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무명산 등반 】
“바란다면.”
딸랑― 헤나즈네의 종이 다시 한번 울렸다. 아이젠은 그녀가 더는 종을 울릴 수 없도록 빠르게 그녀에게 접근했다.
쉭! 목롱보로 헤나즈네의 등 뒤로 이동한 아이젠은 암화를 두 손에 담았다.
‘손가락을 분질러 버리면 종을 칠 수도 없겠지.’
헤나즈네의 왼손을 향해 아이젠의 철권이 날아갔다. 그때, 아이젠의 시야를 무언가가 가렸다. 칼날이었다. 헤나즈네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이다.
촤악!
아이젠은 잽싸게 뒤로 물러서 피했으나 뺨 끝을 살짝 베이고 말았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젠의 뺨에서는 흑빛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독인가.”
“정답! 내가 설마 이 ‘즉사종’에만 의지해서 준장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봤자 독검 하나 덤이라는 건데. 별로 강하다고 느껴지진 않는걸?”
“꺄하, 과연 그럴까?”
덜컥. 아이젠의 무릎이 기우뚱 흔들렸다. 결사신권을 운용하고 있는 덕에 힘이 풀리는 일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아이젠의 몸에 내공을 뺏어가고 있었다.
“꺄하! 평범한 독검이 아니거든! 제아무리 강한 녀석이라도 내 독에 중독되면 온몸의 근육이 풀리지.”
“…….”
테오발트가 고전하고 있었던 건 이 독 때문이었나? 아이젠은 발을 딛고 일어섰다. 후들거리긴 했지만 전투에 무리가 갈 수준은 아니었다. 헤나즈네가 비아냥거렸다.
“독이라고 비겁하다든가, 그런 어린애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천만에. 그게 네 무기라면 얼마든지.”
아이젠의 양 주먹에 암화가 깃들었다. 치명적인 독이라면 아이젠도 지체할 이유는 없다.
“근데 대가는 치러야 할 거다.”
“대가?”
“내가 독을 좀 싫어하거든.”
“무슨 소―”
‘환교신권!’
투웅! 아이젠의 양손에서 발사된 두 발의 검보랏빛 환교신권이 헤나즈네를 찢어발길 듯 달려들었다. 헤나즈네는 왼손의 즉사종으로 환교신권을 막아냈다.
퍽! 딸랑―
그래도 아티팩트라는 건지, 환교신권에 맞은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두 발을 거의 동시에 맞은 탓에 종소리는 하나뿐이었다.
헤나즈네가 정면을 쳐다봤다. 아이젠은 없었다. 아이젠은 뒤에서 헤나즈네의 등을 가격할 준비를 마쳤다.
“철권.”
퍼억!!
우드득! 우드득!
“꺼흐헉!”
등뼈가 박살 나는 헤나즈네는 고통에 잠겼다. 그녀의 허리가 뒤로 크게 꺾이는 틈을 타, 아이젠은 주저 없이 다음 일격을 준비했다.
“교아.”
쉬이이! 아이젠의 오른손날에 흉흉한 암화의 기운이 담겼다. 아이젠은 넘어지는 헤나즈네의 왼손에 그 교아를.
싹둑!
휘둘렀다.
“꺄아아아악!!!”
헤나즈네의 왼손이 바닥을 통통 튀어 뒹굴었다. 그 탓에 즉사종도 광장에 나동그라졌다. 딸랑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헤나즈네는 잘린 왼손을 붙들어야 할지, 부서진 등을 붙잡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사이 아이젠이 최후를 짓기로 했다.
“결사신권, 권왕백무.”
퍼버버버버버벅!
백 개의 주먹이 헤나즈네에게 쏟아지고, 헤나즈네는 더 이상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뒤로 멀리 날아가 쓰러졌다. 그녀의 온몸이 한순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커헉. 커흑.”
공교롭게도 그녀가 날아간 곳은 손목과 즉사종이 떨어져 나간 위치였다. 헤나즈네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끝내자.”
아이젠이 다시 권왕백무를 쏠 준비를 하는데, 헤나즈네가 이를 악물더니 떨어진 왼손을 붙들어 잡았다. 그리고 왼손 절단면 가까이 댔다.
그녀는 날아가면서도 오른손에서 놓지 않은 독검을 이용해, 왼손에 독을 떨어뜨렸다.
치이익! 치이이익!
“으꺄아아아아!!”
불쾌한 소리, 불쾌한 비명, 불쾌한 냄새. 아이젠마저 눈살을 찌푸리고 본 광경의 끝은, 흉측하게 녹아 눌어붙은 헤나즈네의 왼손이었다. 독이 그녀의 잘린 왼손을 도로 붙인 것이다.
“와, 어지간히 미친년이네, 이거.”
아이젠이 경악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이는 아이젠도 별로 본 적이 별로 없었다.
헤나즈네는 즉사종을 쥔 채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온몸의 뼈가 다수 부러져 서 있기도 힘들었다.
“으윽. 꺄하, 내가 그 정도 주먹질에 당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 얕봐서 미안하다. 근데 그 독, 근육이 풀린다지 않았나? 왼손으로 종을 쥐고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 말대로 헤나즈네의 왼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헤나즈네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아? 죽어!”
딸랑― 즉사종이 또 한 번 흔들렸다. 그러자 살이 발사되었다.
쉬이이이익!!
여전히 속도는 느려서 아이젠은 가볍게 고개를 틀어 살을 피했다. 콱! 살은 벽에 날아가 박혔다.
다음 순간, 헤나즈네가 독검을 높이 쳐들고 아이젠에게 덤벼왔다.
“뒤져어어어!”
딸랑― 그녀가 높이 떠오른 덕에 즉사종이 한 번 흔들렸다.
“싫어.”
뻐억!!
아이젠은 헤나즈네의 관성을 이용해 그녀의 안면에 치명타를 날렸다. 철권이 아닌 박살이었기에 헤나즈네의 안면이 핏물과 함께 터져 나갔다.
“카악!”
딸랑― 즉사종이 두 번째 흔들렸다. 아이젠은 헤나즈네에게 다시 주먹을 날렸고, 헤나즈네는 그 주먹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잡았다.
아이젠이 금방 빼려 했지만 헤나즈네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기에 빠지지 않았다.
“꺄하, 죽어버려!”
“이런.”
딸랑! 다시 즉사종이 흔들렸다. 살이 발사되었다.
퍼억!
즉사종에서 날아간 살은 아이젠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가까운 거리인 데다 기습이라 아이젠으로서도 미처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이젠의 몸이 기우뚱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보며, 헤나즈네 드라크 공화국 준장은 희열을 느꼈다. 그녀는 금세라도 방방 뛰고 싶었지만 온몸 뼈가 부러져 그럴 수 없었다.
“꺄하! 내가 이겼어! 테오발트의 아들을 이겼어! 꺄하하하! 성인도 안 된 어린아이 이기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지! 전쟁 한 번 안 치러본 샌님이 뭘 알겠어?”
헤나즈네가 방언 터져 조잘댔다. 그녀는 그 뒤 찾아온 고통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왼손은 접붙였을 뿐 잘려 나간 통증은 그대로였다.
“으윽……!”
어서 돌아가야겠다. 헤나즈네가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디디려는 때였다.
벌떡!
“??!!”
눈앞에서 아이젠의 시체가 벌떡 일어났다. 아이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아, 흙바닥이라 더러운데. 옷 버렸네.”
“??? 뭐, 뭐야?? 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아티팩트 즉사종은 세 번 흔들면 즉사의 화살이 발사되는 무기. 화살의 속도가 느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맞은 대상을 무조건 살해한다.
아이젠과 이스보셋이 나타나기 전 테오발트도 요리조리 피해 다니긴 했으나 조금만 더 있었다면 즉사종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헤나즈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저놈은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서 있단 말인가?
아이젠은 온몸에 갑옷처럼 두르고 있던 절세지경을 해제했다. 아이젠의 몸에서 검보랏빛 암화가 연기로 화해 흩어졌다.
“흠. 내 절세지경은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내거든. 너의 즉사종이 모든 걸 뚫는 창이라면, 내 절세지경은 모든 걸 막는 방패라고나 할까. 이번엔 내 방패의 승리로군.”
“뭐, 뭐라고……?”
절세지경이 뭔지는 몰랐으나, 헤나즈네는 대충 아이젠의 절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 만약 판단이 틀리기라도 했다면… 어쩌려고……?”
방패가 창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아이젠은 죽은 목숨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확신을?
아이젠이 어깨를 으쓱하고 답했다.
“어쩌긴 뭘 어째, 죽는 거지. 하지만.”
아이젠은 주먹에 암화를 담은 채로 헤나즈네를 내려다봤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는다.”
“아.”
“대답 됐지? 이제 그만 꺼져.”
퍼억!!!
아이젠은 권왕백무 관의 힘으로 헤나즈네를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주르륵.
헤나즈네는 무른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죽었다. 핏물이 땅에 흘러 스며들었다.
아이젠은 이마에 조금 묻은 땀을 닦고 광장 출구를 찾았다.
“자, 어디. 이스보셋 장로는 잘하고 있으시려나.”
* * *
같은 시각. 이스보셋 장로는 고전 중이었다.
정확히는 짐바르도와 동률의 상황이었다. 짐바르도는 이스보셋이 무슨 기술을 쓰든 똑같이 구사했다.
이스보셋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올린 파생검술의 정수를, 짐바르도 녀석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쉽게 쓰고 있었다.
“큼. 곤란하군.”
“흥. 노인네 슬슬 힘이 부치지? 같은 검술을 써도 난 젊거든. 노인네랑 달리 말이야.”
짐바르도가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준장이라는 고위 계급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진 고유의 힘 ‘복사’가 한몫했다.
복사는 상대방이 어떤 고강한 힘을 가지고 있건 그 모든 것을 복사한다. 마법, 검술, 체술을 가리지 않는다.
이스보셋이 아무리 대단한 파생검술의 대가라고 해도, 짐바르도는 그 모든 기술을 똑같이 따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층 젊고 탄탄한 몸으로. 게다가 아무런 페널티도 없이!
“포기해라, 노인네. 넌 내게 상대가 안 돼. 싸워보면 알잖아?”
“흠. 그렇게 생각하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만.”
“하! 사지 어디가 잘려 나가봐야 정신 차리겠어?”
“사지가 잘릴 일도 없다네.”
이스보셋 장로가 자신의 참철검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커버넌트 오러를 운용했다. 짐바르도는 거의 똑같은 시간에 거의 똑같은 오러를 운용해 냈다.
“소용없다는 거 잘 알 텐데! 뭘 더 해보려고?”
“그대가 가진 고유의 힘이 ‘복사’라고 했던가. 나도 내 힘을 써볼 생각이네.”
푸화악!
이스보셋의 커버넌트 오러에 한층 더 강한 힘이 실렸다. 커버넌트 오러의 색깔마저 노란색에서 짙은 주황색으로 바꿔버릴 만큼의 농도 높은 힘이었다.
“……!”
“이것이 내가 가진 힘 ‘강기’라네. 어찌, 이것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겠나?”
짐바르도는 잠깐 놀랐지만, 이스보셋이 다룰 수 있는 고유의 힘이라면 자신도 그걸 똑같이 복사할 수 있었다.
“흥! 못 할 것 같냐?!”
푸화악!! 짐바르도의 오러 색깔도 짙어졌다. 마찬가지로 이스보셋과 완전히 같은 힘이었다.
이스보셋은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참. 자네도 참 대단한 능력자로군.”
“그걸 이제 알았어? 이제 봐주기는 끝났다!”
“파생검술, 참철발도.”
“파생검술, 참철발도!”
슈팟!!
채앵!!
두 사람의 발도가 허공에서 맞부딪치더니 사라졌다. 그 뒤로도 이스보셋과 짐바르도는 무수히 많은 발도술을 주고받았다.
캉! 카앙! 채앵! 타앙! 캉!
살 떨리는 칼날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주변에 있던 제국 병사와 공화국 병졸들도 싸우기를 잊고 두 사람의 결투에 집중했다.
“커버넌트 오러 도미네이션.”
“커버넌트 오러 도미네이션!”
부웅! 이번엔 이스보셋과 짐바르도 둘 다 각자의 영역을 전개했다. 1m 남짓한 지름이었기에 두 사람의 도미네이션엔 교집합이 생겨났다.
“이것마저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다니.”
“각오해라, 제국 놈!”
교집합 안에서 서로의 칼날이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