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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81화 (181/201)

181화

테오발트가 한발 물러섰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마르 대공전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

그러자 아이젠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말씀은 전해주실 수 있잖아요. 그렇죠?”

“…아이젠, 이 녀석. 여전히 망나니 기질은 못 버렸구나.”

“그래도 그때보단 늠름하잖아요.”

“하하하.”

테오발트가 웃어버렸다. 이내 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알았다. 그 무도한 언행을 꺾기 위해서라도, 내가 반드시 이겨야겠구나.”

테오발트의 허리춤에서, 에레디아가 깔끔하게 뽑혀 나왔다.

아이젠은 침을 꿀꺽 삼켰다. 테오발트와의 결전은 늘 바라왔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성사될 줄은 몰랐던 아이젠이다.

‘그냥 질러본 건데.’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단상 아래 서 있던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 뭐여, 램버트는 어디 가고 웬 어린애랑 노인네가?

- 저 둘이 한판할 건가 봐.

- 심판! 심판은 어디 갔어?

- 어린애랑 노인네 싸움을 무슨 재미로 봐?

- 그냥 보는 거지 뭐. 원래 고수 싸움보다 허접스러운 놈들 싸움이 더 재밌는 법 아니겠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이젠은 그런 데 집중할 틈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테오발트의 온몸에서, 그린 오러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으니까.

쿠오오오!

테오발트의 그린 오러는 그야말로 살벌했다. 한 발짝 디디면 그 발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매서운 기운. 아이젠은 전에도 이 기운을 맛본 적이 있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스를 두들겨 패고 가주실로 끌려갔을 때 말이다.

‘갑자기 추억 돋네.’

아이젠은 문득 벌써 꽤 오래전 일인 그 기억을 추억했다. 그리고 깨우쳤다. 그때와 비교하면.

‘나는 지지 않는다.’

아이젠은 테오발트의 기운이 매섭긴 하지만 패배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때는 테오발트의 내공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이젠도 온몸에 암화의 내공을 불어넣었다.

콰아아아!

그러자 허공에서 아이젠의 암화와 테오발트의 그린 오러가 맞붙는 형국이 되었다. 테오발트는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품고 있는 기세가 제법이로구나, 아이젠.”

“가주님만 할까요?”

“덤벼오거라. 참고로 봐주지는 않으마.”

“바라는 바입니다!”

팟! 아이젠이 뛰었다. 우선은 탐색전. 그는 오른쪽 주먹에 박살을 싣고 테오발트의 옆구리를 노려 날아들었다.

쉬익! 캉!

아이젠의 주먹은 간단히 테오발트의 에레디아에 막혔다. 에레디아의 칼날 위에 얕게 파문이 울려 퍼졌다.

“참철검술, 그린 도미네이션.”

부웅! 테오발트의 몸 주변으로 그린 오러의 구가 형성됐다.

‘시작부터 6성의 기술이라.’

시간 끌지 않겠다는 건가? 아이젠은 씨익 웃으며 오른발을 바닥에 쾅 디뎠다.

‘결사신권, 사신강림!’

푸화악! 아이젠의 몸에서 암화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면 나도 질질 끌지 않는다!’

그사이 그린 도미네이션이 어느새 아이젠을 집어삼켰고, 아이젠은 어딘가 몸이 무거워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그린 도미네이션의 밀도 높은 오러가 아이젠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봐주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아이젠.”

쉬익! 테오발트의 에레디아가 바람처럼 빠르게 아이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참철발도!”

쉬익―

타앙!

아이젠은 아이기스로 에레디아를 튕겨냈다. 조금 전 테오발트의 공격은 정말로 아이젠의 목을 자를 듯이 덤벼들었다.

아들을 죽이려는 아비도 다 있는가? 그리 생각할 법도 했지만, 아이젠은 이것이 자신을 위하는 테오발트의 배려임을 알았다.

‘날 어떻게 해서든 선봉으로 세우지 않겠다?’

아이젠이 이 승부에서 이기게 되면 테오발트는 오마르에게 일러 라르페소 침공의 선봉에 아이젠을 세워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되면 아이젠은 적군의 마수에 그대로 노출되는 신세가 된다.

아이젠은 그것을 바라지만, 테오발트는 바라지 않을 터. 아들을 또 잃는 것을 그는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져줄 생각은 없어.’

한편 테오발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발도술을 튕겨낸 저 기묘한 팔찌 같은 것은 뭐지?

‘가만, 저것의 저 푸른색은…….’

테오발트는 의심 가는 부분이 있었으나 확신은 없었다.

아이젠은 암화의 기운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7성에 오른 후 시험해 보고자 했던 바로 그 기술을 이제 여과 없이 펼쳐볼 때다.

화악!

아이젠의 암화가 넓게 퍼졌다. 암화는 마치 게오르크의 아티팩트처럼, 테오발트의 그린 도미네이션처럼 일정 범위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아이젠의 몸을 중심으로 직경 10m에 달하는 암색 원이 그러졌다. 원은 은은하게 빛나며 아이젠을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게 만들고 있었다.

테오발트가 주춤 물러났으나, 단상 위에서는 그가 어디로 걷든 아이젠의 공격 범위 안쪽이었다.

“이게 뭐지, 아이젠?”

“결사신권 7성, 공간지배(空間支配).”

아이젠이 눈을 치켜뜨고 대답했다.

“이 제공권(制空權)의 영역 안에서 저는 절대 지지 않습니다.”

“그리 생각하느냐.”

“그리될 것입니다.”

슈팟! 아이젠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이젠은 어느새 테오발트의 옆구리에 주먹을 찔러넣은 채였다. 그것도 그의 등 뒤에서 말이다.

‘무슨?!’

테오발트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반동으로 날아갔다. 단상 아래로 밀려 떨어질 뻔했으나 공중에서 자세를 잡아 안전하게 착지했다.

“빠르구―?”

테오발트가 말을 거는데 아이젠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테오발트의 눈으로 포착할 수조차 없이 빠르다니.

테오발트는 에레디아의 손잡이를 끝으로 잡아, 칼날이 뻗어 나갈 범위를 넓혔다.

“발도지경, 참철발도!”

슈와악! 넓게 휘둘린 에레디아가 아이젠의 제공권 영역 전체를 베었다. 아이젠은 이미 이러리라는 것을 알고 몸을 낮게 숙인 채 나타나 테오발트의 턱을 노렸다.

‘결사신권, 공간참보(空間斬步).’

공간참보는 아이젠이 만들어낸 10m의 제공권 영역 안에서 어디로든 순간이동 할 수 있는 보법. 마치 대기를 참(斬)하듯 이동해 낸다.

테오발트의 에레디아는 확실히 매섭지만 아이젠은 어지간해선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마침내 아이젠의 주먹이 테오발트의 턱에 가닿았다.

‘결사신권, 공간제권(空間除拳)!’

파앙!! 아이젠의 주먹은 테오발트의 왼손에 붙잡혀 막혔다. 테오발트는 그대로 오른손의 에레디아를 들어 아이젠의 배를 찌르려 했다.

‘공간참보.’

팟! 그러나 아이젠은 깜빡이며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붙들고 있던 감각이 한순간에 테오발트의 손에서 사라졌다. 테오발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그래, 이 공간은 너의 영역이구나. 나의 그린 도미네이션처럼.”

팟! 아이젠은 단상의 끝자락에서 나타났다. 그는 마치 뜀박질 선수처럼 몸을 낮게 숙여, 도약할 자세를 마쳤다.

“제공권의 영역에서 저의 공격은 반드시 먹힙니다.”

탓! 아이젠이 발을 디뎠다. 아이젠은 아이기스의 힘을 빌려 몸에 청풍범람을 두른 채였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로 그는 내달렸다.

그런 아이젠을 테오발트가 에레디아로 막아내려는데, 순간 덜커덕 하고 테오발트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비틀! 테오발트의 몸이 흔들렸다. 그는 곧바로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마치 턱을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몸이 균형을 잃고 있다.

‘턱?’

만약 조금 전 자신의 턱을 빗맞힌 아이젠의 주먹이, 사실은 빗맞은 것이 아니었다면?

테오발트는 조금 전 아이젠이 한 말을 떠올렸다. 제공권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공격은 반드시 먹힌다고 했다.

“정답입니다.”

목소리는 뒤쪽에서 들렸다.

파앙!

테오발트의 등이 크게 꺾였다. 마침내 바닥에 털썩 손을 짚고 엎어진 테오발트의 위에서, 아이젠은 공간지배를 해제했다. 테오발트의 그린 도미네이션은 벌써 해제된 뒤였기 때문이다.

아이젠의 관자놀이에서 삐질 땀이 흘러내렸다. 승부는 아이젠의 승리다. 하지만 아이젠도 마냥 이겼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위험했다.’

테오발트의 에레디아가 아이젠의 목덜미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불과 한 뼘도 안 되는 그 거리를 메꾸고 있는 것은 아이젠의 아이기스였다.

아이기스가 아니었다면 아이젠의 목은 지금쯤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상은 입었을 터.

‘역시 엄청나.’

그러나 이긴 것은 다름 아닌 아이젠이다.

휘오오오.

잠시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도 없던 단상 아래의 사람들이 별안간 환호성을 내질렀다.

- 우와아! 뭐야, 이거!

- 엄청난 경기다! 돈, 돈을 지불해!

- 어린아이가 할아버지를 이겼어!

- 저 어르신도 한 따까리 하는데!

- 이런 건 공짜로 보면 민폐지! 푼돈이라도 다들 던집시다, 던져!

짤랑짤랑― 단상 위에 작은 동전과 지폐 다발이 쏟아졌다. 아이젠은 그걸 주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젠은 대신 테오발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테오발트가 아이젠의 손을 맞잡고 일어섰다.

“제법이구나, 아이젠.”

“가주님께서 전성기셨다면 제가 졌을 겁니다.”

경기가 싱겁게 끝난 데는 나이를 무시할 수 없다. 테오발트는 환갑에 임박한 나이. 그 반면 아이젠은 열일곱의 새 신 같은 몸이다.

같은 수준의 힘을 가졌다면 테오발트가 아이젠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이는 달리 말해 아이젠이 테오발트와 비슷한 영역에 올라섰음을 의미했다.

‘가주님의 나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공간제권은 통하지 않았을 거야.’

아이젠이 빈틈을 노리고 그의 턱을 가격하지 않았다면, 쓰러져 있는 건 테오발트가 아니라 아이젠이었을 거다.

테오발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말은 아무 의미 없다. 내 전성기는 25년 전에 이미 끝났으니.”

“그래요? 그럼 약속대로 선봉에는 제가 서겠습니다.”

“…알았다. 어쩔 수 없구나. 오마르 대공전하께 말을 올려보마.”

두 사람을 멍청히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아이젠과 테오발트는 단상에서 내려왔다.

앞서 걷던 테오발트는 문득 생각이 들어 아이젠을 돌아보곤 물었다.

“하나 묻자꾸나, 아이젠. 그 팔찌, 정체가 무엇이냐?”

“아, 이거요?”

아이젠이 뭐라고 얼버무릴까 고민하는데 테오발트가 끼어들었다.

“숨길 생각은 말거라.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아보았으니.”

“…음.”

생각 끝에 아이젠이 제시했다.

“제가 대답해 드리면, 가주님께서도 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질문 말이냐? 그래, 알았다.”

“이건 아이기스입니다.”

“아이기… 뭐라고?”

테오발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이젠은 다시 한번 그의 머릿속에 단어를 각인시켜 주었다.

“네. 초대 가주님의 아티팩트, 아이기스. 그게 이 물건입니다.”

“……!”

테오발트는 잠시 세상이 멈춰 버린 듯 정지했다. 너무 확 굳어버려서 아이젠은 그의 얼굴에 손을 휘휘 저어봤다.

“가주님?”

“…그 물건이, 왜 네 손에 있는 것이냐? 그게 왜 참철검이 아니라 팔찌의 형태인 게지?”

“말씀드리자면 깁니다만, 초대 가주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 그렇군…….”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 이상 질문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테오발트는 당황한 걸 지우려 애썼다.

“크흠, 커흠… 알았다. 초대 가주님의 물건이라니. 그 사라졌던 물건이 네게……. 놀라 나자빠질 만한 일이야.”

“이제 제 차례입니다.”

“음. 그래, 질문이 뭐지?”

아이젠의 눈매가 좁아졌다.

“라르페소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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