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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74화 (174/201)

174화

【 콜레몽 】

테오발트, 오마르, 마테오, 불라트, 아이젠을 지나쳐.

탁자의 가장 상석에 앉은 레오 황제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끄흠, 그래. 공화국에서 전쟁을 선포한 이상 이제 제국에서도 거리낄 것이 없네. 어떻게 생각하나? 오마르 대공.”

“폐하 말씀이 옳습니다. 공화국에 지엄한 제국의 뜻을 전달해야 할 때입니다.”

오마르가 고개 숙여 대답했다. 황제가 말을 이었다.

“하면 다음 지역이 어디지? 생각해 둔 바가 있는가?”

“그 점은 지도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오마르는 벌떡 일어나 회의장 벽면에 붙어 있는 커다란 파피루스 지도에 다가섰다.

“저희가 정복한 이곳 슌타리아에 인접한 지역은 많습니다. 그중에서 저희가 다음 침공 지역으로 삼을 곳은 바로 이곳, 콜레몽 지역입니다.”

오마르가 가리킨 지도를 보고도 아이젠은 구분하기 어려웠다. 일단은 잠자코 듣기로 했다.

레오 황제가 물었다.

“이유는?”

“콜레몽은 공화국의 수도 라르페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폐하도 아시다시피 라르페소에는…….”

“그래. ‘그 자’가 있지.”

레오 황제의 언급에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다섯 영웅과 이스보셋, 아이젠. 모두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자가 누구지?’

아이젠은 궁금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게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었다.

잠시 틈을 두고 오마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 따라서 라르페소를 점거하기 위해선 그전의 콜레몽 지역을 먼저 돌파하는 것이 옳다 싶습니다.”

“콜레몽의 영지장은?”

“현재로선 불명입니다. 25년 전과는 많은 것이 바뀌었지요.”

공화국에서는 ‘영주(領主)’가 아니라 ‘영지장(領地將)’이라는 표현을 쓴다. 공화국은 근본적으론 평등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주인’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화국에 흑기사들을 운용해 둘 것을. 정보원으로 말이네. 하하.”

“혜안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흐음. 그래, 오마르 대공. 콜레몽을 칠 계획은 있나?”

“아직입니다. 폐하께 고견이 있으시다면 부디 들려주시기를.”

오마르 대공의 인사치레에 레오 황제가 턱을 매만졌다. 그의 시선이 문득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아이젠에게로 향했다.

“그린우드의 소가주 아이젠. 그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데?”

갑자기 질문을 받았지만 아이젠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을 틈 없이 말했다.

“굳이 저희가 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젠의 말에 다른 전쟁영웅들이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젠은 지금 침공을 잠시 쉬자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선전포고를 한 건 적 쪽이다. 그들에게 침공을 하는 것은 현재 제국에서 정당방위 취급. 그런데 잠시 쉬자고?

테오발트는 혹시라도 아들이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레오 황제가 질문했다.

“그건 왜지?”

“저희가 슌타리아를 점거했으니까요. 절대 뚫리지 않으리라 자부했던 땅이 정복당한 만큼 공화국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을 겁니다.”

“하여?”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공화국에겐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합니다. 시일 내에 콜레몽에서 이곳으로 기습을 해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대가 콜레몽의 영지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저라면 지금 바로 반격을 시작했겠죠.”

“허허허.”

레오 황제가 껄껄 웃었다. 다른 전쟁영웅들이 눈치를 보며 함께 웃었다.

그가 웃음을 멈추고 테오발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대의 아들이 그렇다는구려. 테오발트 공작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 또한 소가주의 말이 옳다 생각합니다.”

“그렇군. 그대들 말이 옳다.”

레오 황제는 정면을 보며 다시 말했다.

“콜레몽과 연결되는 곳에 빗장을 걸고 24시간 감시를 명하라. 우리는 그 앞에서 매복해 있다가 콜레몽에서 반격해 오기를 기다린다. 역습을 감행하라.”

“예!”

“아이젠 폰 그린우드?”

다시 자신을 부르는 황제의 말에 아이젠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예, 폐하.”

“자넨 싸움을 꽤 즐긴다고 들었네. 소문이 맞는가?”

“예. 그렇습니다.”

“전쟁은 무고한 시민들만 죽어 나가는 악마 같은 짓거리지. 하지만 선전포고를 당한 이상 제국 시민들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소임이라네.”

“예.”

레오 황제는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우두머리구나 아이젠은 생각했다.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즉결처형 될 테지만 말이다.

“싸움도 좋지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민을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하게. 명심해, 전쟁은 없는 걸 얻는 싸움이 아니야. 있는 걸 지키는 싸움이지.”

없는 걸 얻는 싸움이 아니라, 있는 걸 지키는 싸움.

그 한 문장이 어쩐지 아이젠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새기겠습니다.”

* * *

아이젠은 후방전선에 배치되었다.

그가 아무리 슌타리아 점거에 큰 공로를 세웠다 해도, 이제 막 전장에 처음 나온 풋내기. 게다가 나이도 어리기에 원래대로라면 일반 병사보다도 하도급으로 쳐줘야 하지만 오마르의 특별 지시로 후방의 지휘대장으로 매겨졌다.

‘음.’

물론 병사들이 아이젠을 따르느냐 마느냐는 별개였다. 아이젠은 단상 위에 서서, 자신을 고깝게 보는 제국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조용히 있었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기야 그렇다. 아이젠 자신이라도 이런 어린 소년이 지휘관이라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다.

옆에 서 있던 마테오 백작이 탕탕 발을 찼다.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마테오 백작 역시 오마르의 배려로 이곳에 배치되었다. 아이젠 혼자서는 지휘권이 약하리라는 판단하였다.

“뭔가 말씀하시지요, 아이젠 지휘대장님.”

마테오 백작이 말했다. 아이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말해보기로 했다.

“다들 내가 불만스럽다는 얼굴인데.”

- …….

“이해합니다. 나 같아도 그럴 테니까.”

아이젠은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공을 온몸에 흘려넣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눈동자에 색이 돌기 시작했다.

“근데 뭐, 일단 내가 지휘대장으로 임명됐으니까 다들 내 말 잘 따릅시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상대해 드릴 테니까. 이기면 지휘대장 자리를 넘기겠습니다.”

- !

병사들의 안색이 변했다. 마테오 백작은 아이젠의 호기에 쿡쿡 웃었다.

병사 중 한 명이 손을 들자 아이젠이 그를 가리켰다.

“정말 제가 이기면 저한테 지휘대장 자리를 주신단 말입니까? 참고로 전 어제 막 입대한 병사입니다만.”

“어제 했든 10년 전에 했든,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도 오늘 막 배정받은 거니까. 상관없습니다.”

아이젠이 암화로 바닥을 내려쳤다. 바닥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졌다. 병사들이 사색이 되어 바라볼 때 아이젠이 빙긋 웃었다.

“뭐, 대신. 도전하다가 죽어도 책임은 안 집니다.”

아이젠에게 덤벼오는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 *

막사 한가운데에 앉은 아이젠은 손바닥을 펴 보았다. 군데군데 굳은살과 상처투성이였다. 이 작은 손바닥으로 그가 세운 기록을 살펴보면 경이로운 것이었다.

‘7성이라.’

그는 새삼 자신의 수위에 감탄했다. 7성, 화경의 경지. 중원에서는 웬만한 무림인이라도 오르지 못하는 위치였다. 그런데 아이젠은 이곳에서 불과 1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이루어냈다.

모든 것은 그의 환경이 한몫했다. 아이젠이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자연이 제공해 주고 있었다. 아이젠은 자신이 전생을 깨달은 것도 어쩌면 바로 이 환경 때문인 건 아닐까 싶었다.

전생에서 미처 깨우치지 못했던 생사경의 경지를, 이곳 현생에서 달성해 보라는. 어떤 거대한 의지의 뜻인 것은 아닐까.

“글쎄.”

아이젠은 피식 웃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어찌 됐든 그는 이제 전생에 도달했던 8성 현경의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 이상, 9성 생사경의 경지는 맛만 보았을 뿐 도달해 보지 못했다.

‘뭐라 그랬더라? 무혈귀로랬지.’

아이젠은 자신이 이강철이던 시절 천마 도강문에게 최후에 시전했던 기술의 이름을 떠올렸다. 결사신권의 기술명은 모두 자신이 지었다. 무혈귀로 역시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대로 내뱉은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이름에는 뜻이 담긴다. 아이젠은 생사경에 오르기 위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하며 전열을 다졌다.

“그렇다고 해봐야 난 후방에 배치된 지휘대장일 뿐이지만. 안 그렇습니까? 마테오 백작님.”

탁. 아이젠이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체스말을 반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젠의 검은색 나이트가 흰색 킹을 완전히 옥죄고 있었다.

아이젠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마테오 백작은, 눈에 걸치고 있던 자그마한 안경을 벗으며 헛숨을 내뱉었다.

“허허……. 이거 제가 졌습니다. 아이젠 소가주님께서는 체스도 잘 두시는군요…….”

“봐주신 거 알아요. 다섯 수 전에 퀸을 이상한 위치에 두시더구만.”

“하하. 그걸 보셨습니까? 눈썰미도 좋으십니다…….”

“반상 놀이는 지쳤습니다.”

마테오 백작의 자신의 흰 킹을 손가락으로 쳐 눕혔다. 아이젠은 체스말을 정리하며 말했다.

“마테오 백작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얼 말씀입니까?”

“제가 후방전선에 배치된 거요. 전 최전선에서 공화국군과 싸우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오마르 대공전하의 전쟁령이니 따르는 수밖에요……. 하지만 후방전선도 잘 지켜야 하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전방이 뚫리면 바로 당하는 것은 저희입니다.”

“하긴.”

체스말 정리를 마친 아이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젠이 막사 밖으로 나가려 하자 마테오 백작이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아이젠은 좀이 쑤셨다.

“그냥 좀. 산책이요.”

* * *

모르겐슈테른, 아킬레스, 하인켈.

그들은 공화국에서 일명 ‘반지 삼대위’라 불리는 이들로, 콜레몽의 영지장인 망골대왕의 심복이기도 하다. 그 별명처럼 셋은 각자의 오른손 검지에 반지를 하나씩 끼우고 있었다.

망골대왕의 명령을 받은 세 사람은 깊은 지하 땅굴 안에 있었다. 이 지하 땅굴은 슌타리아의 후방과 연결되어 있다.

세 사람이 직접 판 것은 아니다. 땅굴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 ‘제국군도 공화국군도 모르게.’.

“시작하지.”

모르겐슈테른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마치 세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척! 그들이 빠르게 땅굴 출구로 빠져나왔다. 저 멀리 경비를 서고 있던 제국 병사들이 들리는 소리에 뒤를 돌았다.

“어? 뭐, 뭐야!”

“어떻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리고 당황했다. 제국 병사 서넛이 저마다의 창칼을 꺼내 들고 경계할 때, 반지 삼대위는 태연하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킬레스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 반지를 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알파의 반지.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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