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그다음으로는 스미스쏜즈의 대장장이들 측이었다. 아이젠의 시선이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카론과 유진을 제외한 스미스쏜즈 모든 대장장이들이 저마다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그, 그럼 우린 이제 어쩌라고!
- 주먹을 쓰는 자가 가주가 되면 참철검도 필요 없게 될 거 아냐!
- 참철검도 못 만들면 우리가 왜 대장장이야?
- 허, 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주물 기술이 파투나게 생겼어!
술렁술렁. 이런저런 사람들의 마음이 달뜬 소리가 아이젠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들로서의 문제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영설산 만년한철의 주조(鑄造)술은 그노시스 스미스쏜즈 지역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 그 역사가 곧 끊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대장장이들로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아이젠으로서는.
‘음.’
사실 아직 별 감흥이 없었다. 소가주전 우승자라고는 해도 뭔가 제대로 수여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뭔가 한마디 해야 하나?’
아이젠이 나서서 입을 열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다들 조용.”
!!
한 남자의 음성에 갑자기 분위기가 착 내려앉았다. 중후하면서도 깊은, 어딘가 농후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 젊은 소가주 따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연장자에게서만 가능한 기품이 느껴지는 목소리.
이 목소리의 주인을 모르는 자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남자가 경기장 위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고.
마테오 백작이 가장 먼저 그의 입장을 알아보았다. 그는 일상처럼 허리 깊이 숙여 인사했다.
“테오발트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 테오발트 가주님을 뵙습니다!!!
* * *
테오발트의 등장으로 주변이 고요해졌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 했다. 정확히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테오발트의 형형한 그린 오러에 겁을 먹어서 말이다.
오드니엘 장로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테오발트 가주가 어떻게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분명 지금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고 최전방 옥사비나 지역에 있어야 할진대… 어찌 이곳에?’
의문은 쉽게 풀렸다. 옥사비나 지역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고 그 즉시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린우드 소가주전의 최종 우승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즉, 그는 조금 전까지 전쟁터에서 구르다 온 몸이라는 뜻이다.
‘여, 역시 엄청난 투기로다. 분명 피해가 막심하셨을 텐데.’
아무리 테오발트 가주라고 해도 최전선에서 구르다 왔다면 지금쯤 온몸이 만신창이일 터. 그런데 테오발트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드니엘 장로가 겁을 먹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테오발트는 경기장 위에 선 채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분명 다들 테오발트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테오발트보다 높은 눈높이에 서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는 곧 아이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담대한 아이젠이라도 테오발트의 강렬한 눈빛에는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젠.”
“네, 가주님.”
테오발트는 조용히 아이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이젠에게 내밀었다. 아이젠을 그것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가문의 인장이었다.
“이것은……?”
“들거라.”
“하지만, 전 아직 가주가 아닌데.”
“소가주의 인장이다. 네게 가주 인장은 아직 이르지.”
테오발트의 농담이었다. 아이젠은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미소 정도로 화답하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아이젠이 인장을 받아 들자, 테오발트가 다시 좌중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납득 못 하는 자가 있는가?”
그러곤 외쳤다. 그러자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무려 테오발트 가주가 직접 가문의 인장을 하사했다. 그것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검을 들지 못하는 소가주라는 타이틀이 더 이상 무슨 의미를 품을 수 있겠는가?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테오 백작이 씨익 미소 지었다.
“이로써, 아이젠 폰 그린우드 님은 소가주가 되셨습니다. 경하드립니다.”
- 경하드립니다!!
아이젠의 선창으로 모두가 소리 질렀다. 그때까지 아직 소가주라는 실감이 나지 않던 아이젠은, 이제야 조금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소가주가 된 건가.’
마침내 기나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이었다. 아이젠은 왠지 감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소가주전에서 5성도 달성했고, 아이기스라는 기연도 얻었다.’
마침내 어떤 경지에 오른 기분이다. 하지만, 아이젠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기로 했다. 애당초 그의 목표는 5성이나 소가주가 아니었다. 그의 목적지는 생사경이라는 이름으로 아득히 저 멀리 존재한다.
‘스승님. 딴 주머니 안 찬다고 했습니다, 저.’
그 생사경에 도달할 때까지, 아이젠은 스스로 다그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는 아이젠이었다.
아이젠이 생각하는 사이, 테오발트 가주는 아이젠의 맞은편에 있던 게오르크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게오르크‘였던’ 게오르크의 부스럼이었지만 말이다.
먼지처럼 흩어져 버린 게오르크를 내려다보며, 테오발트는 중얼거렸다.
“게오르크. 이것이 너의 최후로구나.”
그러더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한번 혼잣말을 이었다.
“안타깝도다, 나의 장자여.”
* * *
마력열차의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길에는 행렬이 형성되어 있었다. 전부 그린우드의 식솔들이었다. 개중에는 마차도 있고 마상에 있는 자도 있었으나 아이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젠은 가장 앞에 있는 마차 안에서 테오발트와 단둘이 있었다.
그럼 테오발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이젠은 지금 무슨 상황인고 하니.
‘모, 못 움직이겠어.’
무례하게도 의자 위에 누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젠은 지금 단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 걸음은커녕,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창칼이 온몸의 급소를 구석구석 찌르는 느낌이었다. 아이젠이 비명을 내지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봐야 했다.
‘와. 진짜. 진짜로 너무 아파.’
강망태신을 중복으로 사용한 반동이었다. 아이젠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후회하는 마음까지 들려 했으나, 애초에 그 방법이 아니었다면 게오르크를 이길 수는 없었을 테니 도리가 없었다. 잊고 지금 이 아픔을 만끽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젠은 입 밖으로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테오발트가 앞에 있는 만큼 그럴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제가 지금 너무 아파서.”
“소가주전 직후이니 어쩔 수 없겠지. 괜찮다.”
덜컹! 그때 마차가 돌부리에라도 걸렸는지 들썩거렸다. 아이젠은 명치를 찔리는 느낌을 받고 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괜찮으냐?”
“아, 아뇨. 죽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
아이젠은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이 어색한 기류만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침묵이 길어지기 전 넌지시 테오발트에게 말했다.
“못 오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랬지.”
“…….”
“…….”
소란은 오래가지 않고 침묵만 이어졌다. 아이젠은 차라리 모니카라도 옆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포기하기로 했다. 소가주와 가주가 대면하는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이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때 테오발트가 입을 열었다.
“축하한다, 아이젠.”
“네?”
“결국 네가 말한 대로 됐으니 말이다. 주먹이나 검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했지.”
“아.”
“그린우드 역사상 설마 주먹을 쥔 가주가 탄생할 줄이야. 놀라운 일이다.”
“아직 가주는 아닌데요.”
“미래형이지.”
“음.”
아이젠은 신음했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질문했다.
“게오르크는… 어떻게 되나요?”
그린우드도 바보가 아니다. 조사 결과 게오르크가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게오르크가 가루가 되어 사라진 뒤 아모스의 약병만은 남아 있었는데, 그 약병 안에서 아모스의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약물을 사용해 소가주전에 진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린우드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테오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도 결국은 내 아이다. 시신은 수습해 줘야겠지.”
시신이랄 게 없겠지만, 그가 입은 옷은 남아 있었으니. 그 옷들을 대신 염해 장례를 치러줄 모양이다. 아이젠은 왜인지 자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덜컹! 마침내 마차 행렬이 멈춰 섰다. 아이젠은 흔들리는 마차 탓에 결국 앓는 소리를 냈다.
“끄아아…….”
“괜찮으냐?”
“괘, 괜찮, 아니, 안 괜찮아요.”
마차 행렬이 멈춘 이유는 간단했다. 마력열차 선착장에 도착한 탓이다.
이곳 선착장은 오늘날 현대의 선착장과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닥에 철로 대신 긴 나팔관 같은 것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마력열차는 이름처럼 마력을 이용해 달리는 열차이므로 동력은 기름이 아니라 사람의 마력을 쓴다. 마력열차 소속의 마법사들이 열차가 출발하기 전 미리 마력을 주입해 놓으면, 마력열차의 고도화된 기술로 그 마력을 에너지화하는 것이다. 그 원리는 현재 제국 내에서도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마차에서 내렸다. 한스나 바네사의 얼굴도 보였고, 뒤편에는 사울 장로의 얼굴도 보였다.
아이젠은 먼저 내린 테오발트를 따라 후들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바들 떨렸다.
“와. 와하하. 우하.”
그가 흙바닥 위에 내려서자 사울 장로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력열차가 도착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다들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오.”
그 말에 웅성거리며 흩어지는 사람들이었다. 테오발트도 잠시 멀리 가고, 아이젠에게 다가온 것은 역시나 다름 아닌 모니카였다.
“도련, 아, 아니, 소가주님. 괜찮으세요?”
“바로 호칭 바뀐 거 봐라. 너 굉장히 기회주의자였구나.”
“말은 똑바로 해야 하니까요! 소가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집사장님께서 경을 치실 거예요.”
“그래라. 아이고, 죽것다.”
“거, 거긴 흙바닥인데.”
아이젠이 체면 차릴 기색도 없이 흙바닥 위에 발라당 누워버리자, 모니카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그의 모습을 가렸다.
“체통 없이 이러시면 어떡해요, 소가주님! 얼른 일어나세요!”
“일어날 수 있었으면 진작 그랬지. 나 지금 진짜 입 벙긋할 힘도 없거든? 웬만하면 좀 조용히 있자.”
“하, 하지만 그래도…….”
“소가주로서의 명령이다.”
“앗, 그렇다면.”
“이 자식이. 권위에 눌리지 말란 말이야. 뚝심 있게 살라고.”
그때 아이젠과 모니카 쪽으로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아이젠은 누운 채로 그를 맞이해야만 했다. 도저히 일어설 힘이 없었으니.
“철이. 좀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