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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49화 (149/201)

149화

【 혈공 】

아이젠은 자신의 몸 안에 남아 있는 무혈신공 내공의 양을 헤아려 봤다.

조금 전 섬광권기를 사용했고, 그보다 더 전에는 게오르크와 혈전을 펼친 탓에 몸 안에 남아 있는 내공이 많지 않았다. 이들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는지 어떨는지.

그때 앞으로 나선 것은 사울 장로였다. 참철검을 똑바로 쥔 그의 모습은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남은 녀석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소가주님은 우두머리 녀석을 상대하십시오.”

“…저한테 맡기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러기 위한 싸움 아니십니까?”

사울 장로가 아이젠을 돌아보고 빙긋 웃었다.

아이젠은 마테오 백작이나 제이슨의 도움마저도 거절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끝맺기 위함이었고 그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간츠펠트를 직접 처단해야 했다.

끼릭. 끼리릭.

저 멀리 운타시드들 사이에 있던 간츠펠트는, 어느새 휠체어를 끌고 6량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아이젠은 사울 장로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제가.”

“예.”

아이젠은 운타시드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그들을 지나쳐 갔다. 운타시드 중 그 누구도 아이젠에게 손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아이젠이 6량으로 넘어간 뒤.

드르륵― 탁! 중간문을 닫았다.

7량에 남은 사울 장로는 운타시드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 우리는 우리끼리 할 일을 하세.”

“죽어라, 늙은이!”

슈와아아!

7량 안에서 혈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6량으로 넘어간 간츠펠트는,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 사이에 휠체어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뒤를 돌아 아이젠을 올려다보았다.

문 앞에 서 있던 아이젠은 저벅저벅 걸어 간츠펠트에게 다가섰다. 거리는 대략 열 보 안팎.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접근해 그의 얼굴을 묵사발 내버릴 수 있을 만큼.

하지만 당장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이젠은 간츠펠트의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구석구석 살폈다. 그러나 살필 만한 건 딱히 없었다. 그는 가면에 가려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몸은 잔뜩 썩어 있어 눈살만 찌푸려졌으니까.

‘음? 가만, 이 녀석…….’

그때 아이젠은 간츠펠트의 몸 안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얼굴 구경 좀 하지?”

아이젠이 말했다. 그러자 간츠펠트는 의외로 순순히 손을 가면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호흡기를 떼고,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삑. 삑.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간츠펠트의 가면 아래에는 또 다른 가면이 있었다. 그건 정확히는 가면은 아니고, 생명유지장치였다.

민머리인 그의 머리에는 신경 다발 같은 것들이 장치해 있었고, 입 위에는 강철로 된 생명유지장치가 붙어 있었다. 이 생명유지장치는 간츠펠트가 조금만 호흡해도 더 크게 호흡할 수 있도록 해주는 증폭기이다. 신경다발은 생명유지장치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끝은 간츠펠트의 목 뒤에 찔려 들어가 있었다. 척수액을 주사하는 기기였다.

물론 아이젠이 그 모두를 한눈에 알아본 것은 아니고, 다만 간츠펠트의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 정도만은 알 수 있었다. 얼굴 좀 보자고 했지만 얼굴은 온갖 장치들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연보랏빛으로 뭉그러진 얼굴을 보면 피부가 썩어들어 가고 있는 듯했다.

“많이… 아파 보이는데.”

“…후우…….”

“말은 못 하나?”

만약 대화를 할 수 없다면 아이젠으로서는 좀 아쉬울 것이다. 소가주전을 시작할 때부터 줄기차게 아이젠을 괴롭혀왔던. 아니, 그보다 더 전인… 검은뿔 기사학교에서 카인을 상대할 때부터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아모스의 주인과 말을 섞을 수 없다면 서운한 일이었다.

아이젠의 말을 들은 간츠펠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 위에 손을 얹어 생명유지장치를 만졌다. 그는 생명유지장치의 다이얼을 돌렸고, 그러자 푸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생명유지장치가 해제되었다.

“후우. 후우.”

간츠펠트의 숨소리가 거세졌다. 장치가 없이는 5분 이상 숨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그의 건강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간츠펠트의 목소리는 낮고 청년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얼굴이 뭉그러진 것만 아니라면 그는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어쨌든 서른보다는 적어 보였다.

“그래. 내가 아이젠이다. 넌, 간츠펠트 맞지?”

“그래요. 후우, 내가… 간츠펠트예요.”

그의 입을 통해 직접 사실을 확인한 아이젠은, 이번에도 주저할 필요 없이 강망태신을 활성화했다.

푸화악!

아이젠의 몸 위로 솟구쳐 오른 회혼의 기운은 간츠펠트를 겁먹게 했다. 아이젠은 매서운 표정으로 간츠펠트에게 물었다.

“일단 확인차 물어보겠다. 헤르만의 액상화 능력을 이용해 네 오러를 녹여서 아모스를 만들고, 그 아모스를 사람들에게 판매한 판매책이 바로 너냐?”

“…그래요. 요아힘의 아이디어였죠.”

끼릭. 끼릭. 간츠펠트는 힘겹게 휠체어를 굴리며 아이젠에게 다가왔다.

“헤르만은 원래 요아힘의 밑에 있던 분이셨어요. 룬을 얻기 위한 쉬운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죠. 그게 바로 제 오러를 녹여서 아모스라는 알약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뿌리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하면 룬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거라 믿었거든요.”

“룬을 가진 사람? 왜지?”

“아, 모르셨군요. 제 오러는 룬과 반응하면 특수한 힘을 내거든요. 제가 알아차릴 수 있어요. 결과적으론… 룬을 가진 분 중에선 아모스를 드신 분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이젠 님을 찾아냈네요.”

간츠펠트의 목소리는 지나친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곧 아이젠이 그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텐데도 말이다.

“…하나 묻지. 대체 네게 룬이 필요한 이유가 뭔데? 뭔데 날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건… 얘기가 좀 길어요.”

“아, 그러냐.”

그 긴 사연을 하나하나 들어줄 생각도 없고. 아이젠은 그냥 간츠펠트를 죽여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손에 섬광권기가 실렸다. 남은 내공의 양으로 측정해 보건대 그가 사용할 남은 섬광권기는 세 번.

“그럼 죽어.”

아이젠은 지체 없이 주먹을 뻗었다.

‘결사신권, 섬광권기!’

쉬이이익!

아이젠의 손에서 빛살이 쏘아졌다. 간츠펠트는 조심스럽게 손을 허공에 뻗어 그 빛살을 막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

아무 소리도 없이, 아이젠의 섬광권기가 공기 중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

갑자기 정적이 흐르자 아이젠이 당황했다. 섬광권기가 쏘아진 것은 분명 손의 감각에 남아 있었다. 내공도 꼬박 그만큼 줄어 있었다. 하지만 섬광권기가 사라졌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아이젠은 간츠펠트가 뻗고 있던 손을 보았다. 그건 그냥 단순히 손을 들어 올린 동작일 뿐이다. 간츠펠트의 손바닥은 얼굴 등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잔뜩 뭉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뭐지?’

사아아아…….

간츠펠트의 그 손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흉흉한 기운이 뿜어지고 있었다. 어딘지 짙은 악의가 느껴지는.

간츠펠트가 손을 내렸다. 그러자, 스스스슥! 그 궤도상의 대기가 마치 부식되는 것처럼 기괴한 소리를 냈다.

‘놈의 능력은……?’

아이젠이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이었다.

“우오오오오!”

아이젠의 뒤편에서 승객들의 시체 더미 사이에 숨어 있던, 도깨비 뿔 가면을 쓴 운타시드 한 명이 갑자기 아이젠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손에 칼을 들고 있어 위협적이었다.

아이젠은 발을 굴려 운타시드의 일격을 피했다. 그러나 운타시드는 관성으로 앞으로 날아가다가, 간츠펠트와 몸을 맞붙이게 되었다.

“앗, 간츠펠트 님!”

그때였다.

푸쉬이이익!!

“끄아아아아!!!”

간츠펠트와 맞닿아 있던 운타시드의 몸이, 살이 타는 연기를 내며 녹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운타시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아악! 아파! 아파! 이것 좀 멈춰주세요, 멈춰줘요, 간츠펠트 니임!!!”

“…….”

간츠펠트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운타시드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검은색의 연기가 흉악하기 짝없었다.

“아아악! 아아악!!”

비명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이젠은 운타시드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그건 단순히 불의 능력이라든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 녀석, 몸이… 썩고 있어.’

운타시드의 몸이 썩어들어 가는 것이었다.

“맞아요.”

간츠펠트가 말했다. 아이젠이 시선을 올려 그를 보았다.

“제가 가진 힘은 ‘손상’. 무엇이든 제게 닿으면, 제 의지가 있는 한 그것은 부식되고 말죠. 사람이든, 아니면 아이젠 님이 제게 쏜 오러이든.”

“…….”

맞닿는 모든 것을 썩어버리게 만드는 능력이라.

쉬이이익…….

마침내 운타시드의 비명도 멎고,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도 잦아들었다. 운타시드는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장이 썩어버려 죽었기 때문이다.

‘미친.’

그 능력의 기괴함도 기괴함인데, 아이젠이 놀란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아이젠의 이마와 관자놀이에서 삐질 땀이 흘렀다.

“너, 몸에 오러가 없잖아.”

아이젠이 6량에 진입하고 간츠펠트와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느꼈던 기묘한 감각.

그것은, 간츠펠트의 몸 안에 한 방울만큼의 오러도 없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오러를 감추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간츠펠트가 자신의 능력을 발현할 때도 오러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녀석, 생명력이 깎여 나갔어.’

간츠펠트의 숨통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느낌만 들었을 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아이젠은 머릿속에 떠올라 있는 충격적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간츠펠트. 넌 몸에 오러가 없어. 혈공을 쓰는군.”

간츠펠트는 생명을 바치는 대가로 오러를 쓰는 힘, 혈공을 쓰고 있었다. 일전에 피스풀 지하감옥에서 아이젠이 그러했던 것처럼.

‘혈공(血功).’

혈공은 이름 그대로 생명력을 바쳐 내공으로 치환하는 심법으로, 엄격하게 금기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에게 이로울 게 없으므로 권장하진 않는다.

그런데 아이젠의 눈앞에 있는 저 간츠펠트라는 자는, 지금 그 혈공을 쓰고 있었다. 정확히는 본인의 내공이 몸에 없으므로 혈공만을 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모스는 저 녀석의 오러를 녹이는 거라고 했는데?’

헤르만의 말대로라면 아모스는 간츠펠트의 오러를 녹여서 알약으로 만드는 것. 간츠펠트에게 오러가 없다면 그 전제가 무너진다.

전제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이론은 한 가지 방향으로밖에 정립될 수 없다.

“네놈이 혈공으로 만들어낸 오러를, 다시 알약으로 만든 것. 그게 아모스인가?”

“…그래요.”

아이젠이 그동안 봐온 아모스의 총량은 적지 않다. 기사학교의 기사 견습생에게조차 아모스가 퍼져 있을 정도라면 그 절대적인 양이 엄청날 터.

그만한 오러를 혈공으로 만들어냈다면 간츠펠트의 생명력은 이미 거의 숨이 꺼져가는 지경일 것이다.

아이젠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회혼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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