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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24화 (124/201)

124화

발터가 약병을 바라보다가, 간절한 얼굴로 요아힘을 올려다보았다.

“요, 요아힘 님… 이걸 다 먹으면 저는 죽습니다……. 부, 부디 선처를.”

“먹어라. 모두.”

요아힘의 도깨비 뿔 가면 너머로, 보이지는 않지만 흉흉한 안광이 찌를 듯이 발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아, 나는 왜 이런 사람을 제치고 아이젠을 먼저 취하려 했지? 내가 잠시 미쳤던 건가?

후회는 늦었다. 발터는 결국 약병을 열었지만.

“…에잇!”

차마 안에 든 걸 모두 먹을 수는 없어 요아힘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요아힘은 발터를 잡지 않았다. 그저 옆에 서 있던 헤르만에게 고갯짓을 할 뿐.

그러자 헤르만이 특유의 킬킬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흐물텅!

헤르만의 몸이 마치 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젠은 그것을 보았다.

‘아니?’

흐느적거리던 헤르만은 허공을 쏜살같이 날아가, 도망치던 발터를 금세 따라잡았다.

“크윽, 이거 놔, 헤르만!”

“킬킬킬. 내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놔, 제발! 하지 마!”

“킬킬킬. ‘액상화’.”

―꿀렁!

헤르만이 발터의 오른손을 잡고 기묘한 주문을 외자, 별안간 발터의 오른팔이 갈변하더니 흐물텅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헤르만처럼 말이다. 다만 헤르만은 고통 없이 사용하는 듯했으나 발터는 아닌 듯했다.

“으아아악!!! 아아아아!!! 내 팔, 내 파아알!!”

“킬킬킬. 먹겠습니까?”

“아아악! 아아아, 너무 아파!! 아파아아!!”

“아모스를 먹겠습니까?”

“먹을게, 먹는다고! 먹는다고!!”

그제야 헤르만이 발터의 손을 놓았다. 발터의 오른팔은 어느덧 완전히 물처럼 녹아내려 있었다. 바닥에 더러운 갈변한 흔적들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헤르만이 다시 발터의 오른손을 잡자, 이번에는 반쯤 녹아내렸던 발터의 오른팔이 굳기 시작했다.

“‘고체화’.”

즉 헤르만은 붙잡은 대상을 액체화할 수도, 고체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헤르만의 능력.

그 광경을 지켜본 아이젠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놈이다.’

헤르만이 바로 아모스를 만드는 장본인이다. 아이젠은 직감했다.

아이젠은 부들거리는 손을 꽉 쥐었다. 동심상으로도 가라앉히기 힘든 흥분감이 아이젠을 잠식하고 있었다.

‘스승님!’

천마 도강문에게 당했던 자신의 스승 이화도. 그의 어처구니없었던 죽음처럼 수많은 죽음들이 양산되고 있다. 아이젠은 그것을 견디고 볼 수 없었다. 참고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모스를 쓸어버리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이제 그 계획을 실행할 때였다.

“너냐? 아모스라는 흉약을 만들어서, 강함을 얻어다주는 묘약이라며 사람들한테 넘기고 다니는 자식이?”

“음? 킬킬킬.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람을 물처럼 녹인 다음 작은 형태로 굳힌다. 그러면 흔히 알약이라고 부르는 형체가 되지. 네 녀석은 사람들을 녹여서 아모스를 만드는 거야.”

그러자 요아힘과 헤르만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헤르만이 킬킬 웃었다.

“킬킬킬킬! 추리력이 좋은데! 하지만 한 가지 틀린 점이 있어. 아무나 녹여서 굳힌다고 해서 ‘아모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이건 그저 내 능력일 뿐… 오직 그분의 오러로만 아모스를 만들 수 있다.”

“그분의 오러?”

아이젠은 문득 영설산에서 블렌하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요아힘은 어디까지나 판매책에 불과하다. 요아힘이 판매책이고 헤르만이 아모스의 제작자라면, 그 원료를 제공하는 사람은 또 따로 있는 것이다. 즉 요아힘의 뒤에도 누군가가 더 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라 불리는 자의 정체.

“그분이라는 건 누구지?”

“킬킬킬, 이런. 내가 너무 입방정을 떨었군.”

“말해.”

그러나 헤르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발터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발터는 망설이다가, 결국 약병을 열어 안에 든 아모스를 꿀꺽 삼켰다.

아이젠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

아이젠은 그저 팔짱을 낀 채 발터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건 요아힘에게도 조금 의외였는지 그가 넌지시 말했다.

“막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군.”

“왜 그래야 하는데?”

“아모스의 복용량이 적정치를 넘어섰다. 발터는 이제 조금 전과 비교했을 때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야. 지금 막지 않으면―”

그사이 발터의 몸이 크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발터의 입 밖으로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새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아힘이 말을 이었다.

“―넌 죽는다.”

그러나 아이젠은 피식 웃을 따름이었다.

“웃기고 있네. 약쟁이 새끼들 주제에.”

발터가 점점 더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 있던 뼈가 모조리 으스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슬라임같이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뿌드득! 뿌드드드득!

들을 때마다 소름 끼치는, 관절이 이리저리 결딴나는 소리는 덤이었다.

“크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악!!!”

발터의 비명은 아파서 내지르는 것같이도, 기뻐서 환호하는 것같이도 했다.

“아아악!! 아아악!!! 아아아아악!!!”

그렇게 발터의 고성방가가 계속되던 그때, 마침내 발터가 변화를 멈추고 자리 위에 섰다. 푸쉬이익― 발터의 몸 밖으로 분출된 땀이 마치 증기처럼 기화하기 시작했다.

발터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크르… 그르르르….”

발터의 눈 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전에도 광기가 가득하긴 했는데, 이제는 사람의 것이라기보단 들짐승의 것처럼 보였다. 발터는 아이젠을 돌아보았다.

“아이젠… 아이젠…!”

“그래, 나 여깄다.”

“죽어… 아이제에엔!!!”

―슈팟!

발터는 소리도 없이 그 육중한 몸을 허공에서 지워 버렸다. 그리고 두웅―! 하는 낮은 소리와 함께 아이젠의 머리를 내리찍을 기세로 그 위에서 나타났다.

“죽어!!!”

발터가 아이젠에게로 떨어져 내리려는 그때.

“제이슨.”

아이젠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러자.

―슈팟!

발터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러더니 몸 곳곳에 여러 개의 자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쉬쉬쉬쉭!

허공에서 칼날이 춤추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아악!”

발터는 고통을 내지르다가, 힘없이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워낙 큰 덩치 탓에 지진이라도 난 듯싶었다.

그 직후 아이젠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주인님.”

바로 아이젠의 흑기사, 제이슨이었다.

제이슨은 허리를 깊이 숙여 아이젠에게 인사했다. 아이젠은 대충 손을 휘저어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어쩌다 보니 좁은 골목(벽이 무너졌으니 더 이상 골목이라 부를 순 없었지만)에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아이젠은 태연하게 요아힘 등에게 제이슨을 소개했다.

“소개하지, 여기는 내 흑기사 제이슨. 제이슨? 여기는 내가 잡아 족치려는 놈들.”

“저도 도우면 되겠습니까?”

“넌 저기 바닥에 넘어져 있는 발터란 녀석만 상대해 줘. 그러라고 부른 거니까.”

제이슨은 발터를 내려다보았다. 발터는 여전히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지만 별로 아픈 기색은 아니었다. 제이슨이 쥔 손에서는 발터를 베어 묻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혼자 처리할 수 있겠어?”

아이젠의 물음에, 제이슨이 피식 웃었다.

“곁에 없는 동안 강해지신 건 아이젠 주인님뿐만이 아닙니다.”

“자신감 있네. 그래, 가라.”

―스팟!

바람이 거세게 한차례 불더니, 모래바람 탓에 가려진 시야를 회복하면 제이슨과 발터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킬킬킬. 어디로 데려간 거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우리끼리 싸우자.”

“…….”

아이젠이 회혼을 운용했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사신강림을 사용했다.

푸화악!

아이젠의 몸 밖으로 흉흉한 회혼의 기운들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조금 전 발터와 싸울 때 이미 사신강림을 사용했기에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젠에게는 주저함이 없었다.

아이젠은 결사신권의 자세를 잡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내기 하나 할까. 이기는 사람한테 소원 들어주기 같은 거.”

아이젠의 얼굴에 장난치는 기색은 없었다. 요아힘이 답했다.

“네가 이긴다면?”

“그렇다면, 그분이라는 놈의 정체를 말해줘야겠어.”

“간단하게 대답해 줄 것 같은가?”

“해봐야 알겠지.”

“흐음. 그래, 그럼 내가 이긴다면? 그땐 어쩔 거지?”

“그쪽 경우는 생각하지 마.”

불끈! 아이젠이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 가능성 없으니까.”

아이젠의 몸에 둘린 회혼의 기운이, 요아힘과 헤르만을 덮칠 기세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카가가가각!

칼날같은 오러는 대기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아이젠은 그 와중에도 사신강림을 온전하게 운용해 온몸에 힘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었다.

“3분 안에 끝낸다.”

“날 말인가?”

요아힘의 대답에, 아이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요아힘이 가면 너머로 눈을 뜨면 아이젠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이젠은 무음목랑보를 이용해 어느덧 요아힘의 등 뒤에 이동해 있었다. 아이젠의 양 주먹이 요아힘과 헤르만 두 사람을 향해 동시에 날아들었다.

“두 놈 다!”

결사신권, 철권!

―파앙!

아이젠은 왼손에 감이 잡혔다. 헤르만에게 공격을 먹인 쪽이다. 헤르만은 주먹에 맞아 멀리 나가떨어졌다.

“크어헉! 아프군, 킬킬킬!”

아프다면서 왜 웃지? 헤르만은 반쯤 함몰된 가면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며 끙끙 앓고 있었다. 철권은 대상의 내부를 파괴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물의 얘기일 뿐, 무생물일 때는 박살과 마찬가지로 외관마저 박살 내버릴 수도 한다. 아이젠이 원한다면 말이다.

가면 너머로 반쯤 드러난 헤르만의 얼굴은 40대 중후반 정도에 접어든 중년의 모습이었다. 빼빼 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만면에 띤 주름이 그의 나이를 더 들어 보이게끔 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더 젊을지도 모른다.

“킬킬킬. 가면을 새로 구해야겠군. 주먹이 아주 예술적이야!”

아이젠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손에는 감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즉 요아힘에게는 공격이 먹혀들지 않았다.

요아힘은 오른손에서 예의 그 검은빛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끝이 풍화되는 듯한 독특한 생김새의 그 기운은 요아힘의 오른손 끝부터 팔뚝까지를 감싸고 있었다.

“오만이 심하군, 아이젠 폰 그린우드.”

“오만인지 아닌지는 3분이 지나 봐야 알겠지?”

“그것도 맞는 말인걸. 헤르만, 너는 그냥 누워 있어라. 이 녀석은 내가 처리하지. 기계적으로 상대할 거다.”

“킬킬킬! 분부대로 하지요!”

헤르만은 액상화를 사용해 땅 위에 녹아내렸다. 그러자 헤르만의 전신이 바닥에 흡수되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뭐야, 이런 것도 가능한 건가?’

땅에 속해버리다니, 이러면 나중에 원래대로 어떻게 돌아오려고?

물론 그건 아이젠이 걱정할 바는 아니었다. 헤르만은 요아힘을 족친 다음 상대하면 그뿐. 아이젠은 사신강림을 다시 한번 몸에 두르며 요아힘을 쳐다보았다.

요아힘이 아직 맨살이 드러난 왼팔을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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