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주먹을 제대로 휘두르려면 발을 지탱해야 한다.
그러나 마력열차가 나팔관 위를 달리며 계속 흔들리니, 아이젠의 고강한 신체로도 무게중심을 제대로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짧은 순간 생각을 마친 아이젠은, 다급히 달려 팔꿈치로 열차의 창문을 깨뜨렸다.
“소가주님!”
“사울 장로, 잠깐 지키고 계세요!”
그리고 창문 위로 몸을 던져, 열차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부웅! 펄럭펄럭!
마력열차는 이제 막 숲지대를 지나고 있는 듯했다. 수풀 위로 마력열차가 달리니 거센 바람이 불었고, 아이젠의 옷이 이리저리 나부꼈다.
아이젠은 바람 탓에 시린 눈을 홉뜬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력열차는 1량부터 7량까지만 이어져 있고, 뒤쪽인 8량부터는 이제 시야에 걸리지도 않았다. 저 멀리서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완전히 탈락한 듯싶었다.
그때였다.
타앙! 타앙!
열차 지붕 아래에서 무언가가 아이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아이젠은 유랑보를 사용해 잽싸게 피했다. 총탄으로 인해 지붕에 구멍이 뚫린 것을 보면 레유리에가 또 무슨 수를 쓴 듯싶었다.
“대체 저 이상한 무기들은 뭐야?”
주먹 하나로 살아온 아이젠에게 이계의 독특한 무기들은 별천지였다.
타앙! 타앙!
계속 총탄이 날아들자 아이젠은 발을 구르며 피하면서도, 여전히 주변 지형지물을 살폈다.
“당장 내려오지 못해, 아이젠! 도망치는 거야?!”
아래에서 레유리에의 고함이 들려왔지만 그런 것 따윈 아랑곳없었다. 다만 몇몇 운타시드들이 아이젠을 노리고 지붕 위로 올라왔다.
“이 자식, 도망치지 마!”
“룬 내놔! 당장!”
아이젠은 어이가 없었다.
“뭐 물건 맡겨놓은 것처럼 말을 하네. 전당포냐?”
“당장 내놓으라고!”
펄쩍!
운타시드 하나가 아이젠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아이젠은 가볍게 피한 뒤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 그러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열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다른 운타시드들도 마찬가지로 아이젠이 유랑보와 박살을 통해 제압하고.
“끄아악!”
“으악! 살려줘!”
그들 역시 열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누군가는 나팔관 위에 떨어져 흉측하게 죽어가기도 했다.
‘가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젠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이젠은 지붕 위에 몸을 바싹 붙여 나팔관을 자세히 살폈다.
나팔관은 둥근 원기둥의 형태로, 마력열차가 그 위를 마찰력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마력열차에 깃들어 있는 마력의 힘 덕분.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도 탈선하지 않을 수 있는 데는 마력의 힘이 작용한 탓이다.
아이젠이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이제 지붕 위에 완전히 몸을 엎드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촤악!
“응?”
깨진 창문에서 운타시드 하나가 갈퀴를 이용해 아이젠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죽어라!”
촤악! 갈퀴를 잡아당겼다. 아이젠의 바지 밑단이 뜯겨 나감과 동시에 그도 몸을 기우뚱 흔들었고.
바로 그 순간, 앞으로 거대한 고목 하나가 다가왔다.
퍽!
고목에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젠은 열차에서 튕겨 나갔다.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아이젠은 온몸에 내공을 불어넣어 회혼의 힘으로 몸을 감쌌다.
쿵! 퉁! 투둥!
“크으, 아파라!”
바닥을 열심히 튕긴 아이젠은 고통을 참으며 일어섰다. 마력열차는 어느새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아이젠은 아직 열차에 남아 있을 사울 장로를 걱정하는 한편, 간츠펠트와 끝장을 볼 요량으로 열차를 따라잡기로 마음먹었다.
“후우!”
발에 모든 회혼을 집중시킨 아이젠은, 목롱보를 연발로 사용해 잽싸게 마력열차 가까이 접근했다. 어느새 뜯겨 나간 7량의 연결고리까지 다가선 아이젠은 그 연결고리를 꽉 붙잡았고, 나팔관 위를 치타처럼 빠른 발놀림으로 간신히 달리고 있었다.
‘결사신권, 박살!’
아이젠은 회혼을 주먹에 두른 뒤 열차에 박살을 날렸다. 아예 탈선을 시키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발에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으니 별 효과가 없었다. 해서 아이젠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후우……!”
한순간 불던 바람이 멎는 듯한 착각. 아이젠은 낮게 가라앉은 회혼을 집중해 온몸에 휘돌아쳤다.
‘사신강림, 강망태신.’
화아아아!
강망태신의 운용을 시작한 아이젠은 왜인지 감회가 새로웠다. 아픈 거 다 나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강망태신을 쓰게 될 줄이야.
게다가 그 용도가.
“섬광권기!”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차를 탈선시키기 위해서일 줄이야!
퓨퓨퓨퓩!
아이젠의 섬광권기가 마력열차 바퀴를 가격했다. 그러자 바퀴가 터져 나가며 약간 기우뚱했다. 이내 카가각! 소리와 함께 나팔관이 열차와 부딪치며 갈리는가 싶더니.
탱!
마력열차가 탈선했다. 정확히는 7량만 탈선하고, 6량부터는 앞쪽에 쏠린 무게중심으로 간신히 버티는 듯했지만 말이다. 덕분에 마력열차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 종전보다 2배 이상 느려졌다.
“윽! 아이젠, 너 이 새끼!”
“이 자식!!”
안쪽에서 레유리에와 그레고리 등을 포함한 운타시드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아이젠은 무시하고 계속 나팔관 위를 달렸다.
이제 아이젠은 집중해서 달리지 않아도 마력열차와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능하면 이 열차 자체를 멈춰 세우고 싶은데.”
“좀 도와드립니까……?”
흠칫! 옆쪽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아이젠이 고개를 돌아보았다. 열심히 두 다리를 교차하며 달리고 있는 아이젠의 옆에 있는 것은, 태연하게 허공을 날고 있는 마테오 백작의 모습이었다.
“뭐, 뭐 하세요?”
“갑자기 열차가 끊어지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긴 한가 보군요.”
마테오 백작은 이런 기습 따위에 당할 위인이 아니다. 그는 전쟁영웅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자. 이 정도 이슈는 그에게 별일도 아닌 것이다.
아이젠이 헐떡거리며 답했다.
“네, 대충.”
“힘들어 보이시는데, 잡아드립니까……?”
아이젠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아이젠은 마테오 백작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할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마테오 백작이 참전해 준다면 간츠펠트 일당과의 대결은 사실상 한순간에 끝나버릴 것이다. 그의 벽력마법만 있다면 적들을 제압하는 건 손쉬운 일.
그러나 아이젠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간츠펠트와의 승부를 매듭 지어야 하는 것은 아이젠 자신이지, 고양이 손을 빌릴 생각은 없는 아이젠이었다.
아이젠은 뒤쪽을 돌아보았다.
“대신 마테오 백작님께선 8량부터의 승객들을 돌봐주세요.”
“알겠습니다… 부디 무탈하시길.”
마테오 백작은 군말 없이 파직! 소리와 함께 떠나갔다.
“너도 마찬가지야, 제이슨.”
아이젠은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려 지붕 쪽을 바라보았다. 지붕에서는 아이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제이슨이 있었다.
“안 잡아드려도 되겠습니까? 주인님.”
“어. 너도 가서 모니카를 보호해. 아마 내 걱정 많이 하고 있을 거야.”
“그렇더군요.”
“가서 마테오 백작님을 도와. 물론 네 모습을 들켜선 안 되겠지만.”
“알겠습니다.”
후웅! 그렇게 제이슨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아이젠은 크게 심호흡하고, 가볍게 펄쩍 뛰어 7량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타닷!
아이젠이 깨진 창문을 통해 7량 안으로 들어서자, 사울 장로가 레유리에와 그레고리 등을 상대로 대치 중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레유리에와 그레고리가 아이젠을 보고 반가운 듯이 외쳤다.
“아이젠, 이 새끼!”
“룬 내놔!”
아이젠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이 새끼들이 아까부터 뭘 당연한 듯이 자꾸 내놓으래. 입 좀 닥쳐.”
아이젠은 그들 뒤에서 여전히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간츠펠트를 보았다. 간츠펠트는 마치 인형처럼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후우…….”
기묘한 호흡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아이젠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레유리에와 그레고리를 보자마자 몸 안에 깃들어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았다.
‘후웁!’
그리고 지체 없이 강망태신의 기운을 오른쪽 주먹에 몰아 담아, 그레고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결사신권, 섬광권기!’
쉬익!
그레고리는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알고 차단의 반지를 펼치려 했다. 그러나 아이젠의 주먹이 한발 더 빨랐다.
퓨뷰뷰뷰뷱!
“커헉?!!”
그레고리의 배가 움푹 패 들어가고, 그가 입에서 피를 토하는 사이. 레유리에는 전기톱을 가동시켜 아이젠에게 돌진했다.
“이 새끼야, 그만둬!”
위이이잉!!
아이젠은 왼손에 매여 있는 아이기스로 그녀의 전기톱을 막아냈다. 캉! 카가각! 카가가각! 아티팩트 아이기스는 전기톱과 몸을 부딪쳐도 작은 흠결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고, 반동으로 튕겨 나간 것은 오히려 레유리에의 전기톱이었다.
“칫!”
레유리에는 곧바로 다시 차원가방을 열어 안에서 잡히는 대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꺼낸 것은 바주카포.
‘저건?’
아이젠은 바주카포의 정체를 몰랐지만, 그것에서 곧 나타날 기운이 굉장한 위력을 담고 있으리란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레유리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바주카포를 어깨에 걸었다. 그리고 발사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표정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죽어, 이 새끼야!”
그렇게 레유리에가 바주카포의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현무기공, 마비규정!’
아이젠은 아이기스로 마비규정을 사용했다. 그가 얼어붙게 만든 것은 레유리에가 아니다. 아이젠의 뒤편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그레고리였다.
그리고 아이젠은 잽싸게 유랑보로 발을 굴려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레유리에가 실수를 깨달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엇!”
“어?”
퍼엉!
바주카포가 발사되며 레유리에가 반동으로 뒤로 밀려나 넘어지고.
쉬이익!
콰과광!
지름만 15cm가 넘는 포탄에 정통으로 맞은 것은 그레고리였다.
엄청난 먼지 바람이 몰아치고 시야가 가려지자, 레유리에는 콜록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외쳤다.
“그, 그레고리!”
레유리에는 그레고리가 넘어져 있을 법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말캉한 무언가를 만지는 순간 그레고리가 최소 기절, 최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레유리에가 분노에 차서 몸을 일으키는 때, 아이젠은 그녀의 바로 등 뒤에 서 있었고.
“이 새끼!”
레유리에는 차원가방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들곤 아이젠에게 찔러 넣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아이젠은 찔리지 않았다. 단검을 쥔 그녀의 손을 겨드랑이에 끼워 그녀를 멈췄을 뿐.
“독특한 무기를 빼면 넌 별것도 아니군.”
“윽!”
아이젠은 주먹에 하― 하고 바람을 불어 레유리에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결사신권, 박살!’
퍼억!
레유리에는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쓰러졌다.
쿠궁. 쿠궁.
마력열차가 달리는 소리만이 7량 안을 채웠다. 아직 많은 운타시드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아이젠에게 손댈 기색조차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