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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34화 (134/201)

134화

【 결승전 】

“어디 보자.”

본선 결승전. 아이젠은 복도를 걸어 경기장 위 바닥 위에 섰다. 왜인진 몰라도 몸이 조금 가벼웠다.

아직 무혈신공을 운공하려면 5분 정도가 더 필요했지만, 이 두 주먹만 있다면 뭐든지 날려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후.”

아이젠이 가볍게 숨을 뱉을 때, 반대편에서 게오르크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이젠과 게오르크는 마테오 백작을 가운데 두고 서로의 눈을 맞췄다.

“…….”

“…….”

서로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지만.

게오르크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기권하라는 말을 잊지 마라’. 아이젠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헛소리 집어치워’.

마테오 백작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두 사람의 중앙에 맞춰 섰다.

그때 아이젠은 주변 소음이 완전히 지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관객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가문의 장로들, 방주들, 하인들, 그노시스의 모든 주민들과 대장장이들까지. 어느 하나 빠진 자리 없이 객석이 빼곡하게 메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 모두 긴장에 빠져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장로들이나 방주들이라면 이때쯤 게오르크가 더 우수하다느니, 검을 쥐지도 못하는 아이젠에게 그린우드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느니 하고 슬슬 떠들어야 제격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타는 듯한 열기와 가라앉은 적막감. 그것이 되려 아이젠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고조시켰다.

“후우.”

“긴장되느냐? 아이젠.”

아이젠이 길게 심호흡하자 게오르크가 물었다. 아이젠은 고개를 들어 맞받아쳤다.

“긴장되세요?”

“내가? 훗. 내가 그럴 리 있겠느냐. 너를 상대하는 정도로 긴장하진 않는단다.”

“네, 저도요. 공자님을 상대하는 정도로 긴장하진 않죠.”

“…….”

게오르크의 심사가 뒤틀린 듯 보였으나, 아이젠은 천연덕스레 고개를 돌렸다.

마테오 백작이 시선을 의식하고 입을 열었다.

“그럼… 결승전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파직!

마테오 백작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침내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고오오오―

그러나 아이젠과 게오르크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은 이어졌고 침묵만이 자리했다.

그 고요함을 먼저 깬 것은 게오르크였다.

“분명 기권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아이젠. 충고를 무시하는구나.”

“충고? 그게 무슨 충고예요, 그냥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거지.”

“…그래서, 나랑 해보겠다는 것이냐?”

“네. 그런 건데요.”

아이젠이 순박하게 대답하자, 게오르크의 이마에 서 있던 핏줄이 다시 한번 섰다.

스릉― 그의 허리춤에서 참철검이 뽑혀 나왔다.

“난 분명 기회를 줬다, 아이젠. 내 친애하는 동생아. 안타깝구나, 널 여기서 죽이게 되다니.”

“검이 예쁘시네요.”

“아티팩트 ‘라니에’. 내 참철검에 베이더라도 원망하진 말거라. 네가 자초한 일이니.”

스륵.

한순간 게오르크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일렁이는 것처럼 배경에 녹아들더니 모습을 감춘 것이다.

기감을 펼칠 수 없는 아이젠으로서는 오직 두 눈으로만 게오르크를 추적할 수밖에 없었고.

슈팟!

아이젠은 게오르크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번 경기에서 아우구스트에게 베였던 허리에 또다시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끙.’

그러나, 여기서 그냥 맞아주는 것은 아이젠의 방식이 아니다.

덥석!

아이젠은 허리를 베인 채로 게오르크의 참철검 칼날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라니에는 아이젠의 손을 자를 듯 날이 서 있었지만 아이젠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랑곳없었다.

이쯤 되니 당황한 것은 게오르크 쪽이었다. 게오르크는 화급히 라니에를 빼내려 했으나, 아이젠은 꽉 잡고 놔주질 않았다.

“어이, 공자님.”

“?!”

“이거나 드세요!”

빠악!

아이젠은 그대로 머리를 들이밀어 게오르크의 코를 강타했다. 내공 따위 싣지 않은 공격이었으나 게오르크는 충격을 받고 뒤로 물러났다.

“으큭!”

그의 코가 시뻘게졌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왼쪽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타격은 있었던 모양. 게오르크는 분노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라니에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이놈!”

화아앗! 아이젠은 거센 바람이 부는 것으로 게오르크의 다음 일격을 예측했다.

“참철검술, 속동검격!”

츠팟!!

그리고 예측은 꼭 들어맞았다. 아이젠은 왼쪽 몸통을 노리고 들어오는 게오르크의 검을 피해 몸을 비틀었다.

아이젠의 육신이 허공에서 한차례 크게 휘돌았다.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게오르크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참철검술, 역근검격!”

콰앙!

게오르크가 회전축으로 디딘 발이 바닥을 부쉈다. 뒤이어 휘둘린 라니에에 아이젠은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

샤악!

다행히 살짝 뛰어 치명상은 피했지만, 아이젠은 왼쪽 가슴을 크게 베였다. 가슴 정중앙부터 겨드랑이선까지 길게 쭉 찢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아야야.”

고통스러웠지만 이 정도면 선방한 것이었다. 피하지 못했다면 아이젠은 딱 이 상처만큼 몸이 잘려 나갔을 테니.

“후우.”

아직인가?

아직이었다. 무혈신공을 운공하기까지는 아주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타닷!

그리고 그 시간을 게오르크가 흘러가게 놔둘 리 없었다. 게오르크는 곧바로 박을 박차올라 아이젠에게 라니에를 휘둘렀다.

“참철검술, 연풍참!”

쉬이익!

파앙!

아이젠은 다리를 길게 뻗어 게오르크의 손목을 받아쳤다. 게오르크의 라니에가 미처 휘둘리기 전에, 아이젠이 그의 손목을 발로 디뎌 멈춰 세운 것이다. 아이젠의 발이 조금이라도 빗나갔다면 그는 이미 몸이 두 동강으로 잘렸을 것이다.

뿌득! 게오르크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아이젠!”

휙!

촤악!

게오르크는 곧장 손목을 빼 아이젠을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아이젠은 반보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지만 칼날이 예상보다 길어 그의 종아리가 길게 베이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피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잠깐 소강상태가 되고 보면 아이젠의 몸은 이미 피로 범벅된 상태였다. 아이젠은 생각했다.

‘모니카가 안절부절못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만.’

제이슨이 알아서 잘 달래줘야 할 텐데. 신경 거슬리니까.

“이제 어쩔 셈이냐, 아이젠. 넌 벌써 내게 세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근데 안 죽었죠.”

“내가 아직 오러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너라면 모르지 않을 텐데? 정말로 내가 온 힘을 다하길 바라는 건 아닐 테지…….”

게오르크의 말대로, 그는 아직 오러를 100% 운용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게오르크의 몸에 그린 오러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단한 기백이시군.”

“다시 한번 권유하겠다, 아이젠. 기권하거라.”

아이젠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싫다니까.”

뻐억!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이젠의 주먹이 쏜살같이 게오르크의 명치를 가격했다. 게오르크는 갑작스러운 일격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눈을 크게 키웠고, 아이젠은 밀어 넣은 주먹에 내공을 담아 밀어냈다.

‘회혼(灰混)!’

이제 무혈신공을 다시 운공할 수 있게 되었다.

파앙!

회혼이 소용돌이치며 게오르크를 뒤로 밀쳤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고작 몇 걸음 정도밖에 물러서지 않았고 그는 쉽게 방심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참철검술―”

‘결사신권―’

아이젠의 회혼이 온몸에 둘렸고, 게오르크도 자신의 그린 오러를 온몸에 둘렀다.

“역근검격!”

‘회혼, 철권(鐵拳)!’

콰앙!!

아이젠의 주먹과 게오르크의 라니에가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거대한 소음과 함께 소닉붐이 발생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관객석의 대부분은 흩어지는 모래바람 탓에 얼굴을 가려야 했다.

“꺄악!”

“윽!”

“무슨 일이야!”

그러나 아이젠과 게오르크는 그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두 사람의 결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젠은 모래바람 탓에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게오르크에게 빠르게 접근했고.

‘결사신권, 사신강림(死神降臨)!’

푸화악!

온몸에 사신강림의 힘을 담았다. 그리고 주먹에 회혼을 품어 게오르크의 가슴팍을 향해 날렸다.

‘결사신권 회혼, 철권!’

태앵!

그러나 게오르크도 샌님은 아니다. 그는 라니에를 들어 아이젠의 주먹을 본능적으로 막아냈다. 두 사람이 바들거리며 힘겨루기를 했다.

“아이젠…!”

“힘 좀 써보시죠, 게오르크 공자님.”

아이젠은 호칭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 개자식아.”

으드드득!

게오르크의 라니에는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데다 제작자의 정수를 담은 아티팩트였다. 지안니의 아이기스나 테오발트의 에레디아만큼의 보물은 아니어도, 아마 제국 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위용을 뽐내는 물건.

그런데 그런 라니에가, 아이젠의 주먹에 힘이 밀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으으…윽!”

게오르크의 손아귀 힘이 부족한 탓이었다. 라니에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지만 게오르크가 손에 쥔 힘은 아이젠의 주먹을 감당하지 못하고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게오르크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질렀고.

“큭!”

아이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먹을 길게 뻗었다.

‘결사신권 회혼, 철권!’

회혼의 힘을 듬뿍 담아서 말이다.

퍼어억!

우두두둑!

아이젠의 주먹은 게오르크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게오르크는 상상을 초월하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젠의 주먹이 이대로 쭉 뻗어 나간다면 게오르크의 갈비뼈는 으스러지고 심장에도 막대한 타격이 갈 것이다. 게오르크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게오르크는 최선의 방법을 택했다.

탱그랑! 라니에를 손에서 놓아버린 그는 아이젠의 양손을 붙들었다. 자신의 그린 오러를 양손에 가득 싣고서 말이다. 덕분에 뻗어 나가야 했던 아이젠의 주먹은 멈춰 서고 말았다.

“크윽……!”

‘똑똑하시네.’

이미 철권에 맞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 게오르크의 갈빗대 몇 개는 벌써 실금이 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주먹이 완전히 뻗어지기 전에 막는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젠이 이대로 게오르크를 손아귀에서 놔주리라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었다.

“손 한 쪽은.”

“뭐?”

“못 쓰게 해드리죠.”

아이젠은 뻗었던 주먹을 재빨리 거뒀고, 짧은 순간 양손 검지 끝에 온몸의 회혼을 모아 담았다. 그리고 게오르크의 양팔 중 더 가까이 있던 왼팔에 그 회혼을 찔러 넣었다.

‘결사신권 회혼, 쇄고!’

슈우욱!

으드드드득!!

게오르크의 왼팔을 비집고 들어간 아이젠의 회혼이, 그의 왼팔을 비틀어놓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우두두둑!

게오르크의 왼팔에서 마치 뼈가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그의 왼팔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쇄고에 담겨 있던 회혼이 그의 팔을 결딴내려는 시도였다.

게오르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짧은 사이 계산을 마치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아이젠이 그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설마?’

바로 그 설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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