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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23화 (123/201)

123화

【 무신과 투신 】

―파칭!

발터의 왼손은 살짝이라도 베이면 그 대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로 반짝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기세에 짓눌려 겁을 먹을 법도 하겠지만, 아이젠은 아니었다.

“날카롭네.”

아이젠이 주먹에 회혼을 둘렀다.

“내 주먹만큼은 아니지만.”

―퍼엉!!

아이젠은 피하지 않았다. 발터의 왼손에 정면으로 자신의 주먹을 휘둘렀다. 회혼의 기운을 담아서.

‘결사신권 회혼, 철권!’

그리고 철권은 발터의 가시덤불 같은 왼손과 맞부딪쳤다.

―카가가가가가각!!

날카로운 두 개의 기운이 뒤섞이며, 서로 누가 더 날카로운가를 뽐내기 시작했다. 최초에는 발터의 가시덤불 왼손이 아이젠의 철권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아이젠의 철권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부터 파괴하는 권법. 즉, 발터의 외형에 불과한 가시덤불 왼손은 아이젠의 철권에 상대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발터의 주먹은 형체를 잃고.

―빠앙!!

터져 나갔다.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발터의 왼손이 문자 그대로 터져 버렸다. 허공에서 피와 살점이 흩날리고, 발터는 잠시 의식하지 못했으나 이내 찾아오는 기막힌 고통에 왼손을 부여잡았다. 물론 그 부여잡을 오른손조차 흐물흐물한 두족류처럼 되어 제대로 잡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아아아악!!! 크하아아악!!!”

양손을 모두 잃은 발터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는 바닥을 뒹굴며 계속해서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발터의 주변에 있던 좀비들의 잔흔이 몸을 일으키는 듯도 보여 아이젠이 경계했으나, 그저 발터의 비명과 공명하는 것인 듯했다. 좀비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좀 전에 아이젠의 주먹에 맞아 완벽하게 생명의 끈을 놓은 듯싶었다.

“후.”

아이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해 회혼을 몸 밖으로 빼냈다. 그전까진 잘 몰랐는데, 회혼의 기운은 생각보다 운용의 묘리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홍화와 그린 오러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니만큼 아이젠의 몸이 긴 시간 운용을 감당하기엔 어려운 것이었다.

‘아직 더 강해져야 해.’

5성에 올랐어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 아이젠은 생사경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수련과 성장을 멈추지 않을 테지만, 좀 더 정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아이기스를 내려다보았다. 아이기스에 깃들어 있던 파란 기운은 어느새 흔적을 지우고 사라져 있었다.

“야. 야, 현무. 나와봐.”

아이젠이 아이기스를 툭툭 치며 현무를 깨워보려 했으나.

…….

현무에게서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어떤 때는 반응하고, 어떤 때는 반응하지 않는다니. 아이젠은 아이기스의 운용도 제법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놈! 이 새끼!”

그때 발터가 악을 질렀다. 고통스럽긴 해도 이제 좀 정신이 돌아왔는지 아이젠에게 욕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젠은 저벅저벅 느린 걸음으로 발터에게 다가섰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 블렌하임보다 약한 것 같은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라!! 블렌하임 따위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단에 불과해! 이 발터 님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

“근데 네가 더 약해. 객관적인 판단이야. 블렌하임은 최소한 날 위기 상황까진 몰고 갔거든. 너는, 글쎄?”

“크윽! 크으윽!!”

발터는 눈에 핏발을 세우다가, 이내 뭔가 결심했는지 허겁지겁 품 안에서 또 다른 아모스의 약병을 꺼냈다. 흐물거리는 오른손만으로 해야 하는 일인지라 그 작은 약병을 제대로 손에 쥐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저 툭 치면 발터의 행동을 멈출 수도 있겠지만, 아이젠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발터가 무슨 짓을 할는지 지켜봐 주기로 했다.

“난! 난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모스의 힘을 아직 일부밖에 쓰지 않은 거다. 이 아모스를 전부 털어먹으면! 네놈도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거야!!”

“아, 그러세요?”

아이젠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대충 대답했다. 이제 놈의 희망을 짓밟아줄 시간이었다.

아이젠이 발을 들어 발터의 약병을 짓뭉개려는 그 순간이었다.

“발터. 누가 네 마음대로 행동하라고 지시했지?”

―덥석!

누군가가 발터의 머리를 붙잡았다. 아이젠은 순간적으로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뭐야, 언제 온 거지?’

별안간 나타난 또 다른 적의 등장을 아이젠은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아니면 방심을 한 건지. 아이젠은 자책했다.

‘아직도 수련이 덜 됐어. 적에게 동료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건데.’

블렌하임 때도 블렌하임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도 많은 동료가 있었으니 발터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을진대.

그러나 오래 후회할 필요는 없다. 아이젠은 다시 몸에 결사신권의 묘리를 흘려 넣어 회혼의 기운을 만들어냈다.

‘누구지?’

아이젠은 그제야 발터의 머리를 잡고 있는 사람을 제대로 보았다. 발터 때와 마찬가지로 도깨비 뿔이 두 개 달린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가 두 명 서 있었다. 그들의 자세로 보아 발터의 머리를 잡고 있는 남자가 상관, 그 옆에 서 있는 남자가 부하인 듯싶었다.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실실 웃었다.

“킬킬킬. 아무래도 요아힘 님 몰래 전공을 세우고 싶었나 봅니다. 예술적으로 말이지요. 킬킬킬!”

“아, 아닙니다! 헤르만의 말은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요아힘 님!!”

발터가 울부짖었다. 대략 요아힘이 발터의 머리를 잡고 있는 남자, 그리고 부하의 이름은 헤르만인 듯싶었다.

‘요아힘, 헤르만, 발터. 왜 이렇게 이름들도 많은지.’

아이젠은 자신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한 세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요아힘이 말했다.

“사실이냐, 발터? 네가 나 몰래 전공을 세우려 했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요아힘 님! 오해입니다! 그저 아이젠을 잡아 족쳐 요아힘 님께 바치려 했을 뿐!”

“흐음. 그래?”

그때 요아힘의 고개가 아이젠을 향해 돌아갔다. 아이젠은 왠지 싸움 구경 하던 어린아이가 된 듯해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그 아이젠에게 물어보지. 발터가 정말로 자넬 내게 바치려 했나?”

이게 뭔 개똥 같은 질문이야? 그걸 당사자에게 묻는 미친놈이 다 있나.

아이젠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를 원했기에 순순히 대답해 주기로 했다.

“내게서 룬을 빼앗겠다, 뭐 그런 말을 하긴 하던데.”

“흐음. 기계적인 답변이군.”

‘기계적?’

어디가? 생각하는데 요아힘의 고개가 다시 발터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이젠은 이번에는 본인이 질문을 하기로 했다.

“확인차 물어보는 건데. 네가 요아힘인가?”

“그래. 내가 요아힘이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저자가 바로 블렌하임이 말한 판매책, 요아힘. 그노시스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했던 바로 그자였다. 그리고 아이젠의 생각에 아마도 이 요아힘이 버디를 마혼화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이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요아힘의 옆에 서 있던 부하, 헤르만이었다. 헤르만의 행색은 아이젠의 눈에 굉장히 익숙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키가 크고, 빼빼 말랐으며, 산발인 남자. 게다가 도깨비 뿔이 두 개 달린 가면까지.

카인의 목격담과 완전히 일치했다. 저자가 바로 카인 등에게 아모스를 선사한 자인 듯했다.

“옆에 계신 분도 통성명 좀 합시다.”

“킬킬킬. 나 말인가? 난 헤르만이라고 하는데. 예술적인 이름이지?”

“그래요. 요아힘, 그리고 헤르만.”

아이젠이 회혼의 운용을 마쳤다.

“둘 다 여기서 내 손에 박살 나줘야겠어.”

―타앙!

아이젠이 총탄처럼 쏘아졌다. 땅 디딘 발을 중심축으로 뛰어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놓이듯 날아간 것이다. 그의 목적은 요아힘보다는 먼저 헤르만 쪽이었다.

‘카인이 말한 그놈이야.’

요아힘도 중요하지만, 우선 헤르만 먼저 족치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그때, 아이젠의 날아들던 주먹이.

―쾅!!

무언가에 부딪쳐 공중에서 멈췄다. 아이젠과 주먹을 맞부딪친 것은 다름 아닌 요아힘이었다. 그 역시 아이젠과 마찬가지로 오른쪽 주먹을 뻗어 아이젠과 힘을 겨뤘다. 요아힘의 오른팔에는 검은색의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요동치고 있었는데, 아이젠의 회혼과 비교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요아힘은 상당한 강자인 듯싶었다.

요아힘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직 왼손에 발터의 머리통을 쥔 채였다. 그의 처분을 생각하고 있다는 듯.

“날 무시하는 건가? 아이젠 폰 그린우드.”

“킬킬킬. 날 먼저 죽이고 싶은가 본데? 예술적이야.”

헤르만도 실실 웃으며 허리를 곱사등이처럼 꺾었다.

아이젠이 요아힘에게 답했다.

“무시하는 건 아닌데 꺼져. 저 기분 나쁜 산발머리 놈한테 먼저 볼일이 있으니까.”

“슈트.”

―퍽!!

그 순간 아이젠의 명치에 무언가가 꽂혔다. 아이젠이 내려다보니 요아힘의 왼손 주먹이었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랐다. 왼쪽 주먹 역시도 검은색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윽!’

―뻐엉!

뒤늦게 아이젠이 음속을 돌파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 날아갔다. 그 탓에 아이젠의 옷이 조금 찢어져 바람에 나부꼈다. 그러나 아이젠은 금세 두 발을 땅 위에 디뎌 마찰력으로 날아가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치이이익― 바닥에 불이 날 듯한 기세로 파열음이 일어나며 아이젠이 멈춰 섰다.

‘동심상(冬心想).’

아이젠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이기스가 파란빛으로 빛나더니, 또다시 그의 심장이 느리게 뛰기 시작했다.

아이기스는 아무래도 아이젠이 전투태세에 임할 때만 발동하는 듯싶었다. 그것이 트리거인 셈.

아이젠은 허리를 일으켜 세워 요아힘을 노려보았다.

“주먹을 쓰는군.”

“그래.”

요아힘은 아이젠과 마찬가지로 주먹을 쓰고 있었다. 블렌하임 때와 비슷하다.

아이젠은 조금 전 맞은 명치를 쓸어 만졌다. 맞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회혼을 급소에 집중시켰기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 다만 욱신거리는 것이, 요아힘의 주먹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발터 따위보다는 훨씬 상급자에 속한다.

요아힘은 아이젠에게서 잠시 시선을 거두고, 발터를 내려다보았다. 발터는 어느덧 무릎을 꿇고 벌벌 떠는 채였다. 그의 머리통은 여전히 요아힘에게 쥐여 있다.

“요, 요아힘 님. 부디 살려주십시오. 제가 그동안 해온 일이 있는데 여기서 죽이시는 건 너무…….”

“아깝지.”

“그, 그렇습니다! 하,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오해를 풀 기회를 주신다면!”

“그런 건 필요 없다. 용서하마. 단, 여기서 아이젠을 죽이고 룬을 가져와야 해.”

꿀꺽―

발터가 침을 삼켰다. 아이젠을 죽이라니, 그건 조금 전 본인의 몸으로 직접 겪어봤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가능케 하려면 아모스를 더 섭취하는 수밖에 없을 터.

요아힘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지, 발터에게 미리 준비해 둔 아모스 약병을 휙 던졌다.

“안에 든 걸 모두 먹어라.”

땡그랑― 바닥에 떨어진 약병을 발터가 확인했다. 그런데 그 안에 든 아모스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약병 입구까지 가득 메우는, 적정 섭취량보다 훨씬 웃도는 양. 한 번에 먹는다면 생명을 갉아먹는 것으로 모자라 이 자리에서 당장 숨통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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