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한편, 원형 경기장.
[게오르크 공자님과 타케오 님의 경기가 있겠습니다…….]
승자전 제1경기, 게오르크와 타케오의 첫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반대편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 마침내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 위에 마주 보고 섰다.
“…….”
“…….”
게오르크와 타케오 모두 말이 없었다.
타케오는 시각 장애인이었지만 사리 분별은 제법 잘하는 사람이었다. 게오르크가 강자라는 사실 정도는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바 있다.
하지만, 타케오는 전선 출신이다. 게오르크가 아무리 소가주 우승 후보라고 해도 타케오는 쉽사리 당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타케오가 오만을 떠는 것이기도 했다.
‘후후, 이런. 겸손해야 하는데.’
언제나 1 방주 프리드리히 반 그린우드의 명령이 있었다. 매사 겸손해야 한다고. 타케오는 그 명령을 무시했기에 눈을 잃은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동자 위로 타케오는 손을 더듬더듬 올려놓았다.
두 사람 사이에 마테오 백작이 우뚝 섰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파지직―! 그리고 사라졌다.
스릉― 타케오가 먼저 참철검을 뽑았다. 그러나 게오르크는 아직 빼 들지 않았다. 타케오는 한순간 정적에 휩싸인 경기장 내부에서 마치 게오르크가 사라진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내 게오르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타케오 반 그린우드. 1 방계의 인재.”
“…게오르크 공자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경기를 펼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천만에. 나야말로 영광이다, 타케오. 그런 의미에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네?”
잠깐의 침묵.
이후, 게오르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케오의 귀에 박힐 듯 또렷하게.
“기권해라. 아니면 죽이겠다.”
흠칫― 타케오는 뒤로 성큼 물러났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흉흉한 기운의 냄새가 콧잔등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여기 서 있던 게오르크와 지금 눈앞에 있을 게오르크가, 동일인물이 맞는 건가? 그런 착각이 들 만큼 한순간에 게오르크의 기운이 확 바뀌었다.
그러나 타케오는 고작 그 정도에 겁먹을 위인은 아니었다. 그는 전선에서 온갖 흉계를 부리는 공화국 적들도 만나보았고, 그렇기에 이쯤이야 별것도 아니었다.
“죽이겠다고요? 흥. 제가 그런 협박에 겁이라도 먹을 성싶으십니까?”
“…협박이라. 협박 아니었는데.”
게오르크는 어깨를 으쓱하며 타케오에게 다가섰다. 그는 여전히 검을 뽑지 않았지만 마치 손에 검이 이미 들려 있는 양 위협스럽기 그지없었다.
“타케오 반 그린우드. 그대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자네 같은 인재가 겨우 이런 곳에서 생명을 잃어서야 되겠어? 앞으로 가주가 될 나를 도와 힘을 기를 생각을 해야지. 현명하게 처신했으면 좋겠는데.”
“후후. 후후후……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공자님. 아무래도 직계라고 너무 저를 얕보시는 듯한데.”
타케오는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의 참철검은, 바네사와 싸웠을 때처럼 한순간 사라졌다.
“방심하신 책임은 지셔야 할 겁니다!”
―슈팟!
타케오의 손에서 무언가가 쏘아졌다. 화살처럼 직선으로 뻗어 날아간 그것은 게오르크의 이마를 찌를 듯했으나.
―탁!
게오르크는 그것을 손으로 붙들어 잡았다. 야생의 치타보다 빠른 일격을 게오르크는 그저 손을 뻗는 것만으로 가볍게 막은 것이다.
‘이럴 수가?!’
타케오가 놀랄 틈도 없었다. 게오르크가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타케오의 참철검. 타케오의 참철검이 게오르크의 시야와 직선상에 놓임으로써 마치 점처럼 작아져,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타케오는 당황하면서도 참철검을 빼내려 힘썼다. 그러나 게오르크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검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1 방주님의 기술인 ‘프리드리히류―찌르기’가 통하지 않다니!’
그린우드의 방계들은 저마다의 참철검술 응용기를 갖추고 있고, 1 방계는 프리드리히가 개발한 찌르기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타케오 역시 방계의 장자로서 그의 찌르기를 익혔다.
그 찌르기가 얼마나 강한가 하면, 바네사조차도 제대로 힘을 못 쓰고 당할 정도.
쏘아진 화살보다 빠른 찌르기다. 그런데 그것을 게오르크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이게 전부인가?”
게오르크가 도발했다. 타케오는 이를 뿌득 깨물었다.
“전부일 것 같습니까?!”
―팡!
마침내 참철검이 뽑혀 나오고, 타케오는 반동을 이용해 다시 한번 게오르크에게 찌르기를 먹였다.
‘프리드리히류―찌르기, 속동검격!’
참철검술의 속동검격에 응용해 날아드는 타케오의 찌르기는, 그야말로 눈을 흐트러뜨릴 정도의 매서운 속도!
―쉬쉬쉬쉬쉭!
거센 바람이 부는 것처럼 게오르크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사이 타케오는 찌르기를 이용해 게오르크의 가슴팍을.
―푹!
찔렀다.
‘먹혔어!’
타케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찌른 검 위에 자신의 몸무게를 달았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무게중심을 이동시킨 것이다. 그러자 칼끝만 살짝 들어갔던 참철검은 게오르크의 심장을 집어삼킬 듯 움푹 파고들어 갔다.
‘게오르크 공자, 생명을 빼앗는 건 미안하지만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
―쩌저저적!
갈비뼈를 자르는 듯한 소리. 단단한 참철검에게 칼슘 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의 뼈는 두부와 다르지 않다.
관객석의 모두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게오르크가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인가 싶어 상황을 지켜보고자 일어난 것이다.
- 게, 게오르크 공자가!
- 막아야 하오!
- 소가주전이오! 막긴 뭘 막는단 말이오? 다들 목숨을 걸고 나온 것 아니었소?
- 하, 하지만 직계의 적자인데!
- 방계의 타케오가 더 강했을 뿐. 우리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금세 멎었다. 조금 전까지 심장을 찔려 입에서까지 피를 흘리고 있었던 게오르크가, 사라진 것이다.
“음?!”
손끝에 걸리는 감각이 없어진 타케오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섰다. 그는 지금 사방에서 게오르크의 마수가 뻗치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잔뜩 움츠린 상태였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타케오는 찌르기를 배제하고 사방팔방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올라 버린 것이다.
공화국과의 전선에서도 이런 건 느껴본 적이 없는데!
“으, 으아아아! 어딨어! 당장 나와!!”
그때.
―덥석!
게오르크가 타케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 감각으로 미루어보아 게오르크의 손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분명 ‘붙잡혔다’고 생각했던 두 손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엇?”
―탱그랑!
타케오의 두 손과 함께 그의 참철검도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것은 양손뿐. 그의 오른손과 왼손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깔끔한 절단면을 드러내면서.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그제야 타케오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손목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으, 으아아아아아!!!”
“타케오.”
귀 바로 앞에 대고 말하는 듯한 게오르크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해서,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물론 그 내용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것이었지만 말이다.
“기권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을 텐데.”
―푹!
게오르크의 참철검이 타케오의 목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너무 깔끔하게 찔러서 피도 잘 배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타케오의 목 뒤로 두 뼘 길이만큼이나 튀어나온 참철검 날붙이가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커…헉…….”
관객석에서도 일순 정적이 흘렀다. 게오르크의 참철검이 어떤 경위를 걸쳐 타케오의 목을 꿰뚫었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울 장로조차 보지 못했다. 그의 눈에도 그저 게오르크 공자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타케오의 두 손이 떨어져 내리고, 타케오의 목이 꿰뚫려 있었을 뿐이다.
일련의 과정들에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는 듯 모든 상황은 찰나 만에 벌어졌다.
- …….
사위가 고요한 가운데, 타케오가 게오르크를 노려보았다. 눈이 먼 타케오로서는 게오르크를 볼 수 없었지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게오르크가 대답해 줄 의무는 없었다.
“방계치곤 잘했어. 하지만 장애인 따위가 뭘 하겠다는 거냐?”
“이… 놈… 감히…….”
“감히?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슈팟!
게오르크가 검을 오른쪽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타케오의 목이 잘려 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타케오는 흘러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팔을 움직였으나 양손이 없기에 무의미한 행동에 불과했다.
“어헉, 커헉…….”
“무릎을 꿇고 조아려라, 타케오 반 그린우드.”
“어헉…….”
―쿵!
타케오가 게오르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게오르크의 명령에 따랐다기보단 다리에 힘이 풀려 꿇은 것이었다.
타케오는 자비를 구하는 얼굴로 게오르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완전한 굴종의 자세였다.
“사, 살려줘…… 살려주세요…….”
“저런. 그 말을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제발…….”
“이미 늦었다.”
지금도 타케오의 목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양은 이제 치사율을 넘었다.
―쿵!
타케오는 바닥에 몸을 쓰러뜨렸다. 죽은 것이다.
여전히 고요한 가운데, 관객석 한쪽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타케오오오오!!!”
그건 바로 타케오의 아버지, 1 방주인 프리드리히 반 그린우드였다.
스릉! 허리춤에 차고 있던 참철검을 뽑아 든 프리드리히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움직였다. 게오르크가 있는 쪽으로 달려온 것이다.
다른 방주들과 장로들이 온몸으로 프리드리히를 막아낸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이보게, 프리드리히! 진정하게!”
“소가주전의 마땅한 결과였을 뿐이네! 자네도 알잖는가!”
“진정하십시오, 프리드리히 방주님!”
그들 모두를 몸에 추처럼 달고, 프리드리히는 온 힘을 다해 게오르크를 향해 덤벼들어 오고 있었다. 부들거리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내 아들 타케오를!!”
게오르크는 무표정한 얼굴로 프리드리히를 쳐다보았다. 그때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마테오 백작이 나타났다.
마테오 백작은 예의 그 힘없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타케오 님께서 사망하셨으므로… 이번 경기는 게오르크 공자님의 승리입니다…….”
“…….”
그 말을 들은 게오르크는 프리드리히를 돌아보았다.
“제가 이겼다는군요, 방주님.”
“뭐, 뭐라고?!”
“눈먼 자식을 소가주전에 내보낸 것부터가 난센스 아닙니까? 훗. 아, 실례.”
“웃어? 이놈이 지금 감히 날 앞에 두고 웃은 것이냐?! 이거 놔! 당장 놓지 못하겠는가!!”
촤악! 게오르크는 참철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돌아섰다. 밖으로 나가며, 게오르크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어딜 대고 자꾸 ‘감히’거리는 거야. 건방지게.”
프리드리히를 막던 사람 중 한 명인 사울 장로만이, 유일하게 게오르크의 그 뒤틀린 얼굴을 보았다.
사울 장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게오르크 공자님, 설마 ‘그것’이 발현되려는 것인가?’
그는 왜인지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하늘은 속도 모르고 맑기만 했다.
‘테오발트 가주님이시여, 어서 이곳에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