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13화 (113/201)

113화

【 창시합 】

아이젠은 당일까지 2차전 창시합의 대진표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침이 밝아서야 대진표를 받아볼 수 있었는데, 보자마자 왠지 한숨부터 나왔다.

‘마테오 백작님, 저 영감님이 진짜.’

마테오 디 잔니니 백작은 아이젠과 게오르크를 정반대로 배치해 뒀다. 즉 결승전 이전까지 두 사람에 중간 어디서든 만날 일은 아예 없단 소리. 서로 결승전에서 만나는 수밖에 없는 것.

마테오 백작이 아이젠을 찾아온 그 날, 마테오는 물었다. 대진하고픈 상대가 있느냐고.

아이젠은 그때 대답했다.

- 저는,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첫째 공자님이요.

- 호오,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딱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아이젠은 그날의 대화를 상기했다. 아이젠은 그날 분명 마테오 백작에게 게오르크와 겨루고 싶다 말했고, 마테오 백작은 분명 그 말을 들어줄 것처럼 떠나갔는데.

실상은 정반대 배치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다 있나.

“이럴 거면 왜 물어봤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는 아이젠에게, 옆에 서 있던 모니카가 고개를 돌렸다.

“네, 도련님?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아이젠은 잠시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아이젠과 모니카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가주전에 참전하는 그린우드의 핏줄들이 행렬을 이루듯 줄지어 나란히 걷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하인들을 거느린 채.

아이젠은 멀리 서 있던 게오르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진표를 다시 내려다보아 살폈다.

‘그래, 좋게 판단하자. 생각해 보니 신경 쓸 필요는 없겠어.’

정반대 대진표에 있다면, 모두를 쓰러뜨리고 결승전에 오르면 그만이다. 아이젠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결승 자리에 설 자신이 있었다.

게오르크도 가문의 모두가 한입으로 모아 말했다. 게오르크야말로 소가주전의 우승자로 헤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적자가 되기에 완벽한 존재. 그것이 바로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물론 그렇게 예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중간에 탈락한다면 아이젠은 게오르크의 수준이 그뿐이라고 납득하고 상대할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결승전에서 만난다. 그때 보자고, 게오르크.’

아이젠이 모종의 다짐을 다지는 때였다.

에버쏜즈에는 계율의 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조금 더 지나쳐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원형 경기장이 등장한다.

아이젠 등은 그곳으로 입성했다. 그러자 환호성은 아니지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환호성처럼 크게 귀에 때려박혔다.

원형 경기장 좌석에 관객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던 탓이다. 가문의 장로들, 하인들, 각 방계의 방주들, 그리고 스미스쏜즈의 대장장이들, 그노시스의 거주민들 등이 좌석마다 빈 곳 없이 앉아 있었다.

아이젠은 새삼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됐다.

‘아니……. 에버쏜즈는 그린우드만 출입할 수 있다면서.’

그건 그냥 거짓말이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오늘만 허락을 해주는 건가?

아이젠은 근사치로 일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이런 시선에는 이미 익숙한 탓이었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한스나 바네사 누님, 그 외 기타 그린우드들은 조금 긴장했는지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오직 아이젠과 게오르크, 그리고 1방계의 타케오 반 그린우드와 2방계의 뮬러 반 그린우드 네 사람만이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넷 중 아이젠을 제외한 세 사람은 우승 후보로 여겨지고 있는 자들이다.

‘이제 진짜 시작인가.’

생각하는데, 아이젠은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꽉 붙잡는 것을 느꼈다. 보나 마나 모니카일 게 뻔해 뒤를 돌아다보니, 역시 모니카가 맞았다.

그녀는 왠지 고개를 푹 숙이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모니카. 긴장하지 마.”

“네, 네, 도련님. 하지만…….”

“하지만?”

모니카는 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제야 아이젠의 귀에도 들렸다. 일천의 관객들이 말하는 소리를.

- 게오르크 공자님 빼곤 다 별 볼 일 없지 않나?

- 바네사 공자, 난 저분에게 걸어보겠어.

- 멍청한 소리! 차라리 한스 공자에게 거는 게 낫지!

- 다들 너무 직계에만 기대하는군. 1방계의 타케오 반 그린우드 님도 무시 못 할걸.

- 그렇게 따지면 3방계의 아우구스트 님이 더 기대해 봄 직하지. 고인이 되신 형 프란츠 님보다 더 강하다고 하던걸.

- 4방계의 장남 베르너 님도 제법 강해.

- 그렇게 따지면 2방계의 뮬러 님은 어떻고?

사람들의 이름이 공기 중을 뛰어넘으며 오가는 와중에.

아이젠의 이름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들리기는 했다. 조금 다른 의미로 말이다.

- 아이젠 집쥐공자가 열다섯 개나 되는 레드스톤을 가져왔다던데.

- 그 얘기 나도 들었어. 그게 말이 된다고 보나?

- 어떻게 들은 얘기야? 아마 비밀이었을 텐데.

- 흑기사들이라고 마냥 입에 자물쇠 채우고 있는 건 아니야.

- 어찌 됐든, 아이젠이 열다섯 개라니. 잘못 난 헛소문인 게 분명해.

- 헛소문은 아닐걸! 하지만 손을 쓴 건 뻔하잖아. 검도 안 쓰는 놈이 레드스톤을 그렇게 많이 모았다는 게 말이 돼? 분명히 돈을 들여 산 거야.

- 놈이라니, 이 친구. 말조심해.

- 뭐! 누가 들으면 어쩔 건데? 내가 어디 틀린 말이라도 했어?

모조리 혹평일색. 아이젠에게 소가주전의 우승을 기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기대를 거는 사람이 몇몇 있기는 했을 것이다. 사울 장로, 유진 그레이번스의 얼굴도 저 멀리 보이고 있었다. 다만 아이젠은 그들이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지 아닌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아이젠은 스스로를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판 따위 하잘 중요하지 않다.

내 온몸에 나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 결사신권(抉死神拳).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승리의 지름길.’

아이젠은 불끈 다짐하며 모니카의 손을 꽉 붙들었다. 그러자 모니카의 손끝을 통해 아이젠의 강렬한 의지가 전해졌다.

“알겠지?”

아이젠이 묻자, 모니카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련님.”

각 그린우드는 각자의 대기실로 안내됐다. 아이젠 역시 자그마한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대기하다가 정해진 창시합 순서가 되면 경기장으로 나가 상대와 겨루면 된다. 물론, 자신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밖으로 나가 구경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아이젠은 텅 빈 대기실에 자그맣게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아 호흡을 다졌다.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그의 온몸에서는 회색빛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혈신공(武孑神功).’

실로 오랜만에 해보는, 정적인 상태에서의 무혈신공 단련이다.

물론 결사신권은 2성부터는 실전을 통해서만 강해지고, 그렇기에 이처럼 정좌로 앉아 무혈신공을 단련하는 것은 별로 의미 없는 행동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으나.

아이젠에게 이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말하자면 무혈신공을 운공함으로써 내실을 단단히 하는 느낌이랄까. 그에게는 모종의 의식이라고 보는 편이 좋았다.

“후우.”

총 8명이 치르는 창시합 경기, 그중 아이젠은 네 번째 순서다. 아이젠은 머릿속으로 대진표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제1 경기: 게오르크―한스]

[제2 경기: 타케오―바네사]

[제3 경기: 아우구스트―뮬러]

[제4 경기: 베르너―아이젠]

그의 첫 상대는 베르너였다. 베르너라면 던전 안에서도 마주쳤던 놈이다. 동생과 같이 다녔던.

‘동생 브루노는 탈락했다고 했던가.’

베르너는 기이한 검술을 썼다. 참철검술의 응용일 테니, 이번 기회에 알아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첫 경기는 게오르크와 한스라니. 한스는 그렇게나 게오르크를 존경해 마지않던 녀석인데, 과연 어떻게 되려나.’

당연히 게오르크의 승리로 끝나기야 하겠지만, 싱겁게 끝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이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럼 재미없으니까.

[이제, 첫 번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이젠이 무혈신공을 운공하는데 하늘 위로 벼락같은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마테오 백작의 목소리다.

이번 경기를 주관하는 것 역시 마테오 백작의 몫인가 보다. 하긴, 이런 대단한 능력이 있으니 경기를 진행하기도 쉬울 거고,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그의 능력이라면 상황을 대처하기에도 유용할 거다.

아이젠의 몸에서 연기가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무혈신공 운공을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나도 한번 구경이나 하러 가볼까.”

싸움 구경은 못 참지.

* * *

황량한 원형 경기장. 사막마을 그노시스의 특색을 반영하기 위함인지 바닥은 모래로 깔려 있었다. 입자가 고운 모래인 덕분에 실제로는 부드러운 쿠션과 같았다.

그 위에 게오르크와 한스 공자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옆에는 심판 역인 마테오 백작도 서 있긴 했으나.

‘첫째 공자님과 첫 경기라니.’

한스는 마테오 백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스로서는 영광이기도, 불행이기도 했다. 게오르크와 첫 번째 경기에서 맞닥뜨린다는 것이 말이다. 게오르크를 존경하긴 했지만 첫 번째 경기에서 만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 만나버리고 말았다.

‘마테오 백작님이 찾아오셨을 때, 첫 경기에서 게오르크 공자님을 만나는 것만은 피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었는데.’

한스는 원망을 담은 눈빛을 마테오 백작에게 보냈으나, 마테오 백작은 그 눈빛을 봤는지 못 봤는지 실눈을 뜨고 있을 뿐이었다.

침을 꿀꺽 삼킨 한스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웅성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게오르크에게 음성을 던졌다.

“첫 경기부터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게오르크 첫째 공자님…… 아니, 게오르크 형님!”

“그래, 한스.”

부들!

한스는 게오르크가 자신을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경기는 경기. 여기서 게오르크에게 차분히 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한스는 게오르크를 이길 생각으로 마음을 다졌다.

그사이 마테오 백작이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 번 더 확인차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련의 승리 조건은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기권하는 것 역시 허용하고 있습니다. 두 분, 질문 있으신지요?”

“…….”

“…….”

게오르크와 한스가 모두 조용히 있자.

마테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 다 질문이 없으신 줄로 알고……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파직!

마테오 백작이 허공에서 번쩍하고 사라졌다. 아마 벽력 마법을 통해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곳 어딘가를 유랑하듯 떠돌고 있을 터.

한스는 조심스레 참철검을 꺼내 들었다. 스릉― 날이 벼려진 칼 소리와 함께 그의 참철검이 조심스레 뽑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