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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67화 (167/201)

167화

“처, 철책 개방!”

“철책 개방!”

병사들이 망설이는가 싶더니 철책을 열었다. 아이젠은 철책의 틈새에 우뚝 섰다.

철책은 미닫이의 형태로 좌우로 갈라져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

철컹철컹.

“캿! 캬악!”

철책이 채 열리기도 전에 프렘린들이 손부터 밀어 넣었다. 아이젠은 짧은 순간 자신의 몸에 암화를 운용해 불어넣었다.

“후…….”

아이젠의 심득에 내기가 들어찼다.

“권왕백무: 신.”

쉬이이이이!!

파앙!!

아이젠이 주먹을 뻗자, 주먹에서 나온 암화의 기운이 천 갈래로 갈라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프렘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눈동자로 날아드는 ‘신’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캿?”

한 프렘린의 의문 섞인 목소리를 시작으로.

퍽! 퍽! 퍽! 퍼벅! 퍼버버벅!

철책 바깥으로 핏물이 터져 나갔다. 프렘린들이 거대한 바위에라도 맞은 듯 뒤로 나가떨어졌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머리가 깨져 쓰러졌다.

후두둑! 후두둑!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그렇게 거의 30초가량이나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제국 병사들은 아연실색하여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슈우우우…….

마침내 소동이 끝나고.

아이젠은 주먹에 넣어두었던 암화를 거둬들였다. 더 이상 운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철책 바깥에 있던 프렘린은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어버렸다.

아이젠이 뒤를 돌아 이스보셋을 쳐다보았다. 그는 싱긋 웃어 보였다.

“가죠, 이제.”

올렘성이 개방됐다.

* * *

“허억. 허억.”

테오발트의 숨 헐떡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이마에서는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리 위통이 찢어진 탓이다.

이곳은 옥사비나, 최전선. 테오발트뿐만 아니라 제국군과 공화국군들이 혈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여기저기서 피가 튀고 살점이 흩날리는 가운데, 테오발트가 있는 쪽만이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고 고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오발트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공화국군의 두 간부였기 때문이다. 공화국군은 접근하지 말라는 두 간부의 명령에 따라 거리를 둔 채 전투 중이었다.

“이것이 전쟁영웅 테오발트의 전력인가? 우습군.”

목소리를 낸 것은 공화국의 준장, 짐바르도 슐츠. 흰머리를 뒤로 넘겨 이마를 드러낸 젊은 남자였다. 그의 왼쪽 눈은 머리칼처럼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게? 꺄하, 별것도 아닌 거 맞지?”

짐바르도의 말에 반응한 것은 마찬가지로 공화국 준장인 헤나즈네 드라크. 대조되는 검은 산발 머리를 한 그녀는 손에 날이 갈리지 않은 검을 들고 있었다.

“후우.”

테오발트는 한숨을 내쉬더니 태양의 검 에레디아를 다시 집어 들었다. 전성기였다면 짐바르도와 헤나즈네는 테오발트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 다 단칼에 베어버렸으리라.

하지만 테오발트도 어느덧 환갑을 넘긴 나이다. 그가 아무리 전쟁영웅이라고 해도, 그것은 벌써 25년 전의 이야기.

오늘날 젊은 적군 장교 둘을 상대로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테오발트는 이 두 사람을 상대하기 전 이미 오러를 쓸 대로 써둔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나 원.”

테오발트가 옥사비나에서 전쟁을 치른 지 벌써 사흘이 넘었다. 쉬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말이다. 피로가 테오발트를 잠식하고 있었다.

“하나, 물러설 수야 없지.”

테오발트는 에레디아를 꽉 쥐고 참철검술을 쓸 채비를 마쳤다. 짐바르도가 반응했다.

“더 해보겠단 건가? 우리 둘을 상대로, 의미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해보는 데까진 해봐야지 않겠나.”

“흥. 그렇다면야. 헤나즈네!”

“꺄하, 응.”

헤나즈네가 검을 꽉 쥐자, 짐바르도 역시 자신의 검을 잡아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짐바르도의 검은 어째서인지 테오발트의 에레디아와 완전히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짐바르도가 오러를 운용하는 순간, 그의 몸에서 그린 오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테오발트로서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잊었나? 테오발트. 나의 능력은 ‘복사’. 네 참철검술이 아무리 대단한들 너는 너 자신을 상대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넌 나이를 먹었고, 나는 젊지. 같은 검술이라면 내가 더 우위에 있다는 말이다.”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실제로 자네는 내 머리에 상처를 내기도 했으니.”

“그걸 알았다면 이만 포기…….”

“하지만.”

테오발트의 눈동자가 매섭게 변했다.

“경험의 차이를 무시하면 쓰나, 젊은이여.”

파앙! 테오발트의 속동검격은 매서웠다. 짐바르도는 한순간에 당할 뻔했으나, 에레디아를 들어 막아냈다.

카앙! 서로 맞부딪친 에레디아에는 실금도 가지 않았다.

테오발트의 허벅지에 힘이 풀렸다.

‘윽, 역시 안 되는가.’

“흥. 경험은 무슨! 죽어라, 늙은이!”

쉬익!

그렇게 짐바르도의 칼날이 테오발트에게 떨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덥석!

짐바르도의 손목을 낚아채는 이가 있었으니. 모두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아이젠이었다.

아이젠의 뒤에는 이스보셋 장로가 이미 참철검을 꺼내 든 채 서 있었다. 아이젠은 흉악하게 구겨진 얼굴로 짐바르도를 노려봤다.

“어딜 우리 가주님께 칼을 들이밀어? 죽을라고.”

“아, 아이젠… 왔느냐.”

“예, 가주님.”

힘겨워하는 테오발트를 이스보셋 장로가 부축했다. 테오발트는 부들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일어났다. 피로감이 이제 완전히 테오발트를 잠식했다.

“이스보셋 장로. 아이젠을 무사히 잘 데려왔군.”

“예, 가주님. 이제 그만 쉬십시오.”

“아이젠과 이스보셋 둘이라면… 기꺼이.”

풀썩. 테오발트가 선 채로 기절해 잠들었다. 이스보셋 장로는 그의 몸을 안전한 곳에 옮겨두고 그 위에 오러 도미네이션을 걸었다. 이제 테오발트는 웬만한 공격에는 무사할 것이다.

탁― 짐바르도가 아이젠의 손을 뿌리치고 물러섰다. 그는 헤나즈네와 어깨가 닿을 듯 딱 붙어 섰다.

이스보셋 장로가 다시 아이젠 옆에 다가왔다. 아이젠이 속삭였다.

“저놈들은?”

“공화국군 준장인 짐바르도 슐츠와 헤나즈네 드라크입니다. 둘 다 막강한 상대입니다.”

“둘 다 제가 처리합니다. 이스보셋 장로는 가주님을 도우세요.”

“아니요, 그럴 순 없습니다.”

아이젠이 이스보셋 장로를 돌아보았다.

“불복입니까?”

“큼,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찌 소가주님의 결단에 이의를 제기하오리까. 단지 저 역시 병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알았어요.”

자만할 뻔했다. 자신만 전투에 임하는 게 아니다. 지금 주변에서 싸우고 있는 제국군 모두 목숨을 걸 각오로 전선에 나온 것이다. 아이젠은 숨을 들이켜고 반성했다.

이스보셋 장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짐바르도를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광녀를 맡죠.”

“둘이 뭘 그렇게 속닥거리지?”

짐바르도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여전히 손에 에레디아를 들고 있었으나, 그 에레디아는 곧 울렁거리며 사라졌다. 짐바르도의 눈길이 이스보셋에게로 향했다.

“아까까지 여기 있던 노인네 아닌가? 어디 갔다 왔나 했더니 겨우 저 어린 놈 하나 데리러 다녀온 거였나? 하, 대체 우리 공화국군을 뭐로 보는 건지.”

“뭐로 보긴, 물로 보지.”

아이젠이 대신 대꾸하자, 짐바르도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뭐라고, 꼬맹아?”

“물로 본다고. 상대의 역량도 확인하지 않고 나이가 어리단 이유로 방심해서야 쓰나.”

“네까짓 게 무슨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짐바르도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아이젠에게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이다. 이내 그는 굳은 표정으로 옆에 선 헤나즈네에게 말했다.

“헤나즈네. 내가 노인네를 상대한다. 네가 어린놈을 맡아.”

“꺄하, 알았어.”

“그리고, ‘그걸’ 써라.”

짐바르도의 말에 줄곧 해맑던 헤나즈네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걸 쓰라고? 진심이야?”

“그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 가까운 데 광장이 있을 거다.”

“…알았어. 어이, 꼬마! 나 따라올래?”

자꾸 꼬마 꼬마 부르는 게 기분 나빴지만 아이젠은 순순히 헤나즈네를 따라주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암수를 숨기고 있든 아이젠에게는 무용지물일 테니.

“소가주님. 무사하십시오.”

자신을 부르는 이스보셋에게, 아이젠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오죠.”

* * *

헤나즈네는 아이젠을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안내했다. 넓게 펼쳐진 광장은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기라도 한 양 허허벌판이었다.

아이젠은 암화를 운용하며 헤나즈네에게 다가섰다. 주저할 필요도 없다. 그냥 박살 내버리면 그만이니까.

헤나즈네는 광증이 도진 환자처럼 산발인 머리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불쑥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

아이젠이 멈춰 섰다. 헤나즈네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종(鐘)’이었다. 다소 뜬금없는 물건의 등장에 왠지 멈칫하게 된 것이다.

“네가 누군지 알아. 아까 본 테오발트의 아들, 맞지? 닮았어.”

“그래. 아이젠이라고 한다. 너는 헤나즈네 맞지?”

“꺄하, 응. 내 이름을 알아주다니 영광스럽네?”

헤나즈네의 목소리는 귀에 때려 박는 것처럼 불쾌했다. 아이젠은 다시 헤나즈네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그때 헤나즈네가 종을 울렸다.

딸랑―

“……?”

그리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이젠은 헤나즈네의 얼굴을 바라봤다. 헤나즈네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뉘앙스가 풀풀 풍기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아이젠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그 종.”

“뭐일 것 같아? 후후.”

딸랑―

다시 한번 종이 울렸다. 역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헤나즈네가 여전히 의미심장한 얼굴로 아이젠을 바라볼 때, 아이젠은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싶어 가만히 있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또다시, 종이 울리는 순간.

딸랑―

무언가가 아이젠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슈욱!!

그건 보이지 않는 화살이었다. 아이젠은 한순간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고민했다. 피하는 게 맞을까, 막는 게 맞을까? 이럴 때는 보통 먼저 떠오른 생각이 옳다.

아이젠은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했다. 화살은 빨랐지만 아이젠이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헤나즈네 준장님! 제가 돕겠습……!”

아이젠의 뒤편에서 음성이 들렸다. 광장 안에 웬 공화국군 병졸 한 명이 진입해 왔다. 마침 화살의 경로 상에 있던 병졸은 촉에 팔을 맞고 뻐엉 날아갔다.

슈와아악!

화살이 꿀렁거리며 사라지고, 멀리 날아갔던 병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병졸의 몸 어디에도 상처는 없었다. 분명 팔에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상처 하나 없다니.

‘죽었어.’

아이젠이 다가가 확인해 보니 병졸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죽었다.

어떻게? 팔에 맞았을 뿐인데?

‘아무런 외상도 없는데 즉사했다.’

아이젠은 재빠르게 판단했다. 그사이 헤나즈네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꺄하, 그걸 피했네? 눈치가 빠른걸?”

아이젠이 낸 결론은 지극히 간단했다.

“종이 세 번 울리면 화살이 날아온다. 그 화살에 맞으면 즉사하는 건가.”

“정답!”

오싹했다. 만약 아이젠이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막아내기로 판단했다면 저기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은 병졸이 아니라 아이젠이었을 거다.

그러나 기분 좋은 오싹함이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아이젠은 제대로 한판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재밌는데. 더 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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