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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51화 (151/201)

151화

주르륵.

간츠펠트는 코피를 흘렸다. 그러더니 끌어안고 있던 레유리에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휠체어에 앉았다.

그의 모습은 어딘지 경건해 보였다. 아이젠조차 주춤거릴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젠이 이미 숨결을 불어넣어 둔 사신강림을 거둬들이진 않았다.

“부하가 죽어서 슬픈가?”

아이젠이 물었다. 그래도 제법 예의를 차려서 던진 질문이었다. 간츠펠트가 눈을 치뜨고 아이젠을 노려보았다.

“부하가 아닙니다. ‘동료’이지.”

간츠펠트가 웃옷을 다시 풀어헤쳤다. 그의 심장 위를 감싸고 있는 생명유지장치가 약한 맥동을 부여잡은 채 비프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알아요, 아이젠 폰 그린우드. 내가 오만하다는 걸. 내가 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이젠 아이젠 당신조차 죽이려 합니다. 난 쓰레기예요. 죽어서 지옥에 갈 겁니다.”

간츠펠트의 눈동자가 촉촉해졌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온화하게 녹아 있었다.

“근데요, 아이젠. 저를 믿고 따르는 동료들이, 제가 죽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대요. 악의는 없었어요. 하지만 달리 도리는 없었습니다. 용서해 주시길.”

아이젠은 6량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돌아보았다. 악의가 없었다, 도리가 없었다. 아이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웃기지 마. 무의미한 대학살조차, 달리 도리가 없었단 말로 핑계를 댈 수 있을 것 같아? 주변을 둘러봐. 네가 죽인 사람이 몇인지 네 눈으로 보라고.”

“…미안해요, 아이젠.”

“내게 미안할 필요 없어.”

아이젠의 주먹에 회혼이 주입되었다. 그의 손을 감싼 날카로운 예기가 간츠펠트에게도 전해졌다.

“용서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나는 단지 심판할 뿐이다. 그들을 대신해서? 아니, 그래서가 아니다.

‘스승님,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끝내겠습니다.’

투확!

아이젠의 주먹이 쏜살처럼 휘어졌다. 간츠펠트의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아이젠은 한 줌의 회혼을 담아 깔끔하게 내리그었다.

‘결사신권, 교아(鮫牙)!’

간츠펠트는 손상의 힘으로 잽싸게 방어했다. 그 탓에 아이젠의 손톱 끝이 살짝 불에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빨리 주먹을 휘두른 탓에 살갗까지 부패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아이젠 소가주님!”

뒤편에서 사울 장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사울 장로가 7량의 연결문에 서 있었다. 보아하니 운타시드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모양이었다.

남은 건 간츠펠트 하나뿐.

간츠펠트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아이젠이 그를 보며 다시 한번 온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사울 장로.”

“예?”

“나서지 마세요. 이건 제가 끝내야 할 싸움입니다.”

“……!”

사울 장로는 아이젠의 그 목소리에서 깊은 무언가를 느끼고,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이더니 7량의 연결문을 닫아버렸다.

6량에는 다시 아이젠과 간츠펠트만 남았다.

“이제 너 하나 남았다.”

“그렇…군요. 다들… 나 때문에.”

“이 와중에 부하들 걱정은 되나 보지? 아, 부하가 아니라 동료라고 했던가?”

“…말 함부로 놀리지 마세요, 아이젠.”

“함부로? 글쎄다. 내가 지금 널 존중해 줘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이젠은 눈앞의 적 간츠펠트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아이젠에게는 존중이었다.

물론 녀석을 이곳에서 갈기갈기 찢어놓겠다는 결의의 마음도 함께였다.

‘사신강림, 강망태신(江望太神)!’

강망태신의 흉기 어린 기운이 아이젠의 몸 위에서 피어오른다. 간츠펠트는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내 숨을 가라앉혔다.

“잊었나요, 아이젠? 당신은 내게 손댈 수 없어요. 당신의 자랑인 그 두 주먹이 모두 썩어버릴 테니까. 내게 닿는 그 순간부터 말이에요.”

그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그에게 손을 대기만 해도 아이젠의 양팔은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아이젠은 조금 전 교아를 통해 부식된 손톱을 바라보았다. 손톱이 썩어들어 가 뭉그러져 있었다.

‘며칠 고생 좀 하겠는데.’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참을 만했다. 강망태신도 마찬가지다. 시전이 끝난 후 상상 그 이상의 격통이 찾아들 테지만 참을 만할 것이다.

그래, 오늘 이 자리에서 간츠펠트를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의 찝찝함에 비하면 말이다.

‘결사신권, 철권(鐵拳)!’

아이젠은 주저 없이 뛰어 간츠펠트의 머리통에 철권을 날렸다. 간츠펠트는 재빨리 손을 뻗어 손상의 막을 펼쳤으나.

뻐억!

“?!”

손상으로 펼친 막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젠의 주먹은 간단히 막을 찢고 들어가 간츠펠트의 얼굴을 강타했다.

‘게오르크의 오러 아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콰아앙!

간츠펠트는 휠체어 째로 날아가 그대로 열차 벽에 부딪혔다. 그 탓에 열차 전체가 기우뚱거렸다.

“크윽, 으윽……!”

간츠펠트는 휠체어에서 넘어진지라, 바닥을 기어 먼지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왔다. 외상은 크지 않지만 간츠펠트의 머릿속은 지금쯤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철권의 효과란 그런 것이니까.

“아이젠…! 당신의, 룬을……!”

“결사신권, 권왕백무 : 관(貫)!”

“윽?!”

뻐어억!

이번에도 아이젠의 주먹은 손상의 막을 꿰뚫고 간츠펠트를 날려 버렸다. 이제 아이젠의 몸 안에 남아 있는 내공은 소량에 불과했지만 아이젠은 뒤가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간츠펠트는 또다시 부웅 날아가 5량 연결문에 부딪힌 후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그으으…….”

몹시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살아는 있는 듯했다.

치이익―

문득 오징어 굽는 냄새 탓에 아이젠은 자신의 두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양손의 관절 끝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손상의 막에는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효과는 지대했다.

아이젠은 분명 기막힌 통증에 시달려야 마땅했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성큼성큼 간츠펠트에게 다가섰다.

“이게 끝이냐? 간츠펠트?”

“으윽… 크윽……!”

“…허무하군.”

그래도 나름대로 최종 우두머리와의 대결을 고대해왔는데. 적어도 천마 도강문 정도는 되는 상대일 줄 알았는데.

이쯤 되니 아이젠은 오히려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간츠펠트가 나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손상시켜왔다.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적을 만나는 것은 간츠펠트로서도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손이 썩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건가요? 쿨럭!”

“아니. 느껴져. 생생하게. 아프네. 네가 그동안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왔겠지?”

“그걸 안다면, 당신의 룬을 어서…….”

“근데 있잖아.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거 아는데.”

아이젠의 시선이 간츠펠트에게로 향했다. 뭉그러질 대로 뭉그러진 그의 얼굴 위로 말이다.

“그까짓 고통, 별거 아니야.”

“…뭐라고요?”

“아, 미안. 내가 말주변이 별로 없어서.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아이젠은 그사이 주먹에 남아 있던 모든 회혼을 끌어담은 채였다. 간츠펠트도 그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움직일 힘이 없었을 뿐.

아이젠이 말을 매듭지었다.

“죽을 거면 혼자 얌전하게 죽으라고.”

쉬익!

아이젠이 주먹을 휘둘렀다. 최후의 적에게 존중의 의미를 담아, 한편으로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휘둘렀다. 아이젠이 현 상태에서 펼칠 수 있는 최대 최고의 무공이었다.

간츠펠트는 일찌감치 손상의 막을 여러 겹으로 형성해 둔 상태였다. 그 위를 아이젠이 타격한다면 그의 손은 손상되는 것을 넘어서 아예 녹아 없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셀 쇼크(Cell Shock)’! 제가 다룰 수 있는 최대 최고의 기술입니다. 주먹을 거두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간츠펠트. 그거 알아?”

그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아이젠의 주먹은 분명 간츠펠트를 향해 총탄보다 빨리 날아들고 있었는데, 간츠펠트는 그사이에 아이젠의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

“넌 도강문과는 다른 녀석이야.”

“도강문……? 그게 누구…….”

“근데 그래도 봐줄 생각은 없어.”

푸화아아악!!

아이젠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너무나 빨리 주먹을 휘두르고 거둔 탓에 마찰열이 일어난 것이다. 주먹은 매서웠고, 재빨랐으며, 강력했다.

그야말호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정도로.

‘결사신권, 천차횡도 염적양(炎赤粱: 붉은 수수밭을 태우다).’

콰아아아아아!!

마치 화염의 태풍이라도 들이닥친 것처럼.

“으윽, 셀 쇼크!!!”

간츠펠트의 최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퍼엉!

열차의 6량이 통째로 터져 나갔다. 지붕은 사라지고, 안에 있던 좌석 몇 개는 흩어져 나팔관 밖으로 탈선했다. 어찌나 충격이 컸는가 하면, 달리던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멈출 지경이었다.

끼이익. 끼익…….

마침내 열차가 얌전히 섰다. 아이젠은 성큼성큼 6량 반대쪽 끝을 향해 걸었다.

조금 전까지 그곳에 있었던 간츠펠트는, 더 이상 없었다.

“…….”

잿더미와 함께 산화해 버린 간츠펠트의 최후는, 손상이라는 그가 가진 힘에 걸맞았다.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아이젠은 어디선가 그의 음성이 들리는 듯도 했다.

‘난 살고 싶었을 뿐이에요. 나는 단지…….’

아이젠은 표정을 지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알아. 저세상이란 게 있다면 거기선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랄게.”

드르륵! 탁!

그때 7량의 연결문이 열리며 다시금 사울 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헐레벌떡 아이젠에게 다가와 섰다.

“소가주님, 괜찮으십니까?”

“네. 손이 좀 아프긴 하지만.”

“아, 아니?! 손이 썩고 있잖습니까! 어, 어서 조치를!”

사울 장로는 다급히 손에서 오러를 피워내더니 아이젠의 두 손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아이젠의 주먹에 있던 고통이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아이젠은 놀랐다. 이런 건 처음 보는지라.

“어떻게 하신 거예요?”

“모르셨습니까? 브루봉 가문의 비기가 바료 치료술입니다.”

사울 장로의 본명은 사울 드 브루봉. 기젤라의 큰오빠이기도 한 그는 가문 내에서도 치료술사로 이름을 제법 날렸던 인물이었다.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아이젠의 부패한 손에 다시 새살이 돋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재생 능력은 갖추지 못한 사울이었다. 얼핏얼핏 손가락 사이로 뼈가 보이기도 해서 사울 장로는 자기가 더 아픈 느낌이었다.

“영지로 돌아가시면 꼭 부상을 치료하셔야 합니다, 아이젠 소가주님.”

“알았어요.”

사울 장로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6량의 지붕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그 잔해물의 끝은 불에 탄 것처럼 그을려 있었다.

아이젠이 또 한 번 성장했구나,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울 장로였다. 그는 왠지 감격해서 눈물을 머금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윽!”

아이젠이 별안간 휘청였다. 사울 장로는 그를 부축해 세웠는데, 아이젠은 웬일인지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것처럼 굴었다.

“왜 그러십니까?”

“반동이… 옵니다.”

강망태신은 일찌감치 해제되었고, 염적양을 쓴 여파로 몸에는 단 한 방울의 내공도 남아 있지 않다. 홍화도, 그린 오러도 쓸 수 없게 된 아이젠에게 닥쳐올 것은 어마어마한 반동의 아픔이었다.

“으윽!”

결국 그는 고통을 호소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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