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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69화 (169/201)

169화

교집합 안에서 이스보셋과 짐바르도의 파생검술이 살벌하게 부딪쳤다.

탕! 타당! 탕! 탕! 타당!

마치 근거리 총으로 싸우는 듯한 소리.

이스보셋은 한순간 깊이 파고들어 짐바르도의 몸통을 노렸다. 짐바르도도 바보가 아니기에 참철검으로 다드를 올렸다. 이스보셋의 것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참철검이었다.

“소용없거드― 윽?!”

“소용 있을 테지.”

슈팟!

한순간 이스보셋의 참철검이 짐바르도의 어깻죽지부터 배꼽 옆까지를 길게 잘랐다.

후두둑! 피가 바닥을 수놓으며 짐바르도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짐바르도 준장님?!”

“뭐야!”

“무슨 일이지?”

공화국 병졸들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이스보셋이 설명해 주었다.

“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의 힘 ‘강기’는 그 힘을 담기 위해 몸을 거푸집처럼 단련해 놔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근육이 터져 나가버리고 만다. 지금 네놈의 오른팔처럼.”

“크으!”

그 말대로 짐바르도의 오른팔 근육이 터져 있었다. 혈관과 뼈가 끔찍하게 노출되어 있었던 것. 그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참철검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남의 힘을 따라 쓸 거라면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했어야 마땅할 터. 젊은 치기로 오만했구나, 짐바르도 슐츠 준장.”

“이 노인네가……!”

“참철검이 사라진 걸 보면 아마 그 복사의 힘도 더는 사용할 수 없는 거겠지? 사면초가로군.”

“윽.”

정곡을 찔린 짐바르도가 눈을 내리깔았다. 복사의 힘은 어떤 제약도 없지만 단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짐바르도는 현재 이스보셋의 힘을 복사할 만큼의 집중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스보셋은 짐바르도가 더 고통을 느끼게 할 수도 있었지만, 단칼에 베는 자비를 베풀어주기로 했다.

“잘 가게.”

싹둑!

털털털.

그렇게 짐바르도의 머리가 달아났다.

거의 그와 동시에 아이젠이 광장에서 돌아왔다. 이스보셋이 땀을 닦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소가주님, 헤나즈네는 어찌 되었습니까?”

“저기 어디 나뒹굴고 있을걸요. 가져와야 돼요?”

“큼.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화국 병졸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떨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화국 놈들이 도망친다! 잡아라!”

제국 병사들은 와 소리를 내며 그들의 등을 베었다.

“으음.”

그때 눈을 뜬 테오발트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스보셋 장로가 그를 부축했다.

“가주님.”

“상황은… 끝난 겐가.”

“예. 조금 쉬시지요. 큼.”

“그래, 그럴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네.”

테오발트는 아이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아이젠도 제 몫을 다한 듯 보였다. 적장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쓰러뜨리다니.

‘어쩌면 이미 나 이상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겠어. 이 작은 아이가.’

테오발트가 감개가 무량한 얼굴로 아이젠을 바라보자, 아이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그래. 장하구나, 아이젠.”

“…감사합니다.”

아이젠이 빙긋 웃을 때, 테오발트는 두 발을 딛고 일어서 제국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공화국 놈들이 먼저 전쟁을 선포했으나, 제국은 반드시 승리한다!!!”

“와아아아!!!”

제국 병사들의 투기 어린 목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 * *

옥사비나의 전쟁 참호.

제국 병사들이 여기저기서 제식을 맞추거나 전열을 다지고 있었다. 그들은 테오발트, 아이젠, 이스보셋 일행을 보며 저마다 경례를 올렸다.

그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아이젠의 귀를 통해 들려왔다.

- 누구지?

- 테오발트 공작님과 닮았는데?

- 설마 아들?

- 아! 나 들었어. 참철검가에 검을 쓰지 않는 공자가 있는데, 그 공자가 이번에 소가주가 됐다고.

- 진짜? 그럼 참철검가는 어떻게 되는 거야?

- 어떻게 되긴, 난장판 되는 거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한 건지, 한 번 딴지 걸면 사죄부터 박아야 할 말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이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단 병사 하나하나까지 신경 썼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실력으로 보여주지.’

그것이 아이젠의 다짐이었다.

촥― 여기저기 널려 있던 천막 중 하나를 테오발트가 열어젖혔다.

천막 안에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붉은 머리칼을 뒤로 넘긴 채 술을 홀짝이고 있는 그의 왼쪽 눈엔 칼로 길게 그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가 또 다른 전쟁영웅 가문인 체호프 가문의 가주, 불라트 데 체호프라는 사실을 아이젠이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창술명가, 체호프 후작가문의 가주. 불라트.’

술을 마셔 불콰하게 취한 얼굴임에도 강기가 느껴진다. 이 천막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의 오러가 아이젠의 폐부를 찌를 듯 다가왔다.

테오발트와 이스보셋은 말없이 걸어 들어가고, 아이젠은 불라트에게 고개를 숙였다. 술을 병째로 마시던 불라트는 아이젠에게 시선을 주었다.

“음? 자네는…….”

“그린우드의 소가주, 아이젠이라고 합니다.”

“오~ 자네가 그 유명한.”

덜컹, 목제 의자를 뒤로 밀치며 일어난 불라트는 아이젠에게 다가왔다.

아이젠은 일전에 불라트의 아들인 이반과 트러블이 있었다. 마력열차 안에서 말이다. 물론 그때 때린 것은 아이젠이 아니라 모니카였지만.

턱! 불라트가 아이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둘째가 신세를 졌다지? 크하하, 신경 쓰지 마. 남자라면 모름지기 여자한테 차여보기도 해야지.”

“…네.”

불라트는 가만히 아이젠의 눈동자를 보았다. 아이젠은 떨리는 기색 없이 불라트와 마주했다. 이윽고 불라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들 하나는 기똥차게 두셨습니다, 테오발트 공작.”

“자네만 하겠나, 불라트 후작.”

“크하하! 둘째 이반은 고사하고, 첫째 세르게이 녀석도 사내구실도 못 하는데 무슨. 제가 죽으면 체호프 가문이 걱정입니다!”

호방하게 웃는 불라트의 실제 나이는 54살이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건 관리를 잘한 덕이리라. 다만 턱밑 쪽이 털북숭이라 마냥 어리게만 보이지도 않았다.

불라트는 아이젠을 스쳐 지나, 옆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벽에 붙은 지도를 탁 짚었다. 불라트가 가리킨 곳에는 빨간 점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위에 슌타리아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슌타리아를 뚫으려면 우리에겐 강한 ‘창’이 필요하다. 아이젠, 네가 그 창이 될 자신이 있겠나?”

그거야말로 아이젠이 바라던 바였다.

“물론입니다.”

* * *

술병을 치우고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친 불라트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한껏 진중해져 있었다. 술기운은 남았는지 얼굴은 아직 발그레했지만 말이다.

“잘 들어라, 아이젠. 옥사비나에서 슌타리아로 가는 이 좁은 길목이 보이나?”

“네.”

아이젠이 보는 대로, 지도는 마치 그곳만 깎은 것처럼 좁은 길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은 공화국군의 장교인 스탕달과 베우제츠가 지키고 서 있다. 이름을 기억해라. 뭐라고?”

“스탕달, 베우제츠.”

“기억력도 좋군. 이 둘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이 좁은 길목만으로는 뚫을 수 없다. 베우제츠의 아티팩트 ‘암흑경’은 제국군의 움직임을 미리 꿰뚫어 보기 때문이지.”

“미래를 본단 말입니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물론 베우제츠가 볼 수 있는 미래는 거울이 비치는 곳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음.”

“자, 이제 자네라면 어떻게 할 건가? 참고로 슌타리아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불라트가 몸을 일으켰다. 테오발트와 이스보셋도 아이젠이 어떻게 대답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큼. 부담 갖지 말고 편히 말씀하십시오, 아이젠 소가주님.”

“흐음.”

그 말에 아이젠은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때로는 허리를 이리저리 굽혀 지도를 다른 방향에서 보기도 했다.

마침내 아이젠이 입을 열었다.

“이 길목만 유난히 좁은 이유는 산 때문이군요.”

“그렇다.”

“그렇다면 길을 빙 돌아 산을 돌파해 놈들의 뒤를 친다면요?”

“…계속해 봐.”

“굳이 길목으로 말씀을 제한해 두신 걸 보면 이 산등성이를 가로지르기란 쉬운 일이 아닌 거겠죠. 하지만 해낼 수만 있다면 놈들의 뒤를 칠 수 있습니다. 암흑경의 가시거리에도 닿지 않으니 놈들이 미리 알아차릴 수도 없겠죠.”

“…….”

불라트가 팔짱을 끼웠다. 그는 곧 옆에 서 있던 테오발트를 돌아보았다.

“테오발트 공작님. 소가주님께서 재주가 뛰어나십니다?”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하는 중이네.”

아이젠의 말은 정답이었다. 테오발트와 불라트, 이스보셋은 일찌감치 아이젠이 말한 정답을 도출해 낸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산등성이를 가로지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유는 산길이 너무 험난해서, 수십 킬로그램이나 되는 갑옷을 장착한 제국 병사들이 오르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불라트는 다시 지도 위의 슌타리아를 가리켰다.

“스탕달이 가진 고유의 힘은 ‘반발’. 다가오는 모든 것을 역방향으로 튕겨내는 성질을 가졌지. 설령 제국 병사들이 슌타리아에 도달했다고 해도 스탕달이 튕겨내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

“음.”

“더군다나 베우제츠의 암흑경은 비친 대상을 거울 세계 속에 가둬 버린다. 베우제츠가 죽을 때까지 말이지. 자, 이제 어떡할 텐가?”

“비친 대상을 거울 세계 속에 가둬 버린다고요?”

아이젠이 그 말에 반응하자 불라트가 호응했다.

“그래.”

“무슨 의미죠?”

“글자 그대로다. 베우제츠는 거울 세계 속에 적을 가두고, 그 안에서는 시간이 영원히 흐르지 않지. 더군다나 거울 세계는 완전한 베우제츠의 영역.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봐야 해.”

“…흐음.”

턱을 매만지던 아이젠은 고민했다. 불라트의 말에서 뭔가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불라트는 과연 아이젠이 이번엔 어떤 대답을 할까 기대하고 있었다.

“자, 어쩔 테지?”

불라트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아이젠은, 사실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을 뿐.

“제가 뚫어보죠, 뭐.”

“…응?”

불라트가 어벙하게 대답하자, 아이젠이 다시 한번 확신을 심어주었다.

“제가 뚫겠습니다.”

* * *

아이젠이 소가주로 즉위한 것이 어언 한 달.

아이젠은 처음 2주는 마비규정의 여파로 침대에서 일어나지조차 못했지만, 뒤의 2주는 아니었다.

‘아이기스.’

아이젠은 자신의 두 팔에 매인 아티팩트, 아이기스를 좀 더 잘 운용할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지난 2주간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물론 현무의 도움은 없었다. 현무는 아이젠의 말에 더는 대답해 주지도 않았다.

무명산 앞에 선 아이젠은 아이기스를 탁탁 쳤다.

“야, 너 거기 있기는 한 거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이젠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린 오러를 불어넣어 아이기스의 힘을 시전했다.

아이기스가 시퍼렇게 빛나며 아이젠의 오러를 품었다.

“현무신공, 빙경작(氷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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