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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64화 (164/201)

164화

약 2m 정도 밀려난 도철은 허리에 손이 닿지 않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크음!]

하지만 역시 치명타는 아니었다.

아이젠은 숨을 헐떡거리며 땅 위에 올라섰다. 천권익도 해제되어 이제 날 수 없다. 몸 안의 내공을 모두 끌어모아도 한 줌 잿더미보다 적을 것이었다.

“후우. 후아. 역시 이길 수 없는 건가?”

[그래. 이번 공격은 꽤 먹히긴 했다. 다시는 먹히지 않을 테지만.]

“눈보다 허리가 더 아프다니, 너도 참 특이하다.”

[눈을 노리는 놈들은 있었거든. 너도 그렇고, 네놈의 스승도 그렇고.]

“아.”

아이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생에서도 아이젠은 도철의 눈동자를 노렸었다. 그때도 아파하지 않았는데, 아마 스승님의 영향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아이젠은 모든 내공을 잃었다. 도철이 눈을 빛냈다.

[전생에서도 아이젠 너는 날 이기지 못했다. 기억하고 있을 테지.]

“그랬지.”

아이젠은 전생에서도 암화의 경계에서 도철을 이긴 적이 없다. 두 번 싸워 두 번 다 지다니, 아이젠이 이렇게까지 패배한 상대는 도철이 유일했다. 스승 이화도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제 가거라.]

“오냐.”

쉬익!

도철의 발이 아이젠을 향해 날아왔다. 아이젠은 피하지 않았다. 다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뭔가 아쉽기도 했다. 그래서, 오른손에 마지막 남은 내공을 모두 끌어모았다.

“도철, 알다시피 난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걸 좋아하진 않아서 말이다.”

[음?]

“따끔하게 한 대 정도는 먹여야 직성이 풀리겠어.”

결사신권, 천차횡도: 염적양!

콰아아아아아!!!

도철의 발바닥을 노리고 염적양이 쏟아졌다. 모든 것을 재로 태워 버리는 불길이 도철의 발바닥과 맞닿고.

[으음!]

도철은 고통스러워했으나 발이 멈추지는 않았다.

으적!

“!!”

아이젠은 온몸이 짓밟혔고, 뼈는 가루처럼 박살 났다. 내장은 모두 파열되어 1초라도 더 살아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젠은 분명하게 말했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못 이겼구나. 다음에 또 만날 일이 있다면 그땐 꼭 개박살을 내주마. 도철.”

[…그래. 그날을 고대하고 있겠다.]

무혈신공과 결사신권의 6성, 암화(暗花)의 경지.

그 경지에 오르는 방법은 실로 간단명료하다. 몸 안의 내공을 모두 깎아낸 뒤, 죽는 것.

하지만 죽는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공포다. 사람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천수를 누리고 싶어 한다. 오직 인간만이 그러하다.

그렇기에 암화에 오르는 것은 인간을 초월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슈루루룩!

그때, 도철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물감들이 한순간에 지워졌다. 도철은 양팔을 끌어안고 누웠고, 잠들었다. 언젠가의 다음에 만날 때까지 도철은 기약 없는 동면을 할 예정이었다.

[즐거웠다, 아이젠. ‘초인(超人)’이여. 그르르르…….]

* * *

팟!

아이젠이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검보랏빛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아이젠의 두 눈이 뜨이자마자 처음 본 광경은.

부웅!

바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전투도끼 파라슈였다.

요한은 온 힘을 다해 파라슈를 휘둘렀다. 아이젠은 승모근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다시 새겼다.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날아오는 파라슈의 도끼날을 붙잡았다.

부들!

고작 손가락 두 개로 잡았을 뿐인데, 요한은 맥을 못 췄다. 부들거리며 왜 파라슈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놈……!”

“오래 기다렸다, 요한.”

“기다려? 무엇을?”

아이젠은 조금 전 도철에게 죽임당했다. 그 생생한 감각. 온몸의 뼈가 바스러져 뒤틀리는 감각이 아직 아이젠의 뇌리에 남아 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자신이 죽은 것은 상념 속에서일 뿐이지만, 그 경험만큼은 진짜였다.

그런데 요한은 아이젠이 무슨 대단한 일을 겪고 왔다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그는 그저 예정대로 파라슈를 휘둘렀을 뿐이고, 눈 깜짝할 사이 아이젠의 기운이 어딘지 이상해졌을 뿐이다.

“너, 아이젠 폰 그린우드가 맞나?”

“그래.”

아이젠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파라슈가 뒤로 크게 밀려났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요한은 어설프게 주춤거렸다.

우드득― 우드득― 목을 좌우로 비틀며 개운하게 푼 아이젠은 성큼성큼 요한에게 다가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젠은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요한은 왜인지 그를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이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

그러나 요한도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인물이다. 대장군이라는 호칭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파라슈를 강하게 움켜쥔 요한은 몸 안의 모든 오러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제대로 해볼 셈이로구나. 아이젠.”

“응. 제대로는 이미 하고 있었지만.”

아이젠의 주먹에 내공이 담겼다. 홍화도, 그린 오러도, 회혼도 아닌.

“지금부터는 조금 다를 거다.”

결사신권 6성, 암화의 경지였다.

“간다.”

“그렇다면. 흐읍!”

요한이 숨을 깊이 들이켰다. 그리고 꾹 참았다. 이내 그의 얼굴이 점점 시뻘게지는가 싶더니, 실제로 붉은색으로 온몸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의 전투도끼 파라슈에 그려져 있는 음각의 용도 붉은색으로 변했다.

“전투의 신이시여, 저의 부름에 응답하소서. 전능하신 힘을 쓰소서. 전능하신 힘을 제게 나눠주소서!”

콰아아아!

요한의 몸에서 붉은 오러가 쏟아져 나왔다. 이윽고, 오러의 연기가 걷혔다.

아이젠은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가만히 서서 지켜봤다. 그사이 피가 콸콸 흘러나오는 것이 왠지 거슬려, 홍련치를 이용해 승모근의 잘린 부분을 꿰맸다.

암화의 경지에 올랐어도 홍련치는 ‘암련치’가 아니라 여전히 홍련치다. 홍화의 세심한 움직임으로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후우.”

마침내 변화를 끝마친 요한은 숨을 내뱉은 후 파라슈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원래도 가벼워 보였지만, 이제는 마치 고무풍선을 손에 쥔 것처럼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제대로 해줘야겠지. ‘파라슈 완전개화’. 나는 이제 좀 전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달군 쇠공처럼 새빨개진 것 말고는 딱히 별 차이 없는 것 같은데.”

“네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터. 이해하마. 약자의 눈에는 강자조차 티 나지 않는 법.”

철컹! 요한이 파라슈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젠을 향해 도끼날 끝을 겨누었다.

“분쇄하겠다.”

팡!

요한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그는 아이젠의 왼쪽에 서 있었다. 파라슈는 이미 휘둘린 뒤였다.

“액스 커터!”

슈와악!

도끼가 어찌 저리 빨리 움직이나 놀랄 만한 속도. 하지만 아이젠은 곁눈질도 하지 않고 파라슈를 덥석 붙잡았다.

“음?!”

“느린데.”

“천만에!”

아이젠의 손을 간단히 뿌리친 요한은, 허공에서 한 바퀴 휘돌아 아이젠에게 파라슈를 내려쳤다. 방향은 수직.

“액스 커터!”

콰득!

아이젠은 이번에는 아이기스를 교차해 파라슈를 막았다. 역시나 아이기스에는 자그마한 흠집도 나지 않았다. 아이젠은 교차한 양팔 사이로 찌푸린 눈살을 요한에게 드러냈다.

“느려. 여전히.”

“네놈이 좀 빠르다고 해서 날 깔보면…….”

“아니, 진짜 느리다니까.”

퍽! 아이젠의 주먹이 요한의 배를 찔렀다. 어느 틈에?

요한이 입에서 피를 왈칵 토하고, 아이젠은 찔렀던 주먹을 거둬들였다. 그의 왼손에는 검보랏빛으로 타오르는 암화의 내공이 실려 있었다.

“결사신권, 철권.”

“우욱……?!”

“단단하던 네 몸도, 이제는 치즈처럼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군.”

“이, 이노옴…….”

“좀 더 빨리 덤벼보지 그래.”

“욱, 말 안 해도 그럴 예정이다!!”

팟! 사선으로 낮게 뛴 요한은 아이젠의 옆을 노렸다. 파라슈가 이번에는 수평으로 휘둘렸다. 도끼날의 진행 선상에는 아이젠이 있다.

“액스 블레이드!”

아이젠은 이번에는 당황했는지 아니면 방심했는지, 요한의 공격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요한은 드디어 파라슈의 공격이 먹혀들었나 하는 심정에 아이젠의 얼굴에 주목했다.

아이젠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콰앙!

요한의 파라슈가 큰 소리와 함께 부딪혔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싹둑’이 아니라 ‘콰앙’이지? 마치 둔탁한 무언가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요한은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금방 얻어냈다.

“앗?”

파라슈는 아이젠의 몸에 박혀 있었다. 아니, ‘박혀’ 있었다는 건 요한의 착각이다. 정확히는 ‘닿아’ 있었다.

파라슈의 도끼날 끝이 아이젠의 옆구리와 맞닿아 있었다.

요한이 힘을 주었지만 파라슈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절대 부술 수 없는 단단한 벽에 도끼를 휘두르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젠의 몸은 베이지도 잘리지도 않았다.

“뭐, 뭐야, 이게…….”

요한의 당황한 음성을 뒤로하고, 아이젠은 겸허하게 암화에 오른 자신의 경지에 취한다.

‘결사신권 암화, 절세지경(絶世地境).’

결사신권의 6성에 오른 자만이 다룰 수 있는 기술, 절세지경.

절세지경은 암화의 성질을 이용해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무력화하는 기술이다. 아이젠은 이제 무음목랑보로 적의 공격을 피할 이유가 없다.

물론 절세지경은 짧은 시간 만에 많은 양의 내공을 소모하므로 주야장천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후욱―

그래서 아이젠은 절세지경의 불을 끄고 암화를 주먹으로 옮겼다. 성큼성큼 다가서는 아이젠의 모습에서 요한은 아득한 공포감을 느꼈다.

“이, 이놈! 내가 이 정도로 당할 것 같은가?!”

요한이 도끼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동안은 한 손만으로 휘두르다가 이번에는 두 손 다 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시뻘겋던 요한의 온몸이 점점 더 붉어졌다. 이제는 피보다도 붉었다.

“내가 가진바 최강의 기술로 아이젠 너를 분쇄해 주마! 영광인 줄 알거라! 파라슈여, 빛을 내라. 붉은빛을 쏟아내라!”

카아아앙.

연마되는 소리와 함께 파라슈의 도끼날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요한은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두 손을 들어 파라슈를 높이 올렸다.

내려치는 방향은 아이젠의 정수리. 두 쪽을 내버릴 심산이었다. 요한의 목소리가 대기를 찢을 듯이 울렸다.

“액스 다이아몬드커터!”

쉬익! 쩍!

마침내 요한의 파라슈가 허공을 갈랐다. 아이젠은 암화를 두른 오른손으로 가볍게 파라슈의 목봉 부분을 잡아 막아냈다.

도끼날은 아이젠의 머리카락조차 잘라내지 못했다. 닿지도 못했으니까.

“으……!”

“선전포고는 잘 받았다, 리타스나트 공화국의 대장군 요한.”

요한은 파라슈를 빼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바위에 도끼날이 깊숙이 박힌 것만 같았다.

“어… 어째서!”

“떠나라.”

파앙!!

음속의 파공음과 함께 아이젠의 공격이 갈무리됐다. 요한은 털썩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의 두 귀, 두 눈, 두 콧구멍, 입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칠공분혈하는 것이었다.

“결사신권, 뇌살.”

털썩! 요한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요한은 즉사했다.

사인은 뇌의 죽음.

아이젠은 뇌살을 이용하면 상대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도 있었지만, 이처럼 아예 숨통을 끊어버릴 수도 있었다.

단, 그러려면 뇌살의 사용자와 대상 사이에는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있어야 한다. 즉 지금의 아이젠은 요한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결사신권 6성 암화의 경지란 그런 것이다.

아이젠은 엎어진 요한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치명상을 입은 적이 없다고 했던가? 글자 그대로 치명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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