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아이젠은 주저하지 않고 다시 주먹을 뻗었다. 현무는 놀라서 양발에 한기를 담아냈다.
[가까이 오지 마, 이 자식!]
“왜 그래, 이제 정 좀 붙은 것 같은데.”
결사신권 회혼, 교아(鮫牙)!
아이젠의 주먹에서 폭발이 터져 나갔다. 교아는 이전에도 상어의 이빨처럼 대상을 낚아챘지만, 지금의 교아는 상어가 아니라 향유고래의 그것처럼 현무의 온몸을 집어삼킬 듯 허공에 퍼지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교아를, 현무는 두 개의 한기를 발사해 막아내려 했고.
투확―!!
콰아아아아아!
공중에서 맞부딪친 두 기운은 서로를 죽일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기운은 동시에 사라졌다.
[이럴 수가. 이런 풋내기가 어떻게 나와 비슷한 기운을.]
“비슷?”
쉭!
아이젠은 어느새 현무의 머리 위에 있었다. 목롱보(目弄步)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널 상회하는 게 아니고?”
[이 건방진 자식!]
아이젠은 현재 회혼을 차분히 운용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실전 상황에서 직접 회혼의 기운이 얼마까지의 힘을 내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5성을 달성하긴 했지만, 차근차근 달리도록 하자.’
결사신권 회혼, 권왕백무(拳王百舞)!
콰과과광! 카가가가각!
휘오오오오!
그렇게 아이젠의 주먹이 현무의 발과 맞부딪치고 있었다. 계율의 관을 모조리 무너뜨려 버릴 정도의 기세로.
* * *
한편.
사울 장로는 에버쏜즈에서 나온 뒤, 급하게 다른 기사의 보고를 받고 어딘가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이곳은 그노시스 바깥, 그것도 한참을 말을 타고 달려야 나오는 곳. 바로 영설산이었다.
영설산에 말을 이끌고 도착한 사울 장로는, 도착하자마자 영설산 외곽을 지키고 서 있는 기사들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사울 장로님!”
“음. 그래.”
기사들이 경례하자, 사울 장로는 받으며 말에서 내렸다. 그는 조금 벅찬 기색이었다.
“찾아냈는가?”
“예, 그렇습니다! 한데, 그것이 조금…….”
“조금? 왜, 무슨 일인데 그렇지?”
“직접 보시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이쪽입니다. 길이 조금 험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날 연로한 사람으로만 보는가. 괜찮네. 어서 가지.”
그렇게 사울 장로와 기사들은 말을 타고 영설산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사들은 이곳 영설산이 그린우드의 출입만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였으나, 사울 장로가 있는 한 그들이 문책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사울 장로가 마침내 산 중턱까지 도착하고서야, 기사들이 말을 멈춰 세웠다.
“여깁니다.”
사울 장로가 말에서 내려 내려다본 것은, 얼굴이 반쯤 터져 없는 사체.
“이자가 바로 블렌하임인가? …이미 죽었지 않나!”
바로 바네사의 왼팔을 잘라간 남자다.
바네사가 죽기 살기로 영설산에서 하산해 그노시스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처음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사울 장로였다. 그때 왼팔이 없는 바네사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사울 장로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서도 이 일이 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 급히 그녀를 숨겼다.
바네사의 말에 의하면 영설산에 위험한 남자가 있다 했다. 그자가 바로 자신의 왼팔을 잘라갔다고. 그자의 이름은 블렌하임.
그리고 사울 장로는 일부 기사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려 블렌하임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려둔 상태였다. 영설산은 그린우드 이외의 출입을 엄금하고 있는데, 외부인이 침입했다는 것 자체가 큰 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목적이 귀족 살해였다니.
그런데, 그 블렌하임이 지금 죽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처참한 상태로.
“행색을 펼쳐보아라.”
사울 장로의 명령에 기사들이 블렌하임의 옷가지를 풀어헤쳤다. 그러자 그의 온몸에 난 멍 든 자국이 눈에 띄었다.
‘멍 자국?’
그런데 어딘가 좀 이상하다. 이건 주먹에 맞은 자국인데…….
그때 퍼뜩 사울 장로가 정신이 들었다. 그는 이러한 멍 자국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검은뿔 기사학교에서 아이젠과 대련했을 때, 아이젠이 때린 상처마다 이런 큼지막한 멍 자국이 남곤 했던 기억이 살아난 것이다.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사울 장로는 마음속으로 이미 아이젠을 장본인으로 낙점해 두고 있었다.
귀족 살해범 블렌하임, 지명 수배까지 내려진 그를, 아이젠이 이긴 것이다. 귀족 살해범이라고 이름 붙은 만큼 블렌하임 역시 상당한 실력자였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를 이겼단 말인가?
“허어…….”
“어떻게 할까요? 장로님. 좀 더 조사해 보시겠습니까?”
기사 한 명이 그렇게 물었다. 사울 장로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니. 이미 죽은 자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지. 저세상에서 처벌을 받을 것이네. 이자의 시체만 수습하도록 하지.”
“예!”
기사들이 블렌하임의 시체를 꽁꽁 싸매고 거두었다. 그 옆에 키가 작은 남자의 또 다른 시체가 있었는데 그것도 같이 수습해 가기로 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울 장로는 괜히 팔짱을 끼게 되었다.
‘아이젠 공자님. 대체 얼마나 강해지신 것인가.’
검은뿔 기사학교에서 그를 가르쳤을 때도 그는 이미 상당한 강자였다. 기사학교에서 단련하는 동안 그는 더욱더 강한 위치에 올랐다.
그런데, 이번 소가주전을 치르면서 아이젠 공자는 아득히 먼 곳까지 올라가 버린 모양이다.
‘결사신권이라고 했던가. 그 권법의 이름.’
이대로라면 무시할 수 없는 권법이다.
어쩌면, 설마 만에 하나의 일이겠지만 그래도 어쩌면.
‘소가주전의 우승자는… 아이젠 공자님이 되실지도 모르겠어.’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가?
참철검가라는 이름으로 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것이 그린우드 공작 가문이다. 그런데 만약 검을 쓰지 않는 아이젠이 다음 대 가주로 추대된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
사울 장로는 고심 끝에 결론 내렸다.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공자께서 소가주에 오른다면, 그분께서 알아서 하실 일일 것이다.’
사울 장로는 그저 관조자의 위치에서 다음 대 가주를 돌볼 뿐이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사울 장로의 머릿속은 말끔해진 기분이었다.
* * *
쿠오오오! 쿠오오오오!
지축이 뒤흔들린다. 계율의 관이 만년한철로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아이젠과 현무는 이미 생매장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존재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특별히 아이젠 쪽이 좀 더 멀끔하게 살아 있었다. 현무는 어느새 그 기다란 목을 축 늘어뜨린 채였다.
[크윽.]
현무의 외마디 비명.
아이젠은 회혼을 두른 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회혼의 날카로운 기운이 벨 듯한 위압감으로 아이젠에게 낭창낭창 휘감겼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아이젠은 저릿저릿한 주먹을 쥐었다. 회혼의 힘을 사용해 결사신권의 모든 묘리를 사용해 보았다.
4성의 힘, 그리고 5성의 힘까지 모두.
그리고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젠은 새로 얻은 이 힘, 회혼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 현무의 몸이 갑자기 번쩍이는가 싶더니, 눈을 깜빡하자 그의 모습이 다시 조금 전 새하얀 소년으로 변했다. 다만 손에 쥐고 있던 참철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제법이네, 너. 너라면 지안니의 뜻을 물려받는 것도 이해가 가.]
“왜, 더 안 해보고? 솔직히 아직 내가 널 힘으로 이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아이젠이 회혼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과 별개로, 현무가 가진바 힘은 막강했다. 신수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이젠은 일개 인간, 그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아이젠은 이길 수 없다는 선택지는 배제하고, 자신의 몸이 갈라져 찢어질 때까지 전력을 다했다. 지금 그의 몸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내는 썩어들어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현무의 한기는 아이젠의 몸속마저 얼릴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현무는 좀 더 전력을 다해보지도 않고 포기를 선언하고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난 아직 내 힘을 모두 사용하진 않았어. 하지만.]
현무가 손을 내밀었다. 피부만큼 새하얀 손이었는데, 아이젠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차가운 한기가 손을 통해 스며들었다.
그사이 현무가 말을 이었다.
[내 힘은 오로지 오러를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어. 그게 계약 조건이었거든.]
“무슨 의미지?”
[조금 전 너와 싸운 건 순수한 내가 아니란 뜻이야. 아이기스에 담겨 있던 지안니의 오러, 난 그것을 사용했을 뿐이야. 말하자면 지안니의 잔향만으로 너와 맞붙은 거랄까.]
지안니는 천 년 전에 아이기스를 사용했고, 그 이후 아이기스는 천 년간 가사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지안니의 오러가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현무는 그 잔여물만을 사용해 아이젠과 싸운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초대 가주 양반, 역시 굉장한 실력자였군.’
하긴 당연한 일일 터. 이만한 가문을 세운 인물이니 말이다.
“계약이라니, 그건 무슨 뜻인데? 너는 신수, 지안니 초대 가주님은 사람. 신수가 사람과 계약까지 해가며 힘을 써선 안 되는 이유가 뭐가 있지? 그러고 보니까 상호 합의를 했다고 했지. 무슨 뜻이냐? 궁금하니까 말해봐.”
[그건―]
현무는 대답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차차 알려줄게. 어쨌든, 지안니가 왜 너에게 날 물려줬는지 알겠어.]
현무는 크게 심호흡하더니 선언하듯이 말했다.
[나 현무 아이기스는, 지안니와의 계약을 아이젠에게 이양하겠다.]
그러자 아이젠은 현무의 손을 통해서 어떤 힘 같은 것이 꿀렁꿀렁 스며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오러랑은 조금 다른, 굳이 표현하자면 ‘염원’ 같은 것이 그의 손을 통해서 흘러드는 것이다.
‘이건.’
글자 그대로 지안니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지는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이것으로 아이젠은 본인이 아이기스의 사용 권한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힘을 빌려주겠다는 건가?”
[빌려줘? 천만에.]
탁. 현무는 아이젠과 손을 놓았다. 그러나, 매몰차게 놓았다기보다는 염원의 전달이 끝났기에 놓은 것뿐이었다.
[빌려주는 게 아니야. 원래부터 너의 힘인 거지.]
“그 말은?”
[잊었어? 날 발동할 때의 조건.]
아이젠은 자신의 오러를 아이기스에 흘려 넣음으로써 아이기스를 현현시켰다. 바꿔 말하면 오러를 이용해 아이기스를 활성화했다.
아이젠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무가 말했다.
[난 너의 오러를 통해서만 발현돼. 즉 내 힘은 이미 모두 너의 힘이야.]
뒷말은 덤이었다.
[그 힘을, 전부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 * *
끼이이익! 쿵!
계율의 관으로 통하는 지하 문이 열렸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이젠 폰 그린우드. 그는 전에 없이 말끔한 얼굴이었다.
문밖에 서 있던 유진이 아이젠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러자 아이젠은 그 손을 맞잡고 밖으로 나왔다.
“해냈냐?”
유진의 간단한 물음에.
바닥에 땅을 딛고 올라선 아이젠은 나지막이 말했다.
“당연하지.”
아이젠은 이제, 아이기스의 힘을 얻었다. 그의 양팔에 달려 있는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의 새파란 색감이 어쩐지 더 진해진 것 같은 인상을 받는 유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