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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27화 (127/201)

127화

【 결사 항전 】

사태가 잠시 갈무리되었다. 흉흉했던 분위기는 가라앉고, 경기를 더 지켜볼 수 없었던 프리드리히는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다. 소가주전의 이름을 무시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조금 전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테오발트 가주라도 있었다면 그의 위엄으로 프리드리히가 자리를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아직도 웅성대는 관객석을 둘러보며, 사울 장로가 사태를 진정시켰다.

“다들 조금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조금 전 있었던 일은 소가주전의 일반적인 결과였을 뿐입니다.”

피쉬트랩 던전에서도 많은 그린우드들이 죽어 나갔다. 프렘린에 의해서 말이다. 이 소가주전 자체가 목숨을 걸고 나와야 하는 것. 어쭙잖은 각오로는 참전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걸 감안하고서도 조금 전 타케오에게 벌어진 일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인들 중에는 이런 참혹한 일에 내성이 없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특히 원래 타케오를 모셨던 하인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타, 타케오 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응급처치를 해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네.”

“그럴 수가… 타케오 님, 흑…….”

“진정하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 줄은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물론 사울 장로 역시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지만, 그는 지금 테오발트 가주를 대신해 이 자리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강직한 태도를 고수해야 했다.

겨우겨우 사태가 진정되고, 이제 제2경기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아우구스트는 긴장되는 발걸음으로 경기장에 섰다. 그도 조금 전 게오르크와 타케오의 경기를 지켜봤기에 제법 충격을 받았다.

소가주전에 참전한 이상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야 했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니 이제야 실감이 나는 느낌이었다. 프렘린들과 혈투를 벌일 때도 이 정도의 위협은 느끼지 못했는데.

‘프란츠 형.’

심지어는 그의 형인 프란츠가 죽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실감이, 이제야 피부로 와닿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으니.

“……?”

이제 2경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아우구스트만이 경기장에 올라섰을 뿐 다른 참가자는 경기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젠 말이다.

아이젠이 한참 동안 경기장에 나오지 않자, 사울 장로는 기사들을 불렀다.

“대기실에서 아이젠 공자님을 불러오게.”

“그게, 안 그래도 가보았는데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뭐라?”

그 말을 들은 주변에 있던 장로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드니엘 장로가 주축이 되었다.

“뭐야, 기권이라도 한 것인가?”

“음, 그것이…….”

“지각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소가주전이 장난인가? 설마 도망친 건 아니겠지?”

“아닐 거요. 일단 기다려 봅시다.”

“기다린다니, 이미 오래 기다렸소! 당장 찾아오란 말이오! 이 이상 기다리게 하면 그냥 기권하는 것으로 알겠소!”

“크흠…….”

사울 장로는 별수 없이 기사들에게 손짓해 아이젠이 어딨는지 좀 더 찾아보라 일렀다.

한참 아이젠이 나타나지 않자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조용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도련님, 무슨 일이신 거예요…….’

바로 모니카였다.

모니카는 문득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흑기사 제이슨도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홀로 남은 모니카는 다리를 덜덜 떨며 입술을 뜯었다.

‘도련님, 어서 오셔야 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콰아아아앙!!!

강력한 폭발음.

세상을 통째로 화마로 물들일 듯한 거대한 소음과 함께 아이젠의 주먹이 요아힘에게 작렬했다. 아이젠은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요아힘에게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판단했다.

‘…아니! 아니야.’

그러나 금방 판단을 재고했다. 요아힘에게 아이젠의 천수관음과 회혼을 먹인 박살은 제대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묵직하게 걸리는 감각이 있어 아이젠은 순간 판단으로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결사신권의 자세를 잡아 주먹을 잡아당겨 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

아이젠은 가만히 서서 먼지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아이젠의 공격이 워낙 컸던 탓에 주변에 모래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주먹의 위력이 대단하면 이런 단점이 있다.

마침내 먼지가 걷히고.

아이젠은 멀리 우뚝 서 있는 요아힘을 볼 수 있었다. 요아힘은 아이젠의 주먹에 맞아 발을 끌며 쭈욱 밀려나긴 했지만, 몸에는 흠집 하나 나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아힘은 이제 사지뿐만 아니라 온몸에 검은색 기운을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점프슈트처럼 차려입은 그 옷은 가면과 머리까지, 살결 하나 드러나지 않는 모습으로 온통 새까맣기 그지없었다.

요아힘이 검게 물든 가면 뒤에서 피식 웃었다.

“‘오러 슈트’. 왜 그러지, 아이젠? 장기인 주먹이 먹히지 않으니까 충격받은 얼굴인걸.”

“…글쎄, 충격까진 아니고. 단단하긴 하네, 너.”

“오러 슈트는 너희 그린우드의 장기인 만년한철보다 단단하지. 그분의 오러이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그분, 그분. 열 뻗치게 하네, 그 양반.”

후욱! 아이젠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회혼을 주먹에 듬뿍 담았다. 천수관음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사신강림도 아직 유지 중인 상태였다.

‘결사신권, 무음목랑보(無音目浪步)!’

―팟!

아이젠은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요아힘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구태여 뒤를 노리지는 않았다. 앞이든 뒤든, 어차피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무의미할 테니까.

다만 아이젠은 자신의 주먹을 믿었다. 만년한철보다 단단한 것은 요아힘의 검은 기운뿐만이 아니다. 아이젠의 주먹 역시, 만년한철보다 몇 배는 더 단단하고 견고하다.

―카가가가각!

그의 손에 잔뜩 먹인 회혼이 바로 그렇다는 듯 울부짖고 있었다.

‘결사신권 회혼, 철권(鐵拳)!’

―퍼억!!

아이젠의 오른쪽 주먹이 다시 한번 작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요아힘의 오른손에 잡혀 가로막히고 말았다. 아이젠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왼손을 뻗어 공격했고, 다시 요아힘이 그것을 막았다.

그렇게 연타가 이어졌다.

―퍼버버버버버버벅!

빗발치듯 날아드는 아이젠의 주먹. 그리고 요아힘은 그 비를 막는 우산처럼 모든 주먹을 가볍게 쳐내고 있었다. 현시점에서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는 누가 봐도 자명했다.

그때 요아힘이 기호지세로 주먹을 바꿔 쥐었다. 그리고 아이젠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길게 내뻗었다.

“슈트!”

아이젠은 주먹이 날아오는 각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짧은 사이 양손 검지에 회혼의 정수를 담아 주먹의 옆면을 강타했다.

‘결사신권 회혼, 쇄고(碎固)!’

―촤악!

아이젠은 요아힘의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그의 팔뚝에 쇄고를 먹였고.

―우둑!

부러진 것은 아이젠의 검지였다. 아이젠의 집게손가락은 옆쪽으로 기이하게 꺾였다. 뼈가 완전히 부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은 아픈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저 검지까지 감싸 쥔 주먹으로, 다시 한번 요아힘의 얼굴을 향해 일격을 먹였을 뿐.

‘결사신권 회혼, 철권!’

―퍼엉!

요아힘의 얼굴이 일순간 뒤로 기우뚱 밀리는 듯했으나, 마찬가지로 그의 오러 슈트에는 여전히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아이젠의 주먹만이 얼얼할 따름이었다.

아이젠은 잠시 뒤로 물러서서 전황을 살폈다.

그사이 요아힘이 말을 걸었다.

“후후. 손가락, 부러진 거 아냐?”

“부러진 거 맞아.”

“이제 인정하는 게 어때. 넌 날 이길 수 없어. 네 주먹은 내 오러 슈트에 작은 흠결 하나 내지 못해. 검으로도 벨 수 없는 내 오러 슈트를, 고작 주먹 따위로 깨부술 수 있을 거 같나? 그 주먹마저도 내게는 상대가 안 되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

아이젠이 부러졌던 오른손 검지로 요아힘의 오른팔을 가리켰다. 요아힘이 무슨 일인가 하고 오른팔을 내려다보는데, 별안간 쩌적― 하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응?”

―으드득!

―빠직!

그러더니 요아힘의 오른팔에 싸여 있던 검은 기운이 깨져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깨진 부위가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요아힘의 팔뚝이 조금 드러날 정도. 그러나, 요아힘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 오러 슈트를 부서뜨렸어…?!”

“만년한철보다 단단하다고?”

요아힘이 아이젠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젠은 두 손가락이 다 부러지고도 씨익 웃고 있었다.

“별거 아니네, 그럼.”

“이놈!”

“얻다 대고 놈이래.”

“…흥! 이 정도 피해 따위 별것도 아니야. 금방 수복 가능한 수치일 뿐. 기계적으로 대응하면 그만이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요아힘의 오른팔에 검은 기운이 다시 둘리기 시작했다. 드러났던 요아힘의 팔뚝은 금세 검은 기운에 둘러싸였고, 이내 다시 그가 오러 슈트라 부르는 이름으로 변했다.

“그분의 오러에 타격을 준 건 칭찬해 주지.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넌 여전히 나보다 약해.”

“그래. 난 너보다 약해. 지금은 말이지.”

“인정하는 건가?”

“인정하는 거야.”

“그럼 얌전히 룬을…….”

“뭐라는 거야. ‘지금은’ 약하다니까?”

아이젠이 두 다리를 넓은 너비로 벌렸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켠 후 내뱉어 심호흡했다.

“후우…….”

요아힘은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지 조금 기대가 되는 모습으로 살짝 뒷걸음쳤다.

“‘지금은’이라. 그럼 좀 더 기다려 주면 네놈 따위가 나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거냐?”

“그래.”

“그분의 오러를 네가 뛰어넘을 수 있다고?”

“그렇다니까.”

“터무니없는 소리. 끝자락에 몰리니까 못 하는 말이 없군.”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아닌지는,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휘이이이이이잉!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이젠의 주변으로 모여들던 따스한 바람은 이내 아이젠의 머리 위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아이젠의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은 덤이었다.

요아힘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리란 조짐을 느끼고, 그 역시 최선의 힘을 다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뭔가 숨기는 힘이 있는 모양인데, 설마 그런 힘이 네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 안 해. 하지만, 아직 숨겨둔 힘이 있다면 지금 다 쏟아붓는 게 좋을 거야. 후회하지 말고.”

“흥! 그럴 생각이다!”

요아힘이 가슴팍 쪽의 오러 슈트를 개방했다. 그러고는, 열린 오러 슈트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 안에 들어 있던 아모스의 약병을 꺼내 들었다.

들어 있는 알약은 요아힘이 조금 전 발터에게 주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숫자.

요아힘은 가면을 살짝 열어 약병 안에 들어 있던 아모스를 털어 삼켰다. 우적우적 씹히는 소리가 그의 입가를 통해 전해져 왔다.

아이젠이 고개를 으쓱였다.

“그래, 왜 안 먹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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