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마력열차의 2량과 3량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4량과 5량을 이어서도 마찬가지였고.
“크악!”
“제발, 제발! 제바아알 살려줘어어!!”
투다다다다다!!!
6량에서도 이제 막, 모든 승객이 숨을 거두었다.
레유리에와 그레고리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승객들을 죽이며 피를 뒤집어쓴 것이었다. 그 뒤에 있던 운타시드들 역시 마찬가지로 피를 옷처럼 둘러 입고 있었다.
“휴.”
그레고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곤 눈치를 주는 레유리에 때문에 물고 있던 담배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나 담배 냄새 싫어하는 거 몰라?”
“알았어, 알았어. 거참. 거사 치르고 나서 한 대 피울까 했더니만.”
“나뿐만이 아니잖아. 간츠펠트 폐 호흡 할 때 안 좋다구. 그치, 간츠펠트?”
레유리에는 시선을 사선으로 두며 물었다. 휠체어에 타고 있던 간츠펠트는 묘하게도 피 한 방울 튀어 있지 않았다. 그레고리가 차단의 반지를 이용해 간츠펠트에게 보호막을 둘러줬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6량과 7량을 잇는 열차 중간선에 설치해 둔 차단막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차단막은 모든 것을 차단하고, 그것은 소리와 오러 역시 포함된다. 즉 6량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7량에서 알아차릴 일은 없다. 이 차단막 너머에 있는 녀석들은 세상모르고 쉬고 있을 것이다.
곧 자신들을 죽여 없앨 위협이 다가오리란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이제 이 너머야.”
“응.”
그레고리의 말에 레유리에가 호응했다. 이 너머에는 그들이 목표로 했던 이가 있다. 2량부터 6량까지, 수많은 승객들을 학살하면서까지 그들이 이곳에 도달해야 했던 이유.
그것은 바로 아이젠의 존재였다.
“드디어, 때가 됐어, 간츠펠트.”
“…후우…….”
간츠펠트의 호흡에 레유리에가 그와 눈높이를 맞추고 귀를 기울였다. 간츠펠트는 입을 닫고 있던 호흡기를 잠시 떼더니,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레유리에에게 뭔가 말했다.
레유리에는 전부 들은 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잊지 마, 간츠펠트. 우린 항상 네 편이야.”
그러고 자리에서 일어난 레유리에는 그레고리에게 눈짓했다. 그레고리도 긴장 탓에 땀이 흘렀다. 땀과 피가 섞여들었다.
“간다.”
부웅!
이윽고, 차단막이 해제됐다. 그레고리는 지체 없이 7량으로 가는 미닫이 문을 열어젖혔다. 이곳에 그들이 사로잡아야만 하는 인물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아이젠 폰 그린우드.
“아이젠 폰 그린우……!?”
그레고리가 그 이름을 호명하려는 때였다.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레고리가 바라보는 쪽에는 어떠한 승객도 없었기 때문이다. 7량의 손님은 제로. 아이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레고리가 의문을 가질 찰나.
“왜 그래!”
레유리에가 문 쪽으로 다가와 7량 안을 들여다봤다. 그녀 역시 아무도 없는 그 광경을 목격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결사신권, 박살 악지섬!”
“파생검술, 속동검격!”
퍼억!
슈팟!
아이젠의 주먹이 레유리에의 턱을 가격하고, 사울 장로의 참철검이 그레고리의 팔을 베어냈다.
“?!”
“뭐야!”
그 탓에 레유리에와 그레고리는 크게 기우뚱하며 균형을 잃었고, 뒤에 서 있던 운타시드들은 두 사람이 연결문을 막고 있으니 들어올 수 없었다.
아이젠과 사울 장로는 문 옆쪽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젠은 자신의 주먹이 정통으로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다. 주먹에 감각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음?’
레유리에의 턱을 자세히 보면 불그스름한 자국이 없었다. 어떤 상처도 입지 않은 것이다. 그레고리라고 남 얘기가 아니다. 그레고리의 팔 역시 베인 상처 없이 멀쩡했다.
레유리에가 소리쳤다.
“차단막 설치해, 그레고리!”
그 말에 반응한 그레고리가 쏜살같이 8량 쪽으로 달려갔다. 한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황 파악을 못 하던 사울 장로와 달리, 아이젠은 불길한 후일을 직감하고 그레고리의 발길을 붙잡으려 했다.
타닷!
그렇게 아이젠이 그레고리의 머리통을 향해 철권을 날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투다다다다다!
아이젠은 자신을 향해 무언가가 뒤에서 날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돌아보니 화살보다 빠르게 낱알의 무언가가 덤벼들었고, 아이젠은 재빨리 아이기스를 들어 그것을 튕겨냈다.
티팅팅!
그사이 그레고리는 어느새 8량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티팩트, 차단의 반지!”
부와앙!
7량과 8량을 잇는 연결문에 희끄무레한 차단막이 설치됐다. 아이젠은 저것이 결계와 비슷한 속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8량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건너오지 못한단 뜻이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터. 당장 저 차단막을 해제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아직도 여전히 총알탄이 아이젠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아이젠은 물론 아이기스를 이용해 그것을 모두 튕겨냈지만.
‘젠장, 거슬리게!’
몹시 거슬렸다. 레유리에가 양손으로 힘겹게 들고 있는 저 무기에서 총알탄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파생검술, 역근검격!”
그때 사울 장로가 레유리에에게 검을 휘둘렀다. 촤악! 레유리에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차단막을 설치하던 그레고리가 뒤돌아 외쳤다.
“레유리에!”
“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끝내!!”
그 틈을 타 운타시드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발터의 좀비 떼처럼 덤벼드는 그들을 하나하나 주먹으로 때려눕히던 아이젠은 그것이 좀비가 아니라 모두 살아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
‘이 녀석들, 가면을 쓰고 있잖아!’
최초에 이미 알아차리긴 했지만 판단이 늦었다. 이 두 남녀도, 지금 쏟아져 들어오는 저 녀석들도 모두 도깨비 뿔이 달린 가면을 쓰고 있었다. 요아힘이나 헤르만 등처럼 말이다.
‘이대론 끝이 없겠어.’
아이젠은 주먹에 회혼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잽싸게 주먹을 부채 펼치듯이 휘둘렀다.
‘결사신권, 권왕백무: 신!’
파바바바바바바밧!
수백 갈래로 갈라진 주먹의 가닥들이 운타시드들을 하나하나 가격했다.
“으헉!”
“컥!”
“윽!”
아이젠은 그들 하나하나를 상대해 줄 시간이 없어 예리한 눈으로 그들의 급소를 때려 기절시켰다.
그때 그레고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뭔가 교묘한 일을 펼치고 있었다.
쨍그랑!
그는 달리는 마력열차의 창문을 깨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7량 위로 올라가 바람을 맞으면서도, 8량과 이어지는 연결고리 쪽으로 다가섰다.
콰과과! 콰과과과!
마력열차가 나팔관 위를 달리는 소리는 매섭기 그지없었다. 마력으로 달린다 해도 바깥의 소음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시끄러웠다.
“이놈, 멈추지 못할까!”
그레고리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조금 전 자신이 나온 창문 쪽에 사울 장로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사울 장로는 연로한 몸을 이끌고 그레고리를 쫓았다. 그레고리는 재빨리 달려 어느덧 8량을 잇는 연결고리 앞에 우두커니 섰다. 바람에 몸이 흔들릴 법도 하건만 그의 무게중심은 굳건했다.
“응?”
“뭐지?”
8량 쪽으로 보이는 창문에서 몇몇 사람들이 그레고리를 내다보고 무슨 일인가 의문을 표했다. 그들이 상황을 알아차릴 시간도 주지 않고, 그레고리는 잽싸게 7량과 8량의 연결고리에.
“차단의 반지!”
차단막을 형성해 냈다. 칼날의 형태로 말이다. 차단막으로 만들어진 칼날은 날카롭게 빛나더니 연결고리를 싹둑 잘라내 버렸다.
그러자.
“어?”
“어어어!”
8량이 서서히 뒤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열차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연결고리는 끊어졌으니, 8량부터는 뒤로 빠질 수밖에. 즉 그레고리는 마력열차를 분리해 버린 것이다.
“파생검술, 연풍참!”
그때 사울 장로가 참철검을 휘둘렀고, 그레고리는 뒤로 펄쩍 뛰어 간신히 일격을 피했다.
콰과과과!
마력열차는 더욱더 매섭게 달렸다. 무게가 가벼워져 더 빨라진 것이었다. 흔들리는 열차의 7량 지붕 위에 올라탄 그레고리와 사울 장로는 서로의 면면을 노려보았다.
“왜 열차를 분리했지?”
“이 뒤에 있는 놈들은 우리 일에 방해가 되거든!”
그레고리가 소리쳤다. 그는 사전 정보를 토대로 8량부터는 방계의 방주들 및 다른 우수한 장로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분리해 버린 것이다.
“우리가 노리는 목표는 아이젠 폰 그린우드 한 놈뿐이라서 말이야!”
그들의 목표물은 아이젠 단 한 사람. 다른 인물들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사울 장로는 굳건한 표정으로 끊어진 연결고리 위에 올라섰다. 가능하다면 8량을 다시 낚아채 올 요량이었다. 그러나, 8량은 이미 저 멀리까지 뒤로 밀려나 방법이 없었다.
‘음……!’
사울 장로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고 다시 깨진 창문을 통해 7량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선 아이젠과 레유리에가 대치하고 있었다. 다른 가면을 쓴 무리와 함께 말이다.
“아이젠 소가주님, 열차가 분리됐습니다.”
“속수무책이네요.”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아이젠으로서도 손쓸 도리가 없을 만큼 빠르게.
투다다다다!
티티팅! 팅! 팅!
아이젠은 레유리에의 총알탄을 막아내며 외쳤다. 그레고리까지 다시 7량 안으로 들어오고, 마침내 7량 안은 아이젠과 사울 장로, 레유리에와 그레고리, 그리고 그들의 부하로 보이는 이들로 가득해졌다.
아이젠이 뒤로 물러서 사울 장로와 몸을 붙였다. 그레고리는 레유리에 쪽으로 다가가 섰다.
“…….”
“…….”
잠시간 조용한 적막이 흐르고.
그레고리가 가장 먼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으하하! 고작 둘만 남았군. 생각보다 결과가 좋은데?”
그러나 그의 옆에 서 있던 레유리에는 가만히 있었다. 다른 가면을 쓴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웬 놈들이냐? 너희는.”
“운타시드.”
레유리에가 대답하자 아이젠은 오히려 더 답답한 기분이었다.
“뭐? 뭔 시드?”
“이렇게 말하면 알려나? 간츠펠트의 동료들이야, 우리는.”
“……!”
아이젠의 표정이 일변도했다. 사울 장로가 조용히 물었다.
“간츠펠트라니, 그게 누굽니까?”
“이전에 제가 흉약을 보여드렸던 거 기억하세요?”
“예? 아, 예.”
그것은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다. 검은뿔 기사학교에서 카인이 흉약을 섭취했고, 아이젠은 사울 장로에게 그 배후를 조사해 달라 요청했다. 사울 장로는 몇몇 우수한 기사들을 풀어 조사를 시작했지만 어떠한 수확도 없었다. 흉약의 정체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여 있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쨌다는 겁니까?”
“그걸 만든 놈이 간츠펠트예요. 이놈들은 그 간츠펠트라는 놈의 부하들이고.”
“……!”
그제야 사울 장로도 매섭게 표정이 변했다. 아이젠은 피 칠갑한 레유리에와 그레고리의 면상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통성명 좀 하지? 너희 둘이 여기 이놈들 대가리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