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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29화 (129/201)

129화

요아힘의 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조금 전 일격으로 모든 오러를 소진한 것이다. 원래라면 전부 다 잃을 정도는 아니었겠으나, 아이젠의 일격을 상쇄하느라 오러를 몽땅 써버렸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요아힘은 두 다리 우뚝 딛고 서 있을 수 있었다. 바닥에 엎어진 아이젠과는 다르게.

요아힘이 아이젠을 내려다보며 후후 웃었다.

“후, 후. 후후… 벼, 별것도 아니로군, 아이젠 포, 폰, 그린우드.”

“끄응…….”

아이젠은 맞받아칠 힘조차 없었다. 평소라면 이럴 때 쓸데없는 농담이라도 던졌을 텐데.

요아힘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젠을 잡았고, 그를 뒤집어 배가 하늘을 보게 했다.

“하아. 하아.”

“후우. 후우.”

두 사람 다 숨을 몰아쉬기 바빴다. 아이젠은 이제야 조금 호흡이 할 만해지는 기분이었다.

요아힘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두 손을 아이젠의 가슴팍 위에 얹었다.

“이 안에… 룬이, 있겠지.”

“그래. 있다. 관철의 룬이라고… 하지.”

“아름다운 이름이야. 꺼내… 가겠다.”

“안 아프게 살살 해줘.”

그렇게 요아힘이, 몸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모두 쥐어짜 아이젠의 가슴을 개흉하려는 순간이었다.

“윽?”

―으득!

요아힘이 갑자기 불쑥 발작했다. 아이젠은 그가 발작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요아힘이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아이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젠은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 짧은 동작을 하는 데만도 칼로 온몸을 베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끄응… 천차횡도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공격이 아니거든.”

“부, 분명, 그분의 오러로 모두 상쇄했을 텐데…….”

“상쇄? 인마, 상쇄가 되면 그게 왜 ‘천차횡도(千車橫道)’야.”

천차횡도는 천 개의 수레가 활로를 횡단한다는 뜻.

아이젠이 손가락을 들어 요아힘을 가리켰다.

“천 개의 수레에 깔린다는 게 비유적인 표현인 줄 알아?”

그 힘의 가치는 아이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천차횡도를 처음 개발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승 이화도는 굉장히 위험한 기술이라 평가하면서도, 이강철에게는 모종의 필살기가 될 수도 있으니 잘 연마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이강철은 스승의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천차횡도를 연마했고, 그때마다 온몸에 근손실이 나는 듯했지만 잘 극복하여 천차횡도를 완벽한 하나의 필살기로 만들어두었다. 심지어 6성까지 올라간다면 천차횡도의 강화 형태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권법을 안배해 두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 천차횡도에, 회혼의 기운까지 실었으니.

“처음 해보는 건데 잘됐네. 고맙다, 네 덕이야.”

“이, 놈…….”

“놈놈거리지는 말고.”

―우둑! 뚜둑! 으드득!

“크억! 크윽! 크악!”

요아힘의 몸이 조금씩 발작했다. 발작할 때마다 그의 몸 관절이 하나씩 비틀리기 시작했다.

왼팔, 오른팔, 그다음은 오른다리, 왼다리.

사지가 분쇄된 그가 바닥에 털썩 누워 버린 뒤에는 골반, 갈빗대, 슬개골 순으로 비틀리기 시작했고.

그의 입가에서는 희미하게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네놈 같은 어린 녀석이 나보다 더 강할 수 있지…….”

“글쎄다.”

아이젠은 요아힘의 최후를 지켜봐 주었다.

“내가 재능이 개쩌나 보지.”

“이놈! 나는 무신이다! 나는 무신 요아힘이란 말이다!!”

“아니.”

―뚜둑!

마침내 요아힘의 목뼈가 뒤틀렸고, 그는 즉사했다. 그의 입에서 뭉친 피가 퉤 하고 뱉어 나왔다.

아이젠은 이미 죽어 못 들을 요아힘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무신은 네가 아니야.”

그러나 잘난 척하는 것도 잠시.

“윽!”

그는 금세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아이젠은 허리를 움켜잡고 땅을 비척비척 걷고자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도저히 일어날 재간이 없었다.

“아야야야.”

이거 큰일인데.

급한 대로 천차횡도와 강망태신을 사용하긴 했지만, 아이젠에게는 요아힘을 상대하는 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 소가주전을 마저 치러야 했다.

“갈 수 있으려나? 이 상태로.”

아이젠이 그렇게 읊조리는 그 순간.

“킬킬킬. 이럴 수가, 요아힘 님을 한 방에 쓰러뜨리다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젠은 고개를 돌릴 힘도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 헤르만이 서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목소리가 다소 위쪽에서 들리는 거 보면 언제 고체화를 한 모양이다.

“네놈이 남아 있었지, 참.”

어떻게 보면 헤르만이 요아힘보다 더한 원흉이다. 그는 아모스의 실질적인 제조업자인 셈이니까. 원료 제공자는 따로 있다고 해도, 헤르만이 바로 카인 등을 아모스에 찌들게 한 장본인이다.

아이젠은 고통스러웠지만 안 그런 척하며, 힘을 쥐어짜 제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저 멀리 헤르만이 서 있었다.

아이젠은 허세를 부렸다.

“내겐 아직 힘이 좀 남아 있다. 헤르만, 넌 딱 보니까 전투를 즐기는 인간은 아니야.”

“킬킬킬. 그래. 난 싸움은 질색이지. 예술적이지 못해.”

“제안을 하나 할까 해. 너도 요아힘처럼 되기 싫으면 그분이 누구인지 불어.”

“킬킬킬, 내가 알려줄 것 같은가?”

헤르만의 다리 끝이 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능력 액상화를 사용해 이곳에서 빠져나갈 셈인 모양이었다.

‘놓치면 곤란한데.’

지금 헤르만을 놓치면 놈들의 최종 배후에 관한 정보를 들을 수 없다.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데, 아이젠은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킬킬킬, 우린 다음에 또 보자고.”

그렇게 헤르만이 모래 위에 물처럼 녹아내려 사라지려는 그 순간.

―덥석!

누군가가 헤르만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어딜 도망칠 셈이냐.”

아이젠은 그의 모습을 보고 밝은 기색이 되었다. 그곳에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제이슨이었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킬킬킬, 이, 이런, 설마 발터까지 당한 건가?”

헤르만은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가 가진 능력은 강자가 갖췄다면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겠지만, 그는 싸움 실력만큼은 형편없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헤르만은 혹시라도 먹힐까 싶어 제이슨의 얼굴에 기습을 가했지만.

‘액상화!’

제이슨은 터무니없이 느린 그의 주먹을 곧이곧대로 맞아줄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그저 헤르만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만으로 그를 무력화했을 뿐이다. 헤르만은 바닥에 코를 들이받고 코피를 쏟아냈다.

“윽, 내, 내 코!”

“제이슨, 그 녀석 손에 닿지 마.”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놈은 어떻게 할까요?”

“너 잘하는 거 있잖아.”

아이젠이 눈짓하자, 제이슨은 그 의미를 받아들이고 두 손을 모아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헤르만을 향해 속삭였다.

“암흑마법, 졸음의 파도.”

―사아아아…….

제이슨의 몸 안에서 퍼져 나온 기운이 헤르만을 감쌌고, 헤르만은 금세 몽롱해진 눈이 되어 깊이 잠들어버렸다.

제이슨은 그제야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젠에게 다가갔다.

“일어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업어줘라. 등빨 좋으면.”

“기꺼이 업겠습니다. 등빨은 좋지 않지만.”

그러나 실제로 업혀보니 제이슨의 등은 꽤나 넓어 아이젠에겐 제법 쾌적한 환경이었다. 사내놈 등 위에 이렇게 업혀 간다니 신세가 왠지 처량하다고 느껴지는 아이젠이었다.

“그럼 경기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자. 다들 기다리겠어.”

“최대한 그러겠습니다.”

“잠깐!”

“예?”

“너무 빨리 걷진 마. 나 아프다.”

“아, 예. 최대한 몸을 흔들지 말아보겠습니다.”

그 말대로 제이슨은 발소리를 죽이며 최대한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일 없이 걷기 시작했다. 역시 흑기사, 제법이야.

그나저나, 제이슨의 얼굴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아이젠은 궁금해져 물었다.

“발터는 어떻게 했지?”

“그 덩치라면 베어 죽였습니다.”

“넌 상처 하나 없는데?”

“제가 그 녀석보다 더 압도적으로 강했습니다. 그뿐입니다.”

“흐음.”

아이젠이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제이슨은 갓 무혈신공을 각성한 아이젠에게 상대도 못 됐다. 그런데, 벌써 이 정도로 강해졌다면 지금쯤 최소 4성은 되었을 터.

“강해졌네, 너.”

“…주인님을 보좌하는 역할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애썼습니다.”

“어려웠겠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아이젠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제이슨의 등을 툭툭 쳤다. 그러자 제이슨이 무슨 일인가 하고 아이젠을 내려놓았다. 아이젠은 땅을 디딜 때의 그 작은 통증에도 고통을 호소했다.

“제이슨. 네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서 하나만 일러두지.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모실 수 있는 건 내가 너에게 ‘뇌살(腦殺)’이라는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이야.”

“뇌살… 말입니까?”

“그래. 적의 뇌에 기공을 흘려 넣어 상대를 내 맘대로 부릴 수 있게 되는 기술이지. 넌 게오르크의 명령으로 피스풀 지하감옥에 있던 나를 암살하기 위해 찾아왔고, 그때 나는 너에게 뇌살을 걸었다. 그게 사건의 전말이다.”

“…….”

“뇌살이 해제되는 조건은 간단해. 내가 뇌살을 건 상대에게 이 진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해주는 거지. 즉, 나를 향한 너의 맹목적인 복종은 이제 끝났다.”

그 말대로, 조금은 탁했던 제이슨의 눈동자가 맑아졌다. 제이슨은 한순간 모든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즉, 이전까지는 모든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는 뜻이다.

제이슨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아이젠을 보았다.

“주인님…….”

“이제부터는 네 선택이다. 제이슨, 나를 계속 주인으로 모시겠느냐? 아니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날래? 뭘 선택하든 네 자유야. 네 재량에 맡기겠다.”

게오르크에게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다. 제이슨은 이미 게오르크에게 한 번 죽었으니까. 그래서 떠날 수 있는 선택지를 마련해 주었다.

그 말을 끝으로 아이젠은 정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제부터는 제이슨이 선택할 영역이다.

제이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고민하는 시간은 별로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전, 아이젠 주인님을 따르는 흑기사입니다.”

“…혹시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게 걸리는 거면―”

“아뇨… 아뇨.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제이슨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어 아이젠에게 조아렸다.

“저는 아이젠 폰 그린우드, 주인님의 높으신 카리스마와 강력한 힘에 반한 것입니다. 처음에은 뇌살이라는 기술로 인한 복종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충성심으로 주인님을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제이슨이 아이젠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젠은 피식 웃으며 제이슨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알았다, 제이슨.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예, 주인님.”

“그럼…….”

아이젠은 겸연쩍은 얼굴로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이내 다시 제이슨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다시 좀 업어줄래? 아직 못 걷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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