?”

“아, 아이젠. 아이젠 폰 그린우드. 분명 그런 이름이었어요.”

“아이젠…….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는 클라우디아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젠, 지금 이 위에 찾아왔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들이었다.

그렇다면 제국과 공화국 간에 필시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일 터.

‘아이젠, 어째서 네가 홀로 온 거니.’

테오발트는 어쩌고 아이젠이 혼자 온 것일까? A의 등을 두드려 주며, 클라우디아는 얻어낼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뽑아내었다.

파스빈더 가문의 특기는 ‘자애’. 누구든 클라우디아의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그녀에게 매료되고 만다. 그것이 클라우디아와 말을 섞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이유다.

A는 그 사실을 간과했고, 그는 오늘 이 자리에서 클라우디아에게 모든 정보를 발설하고 말았다.

* * *

휘오오오―!!

눈발이 몰아쳤다. 아이젠이 체감상 느끼는 기분은 영설산에서보다 더한 폭풍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상대측에서도 검을 휘둘러 오기를 멈추지 않았으니까!

‘박살 연타!’

“크음!!”

퍼버버버벅! 채채채채챙!

아이젠의 주먹과 지크프리트의 홀리 소드가 공기를 찢어 가르며 맞부딪혔다. 첨탑에 선 그들의 뒤로는 공화국군들이 원을 그리며 서 있었는데, 어느 범위 이상으로는 다가설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저들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공화국군 중 누군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건 미친 짓이야. 2주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싸운다는 게 말이 돼?”

“말 안 되지. 지크프리트 중장님은 도저히 그 나이로 보이시지 않는다니까.”

“그런 지크프리트 중장님과 대등하게 맞붙고 있는 저 녀석은 그럼 대체 뭐냐고?!”

누구 하나 근접했다간 작살이 나버릴 혈투. 아이젠과 지크프리트의 전투는 일 대 일일 수밖에 없었다.

공화국군 누군가가 현재 두 사람의 전황을 잠시 살펴봤다. 아이젠의 몸에는 홀리 소드에 베인 상처가 여러 개 나 있지만 치명상은 없다. 지크프리트는 갑옷 따윈 망가져서 진작에 내버린 지 오래였다. 그의 몸에도 주먹에 움푹 팬 자국이 여러 개 나 있었다.

즉 현재 서로의 전황은 비등비등.

헤아리던 공화국군이 외쳤다.

“우, 우리가 나서서 아이젠의 목을 잘라버린다면?”

“미친 소리 하지 마. 그랬다간 네 목이 먼저 달아날걸.”

“아닐 수도 있잖아! 내가 하면 어쩔 건데?”

“그럼 해봐. 저기 한번 끼어들어 보라고.”

동료의 도발에 공화국군이 발끈해서 정면을 바라봤다. 아이젠과 지크프리트의 혈투에는 분명 빈틈 따위 없어 보였지만 잘하면 파고들 만한 낌새가 보일 것 같기도…….

카앙! 퍼억! 투둑! 촤악! 츠팟! 퍼벅!

아니, 절대 보이지 않았다. 공화국군은 오히려 발을 뒤로 한걸음 물리며 주춤했다.

“으, 으으.”

“하하! 거봐.”

한편, 지크프리트는 홀리 소드에 두른 오러가 슬슬 바닥이 나고 있었다.

그 오러의 정식 명칭은 다크 폴리시(Dark polish). 다만 사람들에게는 일명 ‘검은 칼날’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지크프리트 자신도 그 이름을 애용하는데, 대상을 가리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잘라버린다. 심지어는 관념마저 잘라버린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면.

‘검은 칼날!’

촤악! 지크프리트의 홀리 소드에서 검은 참격이 날아들었다. 아이젠은 고개를 틀어 그것을 피했다. 그때, 뒤편에 있던 공화국 병졸 한 명에게 그 검은 참격이 맞았다.

“끄, 끄아아악! 아악!”

병졸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검은 참격이 자른 것은 병졸의 얼굴. 결국 그는 고통에 신음하다 숨을 거두었다.

“이, 이봐! 괜찮아?”

“젠장, 죽었어!”

“이런 씨발. 누가 데려다가 묻어줘.”

“그래. 어어… 근데, 누구였지? 이 녀석.”

“누구긴 누구야! 누구냐면……. 어이! 누구 이 녀석 아는 사람 없어?”

아무도 방금 죽은 병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라르페소에서 줄곧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해왔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니? 심지어 그와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아이젠의 관자놀이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렸다.

‘무섭군.’

검은 칼날은 관념마저 자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어떤지 명명백백히 이해되는 아이젠이었다.

“크하하하! 이거 참으로 즐겁구나. 테오발트 말고도 날 상대할 강자가 또 있었다니!”

“미친 영감. 내가 7성까지 오르는 동안 당신 같은 노인네는 또 처음 봐.”

“7성? 그게 어느 정도의 경지인진 모르겠으나 아직 멀었다. 날 더 즐겁게 해다오!”

지크프리트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이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처음 마주한 어린아이 말이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그저 즐겁기만 하면 족하다.

지크프리트가 지금 그랬다. 그는 즐거우면 장땡이었다. 조금 전 아군 병사를 베어 죽인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이대로는 안 돼.’

이쯤 되니 초조해지는 것은 아이젠 쪽이었다. 무려 2주간의 혈투다. 그런데도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다니. 공화국군들에게 포위당하는 건 상정해 두지 않았던 아이젠이다.

그로서도 이 정도의 강자는 처음이었다. 박살부터 공간지배까지. 만귀변국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사용해도 이길 수 없는 것은 지크프리트가 처음이었다. 아이젠은 지금 몸 안에 내공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지크프리트도 전력을 다하고 있기에 서로의 실력이 비등비등하다는 것은 얼추 알겠으나, 비등한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는 아이젠이었다.

그때였다. 아이젠은 문득 스승님이 떠올랐다.

‘스승님.’

이화도의 가르침을 오랜만에 떠올릴 작정이었다. 아이젠은 동심상으로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힌 뒤, 스승님이 해주셨던 말을 떠올렸다. 수많은 조언 중에서 아이젠이 떠올린 것은.

‘철이야. 넌 너무 성질이 급해. 급할수록 차분히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급할수록 차분히.

‘그렇다면.’

후욱! 한순간 아이젠의 온몸에서 암화의 불이 꺼졌다. 지크프리트는 뭔가 싶어 반보 정도 물러난 상태로 현황을 살폈다.

“무슨 짓인가?”

“아니, 그냥.”

아이젠은 침착하게 몸 안에 흐르는 내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급할수록 차분히 돌아가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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