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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43화 (143/201)

143화

“?!”

“이, 이반 공자님!”

기사들이 바닥에 쓰러진 이반을 부축했다. 이반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상황 파악을 했다.

자신의 뺨을 때린 것은, 저기 모니카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여자였다.

이반은 자신이 여인에게 맞았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너 뭐 하는 년……!”

“어머, 난 바네사 폰 그린우드라고 하는데. 넌 누구니?”

“……!”

바네사 폰 그린우드. 그 이름을 들은 이반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바네사는 그린우드 공작가문의 적자 중 한 명. 공작과 후작은 그 계급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반은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바네사 공자님이셨군요. 이반 데 체호프입니다.”

“이름은 말할 필요 없고. 어차피 기억 못 할 테니까.”

“…….”

“그래서, 네가 뭔데 우리 아이를 때려? 우리 그린우드의 재산이야. 재물손괴죄라고 알고 있니?”

바네사의 갑작스러운 공세에 이반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는 부어오른 뺨을 만지며 생각했다.

‘뭐야. 겨우 노예 하나 따위한테 무슨 바네사 공자까지…….’

설마, 모니카는 바네사의 성노예인 건가? 그래서 바네사가 모니카를 이렇게까지 감싸주는 건가?

‘여인이 여인의 시중을 들다니. 세상 말세로군. 하.’

하지만 이반은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이반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바네사 공자님? 모니카는 일전에 제 청혼을 받았고 그에 대한 승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승낙을 다시 편지로 번복했다고 들었는데. 내 귀가 이상한 거야?”

“…공작가와 후작가 간에 한 번 결정된 사안입니다. 겨우 편지 쪼가리로 무를 수는.”

“이상하네. ‘공작가와 후작가 간에’라니? 이 아이를 노예라고 부른 건 바로 너 아니었어? 모니카 브라이슨, 혹시 브라이슨 가문의 약속이었니?”

“네? 아, 아뇨, 공자님.”

“아니라는데?”

“…….”

이반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결단을 내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참. 이것까진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게오르크 첫째 공자는 어딨습니까?”

“…첫째 공자님은 왜 찾지?”

“제가 게오르크 그 친구랑 동창이거든요. 아, 말 안 했나요? 같은 명문학교에서 동갑내기로 친분을 쌓아왔죠.”

이것이 바로 이반이 믿는 구석. 그는 바로 게오르크와 오랜 친분을 쌓아온 사이였던 것이다. 이반은 어깨를 으쓱하며 호랑이의 위세를 짊어진 여우의 기세로 말했다.

“소가주전이 있었다면서요? 아마 보나 마나 게오르크 그 녀석이 소가주가 되었을 테죠? 소가주의 절친한 친구인 저를 이렇게 하대하려 하시다니… 이거, 실망스러운데요, 바네사 공자?”

어느새 ‘공자님’이 아니라 ‘공자’라고 부르는 이반이었다.

바네사는 천천히 이반에게 다가섰다. 이반이 의기양양하게 허리를 꼿꼿이 펴 서 있는 그 순간이었다.

빠악!

“악!”

이반이 정강이를 움켜잡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러자 기사들이 하나같이 검을 뽑아 들려 했다. 그때 바네사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다들 칼날이 털끝만치라도 나와봐.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줄 테니까. 농담 아니야?”

오싹!

기사들은 바네사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린우드의 참철검술이라면 기사들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검 손잡이만 붙잡은 채 아무것도 못 할 때.

바네사는 이반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바네사 공자! 게오르크는 어딨죠? 그 아이를 불러주십시오! 감히 내 정강이를 걷어차다니……!”

“이반 데 체호프…라고 했나?”

“뭐라고요?”

“안타까운 사실을 하나 알려줄게.”

바네사는 콧잔등이 닿을 만큼 이반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이젠 서로의 숨소리마저도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바네사가 말했다.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는 소가주전을 치르던 중 죽었어.”

“…뭣, 뭐라고?!”

“못 들었어? 죽었다구. 그러니 소가주는 당연히 게오르크가 아니지. 네 사선에 서 계신 분이 바로 그린우드의 소가주님이시다.”

이반은 반사적으로 사선에 서 있는 아이젠을 올려다보았다. 저 어린아이가 그린우드의 소가주라고? 다음 대 가주?

‘그, 그러고 보니.’

얼핏 봤을 때 앳된 외모 탓에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자세히 하나하나 살펴보니 몸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이젠 정도의 몸을 갖추려면 아마 어마어마한 수련 기간이 필요했을 터. 즉 실제로 보는 것보다 나이가 많은 건가?

“소, 소가주님을 앞에 두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이반이 고개를 푹 숙여 사죄하자, 아이젠은 얼떨결에 그의 말을 받았다.

“아니, 뭐.”

바네사는 허리를 세워 일어났다. 그리고 모니카에게 다가섰다. 바네사는 말하자면 모니카의 검술 스승. 그래서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대신 나서주는 건 여기까지다.

“모니카.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앞으로는 막아주지 않을 거야.”

“바, 바네사 공자님…….”

“선택하렴. 저 녀석을 따라 체호프 가문에 시집을 가겠어, 아니면 그린우드에 남겠어? 네가 직접 해야 해.”

바네사가 그 말을 끝으로 모니카를 스치고 지나갔다.

모니카는 잠시 결의를 다진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반에게 다가갔다. 이반이 그녀를 올려다보자 모니카는 이반의 양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모, 모니카…….”

이반이 감격하여 모니카를 껴안으려는 그 순간.

짜악!

세 번째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나가떨어진 것은 이반이었다. 그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으헉!”

이반이 분노에 찬 눈으로 모니카를 돌아다보자, 모니카는 잔뜩 상기된, 얼핏 보면 가벼운 흥분 상태 같기도 한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했다.

“맞은 거 갚아드린 거예요. 결혼은, 하지 않겠어요!”

투쟁심 넘치는 그녀의 말투에.

“와, 멋지다, 모니카.”

아이젠은 짝짝 박수를 쳐주었다. 모니카는 멋쩍게 웃을 따름이었다.

* * *

이반은 굴욕적으로 몸을 비틀어가며 기사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린우드 일가와 같은 열차를 타고 돌아갈 생각은 차마 못 한 모양이다.

“두고 보자, 모니카!”

이반의 마지막 말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경고 문구처럼 느껴졌다.

아이젠은 모니카를 보며 으쓱했고, 모니카는 바네사를 보며 으쓱했다.

“자, 이제 탈까?”

바네사의 말에 따라 그린우드의 다른 식솔들도 열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바네사는 열차에 타기 전 아이젠을 돌아보고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소가주님. 같은 기사학교에서 수련했단 사실이 제겐 영광이에요.”

“갑자기 이렇게 존댓말을 한다고요?”

“불편하세요? 익숙해지세요. 그게 소가주의 자리니까.”

“와, 굉장히 익숙해지기 싫은 불편함이네.”

아이젠이 어이없어하는데, 바네사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축하해. 내가 네 누나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그러더니 찡긋하고 마력열차에 올라탔다. 아이젠은 괜히 피식 웃게 되었다.

모두가 마력열차에 올라타도 테오발트 가주만은 타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아이젠에게 테오발트는 이렇게 답했다.

“난 그린우드 영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소가주전의 결과를 보기 위해 잠깐 왔을 뿐. 이만 다시 옥사비나로 돌아가야겠어.”

“옥사비나라면…….”

“최전선 지역이다. 너도 언젠간 와야 할지도 모르지.”

최전선 지역 옥사비나와 슌타리아. 언제나 제국과 공화국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땅이다.

아이젠은 최전선이라면 아마 더욱 많은 실전 수련치를 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되면 그것은 전부 아이젠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심히 가세요.”

“그래.”

테오발트가 그렇게 몸을 돌리고 떠나려는 때.

아이젠이 문득 그를 불러 세웠다.

“가주님.”

아이젠은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테오발트에게 다가섰다. 테오발트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느냐?”

“소가주전 결과를 보러 오셨다고 했는데.”

“그랬다만.”

“혹시 우승자로는 누구를 생각해 두셨어요?”

아이젠은 자신의 물음에 테오발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것을 눈치챘다.

테오발트는 절대 아이젠을 다음 소가주로 점쳐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로서도 처음 원형 경기장에 도착했을 땐 깜짝 놀랐을 것이다. 게오르크가 아니라 아이젠이 우뚝 서 있었으니 말이다.

피식― 아이젠이 웃자.

훗― 테오발트도 웃었다.

“그래. 네 생각대로 네가 우승자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서운하세요? 검을 쥔 자식들은 전부 나가떨어지고, 제가 우승한 게.”

“아니.”

테오발트의 표정이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검이든 권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네게 소가주가 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겠지.”

“흐음. 그렇다면, 가주님께서 보시기엔 어떤데요? 제게 소가주가 될 자격이 있어 보입니까?”

아이젠의 호기로운 물음을 받은 테오발트는 잠시 아이젠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이는가 싶더니, 얼굴에서 표정을 완전히 감췄다.

“그래. 충분하다.”

뒤이어 나온 그의 말은 표정과는 상반되게도 아이젠을 인정하는 문구였다.

* * *

아이젠은 열차 7량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욱신거리는 몸으로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좌석에 엉덩이를 붙인 채였다. 아이젠은 잠시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앉은자리에서 정좌를 틀고는 수인을 맺었다.

‘결사신권, 결자해지(結者解之).’

후욱!!

그러자 소가주전에서 있었던 모든 실전 수련치가 한순간에 아이젠의 온몸을 휘저었다. 마치 단전의 내공이 뒤흔들리는 듯한 극심한 격통 속에서, 아이젠은 신음을 흘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만 했다.

‘으윽, 아파라!’

실전 수련치는 아이젠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일 없이, 마치 구슬치기를 한 것처럼 혈관 속을 타고 흐르며 튕겼다. 그렇게 통증이 가시기까지는 약 5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후우…….”

마침내 아이젠이 심호흡을 마치자.

“괜찮으십니까?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만.”

아이젠의 옆자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사울 장로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아이젠은 몸 안에 흐르는 내공이 결사신권 5성 상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아직 6성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6성은 원래도 커다란 벽과도 같아 이만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물론 6성을 달성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조급해하지 말자.’

조급은 금물. 아이젠은 양팔에 매여 있는 아이기스를 보며 동심상의 마음을 스스로 다졌다. 차갑게 마음을 가라앉혀라, 그것이 생사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일지니.

아이젠이 사울 장로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계셨어요?”

“5분 전부터입니다만.”

“기척을 좀 내시지.”

“엄청 시끄럽게 앉았습니다? 마음이 콩밭에 가 계신 건 아이젠 소가주님이셨지요.”

“크흠. 사울 장로님도 벌써부터 소가주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그럼 제가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공자님이라 부르면 제가 가주님께 혼쭐이 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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