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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32화 (132/201)

132화

‘어차피 내가 지은 이름이라면… 그래, 그러면 이 오러는 ‘현무기공(玄武氣功)’이라고 이름 붙일까.’

아이젠의 생각에 무혈신공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름 붙이기를 현무기공.

글자 그대로 현무의 기공을 쓰는 것이기에, 즉석에서 떠오른 것치고는 적합한 명명이라고 생각했다.

[‘현무기공’? 야, 누구 맘대로 내 이름을 갖다 쓰는 거야!]

‘이름은 약속에 불과하다며?’

[…….]

‘뭐야? 야.’

현무는 조용해졌고 그 후로 아이젠이 여러 번 불러도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젠은 아이기스를 툭툭 쳐보기도 했으나 현무의 목소리는 그대로 멎었다.

아이젠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아우구스트를 향해 걸어갔다. 느리게 걸었음에도 아우구스트는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로 아이젠을 내려다보았다.

아우구스트의 눈이 이렇게 묻는 듯했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래서 아이젠은 대답해 주기로 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이다.

“음. 아우구스트, 네 몸을 얼렸다.”

“…….”

“걱정하진 마. 그렇다고 뼛속까지 얼려 버렸다는 건 아니니까. 생명에 위협은 없을 거야. 하지만 어쨌든, 넌 지금 내 손아귀에 승패가 달려 있는 상황이지.”

“…….”

아우구스트의 눈빛이 희미해졌다. 그는 이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패배했음을.

아이젠이 손 끝을 아우구스트의 이마 위에 올렸다. 아우구스트는 필사적으로 부들부들거리고 있었다. 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힘쓰고 있는 듯했다.

‘프란츠 형님을 대신해서! 내가 반드시 소가주가 되어야만 해! 그게 페르디난트 3 방주님께 보답할 유일한 길이란 말이다!’

아우구스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차갑게 정지한 입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혓바닥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젠은 아우구스트의 생각을 읽진 못해도 눈동자에서 그런 필사의 기운을 어느 정도는 헤아렸다. 하지만.

“그럼 나보다 강했어야지.”

아이젠에게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동정심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가 져줄 수는 없잖아. 왜, 억울해? 참철검도 못 쓰는 나한테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게?”

“…….”

아이젠이 아우구스트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럼 나보다 강해져라.”

툭!

아이젠은 아우구스트를 밀었고.

기우뚱.

아우구스트는 뒤로 기우뚱 밀려나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얼어붙은 몸이었지만 유리로 된 것처럼 깨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한 패배자의 형상이었다.

파직! 그와 거의 동시에 마테오 백작이 나타났다. 마테오 백작은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아우구스트를 일별하고는, 아이젠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이젠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마테오 백작도 덩달아 웃게끔 하는 미소였다.

“제2 경기의 승자는, 아이젠 폰 그린우드 공자님이십니다…….”

마테오 백작의 낮은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관객석에서는 어떠한 환호성도 나오지 않았다.

* * *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아이젠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대략 30분여 정도. 시간이 많이 없었고 그렇기에 아이젠은 서둘러야 했다.

아이젠의 옆에서는 그림자의 형상을 한 제이슨이 따라 걷고 있었다.

“어디로 데려다 놨다고?”

헤르만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제이슨이 대답했다.

“기사들에게 맡겨두었습니다.”

“어떻게? 넌 지금 기사들한테 모습을 들키면 안 될 텐데.”

제이슨은 흑기사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다. 도처에 깔린 게오르크의 수하들에게 시선이라도 끌린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믿을 만한 놈들에게 맡겼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너야. 너 괜찮냐고.”

“…아하. 가, 감사합니다. 저 역시 괜찮습니다.”

“그렇다면야.”

“크흠.”

제이슨은 멋쩍은 듯 웃더니 문득 아이젠의 허리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뭐가?”

“피가 흐르십니다.”

아이젠의 옆구리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바닥에 피로 된 길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가벼운 상처야.”

“가볍다고요? 그린 오러에 베이신 것 같습니다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해.”

촤악!

아이젠은 기사들의 임시 막사 장막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안에 서 있던 기사 둘이 아이젠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흰 이만.”

두 기사는 아이젠에게 더 묻지도 않고 막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이젠은 옆에 서 있던 제이슨에게 눈으로 해명을 요구했다.

“두 녀석 다 제 죽마고우입니다. 기사로서의 신념보다는 친구들 간의 우정을 더 중시하는.”

“좋은 기사는 아니네.”

“좋은 친구들입니다.”

더 묻는 것도 어색한 일인지라 아이젠은 거두절미하고 기사들이 가로막고 서 있던 침대 위로 다가갔다. 침대 위에는 헤르만이 잠들어 있었다. 제이슨의 ‘졸음의 파도’가 아직도 효과를 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젠은 아직도 천차횡도의 여파로 내공을 쓸 수 없었지만, 주먹에 하아 바람을 불고는 헤르만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퍽!

“크헉! 뭐, 뭐야! 어디지, 여긴!”

“입 다물어. 재갈 물린 채 팔다리를 잡아 뜯는 고문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아이젠의 살벌한 협박이 통했는지, 헤르만은 바로 상황 파악을 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았다. 아이젠은 희미하게 빛나는 아이기스를 보여주었다.

“혹시라도 액상화를 통해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킬킬킬. 아, 안 해.”

“웃음소리가 묘하게 열 받네.”

“워, 원하는 게 뭐지?”

헤르만이 굽실거리는 태도로 나오자, 아이젠은 꽉 쥐었던 주먹에 힘을 풀었다.

“빨라서 좋다. 내가 네놈들 대장이랑 약속한 게 하나 있거든.”

“킬킬. 약속?”

아이젠은 요아힘과 약속을 하나 했다. 지는 쪽이 이기는 쪽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요아힘이 패했고, 다만 요아힘은 현재 죽었기에 아이젠은 그 책임을 헤르만에게 물을 생각이었다.

“너희가 계속 언급하는, 그 ‘그분’이라는 건 누구지?”

“킬킬킬. 단도직입적이군.”

헤르만은 웃었지만 그 뒤에는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었다. 헤르만의 미간에서 땀이 삐질 흘러내리는 게 엿보였다. 아이젠은 허리를 숙여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누구냐. 말해라.”

“…물 한 잔만 갖다 주겠나?”

아이젠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주먹으로 코뼈를 부러뜨릴 수도 있겠지만, 쉽게 흥분하는 이 성격을 고쳐먹기로 마음먹은 이상 일단 해달라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아이젠은 제이슨에게 눈짓했고, 제이슨은 곧 뒤에서 차를 작은 컵에 따라 헤르만에게 가져다주었다.

헤르만은 컵에 담긴 차를 마시지도 않고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킬킬. 그거 아나? 우리가 그분을 모시는 이유…….”

“글쎄. 왜지?”

“우리는 모두 나약했기 때문이지. 요아힘 님, 발터, 블렌하임, 그리고 나까지… 모두 나약했지만 그분의 오러를 알약화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갖출 수 있게 됐다. 그분은 나의 정체성이시지. 예술적인 분이야.”

말이 길어지는 꼴을 보아하니 쉽사리 말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이젠은 제이슨에게 은밀히 손짓했고, 제이슨은 자신의 아티팩트 백검을 살짝 뽑았다.

헤르만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그분의 존함조차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다…….”

“그놈이 내 룬을 노리는 이유는?”

“킬킬킬. 그야 그분께서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룬이 있어야만 하니까.”

“그러니까 왜.”

말하자면 영설산에서 아이젠이 노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연한 일이 아니라 그 그분이라는 작자가 아이젠을 원했기 때문이란 거다.

블렌하임은 귀족을 박멸하겠다는 핑계로 아이젠을 노렸지만 그 역시 실상은 그분이란 녀석의 하청일 뿐.

아이젠은 자신의 가슴 안에 내려앉아 있는 이 룬의 힘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대단한 것인지 미약한 것인지도 알지 못했고, 앞으로의 아이젠에게 있어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도 알지 못한다.

아이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그분이 아이젠의 룬을 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알려줄 수 없지.”

헤르만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손끝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젠은 아직 무혈신공을 운공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결사신권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제이슨.”

슈팟!

제이슨은 아이젠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백검을 뽑았고, 냅다 헤르만의 목과 어깨 사이를 그었다. 예리한 칼날이 헤르만의 목덜미를 섬세하게 베며 핏방울조차 튀지 않는 완벽한 상처를 만들어냈다.

“크아악!”

“액상화를 쓰는 순간 손가락이 잘릴 거다. 쉬운 일이야. 그분이라는 건 누구지? 지금 어디 있어?”

이렇게 말하니 마치 아이젠이 헤르만을 고문하는 듯한 행세가 되었으나, 아이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헤르만은 예의 그 기분 나쁜 웃음소리로 킬킬 하고 웃었다.

“그분께서! 어디 계신지 넌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 네가 살아 있는 한 그분께서 널 찾아낼 테니까.”

“내가 찾아가도 되는데.”

“킬킬킬킬. 찾아가? 네가? 우스운 소리… 그분께선 아무것도 찾아오길 바라지 않아. 오직 스스로 움직이길 원하신다.”

헤르만의 눈동자가 핏발로 섰다. 죽음을 각오한 자의 얼굴이었다. 아이젠은 그의 표정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틀렸군.’

아이젠이 제이슨에게 처형을 명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간츠펠트 님께 영광 있으라!”

헤르만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 그 손은 거대한 칼날의 형상이었다. 아마 삽시간에 액상화와 고체화를 번갈아 사용해 손을 통째로 검으로 만들어버린 모양이었다.

헤르만이 그 커다란 검으로 자신을 공격하려나 싶어 아이젠이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을 앞세우는 그때였다.

푸욱!

헤르만이 찌른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의 목덜미를 파고든 칼날 틈새로 검붉은 빛깔의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아이젠은 아차 싶었으나 도리가 없었다.

“자결인가.”

헤르만은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아마 아이젠이나 제이슨의 집요한 고문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분이 어디 있는가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배신할 바에는 자결을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충성심 있는 부하가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간츠펠트라고?’

그것이 바로 ‘그분’의 이름인가.

어디 있는지는 안 알려줄 거면서 왜 이름은 밝혔는지는 의문이었으나, 아이젠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름을 알려준다는 건 그 이름을 알아낸들 아이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했다.

제이슨이 말했다.

“간츠펠트라고 했습니다. 이름을 토대로 주변 마을을 뒤져볼까요?”

그러나 아이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찾아봤자 헛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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