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14화 (114/201)

114화

한스는 생각했다.

‘승리 조건은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

상대로 하여금 항복을 하게 만들거나,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상대를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거나.

아니면, 상대를 죽이거나.

‘죽이면 안 된다는 규칙이 없어. 정말이지 무서운 핏줄 싸움이야.’

한스는 그린우드의 냉철함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그 끝을 모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냉철한 승계 구도에 몸을 실은 것도 본인이다.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

잠시 후 게오르크도 참철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참철검은 한눈에 봐도 일류 대장장이가 사흘 밤낮을 두들겨 만든 듯한 아티팩트였다.

꿀꺽― 절로 침이 삼켜지는 한스였다.

‘하지만, 내 참철검도 만만치 않아!’

한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한스.”

“예?”

문득 게오르크가 말을 걸자, 한스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게오르크 공자가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맑은 미소가 따로 있나 싶을 정도로.

한스는 저도 모르게 따라 미소를 짓게 되었다. 형님이 자신을 보며 저렇게 환하게 웃어주신 적이 있었던가?

‘아아, 영광스럽도다.’

대진표를 처음 받아봤을 때부터, 자신이 게오르크 공자를 이길 수 있으리란 불경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자리가 영광이기도 한 것이었다.

“예, 형님!”

한스는 마치 성령이라도 가득 찬 듯한 목소리로 밝게 대꾸했다.

그러자 게오르크 역시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권해라. 아니면 죽일 거란다.”

“……?”

그런데 그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저 얼굴에서 나온 음성이 맞나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차디찬 목소리였다.

한스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모,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지요, 형님?”

“기권하라고 했다. 아니면 죽일 거라고.”

이상했다. 왜냐하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스륵.

한스는 서늘한 감각이 자신의 목 근처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여러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서늘함이었으니.

그렇기에 그는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칼날이다. 칼날이 언제라도 자신의 목을 벨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혀, 형님…….”

“그래, 한스. 난 네 형님이지. 그럼 어서 무릎을 꿇고 조아려야지?”

덜덜덜덜덜.

한스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러다가 검사로서 절대 해선 안 될 행동까지 하고 말았다.

땡그랑!

검을 손에서 놓쳐 떨군 것이다. 그와 동시에 관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스의 귀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 어떻게 검사가 검을 놓을 수 있냐는 등의 비난 섞인 말들이리라.

한스의 무릎이 서서히 굽혀졌다. 마치 주술에라도 걸린 듯, 그는 덜덜 떨며 어느새 무릎을 완전히 굽히고 말았다. 양손까지 그 무릎 위에 얹은 채로 말이다.

원형 경기장 전체가 차가워진 듯한 날카로운 감각 속에서, 한스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기, 기권. 기권하겠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경기는, 시작하자마자 게오르크의 승리로 끝났다.

* * *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한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정확히는 힘이 없었다. 걸어가는 복도에서, 한스는 조금 전 경험했던 기이한 일을 되새김질했다.

‘대체 뭐였지……?’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다. 게오르크 첫째 공자님의 그 말투 하며, 그의 기세에 압도되기까지 하다니.

그래도 제법 게오르크의 발등까지는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한스는 자신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게오르크 첫째 공자님.’

위험한 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스는 또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첫째 공자님이야말로 소가주라는 자리에 적합하다.’

그린우드에는 철혈의 가주가 필요하다. 현 가주 테오발트는 그 위세를 잘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리타스나트 공화국과의 전쟁에서 이겨 전공까지 쌓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의 아들 게오르크가 이제 테오발트의 뒤를 밟으려 한다.

한스의 생각에, 그린우드 전체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게오르크 단 한 사람뿐이었다.

‘첫째 공자님, 역시 존경합니다.’

두려움의 뒤에는 존경이 버티고 서 있는 법. 한스는 어느새 게오르크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게오르크를 ‘형님’이 아니라 다시 ‘첫째 공자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바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복도를 걷는데, 멀리서 한 사람이 보였으니.

“어이.”

한스가 무거운 고개를 들어보면,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아이젠이 서 있었다.

“뭐야, 네놈이었나.”

한스는 일부러 퉁명스레 대꾸했다.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아이젠의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물론 그의 몸은 전에도 근육질이었고, 그때도 한스는 아이젠의 몸을 부러워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젠은, 옷을 제대로 갖춰 입긴 한 건지 그 얇은 천 위로 섬세한 근육이 세밀하게 보이고 있었다. 한스는 아이젠에게서 이제 질투심조차 느낄 수 없었다.

저놈은 그냥 대단한 놈인 거다. 아이젠이 저만한 근육질의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한스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짐작한다고 해도 따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에 그가 느꼈던 감정이 시기였다면, 이제는 어느덧 동경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한스는 자신이 존경하는 것은 오로지 게오르크 첫째 공자님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젠에게 강짜를 부리는 것이었다.

아이젠이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왜 기권했지?”

“뭐라고?”

“왜 기권했냐고. 물어보는 거야.”

“물어봐? 흥, 추궁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한스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아이젠 가까이 다가섰다.

“건방진 놈. 내가 네 손아래인 줄 아는 건 아니겠지? 서자 주제에 함부로 말 걸지 마라. 그동안 만만하게 봐주니까 내가 네놈 말을 하나하나 다 받아줘도 된다고 착각하나 본―”

퍽!

한스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의 턱이 돌아갔다. 한스는 하마터면 그대로 기절할 뻔했으나, 빠진 턱을 부여잡고 억억거렸을 뿐이다.

“어억! 어헉!”

“이 새끼가. 잠자코 듣고 있어주니까 말을 막 하네? 똑바로 서. 안 서?”

아이젠의 태도는 명백히 손윗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그러나 한스는 알았다. 아이젠이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묵사발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일전에 실제로 한번 겪어보기도 했지 않았나.

“으극. 으흑.”

한스는 턱 한 대 맞았을 뿐인데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아이젠 앞에 엉거주춤 섰다. 아이젠이 다시 팔짱을 끼웠다.

“이 자식은 꼭 한 번 말하면 못 알아듣는단 말이야.”

“으흑, 이, 이놈, 가주님께서 아시면 넌 또 감옥에 들어가게 될 거다!”

“응, 어디 한번 말해봐. 내가 감옥에서 나온 다음 네 얼굴이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큭…….”

아이젠은 한스를 굴종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이었다.

“다시. 왜 기권했지?”

“너, 너 같은 놈이 알 바 아니야.”

“기권을 지시받았나?”

아이젠의 물음에 한스가 고개를 들었다.

한스가 경기 중일 때, 게오르크가 한스에게 뭐라 속삭이는 듯했으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이젠이 기감을 열고 들어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는 건 한스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말했다는 뜻.

게오르크는 한스에게 기권을 지시한 것이다. 모종의 협박을 내걸며.

“죽기 싫으면 기권해라, 뭐 그런 말이라도 들은 거냐고 묻는 거야.”

“…….”

한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것이 결국 곧 대답이 되었다.

아이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게오르크라면 정말로 한스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아이젠도 죽이려 했으니까.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한스는 체념한 얼굴로 아이젠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복도를 걸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오르크 형님께는 이길 수 없어. 아이젠, 네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사람이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이니까. 너도 기권하는 게 좋을 거다.”

그가 뒤를 돌자 아이젠과 눈이 마주쳤다. 한스가 말했다.

“죽기 전에 말이야.”

* * *

제2 경기는 정체되는 일 없이 바로 시작되었다.

제1 경기에서 잠시 맥이 빠졌던 사람들도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경기에서는 타케오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문에서 출전하는 방계 중 유일하게 게오르크에 필적한다고 여겨지는 타케오 반 그린우드.

- 1방계의 타케오, 그 아이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 바네사가 직계라곤 해도 상대가 될 턱이 없지.

- 타케오라면 소가주의 자리까지 오를 수도 있을 터요. 내가 보증하지.

- 하하, 그래 봤자 방계 아니었소? 정말 게오르크에게 당할 수 있을 리가.

- 게다가 듣자 하니 타케오 그 아이에겐 질환이 있다던데…….

- 어허, 쉿. 그런 경거망동한 발언을.

사람들의 비아냥, 또는 조롱을 들으며, 바네사는 경기장에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편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쓸쓸한걸?’

생각은 그리했어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네사는 떨어져 나가고 없는 왼팔의 절단면을 괜히 한번 쓸어 만졌다.

마침내 맞은편에서도 상대가 등장했다. 타케오 반 그린우드, 1방계의 장남. 스물넷의 나이에 참철검술 5성에 도달한 기재.

아직 3성 상위에 불과한 바네사와는 비견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다만 바네사로서도 승리를 기대해 봄 직한 포인트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어머, 걷는 데 부축이 없어도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타케오는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두 눈 새하얗게 물들어 흰자밖에 없었다. 타케오는 분명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경기장 중앙까지 정확하게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이 바네사는 자못 신기했다.

‘안 보일 텐데.’

“안 보일 텐데, 라고 생각했지?”

“네. 앗.”

타케오가 해맑은 목소리로 묻자, 바네사는 얼결에 대답해 버렸다. 그래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타케오는 하하 웃고는 고개를 털었다.

“괜찮아.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수는 있거든.”

“느껴요?”

“소리, 촉감, 공기의 흐름…… 그리고 오감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것들. 난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어.”

타케오의 말에서는 한 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타케오의 시력은 조금의 약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야, 바네사도 같은 생각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바네사는 왼팔이 없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약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네사가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그거 아세요? 저는 왼팔이 없답니다.”

“오호, 그래? 안 보여서 미처 몰랐어. 나는 눈이 없는데, 그럼 장애인 대결이네? 하하하.”

분명 웃을 만한 발언은 아닌데, 타케오는 어째선지 호쾌하게 웃어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