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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59화 (159/201)

159화

【 암화(暗花) 】

파박!

단단한 철제 전투화조차 뚫고 들어간 아이젠의 손가락은 요한의 발등을 정확히 타격했고, 요한은 오른발 힘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아아아!!”

예상대로 그의 표정은 울분으로 물들었다. 요한은 오른발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떨그렁! 얼굴이 시뻘게진 요한은 결국 파라슈조차 놓치고 말았다.

아이젠이 빈틈을 놓치지 않고 최후의 일격을 먹이려는데, 그 역시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윽, 제길.”

조금 전 등에 맞은 피해가 꽤 컸던 모양이다. 하기야, 힘을 제곱으로 받은 등이 멀쩡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요한은 후욱후욱 숨을 몰아쉬면서도 겨우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파라슈를 다시 손에 쥐었다.

“크하하. 제아무리 소가주라 해봤자 성인도 안 된 풋내기일 뿐. 넌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너 발음 새. 빠진 이나 다시 끼워 넣어.”

“윽. 이놈!”

“아야야.”

등뼈가 부러졌나? 그렇다면 치명적이다. 아이젠은 회혼을 등 쪽에 몰아넣은 뒤, 내공의 흐름을 섬세하게 운용해 등에 다친 부위가 있는지 진단에 들어갔다.

‘부러지진 않았군.’

다행히 등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은 튼튼한 자신의 몸에 새삼 감사하면서도, 그렇다면 통증의 원인이 어디에 있나를 살폈다.

등 근육이 가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외과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의 심각한 중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의원을 불러올 수도 없는 노릇.

“자, 이제 어쩐다?”

아이젠은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 요한을 둔 채로. 고민한다기에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밝았지만 말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사신권, 홍련치(紅蓮致).’

아이젠은 홍련치로 재빨리 피부 안쪽에서부터 등 근육을 꿰맸다. 자신의 몸이기에 몸 안에도 홍련치를 흘려 넣을 수 있는 것이다.

“뭘 그리 꼬물대는 거냐, 네놈!”

“…음. 별거 아니야.”

순식간에 재봉질을 마친 아이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궁여지책이었지만 홍련치의 실은 등 근육을 아주 잘 꿰매주었다. 흔들리는 정도로는 다시 찢어지지 않을 것이다.

“널 어떻게 하면 부숴 버릴 수 있을까, 그걸 고민했지.”

“내겐 네 그 풋내기 주먹 따위 소용없다고 말했을 텐데? 얌전히 당해주고 싶어도 내겐 아무런 피해도 오지 않는다, 이 말이다.”

요한은 빠진 이 사이로 바람이 숭숭 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본인도 약간 머쓱했는지 크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이젠이 말을 받았다.

“아까부터 풋내기, 풋내기 하는데.”

아이젠이 다시 회혼을 품었다. 주먹에 피어오르던 회색 기운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제대로 맞아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면 쓰나.”

천수관음의 환상이 펼쳐지고, 아이젠의 눈동자가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권왕백무 : 신(伸)!”

파바바바밧! 권왕백무의 무수한 가닥들이 요한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요한은 파라슈를 들어서 막으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권왕백무 신(伸)은 요한을 스치고 지나가 그의 뒤편에서 다가오던 공화국군 병졸들을 타격했으니까.

“어헉!”

“컥!”

“윽!”

턱에 수백 발씩의 주먹을 얻어맞은 병졸 여럿이 나가떨어졌다. 어느새 아이젠을 노리고 병졸들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젠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방해받는 건 싫어해서.”

“피차일반이다.”

부웅! 파라슈가 다가왔다. 아이젠은 도끼날을 손으로 붙잡았다. 콰득! 역시 엄청난 무게감인지라 아이젠의 발이 뒤로 끌리며 밀려났다.

하지만 강망태신에 천수관음까지 사용한 아이젠도 파라슈의 제곱하는 힘에 밀리지 않는다.

“이 정도냐?”

“크으음!!”

뻐억! 아이젠은 파라슈의 도끼날을 그대로 밀었다. 반대쪽 날에 맞은 요한의 갑옷 가슴팍이 쩍 하고 찢어졌다.

그때 요한의 눈이 번들거리며 흉흉하게 빛났다.

“날 깔보지 마라! 나는 대장군 요한이다!! 전능하신 힘을 쓰소서!”

요한이 외치자 갑자기 도끼날의 무게가 서너 배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반동으로 덜그럭거리며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이젠은, 다가오는 파라슈에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푸슉!

파라슈가 아이젠의 목과 어깨 사이의 승모근을 잘랐다. 다행히 동강 썰리는 일은 없이 날붙이가 살갗을 조금 파고드는 것에 그쳤다.

조금이라고 해봐야 절반은 들어가서, 아이젠은 입에서 역류하는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윽!”

“꼬맹이 녀석이 어딜 감히! 죽어라!!”

요한이 더욱더 힘으로 몰아붙이자 아이젠의 한쪽 무릎이 꿇리고, 도끼날은 조금이지만 더 깊이 아이젠을 파고들어 가 빗장뼈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

정신을 잃을 뻔도 했지만 간신히 부여잡은 아이젠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한 번의 호흡 끝에 아이젠은 몸을 앞으로 밀었다.

도끼에 잘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요한은 파라슈와 함께 밀려났다. 관성으로 도끼날이 빠지며 요한이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섰다.

“윽!”

아이젠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후두둑! 잘린 승모근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방심은 없었다. 단지 요한이 아이젠보다 더 강했을 뿐.

“나는 공화국군의 대장군이자 대령인 요한. 패아지근의 칭호를 받은 자! 소국의 소가주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

“아, 거 드럽게 시끄럽네.”

퍼억! 아이젠의 주먹이 요한의 턱을 가격했다. 요한은 물러나면서도 아픈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아이젠의 주먹에는 조금의 내공도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물주먹으로는 나를.”

“시끄럽다고 했다. 방금.”

비틀! 아이젠은 흔들거리면서도 겸허히 일어났다. 강망태신의 기운이 가라앉고, 어느덧 강망태신의 운신도 끝날 지경에 이르렀다. 치명상을 입어 사신강림을 운용할 만한 정신머리가 없는 것이다.

아이젠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하지만, 그는 어째선지 씨익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가 우습지? 네놈.”

“뭐가 우습냐고?”

“네놈의 그 잘난 비술도 이제 풀리기 직전…….”

요한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어떤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파라슈에 힘을 흘려 넣기 전, 아이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뭐라 했지? 분명 일수일―’

“일수일도(一手一度).”

“―!”

아이젠의 내기가 몸속에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양이 어찌나 방대한지 요한은 높이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 저놈의 비술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풀리기 직전이었는데.

요한이 그리 생각할 때 아이젠의 입이 열렸다. 미소를 참기 힘들어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고맙다, 요한.”

“뭐라고? 무엇이 고맙다는 거지? 말해라. 당장.”

요한이 파라슈 끝을 아이젠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아이젠은 그 파라슈가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벼운 장난감처럼만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네놈 덕에 드디어 6성의 경지에 올랐어.”

아이젠의 조금 남았던 6성으로의 상승이, 결자해지 일수일도를 통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푸화아악!!

아이젠의 정수리 위로 내공이 불꽃놀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치 절맥증을 앓기라도 하는 양 온 내공이 몽땅 빠져나갈 듯했다.

그러나 절맥증이 아니었다. 결사신권이 바야흐로 6성에 오르는 것은 어렵다. 1성부터 5성까지의 때처럼, 단순히 경지에 올랐다고 6성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6성, 암화(暗花)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영혼을 연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결사신권은 두 번의 개화 과정을 거치지. 4성의 홍화, 그리고 6성의 암화. 나는 지금 두 번째 꽃을 피운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고 물었다! 이 애송아!!”

부웅!! 요한이 파라슈를 크게 휘둘렀다. 승모근이 잘린 아이젠이라면 이 공격을 멀쩡히 받아낼 순 없을 게 틀림없었다.

아이젠은 받을 생각도 없었다. 당장은.

그는 그저 눈을 감았다. 질끈 감은 것도 아니다. 가볍게 눈을 감은 것뿐.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온 세상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칠흑뿐인 공간에 아이젠밖에 없었다. 요한이나 다른 공화국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기묘한 광경에도 아이젠은 그저 미소만을 지었다. 지금의 이 풍경을 아이젠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이강철일 때도 본 적이 있었다.

“무혈신공을 연마할 때다.”

아이젠은 아득한 정신 속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 *

휘익! 콱!

“윽!”

한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가 지금 어떻게 멀쩡히 서 있는 건지 의아해하는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한스의 몸에는 대충 헤아려도 열 발이 넘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모두 테오도라가 쏜 화살이다.

“…….”

테오도라는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고 화살을 활에 메겼다. 그녀가 등에 메고 있는 화살집에는 이제 화살이 몇 발 남지도 않았다.

한스가 비틀거리면서도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정신력이 빼어난 탓도 있지만, 테오도라가 결코 급소를 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단지 테오도라는 한스가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관절을 중심으로 공격했다. 팔꿈치, 무릎, 겨드랑이처럼 말이다.

그것이 한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으으, 겨우 활잡이 따위한테 이 내가!”

한스는 바들거리는 팔로 참철검을 꽉 쥐어 잡았다. 힘줄을 잘못 맞았는지 통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테오도라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참철검술, 연공난무!”

한스가 검 끝을 길게 밀며 참격을 날렸다. 연공난무는 참철검술에 몇 없는 원거리 기술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원거리 기술이라 해봐야, 활의 비거리를 따라잡을 수 없는 법이다.

화아아.

테오도라가 몇 발 물러서자 연공난무는 그녀에게 닿지도 못하고 공기중에서 흩어졌다.

테오도라의 거리를 재는 기술은 공화국 내에서도 톱 수준이었고, 그것이 그녀에게 아티팩트 ‘까마귀장궁’이 하사된 이유이기도 했다.

“쳇! 저 망할 활, 속도가 저렇게 빠르지만 않았어도!”

당초 한스가 짐작한 대로 까마귀장궁의 능력은 바람의 저항을 받지 않는 화살을 쏘는 것.

그러나 알았다고 해서 달리 수를 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화살이 평소보다 두세 배는 빨리 날아오는데 그걸 맨눈으로 어떻게 피한단 말인가. 한스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내가 가진 기술로는 이 여자를 이길 수 없어. 그렇다면…….’

참철검술 4성에 올라 속동검격을 쓸 수 있다면 테오도라를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참철검술 4성, 속동검격.

컥.

가까이서 들리는 목소리. 바로 바네사였다. 바네사는 속동검격으로 그녀와 싸우던 적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한스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이럴 수가. 바네사 누님이 4성에 올랐다고?’

어떻게 벌써!

게오르크가 죽고 없는 지금, 한스가 그린우드의 장남이었다. 소가주는 아이젠이지만 한스는 장남이라는 타이틀에도 나름 만족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바네사가 자신보다 더 높은 참철검술의 경지에 오르다니.

‘제길, 절대 안 져!’

한스의 경쟁심이 불타기 시작했다. 바네사가 했다면 자신이라고 못 할 리 없다. 한스는 왠지 손에 힘이 꽉 쥐어졌다.

‘나도 4성에 오르고 말 테다. 속동검격을 구사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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