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82화 (182/201)

182화

“라르페소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겁니까?”

“―!”

아이젠의 질문에 테오발트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마치 정곡이라도 찔린 듯한 모습이었다.

아이젠은 일전에 회의장에서 지크프리트에 대한 언급이 나왔을 때 테오발트의 얼굴이 어땠는지 보았다.

‘그때 가주님의 모습은.’

그건 단순히 숙적을 만난다는 기대감 서린 얼굴이 아니었다. 지독한 분노가 테오발트에게서 느껴졌던 것. 아이젠은 일찌감치 그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

테오발트는 대답하지 않고 콜레몽의 길을 앞장서 걸었다. 아이젠은 그의 옆을 나란히 걸을 따름이었다. 마침내 테오발트가 입을 열었다.

“아이젠. 네 어미 클라우디아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네?”

뜬금없는 질문에 아이젠이 잠시 반문했으나, 이내 머릿속에 있는 바를 헤집어 대답했다.

“시골 어디에 계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기젤라도, 너도, 한스나 바네사, 에밀도.”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상인들 가운데서 테오발트가 멈춰 섰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 클라우디아는 현재 공화국 라르페소에 볼모로 잡혀 있어.”

“……!”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이젠은 조금 충격이었으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저 테오발트의 뒷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테오발트는 아이젠이 아무 말도 안 하자 황망해하는 것이라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된다. 처음 듣는 얘기일 테지.”

“네.”

“5년 전, 클라우디아는 공화국에 볼모로 끌려갔다.”

“왜죠?”

“그것은.”

테오발트의 설명이 이어졌다.

테오발트는 제국의 전쟁영웅. 25년 전 탄탈리스 제국과 리타스나트 공화국 사이에 있었던 ‘유령전쟁’은 그 누구의 승리로도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냉전 기간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제국과 공화국의 전력이 비등하지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약세인 것은 제국이 아니라 공화국이었다.

하여 공화국에서는 제국의 침공을 강제로 멈춰 세울 인질이 필요했고, 당시 첩자들에 의해 시골에서 칩거 중이던 클라우디아가 납치되었다.

사실상 유괴되어 공화국으로 끌려간 클라우디아는 그대로 볼모가 되었다. 제국 전쟁영웅의 두 번째 아내, 게다가 테오발트가 끔찍이도 아낀다는 바로 그 클라우디아다. 볼모로 잡기에 이만한 인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제국은 어쩔 수 없이 침공을 시작할 수 없었다. 공화국의 전력이 회복될 때까지. 모두 나의 책임이야.”

“어머님께서 제국에 납치된 사실이 어째서 가주님의 책임입니까?”

“클라우디아, 그녀를 시골로 유배 보낸 것이 다름 아닌 바로 나이니까.”

그린우드 내에는 장로회가 있다. 그들의 원성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테오발트는 첫째 부인인 기젤라만을 정실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후처에 불과한 클라우디아는 시골로 내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테오발트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클라우디아에게 시골 유배 소식을 전달한 것은 테오발트 그 자신이었다. 그날 클라우디아는 말했다.

‘괜찮아요. 그것이 가문을 위한 일이라면.’

그런데 시골에서 홀로 지내던 그녀가 공화국군에 의해 납치되다니!

더군다나 그 일 때문에 제국에서는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쟁영웅 테오발트를 위해서.

“이 사실은 제국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몇 없는 극비 사항이다. 그리고 그 클라우디아는 현재 라르페소에 있다.”

“정보원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첩자들에게 클라우디아의 납치를 지시한 것이 바로 라르페소의 지휘관, 지크프리트다.”

“……!”

그렇군. 그래서 ‘악연’이라는 건가.

아이젠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졸지에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버린 처량한 서자 신세가 되어버렸으나, 아이젠에게는 그저 한 가지 목표가 더 생겨난 것에 불과했다.

‘라르페소에서 어머니를 구해온다.’

머릿속에서는 희미하게만 남아 있는 어머니의 기억이다. 5년 전, 아이젠은 마술 공연장을 클라우디아와 함께 방문했었다. 그날 보았던 마술이 어땠는지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쉐인이 그때 어머니를 죽이려 했었지.’

쉐인, 오랜만에 상기해 보는 이름이었다. 쉐인은 클라우디아의 암살 실패로 피스풀 지하감옥에 수감되었다. 살벌한 기억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아이젠에게는 몇 없는 어머니와의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것이 깨졌다. 공화국에 의해서.

아이젠은 비록 주먹 하나만을 믿고 살아온 사람이었지만.

“잘해봐야겠네요. 라르페소 침공.”

이미 내재해 있던 분노를 주저앉히는 재주는 없었다. 어머니를 되찾는다. 그것이 아이젠이 지금 할 일이었다.

* * *

“하나 묻지. 테오발트 공작, 자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 맞지?”

오마르의 날 선 목소리에도 테오발트는 고개만 꾸벅일 뿐 흥분하지 않았다.

오마르는 자신의 불타는 듯한 주황색 수염을 매만지며 눈앞에 놓인 사과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이곳은 콜레몽성의 심층부. 오마르는 층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으며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다만 공화국의 재배 과일은 오마르의 입맛에 별로 맞지 않았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다른 이유는 테오발트가 조금 전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그대 가문의 소가주, 그러니까 자네 아들내미를 라르페소 침공의 선봉으로 세우자고?”

“예, 대공전하.”

“이해하기 어려운 제안인데. 설마하니 자네만 한 인물이 아들이랍시고 띄워주려는 판단은 아니었을 거라 믿네.”

“물론 아닙니다.”

“그럼 설명해 보게. 내가 이 사과를 모두 먹을 동안만.”

문앞에 서 있던 테오발트는, 슬쩍 오마르의 식탁 위 놓인 접시에 남은 사과 조각을 살펴보았다. 세 조각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우선 콜레몽의 영지장을 쓰러뜨린 것만으로도 무력 면에서는 증명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하지. 하나 그건 그 아이가 아니라 나나 자네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어. 시간은 좀 걸렸겠지만 말이지.”

“그게 중요한 겁니다. 시간. 아이젠의 행동은 시간을 단축시켰습니다.”

테오발트가 한발 디디려 하자, 오마르가 집게손가락을 들어 제지했다. 오마르는 사과 하나를 포크로 콕 찍어 입안에 넣었다.

“내 입맛대로 벽과 바닥을 새로 칠했는데 아직 마르지 않았을 거야. 들어오지 말게.”

그렇다면 오마르 자신은 어떻게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인가? 테오발트는 속으로 의문을 품었으나 그대로 삼켰다.

와그작. 오마르의 사과는 이제 두 조각 남았다. 네오발트가 말을 이었다.

“전쟁은 속전속결이 핵심입니다. 슌타리아에 쳐들어온 반지 삼대위를 척결하고 그 뒤 콜레몽을 또다시 침공하려 했다면, 벌써 시간이 아득히 오래 걸렸겠지요.”

“음.”

“아이젠은 그걸 단숨에 해냈습니다.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것은 모든 제국군의 소망 아닙니까? 물론 승리로 끝나야겠지만 말입니다.”

“…….”

오마르가 사과 하나를 다시 콕 찍었다. 그는 반대쪽 손으로 손짓했다.

“계속해 봐.”

“아이젠은 현재 공화국에게는 미지의 전력입니다. 저희 같은 노장이야 25년 전에 모두 경험해 봤겠지만, 아이젠은 처음 볼 테니까요. 콜레몽에서의 활약이 도망친 위스퍼에 의해 적의 귀에 들어갔을 순 있겠지만, 쉬이 믿을 순 없을 겁니다.”

“열일곱 살짜리 꼬마 아이가 콜레몽 영지장 망골대왕을 이겼단 사실을?”

“그렇습니다.”

“그게 문제라네, 테오발트 공작. 실은 나도 못 믿겠거든. 아이젠이라는 그 꼬마 아이, 강단은 있어 보인다만 정말 그리 강한가?”

테오발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그 아이와 짧은 대련을 마치고 오는 길입니다. 누가 패했을 것 같습니까?”

“설마 자네가 졌단 말이야?”

“방심은 없었습니다.”

“허어.”

와그작. 사과는 한 조각만 남게 되었다. 오마르는 우적거리며 입안에 있는 사과를 없애려 힘썼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이젠 소가주는 참전 경험도 없는 어린아이. 라르페소의 선봉에 세우는 모험을 할 수는 없네.”

“…그렇다면 제가 호위를 맡겠습니다.”

“호위? 자네가 아이젠의 호위를 서겠다고?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아이젠은 명백히 저보다 더 우위에 있는 실력자입니다. 하나 그럼에도 그 아이의 판단력이 흐트러지는 것이 우려되신다면 제가 옆에서 첨언을 놓겠습니다.”

“…흐음. 자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오마르가 마지막 남은 사과를 포크로 찍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테오발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오마르의 키는 테오발트보다 훨씬 작아 오마르가 완전히 올려다보는 구도였지만, 단언컨대 약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자네 아들이라서? 아니면 그 아이젠이란 소년이 클라우디아의 아이이기 때문에? 그도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

테오발트는 오마르의 포크에 찍혀 있는 사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대답했다.

“세상은 강자존(强者尊). 강자를 선봉에 세우는 것이 옳다고 사료 되옵니다, 대공전하.”

“흐음.”

마침내 오마르가 마지막 사과 조각을 입안에 넣었다. 사과는 텁텁하고 쉽게 부서져 맛이 없었다.

“공화국은 과일도 형편없군. 자네 뜻대로 하지. 라르페소 침공의 선봉은 아이젠이 맡는다.”

“숙고하신 뜻에 감사드립니다, 대공전하.”

“그래. 준비 잘 시키게.”

“예.”

오마르가 테오발트를 지나칠 때, 테오발트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 대공전하. 실례지만 침공 날짜는 어찌 됩니까? 아직 전달받지 못했습니다만.”

오마르가 테오발트를 돌아보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일. 바로 준비하도록.”

* * *

콜레몽의 대지. 사람이 없고 척박한 땅 위에 수백 명의 제국군 기병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화살표 모양으로 형태를 갖춰 서 있었는데, 흔들림이 없었다.

화살표의 맨 앞에는 아이젠이 말에 탄 채 있었다. 아이젠의 옆에는 테오발트가 나란히 말에 타 있었고, 그 뒤로는 오마르, 불라트, 마테오, 이스보셋이 쐐기 모양으로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

레오 황제는 오늘 참전하지 않는다.

“후우.”

아이젠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가 바라던 대로 선봉장은 아이젠이 되었다. 오늘 이 화살표 기병대는 아이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테오발트가 말을 움직여 아이젠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아이젠 선봉장. 라르페소의 방벽은 견고하다. 그대의 계획은 무엇이지?”

오늘 기병대를 화살표 모양으로 세울 것을 요청한 것은 아이젠이다. 공화국 수도 라르페소를 뚫는 방법으로 아이젠이 고안한 것은, 실로 명약관화하다.

“뚫는 겁니다. 제가.”

바로 선봉장인 아이젠 그 자신이, 뚫어버리는 것.

아이젠이 왼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진격!”

화살표 기병대가 매서운 진격을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