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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70화 (170/201)

170화

“현무신공, 빙경작(氷鏡作).”

화아아아―

그러자 아이젠의 몸이 마치 물가에 비친 것처럼 하늘하늘해지더니, 이윽고 빛과 함께 굴절되며 신형을 감췄다.

빙경작은 얼음을 온몸에 두른 뒤 빛을 굴절시켜 몸을 숨기는 기술. 아이젠이 지난 2주간 현무신공으로 개발한 기술이었다.

몸을 숨기는 것은 암살자들이나 하는 일. 그렇기에 아이젠에게는 사실 별로 쓸모도 없는 기술이었다.

암살자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젠은 그저 정면에서 일대일로 맞붙는 것을 좋아했기에 몸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하여 빙경작은 자신이 개발해 놓고도 무용지물이라 생각했다. 한데 이렇게 쓸모가 있게 되다니.

‘놈들 뒤를 치려면, 몸을 숨겨야지.’

아이젠은 베우제츠의 암흑경에 대한 능력 설명을 불라트에게서 듣고, 모종의 힌트를 얻었다. 아이젠이 혼자 산등성이를 돌파하겠다고 선언한 건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후미를 뚫고 나면 테오발트와 이스보셋, 불라트가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올 것이다.

아이젠이 맡은 역할은 그저 길목을 지키고 서 있는 공화국 놈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

당연하다. 소가주라곤 하나 이제 갓 열일곱 살에 오른 햇병아리에게 적군의 섬멸을 바라진 않을 테니.

하지만.

“난 생각이 좀 다르단 말이지.”

아이젠은 그럴 생각이었다. 적군을 섬멸할 생각이라는 뜻이다.

“자, 가볼까.”

아이젠은 울퉁불퉁한 산길을 밟기 시작했다.

* * *

무명산 아래, 슌타리아 초입.

그곳에서는 공화국의 병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한 번 경비를 설 때 8명이 근무하고, 교대할 때는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여 적군의 침입을 완전히 배제한다.

“흠.”

슌타리아의 총책임자인 스탕달 대위는 참호에서 나와 근무 중인 병졸들을 살폈다. 완벽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스탕달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스탕달은 자신의 옆에 있던 애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이래야지. 이 정도는 돼야 적들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지!”

스탕달은 불만이 많았다. 자신보다 실력이 한참 아래인 헤나즈네와 짐바르도가 준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짐바르도까지는 인정한다. 하지만 헤나즈네는 그 아티팩트 즉사종이 없으면 완전히 허수아비인데.

“그래서 결국 두 녀석 다 죽었다지. 멍청이들.”

스탕달이 조소했다. 도망쳐 온 공화국 병졸들로부터 두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죽었으니, 이제 자신이 준장에 오를 차례라고 생각했다.

이곳만 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잘 버티고 서 있으면 진급이 코앞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배급량도 늘어날 테고. 크흐흐.”

“불경한 말씀을 하십니다, 스탕달 대위님.”

갑작스레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스탕달이 깜짝 놀랐다.

자신의 살찐 둔중한 몸과는 정반대인 얇은 몸매의 베우제츠 중위가 거기 서 있었다.

스탕달의 애견이 베우제츠를 향해 컹컹 소리를 질러댔다.

“베우제츠 중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기척 좀 하고 오라고!”

“이거 죄송합니다. 한다고 한 건데. 개 좀 조용히 시켜주시지요.”

스탕달은 그의 말대로 애견의 등을 만져 조용히 시켰다.

“크흠. 암흑경은 어쩌고 왔어?”

베우제츠의 손이 비어 있자 물은 것이다. 베우제츠는 스탕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전방을 주시 중이지요.”

“아, 그랬지 참.”

베우제츠의 암흑경은 전용 받침대를 따로 만들어 적 방향에 거울 면이 가도록 설치해 둔 상태였다. 경계를 서는 병졸들의 앞에 암흑경이 고고히 자리해 있었다.

이렇게 해두면 암흑경에 비친 미래가 베우제츠의 눈에 공유된다. 즉, 직선 상에서 적들이 쳐들어온다면 언제라도 알아챌 수 있단 소리다.

“크크. 슌타리아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여기가 유일해. 한 번 탈환되긴 했지만, 베우제츠 네 능력이 있는 한 이제 두 번 다시 이 땅을 빼앗길 일은 없다!”

“예. 적들이 다른 퇴로로 쳐들어오지 않는 한은 말이지요.”

“흥! 다른 퇴로? 그딴 게 어딨어! 있다고 해봐야 이 높다란 무명산뿐이지!”

스탕달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깎아지른 절벽이 흉험하게 스탕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 산을 지나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려면 너무 오래 산을 타야 하고, 다수의 병력이 이동하기엔 땅이 울퉁불퉁해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이 무명산에는 그 악명 높은 마물들이 살지 않나.”

“그렇지요.”

“크크크. 우리가 패배할 일은 절대 없다!”

스탕달은 공명심에 사로잡혔다. 괜히 주먹을 꽉 쥔 그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가만, 이러다가 만약 영기사 이스보셋이라도 사냥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뿐만 아니라 전쟁영웅 테오발트의 목까지 잘라버린다면! 크크크, 준장은 고사하고 대장까지도 오를 위업이다!’

스탕달의 입가에 불쾌하게 걸리는 미소를 베우제츠는 모른 척했다.

스탕달이 호기롭게 외쳤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무적이야! 제국 놈들이 발치도 못 들이밀게 하자고!”

* * *

아이젠은 깃털처럼 쉽게 산을 타기 시작했다. 아이젠이 지난 2주간 배운 현무신공은 빙경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무신공, 청풍범람(靑風氾濫).’

몸 위에 아이기스의 푸른 오러를 두른 아이젠은 마치 바람을 탄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청풍범람은 험한 산길도 쉽게 탈 수 있도록 아이젠이 개발해 낸 또 다른 기술이었다.

“쉽다, 쉬워.”

덕분에 거의 45도에 이르는 무명산의 경사도, 단단한 자갈이 길의 대부분을 이루는 산길도 걷기가 어렵지 않았다. 아이젠은 성큼성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빙경작 덕분에 산짐승들도 아이젠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젠은 지금 너무나 가벼워 낙엽을 밟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

아이젠이 흠칫 살기를 느꼈다. 단순히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찢어발겨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듯한 마물의 것이다.

아이젠은 이윽고 정면에서 마물 하나를 맞닥뜨렸다.

“캬아.”

상급 마물, 산 그런트. 야생돼지의 얼굴에 바윗덩이만 한 덩치를 가진 마물의 등장이었다.

“캬아아.”

산 그런트는 원래는 추운 지역에 서식하는 마물 ‘그런트’의 변종이다.

아이젠도 영설산에서 마주한 적 있는 그런트들은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었는데, 그건 근본적으로는 추위에서 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산 그런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영설산 같은 특수한 환경이 아닌 이상 마물은 웬만하면 산속에서 일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고, 산 그런트들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리 짓던 습성을 벗어던진 산 그런트들은 하나하나의 개체가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들은 어느덧 상급 마물까지 진화한 상태였다.

“…….”

아이젠은 지금 빙경작으로 몸을 숨긴 상태. 하지만 어째서인지 산 그런트는 아이젠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일까?

‘가만, 그러고 보니 그런트면.’

그런트는 돼지형 마수.

따라서.

“캬아. 인간! 나가라!”

산 그런트는 아이젠에게 경고를 던졌다. 상급 마물이기에 말도 할 수 있다. 딱 프렘린 정도의 어휘력을 구사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흠.”

파스스― 아이젠은 빙경작을 해제했다. 어차피 냄새로 들킨 상황에서 유지한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다른 산짐승들도 아이젠을 쳐다봤지만 산 그런트의 위세에 눌려 가까이 다가오진 못했다.

“싫은데?”

아이젠이 대꾸했다. 산 그런트는 분노하며 땅을 밟았다. 그 탓에 쿵! 쿵! 하고 산이 울렸다.

“캬아! 나가라! 당장! 이 산은 내 산이다! 내가 지배하는 산이다!”

“미안. 이 산을 가로질러야 해서 말이다. 지나가게 해줄 수 없을까?”

“안 돼! 못 지나가! 인간은 죽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다! 캬아아!”

“어우, 시끄러.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꽥꽥대고 지랄이야.”

아이젠이 한순간에 주먹에 암화를 품었다. 그리고 산 그런트의 명치에 주먹을 던졌다.

뻐억!! 강력한 소리와 함께 산 그런트의 배가 움푹 파였다.

“끄허억!”

“박살.”

쉬익! 퍼엉!

산 그런트는 그렇게 멀리 날아가 나무에 부딪혀 쓰러졌다.

산 그런트가 제아무리 상급 마물이라 해도 프렘린마저 한 주먹에 쓰러뜨리는 아이젠이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이젠은 벌써 초절정에 올랐으니까.

방금의 광경을 목도한 산짐승들은 전부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 버렸다. 덕분에 한순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캬아아…….”

그때 산 그런트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이젠이 일부러 주먹에 힘을 좀 덜 실었기 때문이다. 아이젠은 느린 걸음으로 산 그런트에게 다가갔다.

“캬아! 이, 인간! 강하다!”

“쉿. 소리 좀 그만 질러, 귀 아프다.”

“크으으.”

“네가 이 무명산을 지배하는 녀석이냐?”

“캬아. 그렇다, 인간.”

“이 아래에 있는 슌타리아… 아,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겠구나.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다. 혹시 알고 있어?”

“캬아! 안다! 날카로운 무기로 날 베려 했다! 크으으!”

“그리로 안 들키고 내려가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되지?”

산 그런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캬아. 길은 하나뿐이다. 이 뒤로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돌아가라.”

산 그런트가 가리킨 방향을 보며 아이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가라.”

“캬? 잠깐, 인간!”

뻐억!!

아이젠은 산 그런트의 심장에 주먹을 박아 넣어 한순간에 그를 절명케 했다. 산 그런트는 추욱 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어찌 됐든 마물. 사람들을 위협하는 놈이라면 이 자리에서 죽여 마땅하다.

“자, 가볼까.”

아이젠은 다시 빙경작을 시전했다. 그리고 청풍범람도 몸에 둘렀다.

그러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바람이 저 혼자 부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산길을 내려가는 바람의 형상처럼 보인 것이다.

그렇게 아이젠이 몇 분여 정도 더 달렸을까.

마침내 하산하는 길 너머로 공화국 병졸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덟이나 되는 적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아이젠은 천천히 발소리를 죽였다.

공화국 병졸 한 명이 반응했다.

“응?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분명 바람 소리 같은 게.”

병졸은 그렇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쪽에는 베우제츠와 스탕달, 그리고 그 한참 뒤로 무명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었다.

스탕달이 노성을 질렀다.

“어딜 보는 거냐!”

“힉, 죄송합니다!”

“뒤쪽에서 제국군이 오겠냐?! 내가 제국 놈이란 말이냐!”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스탕달 대위님!”

병졸이 다시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젠은 천천히, 낙엽 밟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스탕달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주먹에 은밀하게 암화를 심었다.

그때였다.

“컹! 컹! 컹! 컹!”

스탕달의 육중한 몸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던 웬 개 한 마리가 아이젠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응? 이놈이 갑자기 왜 이래!”

스탕달이 개를 다그쳤다. 그러나 개는 아랑곳없이 아이젠을 향해 돌진해 왔다. 이쯤 되면 별수 없다.

‘박살.’

빠악!!

아이젠은 개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그러자 개가 깨갱 소리와 함께 날아가 기절했다.

“아니?!”

“무, 무슨 일입니까! 스탕달 대위님!”

모두의 눈길이 아이젠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아이젠은 이제는 더 필요 없다고 생각해 빙경작을 해제했다. 그러자 공화국군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 뭐야?!”

“적습이다!”

차앙! 그들은 저마다 들고 있던 창칼을 들고 아이젠을 노려보았다. 스탕달 대위는 육중한 몸으로 아이젠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이젠이 혼잣말했다.

“빙경작, 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보완이 좀 필요하겠어. 냄새에 취약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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