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설마?’
바로 그 설마였다.
휘익!
게오르크는 자신의 몸도 시계 방향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그러자 왼팔의 반동이 게오르크의 몸과 주파수를 맞춰 돌았고, 이내 팔을 휘돌던 회혼의 기운이 멈추었다.
게오르크의 왼팔은 쇄고에 맞았음에도 불구, 가벼운 타박상 정도에 머물렀다.
“…….”
“후우, 제법이구나, 아이젠.”
제법이라고?
아이젠의 이마에서 삐질 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는 씨익 웃고 있었다.
“그건 제가 할 말인데요, 공자님.”
재밌다. 게오르크는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놈이었다.
게오르크의 눈동자가 파리하게 흔들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아직도 제대로 된 힘을 발현하지 않는 중이었다. 아이젠 역시도 한스 때처럼 가볍게 이겨 넘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젠은 예상보다 강한 힘을 내고 있다. 아이젠이 주먹을 쓴다는 말은 몇 번 들었으나 실제로 맞붙어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아이젠의 권법은 기대 이상이었다.
“후후.”
그래서 게오르크는 실실 웃었다. 자신이 패착을 둘 뻔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웃음이었다.
“뭐가 웃기신지.”
“아니다. 오늘 너와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어 다행이구나.”
“…….”
“그럼, 이제 제대로 해보자꾸나. 동생아.”
아이젠은 사신강림의 힘을 온몸에 불어넣었다. 게오르크의 분위기가 변했다. 게오르크는 이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할 듯이 보였다.
그렇기에 아이젠도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이 결승전 경기에 쏟아붓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어차피, 이다음 경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결승전이 끝나면 마력열차를 타고 그린우드 부지로 귀환하게 되어 있다. 아이젠이 말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집까지 갈 일은 없다는 뜻이다.
‘즉.’
다시 말해 아이젠은 여기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더라도 상관없었다.
‘결사신권, 사신강림: 강망태신(江望太神).’
슈우우.
푸화악!
아이젠의 몸에서 한순간 내공이 전부 가라앉았다가, 폭발적으로 솟아올랐다. 회혼의 기운이 파도처럼 아이젠의 피부 위에서 춤췄다.
그걸 바라보던 게오르크 역시 자신의 온몸에 그린 오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이젠, 넌 기껏해야 사울 장로나 바네사 정도와만 대련을 해왔겠지. 사울 장로는 파생검술의 달인인 만큼 뛰어난 실력자이지만 참철검술에 비견될 바는 아니다. 보여주마. 참철검술의 진수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게오르크의 그린 오러가, 그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게오르크의 신체 전체가 마치 연녹색 빛으로 빛나는 듯했다가, 이내 그 오러의 색깔이 지워졌다.
단지 색이 흐릿해졌을 뿐 아이젠은 여전히 게오르크의 온몸 위에 연녹색 빛 오러가 끼얹어져 있음을 알았다.
게오르크가 나지막이 말했다.
“참철검술 5성, 오러 아머.”
팡!
아이젠이 먼저 게오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이젠은 주먹에 회혼을 싣고 시선마저 흐릿해질 만큼 빠른 속도로 게오르크에게 접근했다. 목롱보를 쓴 것이었다.
목롱보(目弄步)는 글자 그대로 눈을 희롱하는 보법. 그렇기에 게오르크 역시 미처 아이젠의 목롱보를 따라잡지 못했다.
아이젠은 기회를 노리고 게오르크의 좌반신에 접근해, 그의 간 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결사신권 회혼, 철권!’
뻐억!!
주먹은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아니, 적어도 아이젠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아이젠이 때린 것은 게오르크가 아니었다. 게오르크의 몸 위에 도포된 그린 오러이지.
치이이익. 게오르크는 반동으로 밀려나긴 했으나 타격을 입은 기색은 아니었다. 오러 위를 때린 아이젠의 철권은 그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우드득.
아이젠의 주먹 뼈에만 금이 갔다. 으스러질 듯한 소리에 게오르크가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으냐? 소리가 심상치 않은걸.”
“금창약 바르면 나아요.”
“과연 그럴까!”
게오르크는 아이젠의 주먹을 한번 맞아준 것에 불과했다. 오러 아머는 웬만한 공격으로는 뚫을 수 없는, 말하자면 절대방패와도 같은 기술. 아이젠의 주먹이 아무리 단단할지라도 게오르크의 오러 아머는 격이 다르다.
“참철검술, 성진(星進: 별이 나아가다)!”
슈팟!
게오르크가 찌르기로 아이젠의 몸을 관통했다. 아이젠은 게오르크의 참철검 라니에가 배를 꿰뚫려 하는 그 순간 몸을 180도 회전해 간신히 공격을 튕겨냈다.
후두둑!
라니에는 아이젠의 뱃가죽만을 긁어냈고, 덕분에 피가 바닥에 수놓이긴 했지만 아이젠은 무사했다.
“끙.”
아픈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이젠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금 주먹에 회혼을 담았다. 이번엔 양손이었다. 왼쪽에는 철권, 오른쪽에는 쇄고.
‘결사신권, 쇄고!’
파방!
아이젠은 우선 쇄고를 이용해 오러 아머를 강타했다. 쇄고는 내공을 한 점에 응축시켜 공격하는 기술이니만큼 오러 아머를 뚫는 데 더 용이했다. 주먹이 망치라면 쇄고는 송곳이었다.
으드득!
그러자 게오르크의 오러 아머가 움푹 패는 것이 보였다. 아이젠은 지체하지 않고 이번엔 철권을 날렸다.
‘철권!’
퍼엉!
아이젠의 철권이 움푹 팬 부분의 오러 아머를 강타했다. 이것은 말하자면 망치로 정을 찍는 것이었다. 오러 아머는 더 깊게 움푹 팼고.
“윽!”
퍼엉!
덕분에 게오르크도 반동으로 멀리 날아가 경기장 내벽에 부딪혔다. 잠시 먼지가 일었지만 게오르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게오르크의 오러 아머에 타격은 있었으나 그의 몸에는 여전히 상처 하나 없었다.
“후. 대단하구나, 아이젠. 대체 언제 그 정도의 권법을 익힌 거냐?”
“상처 하나 없으시네요. 너무 사기네.”
“…내가 참철검술 5성에 오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순 없을 텐데 말이지, 아이젠.”
“사기적으로 대단하다는 뜻이었는데. 뭐 귀에는 뭐만 들리는 법이겠죠. 오해하지 마세요, 공자님.”
으득. 아이젠의 노골적인 말장난에 게오르크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나 자신이 경기의 우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곤 거만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게오르크는 검을 들어 올린 채 양손을 벌렸다. 마치 만세를 하는 자세였다.
“아이젠. 정말 마지막으로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 기권하는 게 어떻겠느냐? 기권하면 넌 소가주가 될 순 없겠지만, 네 편의는 최대한 봐주도록 하마. 많은 하인들과 많은 재물, 또 따로 영지를 내줄 수도 있어. 나쁜 조건은 아닐 텐데?”
“네, 그렇네요.”
“그렇다면?”
“그래도 기권은 안 해요.”
“…왜지? 아직 힘의 격차를 덜 느꼈기 때문인가?”
“설마요. 그냥…….”
아이젠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편법으로 강해진 놈한테 패퇴해 물러날 생각은 없어서.”
“…뭐라고?”
“게오르크. 당신이 아모스를 쓴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 헤르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니까. 설마 헤르만이 누군지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
게오르크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헤르만의 이름을 들은 그의 얼굴은 금세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당황하지 않은 척 애를 쓰며 게오르크는 말했다.
“헤르만을… 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죽였다. 내가.”
“뭐라고?”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앞으로 아모스를 못 얻어먹는단 얘기지.”
“……!”
아이젠은 말하는 한편 주먹에 힘을 넣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망태신의 유지 시간은 팽팽 돌아가고 있다.
아이젠은 지금 어마어마하게 강한 상태이지만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상태이기도 하다. 마치 외줄 타기를 하듯 내공을 쏟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결사신권 5성의 진수를 선보이기로 마음먹었다.
“참철검술 5성이라고 했던가? 우연이네, 나도 내 권법이 5성에 오른 지 얼마 안 됐거든. 시험해 보자. 당신의 검술이 위인지, 아니면 내 권법이 위인지.”
“…형에게 반말을 하면 쓰나, 아이젠.”
“당신 같은 형 둔 적 없어.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아이젠은 공격을 시작할 준비를 끝마쳤다.
“당신은 곧 ‘폰’의 이름을 쓸 수 없게 될 거야.”
파앙!
아이젠이 무음목랑보로 게오르크에게 접근했다. 그의 주먹에는 철권보다도 더 많은 양의 회혼이 실려 있었다. 표현하자면 쇄고의 힘이 철권의 영역으로 넓어진 만큼의 회혼을 쓰고 있었다.
즉 이 한 번의 주먹에 그의 내공이 아주 많이 들어가 있었다.
아이젠은 주저없이 주먹을 뻗었다.
‘결사신권, 섬광권기(閃光拳氣)!’
슈욱…….
파앙!
아이젠의 주먹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허공에서 잠깐 동안 사라진 듯 보였다. 모니카나 제이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 일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는 방주들이나 장로들, 그리고 마테오 백작 정도였다.
아이젠의 주먹은 단순히 음속을 돌파한 정도가 아니었다. 섬광권기는 사신강림 강망태신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무공.
섬광에 필적하는 속도로 빠르게 주먹을 휘둘러 적의 급소를.
퍼버버버버벅!
다회 타격하는 기술이다.
“……?!”
게오르크는 뭐가 옆구리에 맞았는지 눈치채지도 못한 기색이었다. 그의 몸이 기우뚱 꺾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의 옆구리가 움푹 패고 그 위에 도포돼 있던 오러 아머가.
카앙!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박살 났다. 게오르크의 노출된 옆구리는 아이젠의 섬광권기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퓨퓨퓨퓨퓩!
마치 칼로 찌른 것만 같은 소리,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주먹이었다.
게오르크는 ‘빛’에 맞아 입을 벌렸다.
“크아아악!!”
슈욱! 콰광!
그리고 어김없이 멀리까지 날아가 경기장 내벽을 박살 냈다. 이번엔 아까 부딪힌 곳의 정반대 편이었다.
조금 전의 게오르크는 벽에 부딪혔음에도 금세 일어났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모래바람이 일고 먼지가 불어도 게오르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꿈틀하더니,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오르크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윽… 이, 이 자식, 아이젠…….”
주륵! 게오르크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아이젠의 섬광권기는 게오르크의 오러 아머마저 꿰뚫었고 그건 게오르크에게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때까지 그 누구도 자신의 오러 아머를 뚫어내지 못했는데, 아티팩트도 아니고 한낱 주먹에 관통당하다니.
게오르크는 자신의 참처럼 라니에를 꽉 쥐었다.
“아이젠! 봐주면서 하는 건 이제 끝이다.”
“봐준 거였어? 난 또 전력을 다한 줄.”
“…이 자리에서 네 목을 베겠다, 아이젠. 울고불고 살려달라고 빌지나 마라!”
게오르크는 라니에를 비틀어 잡았다. 그러자 라니에에서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린 오러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 직후 게오르크의 몸으로부터 반경 약 5m에 달하는 초록색 실선이 그려졌다.
“라니에를 그냥 보기 좋은 검이라고만 생각한 건 아니겠지? 아티팩트 라니에에 담긴 힘은 ‘영역 선포’. 이 그린 라인 안에 들어선 나는 좀 전보다 배 이상 강해졌다.”
“오호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이젠의 결사신권이 영역의 형태로 개전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