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왜 그런 짓을 했지? 네놈의 오러를 왜 그렇게까지. 게다가 생명력으로 만들어낸 오러를.”
아이젠은 노여움을 참고 물었다.
간츠펠트가 대답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다른 방법도 있었을 거야. 네가 직접 오러를 만들어냈다면 되잖아.”
“아뇨. …아뇨.”
간츠펠트는 숨이 차는 듯 잠시 헐떡이더니, 생명유지장치에 입을 붙이고 몇 차례 호흡했다. 그리고 호흡이 조금 안정되자 다시 장치를 입에서 뗐다.
“…저는 선천적으로 오러를 배울 수 없는 몸이었어요. 블러드 오러, 당신 말대로 혈공을 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죠.”
“그냥 오러를 안 썼으면 될 텐데.”
“아까 제 몸에 닿은 저분의 몸이 썩어들어 가는 걸 보셨나요?”
“그래.”
“제 몸이 지금 그런 상태예요.”
“뭐?”
간츠펠트는 더 말하지 않고 입고 있던 옷을 풀어헤쳐 직접 몸을 보여줬다. 가슴팍에 삐빅거리는 장치가 붙어 있었는데, 그것에는 시선조차 안 갈 정도로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이게 시체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저는 날 때부터 제 몸에 스스로 손상을 가해왔어요. 제 의지랑은 상관없이 일어났죠. 제가 원해서 혈공을 쓰는 게 아니에요.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혈공이 사용되죠.”
“……! 구음절맥인가.”
중원 무림에서 아이젠은 비슷한 질환을 가진 환자를 본 적이 있다. 구음절맥이라고 해서, 온몸에 음기가 가득 들어차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단명한다. 기의 흐름이 몸 밖으로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얻는 질병이다. 간츠펠트의 경우에는 혈공이라는 이름으로 몸 밖으로 생명력이 강제로 끄집어내지는 경우인 듯하지만 말이다.
“이상한데. 구음절맥은 여자만 걸리는 병이었을 텐데.”
“구음절맥? 그게 뭐죠? 제 병이 뭔지 알고 있나요?”
“그래.”
“아무도… 아무도 몰랐는데. 그 어떤 의사도. 혹시 치료법도 알고 있나요?”
간츠펠트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아이젠은 실망스럽게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음절맥은 치료할 수 없어. 불치병이야.”
“…역시 그렇군요.”
간츠펠트는 눈빛에서 실망감을 지우고 고개를 들었다. 휠체어에 타 있음에도 그의 능력을 눈으로 목격한 아이젠은 왠지 위협을 느꼈다.
간츠펠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치료할 수 없다고 했나요? 하지만 틀렸어요. 이 병의 이름은 몰랐지만, 전 치료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아, 그래?”
왠지 그 치료 방법이라는 게 뭔지, 아이젠은 짐작이 되었다.
“룬이 필요한 거냐?”
“맞아요.”
간츠펠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룬이 있으면… 룬만 있으면 제 몸에서 생명력이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게 돼요. 그럼 제 병도 치료되고, 저도 더 오래 살 순 없겠지만 최소한 이 끔찍한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죠.”
“그래. 아파 보이긴 한다. 근데 룬이 있으면 나을 수 있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은 거지? 왠지 사이비 같은데.”
“믿을 만한 정보예요. 그러니까.”
간츠펠트가 손을 뻗었다.
“내놓으세요. 아이젠 당신의 룬을.”
그의 손 끝에서 흉흉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다름 아닌 간츠펠트의 혈공이었다. 창처럼 예리하여 아이젠은 그걸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슈팟!
한순간 혈공이 길게 뻗치고, 아이젠은 재빨리 몸을 틀어 피했다. 글자 그대로 창을 형상화한 듯한 간츠펠트의 혈공은 아이젠의 뒤편에 있던 열차 6량 천장을 꿰뚫었다.
치이이이― 천장이 끝부터 부식되기 시작했다.
‘유기물이 아닌 것도 썩는 건가.’
아이젠은 발을 굴러 간츠펠트에게서 원을 그리듯 이동했다. 간츠펠트는 주저 없이 아이젠의 발밑에 다시 자신의 혈공을 날렸다.
슈팟!
치이이이!
아이젠의 발끝 앞에 혈공이 맞닿았다. 아이젠이 살짝 발을 빼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의 발은 썩어들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놈의 몸을 때리면, 내 손도 부식될까?’
시험해 보기엔 지나치게 위험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젠에게는 직접 타격하지 않아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결사신권, 환교신권!’
손끝에 회혼을 몰아넣은 아이젠은 간츠펠트에게 환교신권을 쏘았다. 투웅! 화살처럼 날아간 환교신권이 간츠펠트의 얼굴에 명중했다.
“큭!”
간츠펠트가 탄 휠체어가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이내 간츠펠트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의 얼굴 앞에서 투명한 막 같은 것이 부식되고 있었다. 그는 짧은 시간 만에 대기와 환교신권을 부식시켰다.
아이젠은 당황하지 않고 양손에 환교신권을 머금었다. 넉넉하게 각각 열 발씩.
“이것도 막아보든가.”
퍼퍼퍼퍼퍼퍼펑!
아이젠이 공을 던지듯 주먹을 날렸고, 각각의 환교신권은 간츠펠트에게 가닿았다. 간츠펠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혈공을 넓게 펼쳤다.
“크으으으!”
아이젠은 알았다. 간츠펠트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하지만, 그의 방어력은 터무니없이 형편없다는 것을.
‘혈공이기 때문이야.’
혈공을 넓게 펼치면 펼칠수록 그의 생명력이 소모된다. 간단한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이다.
아이젠 역시 지하감옥에서 혈공을 사용해 본 적이 있기에 잘 알았다. 조금만 사용해도 영혼이 잘려 나가는 기분이라 두 번 다시는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았다.
‘결사신권, 환교신권!’
남은 두 발의 환교신권을, 아이젠은 하나로 모아 동시에 발사했다. 마침 간츠펠트의 혈공으로 펼친 막이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퍼엉!
“앗?”
환교신권은 직선으로 날아가, 그대로 간츠펠트의 머리통을.
퍼억!
가격했다.
끼익! 기우뚱!
쿠당탕!
“커헉!”
간츠펠트가 휠체어에서 나가떨어졌다. 그는 바닥에 추하게 나자빠진 채로 숨을 헐떡였다. 조금 전 넘어진 충격으로 가슴을 감싼 생명유지장치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허무하군.”
아이젠은 그간 간츠펠트의 부하로 볼 수 있는 자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들 모두 대단한 실력자였고, 개중에는 아이젠의 생명까지 위협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간츠펠트는 형편없었다. 심지어는 처음 만난 길버트보다도 형편없다. 어떤 조직의 장이라 보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힘이었다.
“윽. 허억. 허억…….”
간츠펠트가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였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생명유지장치를 입에 갖다 대 어렵게 어렵게 숨을 쉬었다.
“후욱. 후욱! 후욱.”
“룬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그래서 내 룬을 뺏겠다 이거지?”
안타까운 사연인 줄은 알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정당성을 주지는 않는다.
“네 아모스를 섭취한 사람들에게는 무슨 죄가 있었지?”
“그들은… 후욱! 모두… 내 힘을 바랐어요. 요아힘도, 피터도, 블렌하임도, 제리도!”
“그래? 그럼 카인은?”
“카인?”
“내가 다니던 기사학교에 있던 녀석이다. 그 녀석도 네 힘을 원했나? 그랬겠지. 근데 그 힘이 가진 부작용은 몰랐어. 타인의 오러를 섭취하면 자신의 생명력도 깎여 나간다. 종국에는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 죽어버리고 말지. 지금 너처럼.”
아이젠은 넘어져 있는 간츠펠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간츠펠트가 손상의 힘을 발현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젠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아니었다.
“네놈이 살고 싶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거냐?!”
“그럼,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냥 죽을까요? 모두를 위해 난 그냥 죽어야 하나요?”
간츠펠트의 눈에서 눈물이 도로록 흘러내렸다.
“난, 난 그냥 살고 싶을 뿐이에요. 살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덥석!
간츠펠트가 아이젠의 아이기스를 붙잡았다. 그러곤 몸에서 혈공을 내뿜었다. 아이젠은 아차 싶어 물러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손상!”
푸시이익!!
검은 연기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러나.
“……?!”
아이기스에는 자그마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손상의 힘으로도 아이기스는 부식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어떻게는.”
아이젠이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의 주먹에 섬광권기의 묘리가 듬뿍 담겼다.
“조진 거지, 너.”
결사신권, 섬광권기!
쉬익…….
퓨뷰뷰뷰뷱!
“커억!!”
간츠펠트는 섬광권기를 맞은 충격으로 부웅 미끄러지듯 날아가.
콰앙!
벽에 부딪혔다. 열차가 움푹 패며 간츠펠트의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면 아직 죽지는 않은 듯했다.
그때였다.
드르륵! 탁!
7량의 연결문이 열리며 레유리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온몸이 피로 칠갑된 상태였다. 이번에는 본인이 입은 상처로 보였다. 참철검에 베인 자국이 몸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으니까.
“간츠펠트!!”
뒤편에 사울 장로가 서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와 싸우다가 간츠펠트에게 위기가 닥쳤음을 알고 급히 들어온 것으로 보였다. 레유리에는 곧장 간츠펠트를 발견하더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간츠펠트! 괜찮아?!”
“레유리에, 허억, 숨이… 숨이…….”
레유리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금 전 간츠펠트가 맞을 때 날아가 버렸던 생명유지장치를 주워 그의 입에 끼워주었다. 간츠펠트의 숨이 헐떡이는가 싶더니 안정됐다.
레유리에는 뒤를 돌아 아이젠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망울이 살짝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간츠펠트한테 손 대지 마!”
“내가 먼저 손 댔냐? 니들이 먼저 왔잖아.”
“룬을 내놔. 네 룬만 있으면 간츠펠트는 살 수 있어. 더 이상 아무도 해치지 않을게.”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이젠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분노를 삭였다. 그는 동심상의 기운을 발동해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도무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이고 너희가 착한 애들인 줄 알겠다. 살고 싶다고 내 룬을 빼앗겠다고? 그럼 난 죽을 텐데? 뒤질 거면 혼자 뒤져, 이 새끼야. 대량 학살범 새끼들이 어디서 동정심 유발이야.”
“간츠펠트는 이제 좀 있으면 죽어.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구. 아이젠 네 룬만 있으면 간츠펠트를 살릴 수 있어…….”
“어쩌라는 거야.”
아이젠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레유리에가 동정표를 얻으려 할수록 아이젠의 분노심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못 들었어? 뒤질 거면 혼자 뒤지라고.”
결사신권, 섬광권기!
아이젠의 주먹에서 섬광권기가 쏘아졌다. 마지막 남은 한 발의 섬광권기였다. 그 섬광권기는 일직선으로 간츠펠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빛의 속도로.
그러나 레유리에는 그 짧은 찰나 만에 간츠펠트에게로 몸을 던졌다.
“간츠펠트 소령님한테 손 대지 마!!”
퓨뷰뷰뷰뷱!!
간츠펠트를 엎드려 감싸 안은 레유리에의 옆구리에 섬광권기가 박혔다. 레유리에는 피를 토하며 추욱 늘어졌다.
‘소령님?’
무슨 소리인가 했으나 아이젠은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간츠펠트가 부들거리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자신을 감쌌던 레유리에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죽었다.
“레, 레유리에!!”
이쯤 되니 아이젠은 왠지 정말로 자신이 악당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도가 딱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이젠에겐 자비가 없었다. 악당과 아이젠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것이었다.
“일어나라, 간츠펠트. 끝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