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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16화 (116/201)

116화

“무슨 짓을 한 거죠?”

“소가주가 되고 싶다고 했지?”

타케오는 바네사의 질문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좀 어려울 거야.”

휘익―!

바네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무언가 커다란 물질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그 물질은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앗?!’

퍽―!

바네사는 무언가에 강하게 턱을 맞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핑 도는가 싶더니, 이내 바네사는 바닥에 털퍼덕 쓰러졌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기절했을 뿐. 하지만 행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쓰러진 바네사의 바로 옆에서 파직― 소리와 함께 마테오 백작이 나타났다.

“제2 경기의 승자는 타케오 반 그린우드 님이십니다…….”

- 오오오.

사람들의 환호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타케오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 목표도 소가주거든. 당연히.”

* * *

아이젠은 대기실에서 조금 전 있었던 제2 경기의 상황을 복기했다.

아마 타케오가 바네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바네사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챈 사람은 극소수.

“위험한 놈이네. 타케오라고 했던가?”

대진표대로라면 타케오의 다음 상대는 바로 게오르크다. 게오르크가 과연 타케오를 상대로도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을지, 아이젠은 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나저나 바네사의 패전은 아쉽다. 그래도 검은뿔 기사학교에서 같이 수련하며 제법 정이 붙은 처지였는데.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이젠은 모니카인가 싶어 말했다.

“들어와.”

벌컥―

그러나 의외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바네사였다. 그녀는 배 왼쪽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였다.

아이젠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바네사 누님.”

“앉아 있어.”

바네사는 터덜터덜 느린 걸음으로 아이젠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런 그녀는 왠지 몹시 피로해 보였다.

“후우.”

“좀 괜찮으신가?”

“괜찮아 보이니?”

“아뇨.”

몸이 안 괜찮아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젠의 눈엔 바네사의 마음이 안 괜찮아 보였다.

바네사는 원래 소가주전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아이젠의 설득에 넘어가 참가하게 되었고, 우여곡절을 겪다 마침내 본선 2차전까지 왔지만 아쉽게도 첫 경기에서부터 패배해 탈락하고 말았다.

바네사는 멋쩍은지 웃어 보였다.

“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타케오가 5성이라고 해도 배탈이 났다거나 해서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는 거잖아.”

“베스트 컨디션인 것 같던데요.”

“그러게. 아쉽다.”

아쉽다는 그녀의 말이 왠지 더 크게 들렸다. 아이젠이 고개를 돌린 사이, 바네사는 별안간 침대 난간에 앉아 머리를 푹 숙였다.

그리고 마른세수를 하며 흐느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붉어진 그녀의 두 눈가에서 마음으로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아이젠은 알았다.

아이젠은 못 본 체하기로 했다.

“아이젠.”

“네, 누님.”

바네사는 고개를 들고 아이젠을 바라보았다.

“난 보지 못했어. 타케오 그 사람이 어떤 공격을 해오는지. 하지만 넌 봤겠지?”

“……네.”

“역시 그렇구나. 실력의 차이란 게 이런 건가.”

바네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으나, 이내 모종의 결론을 내렸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이젠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내 몫까지 이겨. 기왕이면 소가주전 우승까지 해버려.”

바네사의 체념한 얼굴에서 아이젠은 슬픈 감정을 공유했다. 그러나 결국은 남의 일.

아이젠은 바네사가 부탁하지 않아도 우승자가 될 생각이었다.

그는 바네사의 주먹과 자신의 주먹을 부딪쳤다.

“기꺼이.”

* * *

제3 경기는 속전속결로 시작되었다. 피리어드별로 준비된 대기 시간은 길지 않은 편이었다.

3경기의 대결 상대는 아우구스트 반 그린우드와 뮬러 반 그린우드. 그중 뮬러는 아이젠도 얼굴을 잘 몰랐다. 다만 아우구스트는 알고 있었다. 한 번 만났으니까.

‘프란츠의 동생이라고 했었지.’

아이젠은 경기장 관객석 난간에 양팔을 올리고 몸을 기울였다. 아우구스트는 프란츠보다 실력자라고 했다.

프란츠는 곡도를 쓰는 3방계. 아이젠이 직접 프란츠와 몸을 부딪쳐본바, 그의 실력은 대략 4성 정도로 점칠 수 있었다. 그런 그보다 아우구스트가 더 상위의 실력자라면 못 해도 4성 상위 정도는 된다는 뜻일 터다.

‘그러고 보니 프란츠 녀석은 죽었군.’

왠지 실감이 잘 안 난다. 다만 프란츠의 시체는 숲 여기저기에 찢어진 것처럼 갈라져 있다고 했다.

조사 결과 프렘린들의 소행인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지만, 아이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프렘린들이 상급 마물인 것과는 별개로 프란츠의 시체가 발견된 현장은 지나치게 이상했다.

‘내가 겨뤄본 경험을 토대로라면, 그 녀석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아.’

프란츠가 그렇게 처참하게 찢어발겨질 정도라면, 아마 수십 마리의 프렘린이 동시에 그를 공격했을 것이다. 그런데 프란츠의 시체 주변에 프렘린의 사체는 몇 구 있지도 않았다. 프란츠라면 분명 저승길 동무로 프렘린을 닥치는 대로 베었을 것이다.

그런데 칼에 베여 피가 튄 흔적도 없고, 프렘린 사체도 몇 구 없다니.

‘다른 사람의 소행이다. 누군가가 프란츠를 죽여놓고 프렘린의 짓인 것처럼 꾸며둔 거야.’

그리고 아이젠의 생각에, 그린우드 내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아이젠이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으려는 그때였다. 다가오는 기척이 있어 아이젠은 재빨리 온몸에 무혈신공을 불어넣었다.

익숙한 기척이다. 바라보자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저 멀리의 객석부터 이곳을 향해 걸어온, 게오르크였다.

“……첫째 공자님.”

아이젠이 살기를 지우고 공손히 인사했다. 게오르크는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그래, 아이젠. 소가주전은 잘 즐기고 있느냐?”

“……네, 뭐.”

웃기는 양반이다. 소가주전을 ‘즐긴다’고 표현하다니.

게오르크는 경기장에서 대결을 준비 중인 아우구스트와 뮬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1 경기는 잘 보았느냐? 네게 소감을 한마디 듣고 싶구나.”

“글쎄요. 뭐 볼 것도 별로 없었어서. 역시 공자님이야말로 소가주가 되시기에 적합합니다.”

아이젠은 마음에도 없는 흰소리를 내뱉었다. 이 자리에서 굳이 트러블을 일으킬 이유는 없다. 두 사람은 어차피 결승전까지 올라가면 만나서 겨루게 되어 있으니까.

게오르크는 피식 웃었다.

“네가 이렇게 건강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구나.”

“…….”

아이젠이 대답하지 않자, 게오르크는 아이젠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를 지나쳐 갔다.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거라.”

한마디 문장과 함께.

두근두근―

아이젠은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게오르크의 살기에 감응한 것도 있지만, 결승이 기대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는.’

이제는 양측 다 알고 있다. 서로의 시위가 서로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다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그린우드 직계의 장남.’

다른 귀족 가문이었다면 게오르크는 아마 적통 후계자였을 것이다. 그린우드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그는 소가주전이라는 번거로운 승계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불만을 가질 법도 한 상황. 그런데 게오르크에게서는 일말의 부정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정확히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어차피 자기 말고는 아무도 소가주전의 우승자가 될 수 없다는 자신감.’

그것은 자만이 아니었다. 게오르크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젠은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를 짓밟아버릴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아이젠은 결승전의 모습을 좀 더 기대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자신의 제4 경기부터 치러야 하겠지만.

한편.

아우구스트는 왼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덕분에 오른손으로 왼손을 부여잡아 떨림을 강제적으로 멈춰야만 했다.

그가 떠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우구스트는 형 프란츠보다 검술 실력은 뛰어났지만 새가슴이었다. 그는 이렇게나 많은 관중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도망이라도 쳐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간단한 연유다.

‘형 몫까지 잘해내야만 해.’

형 프란츠는 1차전 중 죽었다. 피쉬트랩 던전에서 프렘린과 사투를 벌이다가 죽었다고 해서 제대로 장례를 치르기도 힘들 만큼 시체가 난자되어 있었다.

그가 죽은 것에 대해 죄책감 따위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린우드의 소가주전은 원래 이런 것. 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형이 죽었다는 사실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형이 남기고 간 몫까지 아우구스트는 잘해내야만 했다.

그 몫이란 소가주를 달성하는 것. 이 3방계에서 소가주가 나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아우구스트의 몸은 지금 칼에 베인 상처로 가득한 것이 아니었던가.

‘아버지는 항상 말했어. 이 상처가 곧 뼈와 살이 될 거라고.’

실제로 그랬다. 아우구스트가 검법에 재능이 있는 걸 차치하고서도 스물다섯이란 어린 나이에 참철검술 4성 상위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덕분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3방주 페르디난트에게 가정폭력을 일삼는 학대범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우구스트는 그것을 완연하게 받아들이는 처지였던 것.

그렇기에 이 제3 경기에서 상대인 2방계의 뮬러 반 그린우드를 이기는 것이 그의 당금 목표였다.

아우구스트가 생각을 끝마침과 동시에, 경기장 반대편 쪽에서 뮬러가 걸어 나왔다. 그는 서른둘의 나이로 ‘소가주’라는 이름에는 조금 걸맞지 않은 완숙한 나이였다.

“헹, 귀찮게 이게 뭔 짓거린지 모르겠네. 그냥 다 한 군데에 모아놓고 개싸움 시키면 안 되나?”

뮬러의 말이었다. 그는 아직 경기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참철검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불량한 태도였지만 아우구스트는 공연히 힘 빼지 않기로 했다.

척―

두 사람이 정중앙에 서자, 마테오 백작이 두 사람 사이에 다가왔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아우구스트는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아우구스트 님이 이기겠지?

- 그럼. 얘기 못 들었어? 페르디난트 3방주님이 자식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잖아.

- 뮬러 반 그린우드 님도 제법 실력자라던데……. 타케오 님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들었어.

- 아우구스트 님의 저 몸을 좀 봐. 저게 어디 허투루 수련한 몸이야?

사람들은 대략 반반으로 나뉘어 아우구스트와 뮬러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뮬러는 그러한 얘기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건방진 놈.’

뮬러가 아우구스트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만, 아우구스트는 그를 멸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마테오 백작님이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도 자세를 고치기는커녕 삐딱하게 서서 무례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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