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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73화 (173/201)

173화

“어떻게 됐냐면… 제가 다 끝냈는데요.”

“뭐, 뭐라고? 그대가?”

아이젠의 말에 불라트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공화국 병졸들의 시체, 그리고 한편에 십일자로 나란히 모여 있는 것은 틀림없는 스탕달과 베우제츠였다.

그들은 기절했는지 탈진했는지 어쨌든 숨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이젠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생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어, 으음. 그, 그렇지.”

불라트가 어벙하게 답했다. 설마 이 둘을 생포하다니.

아는 사람은 안다. 죽이는 것보다 반만 살려두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그러려면 힘 조절을 해야 한다. 심혈을 기울여서.

그런데 아이젠은 딱히 다친 데도 없이 이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고, 고생했네.”

“저 좀 피곤한데. 이만 들어가 봐도 됩니까?”

아이젠은 테오발트를 보고 묻는 것이었다. 결국 테오발트가 폭소를 못 참고 빵 웃어버렸다.

“크하하하! 아이젠, 역시 넌 내 아들이다! 크하하하하!”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제국군은 슌타리아로 진격해 그곳에 있던 공화국 시민들을 포박하고 땅을 정복했다. 스탕달과 베우제츠만 믿고 슌타리아의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공화국의 실책이었다.

슌타리아의 성은 수도 한가운데에 있었고, 제국은 사실상 무혈입성에 성공했다. 공화국 병졸들이 스탕달과 베우제츠가 제압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기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공화국이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이라곤 해도 개개인으로 보면 하나하나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승산 없는 싸움에 목맬 이는 없다.

그렇게, 슌타리아는 탄탈리스 제국 손에 넘어왔다.

* * *

쾅!

슌타리아의 바로 뒤편에 있는 땅, 콜레몽.

콜레몽의 영지장(領地將)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는 덩치가 컸다. 몹시 컸다. 사람이 자랄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앉은키만 3m에 가까워 선다면 5~6m도 거뜬할 듯했다.

“멍청한 스탕달. 슌타리아를 잘 지키랬더니 그것도 못 했단 말이냐?”

그는 해골로만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몸집이 몸집이다 보니 의자는 몹시 컸다. 그곳에 박혀 있는 해골들은 모두 제국인의 것이었다.

영지장의 앞에 세 사람이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영지장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영지장이 손에 쥐고 있던 석장(錫杖)을 휘적였다.

“모르겐슈테른, 아킬레스, 하인켈. 나의 세 심복들아.”

“예! 망골대왕님!”

“가서 슌타리아를 집어삼킨 놈들이 누구인지 보아라. 확인한 뒤 없애라. 명령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세 심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망골대왕이라 불린 남자가 석장에 몸을 지탱해 일으켜 세우자, 그의 몸이 빛을 받아 보이기 시작했다.

망골대왕은 몸이 없었다. 뼈뿐이었다. 살덩이라곤 단 1g도 실려 있지 않은 그의 가냘픈 몸은 천 쪼가리에 뒤덮여 가려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해골뿐인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망골대왕은 웃었다.

“뼈 빠지게 빼앗아 오면 뭐 한단 말이냐. 이 멍청한 인간 놈들. 내가 나설 일은 만들지 마라!”

망골대왕은 그의 별명이 아니다. 그의 이름 그 자체였다.

망골대왕은 사람이 아니었다. 바로 마혼이었다. 콜레몽의 영지장은 인간이 아닌 마혼이었다.

* * *

슌타리아를 점거했어도 모든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격전지 하나를 빼앗아 왔을 뿐.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25년 전의 전쟁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척!

슌타리아의 성안에 발길이 들어찼다. 복도를 걷는 다섯 개의 발이 나아갈 때마다 줄지어 서 있던 제국 병사들은 경탄해 마지않았다.

- 보여? 저분이 바로 마테오 디 잔니니 백작님!

- 벽력마법으로 적들을 간단히 쓸어버린다던!

마테오 백작의 걸음만은 유독 느렸다. 하지만 언제나 호호 영감 같던 그의 얼굴도 오늘만큼은 자못 진중했다.

- 앗, 저분은… 오마르 판 코르비노 대공전하!

- 이럴 수가! 화염성가(火焰星家)의 가주님을 실물로 뵙게 될 줄이야!

- 옥염마법으로 모든 걸 불에 태워 버린다는 오마르 대공전하이시다!

마테오 백작의 옆에 서 있던 건, 주황색 머리가 마치 불에 타는 것 같은 중년 남자였다. 마찬가지로 주황색 불꽃 수염을 기른 그는 입에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가 바로 전쟁영웅 5가문 중 하나인 코르비노 대공가의 가주 오마르였다. 그는 도끼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이봐, 테오발트 공작. 보는 눈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오마르가 말을 던진 건 나란히 걷고 있던 테오발트 폰 그린우드 현 가주였다. 병사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 참철검가의 테오발트 폰 그린우드 공작님!

- 저 검이 그 유명한 태양의 검 에레디아인가?

- 위압감이 엄청나시다……!

테오발트는 걸으면서 오마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딱히 미안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오마르 대공전하. 나오지 말라고 했건만.”

“뜨거워. 열기가 너무 뜨겁다고, 다들. 전쟁 회의는 좀 차가울 필요가 있는데 말이야.”

“하하. 오마르 대공전하, 그리고 테오발트 공작님. 다들 걱정은 그만하고 걸으시지요. 좋은 날 아닙니까.”

그들 사이에 끼어든 것은 창술명가의 불라트 데 체호프 후작이었다. 병사들은 이번에도 불라트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전쟁영웅들을 실물로 뵙게 되다니!

- 가문의 영광이다. 나 눈물 날 것 같아!

- 돌아가면 그녀에게 자랑할 거야!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어느덧 마지막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다른 영웅들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훨씬 어려 보이는 그는 누가 봐도 25년 전에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아이젠이었다.

마지막 전쟁영웅은 아직 이곳에 오지 않았다. 대신 아이젠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왜 나까지 부르는 거지?’

영웅들의 전쟁 회의에 아이젠이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아이젠은 지금 네 영웅과 함께 슌타리아 성의 회의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제국 병사들의 쑥덕대는 소리가 아이젠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 아니… 뭐지?

- 웬 꼬마애가 저기 껴 있어? 대충 봐도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 몸은 되게 좋아 보이긴 한다만. 무기는?

- 없는 것 같은데……? 무기도 없어? 마법사인가?

- 저 몸을 봐. 저게 어디 마법 쓸 몸인가. 분명 무투가야.

아이젠은 신경도 쓰지 않고 걸었다. 그야 뭐 언제 이런 뒷말들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나.

그런데 뜻밖에도 테오발트가 아이젠의 어깨를 붙들고 오마르에게 밀었다. 테오발트는 전에 본 적 없는 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공전하, 소개가 늦었습니다. 이놈이 제 아들 녀석입니다. 이번에 소가주가 됐지요.”

“오, 네가 그 게오르크인가 하는 그놈이냐?”

오마르의 말투는 거침이 없었다. 아이젠이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공작의 아들일진대. 이것이 바로 대공의 위치라고 새삼 깨달으며 아이젠이 고개를 까딱였다.

“아뇨. 아이젠 폰 그린우드라고 합니다.”

그 말에 뚝― 하고 주변 소음이 그쳤다. 제국 병사들이 더욱 낮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 아이젠? 아이젠이라면 그 유명한 집쥐공자?

- 이럴 수가! 참철검가에서 주먹을 쓰는 소가주가 나오다니!

- 믿을 수가 없어.

한편 오마르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음? 거 이상하군. 테오발트 공작 자네의 첫째 아들 이름은 분명 게오르크였을 텐데?”

“제가 그 게오르크를 꺾고 소가주가 됐거든요.”

“그러냐? 어린 나이에 제법이구나. 자, 악수 한번 하자.”

오마르가 오른손을 내밀자 아이젠이 같은 손으로 맞잡았다. 오마르의 체온은 어쩐지 남들보다 더 뜨겁고 불타는 느낌이었다.

한순간, 아이젠은 오마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오마르의 눈동자 깊숙이 자리해 있는 불꽃을 보았다.

오마르가 왼손으로 수염을 만지며 빙긋 웃었다.

“호오. 너, 강단이 있는 놈이로구나?”

“네?”

“눈이 뜨거워. 난 사람을 눈으로 구분하지. 네놈은 뜨거운 눈을 가졌다.”

“……?”

아이젠이 못 알아듣고 고개를 모로 꼬자, 오마르는 껄껄 웃어 보였다.

“크하하! 늙은이 헛소리니까 그냥 흘려 넘겨! 다들 뭐 하나? 어서어서 가자고.”

오마르가 앞장서자 다들 그의 뒤를 따랐다. 아이젠도 뒤늦게 따라 걸었다.

아이젠을 향한 뒷말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 * *

전쟁 회의.

그것은 바야흐로 제국과 공화국 간에 냉전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직접적인 증거였다. 전쟁 총대장인 오마르 및 다른 세 귀족이 이 전쟁 회의에 참여한다.

‘음.’

아이젠도 껴 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이스보셋 영기사는 참관 역할이었다. 실질적으로 병사들을 이끄는 것은 바로 그다. 영기사라는 직함이 주는 압도적인 신뢰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보셋은 다른 영웅들과 달리 회의장 뒤편에 올곧게 서 있었다.

뚜벅뚜벅―

회의장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이스보셋이 숨을 크게 들이켜며 문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입성하십니다.”

그 말에 앉아 있던 귀족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탁자의 상석은 비어 있었다.

끼익!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하들을 대동한 제국의 황제 레오 베네딕토였다.

“다들 와 있었구먼.”

“황제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오마르, 테오발트, 불라트, 마테오가 외쳤다. 아이젠도 함께 외치긴 했으나 어쩐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전쟁영웅 5가문. 그것은 바로 화염성가 코르비노 대공가문, 참철검가 그린우드 공작가문, 창술명가 체호프 후작가문, 천둥의 잔니니 백작가문.

그리고, 유수황가(流水皇家) 베네딕토 가문이었다. 레오 황제 또한 전쟁영웅 중 한 명이었다.

“음.”

레오 황제는 뒤편에 서 있던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수하들이 문을 닫고 나갔다.

뚜벅뚜벅― 레오 황제가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전쟁영웅들의 인사를 받으며 가장 먼저 다가간 것은.

“어디 보자. 그대가 바로 그린우드 가문의 소가주인가?”

다름 아닌 아이젠의 앞이었다.

아이젠은 순간적으로 좀 놀라 눈동자를 키웠다. 황제와 대화를 하게 되다니. 이강철이던 시절에도 중원의 황제와는 말을 섞어보지 못했던 그다.

“…네. 아이젠 폰 그린우드라 합니다.”

“슌타리아를 점거하는 데 힘썼다지? 아니, 사실상 그대 혼자 점거한 꼴이 아닌가?”

“네, 그렇기는 합니다.”

아이젠은 딱히 공을 돌릴 필요를 느끼지 못해 솔직히 답했다. 그러자 레오 황제가 껄껄 웃으며 다른 영웅들을 돌아보았다.

“그대들도 노력해야 하지 않겠나? 이 어린아이에게 모든 전공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이야.”

“하하하…….”

“자, 다들 앉지.”

레오 황제의 명에 귀족들이 일거에 착석했다. 가장 끄트머리에 앉은 아이젠은 회의에서만큼은 잠자코 있기로 했다.

‘자, 어떤 대단한 전쟁 회의가 열리나 한번 두고 볼까.’

아이젠은 우선은 입을 다물고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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