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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10화 (110/201)

110화

“이대로 당하는 건 조금 열 받지.”

아이젠의 자존심상, 패배한 채로 물러나는 것은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설령 상대가 신수이더라도 말이다.

[뭐라고?]

아이기스가 잘못 들었다는 듯 반문하자, 아이젠이 고개를 들었다.

“이대로 당하는 건 열 받는다고.”

[……그럼 어쩔 셈인데? 난 조금 전 널 완전히 죽일 수도 있었어. 죽길 원해? 지안니의 천 년 뒤 후손이라면서?]

못 믿는 척하더니 실제로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기스, 아니, 현무로서는 조금은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대로 죽이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정도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이젠이 받아들이기엔 현무의 교만이었다.

“난 널 이길 수 없어. 지금 내 홍화의 기운으로는.”

[뭐야. 조금 전엔 이대로 당하는 건 열 받는다더니. 그럼 방법이 없는 거 아닌가? 내 힘을 빌려 쓰겠다는 욕심은 버리지 그래.]

현무가 커다란 머리를 휘휘 돌리며 말했다. 시선만큼은 아이젠과 계속 맞춘 채였지만.

그때 현무는 문득 아이젠의 눈 안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뭐지? 이 아이는.’]

현무는 수천 년을 살아왔다. 이제 겨우 스무 해도 살지 못한 것 같은 아이젠은 그의 입장에서는 갓난아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갓난아기에게서 저런 치기가 느껴진단 말인가?

눈동자의 깊이가 남달랐다. 인간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탁기는 거의, 아니, 완전히 없었다. 그 대신 찬란한 총기가 그 작은 눈동자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현무는 이런 눈동자를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바로 지안니 폰 그린우드에게서.

[‘뭐야.’]

현무는 묘하게 기분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아이젠도 짧은 생각을 마치고 결의에 차서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별수 없지. 한번 해볼까.”

[뭐? 뭘 하겠단 거지?]

“글쎄. 궁금하면 지켜보든가.”

아이젠이 두 걸음 정도 물러나더니, 다리를 길게 뻗어 땅 위에 지탱하고 섰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했다.

“후우…….”

그의 심호흡은 평소와 색깔이 조금 달랐다. 홍화의 기운을 담을 때처럼 안정적인 호흡과는 거리가 있었다.

아이젠은 생각하고 있었다. 지안니 폰 그린우드는 분명 그린 오러를 사용해 아이기스를 활성화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젠도 그린 오러를 주입함으로써 아이기스를 가사상태에서 깨우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아이젠이 주야장천 홍화의 기운만 쓰고 있는 것도 이상하잖은가.

‘그린 오러.’

아이젠은 몸 밖으로 그린 오러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결사신권 4성, 홍화의 경지.’

홍화의 기운도 꺼냈다.

홍화와 그린 오러가 얽히고설키며 엮여 들기 시작했다. 아이젠의 몸 밖에서 펼쳐지는 그 기이한 광경에, 현무도 잠시 주춤 물러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뭐, 뭘 하려는 거야? 너.]

“나도 몰라.”

아이젠도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직 이 방법만이 지금 이 상황을 꿰뚫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휘이이이이이이…….

연풍의 오러가 홍화를 감싸기 시작했다. 홍화도 연풍을 휘감기 시작했다.

아이젠의 머리 위로 마치 뜨거운 열기가 올라가듯 소용돌이치던 두 개의 기운은.

마침내 차츰 하나로, 하나로. 색깔을 변화하기 시작했다.

‘결사신권의 홍화, 그리고 그린우드의 그린 오러.’

두 개의 빛깔을 합치면. 즉 그 두 개의 기운을 합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쉬익!

한순간, 아이젠의 몸 밖으로 솟구치던 두 개의 오러가 동시에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잠시였을 뿐이다. 찰나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고, 그것이 현무가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기나긴 시간으로 느껴졌을 때.

카아아아앙!

강철마저 베어버릴 것 같은 칼날 같은 기운을 지닌 오러가, 아이젠의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것의 색깔은 회색.

분홍빛과 연두색이 합쳐져 만들어낸, 회색이었다.

[그게 뭐지?]

현무가 묻자.

아이젠은 조용히 대답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회혼(灰混)’이라고 이름 붙일까.”

* * *

아이젠은 잠시 옛날 일을 떠올려 보았다. 정확히는 옛날 정도가 아니라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이라 해야겠지만.

그가 이강철이던 시절, 아직 결사신권의 묘리를 1성 정도밖에 내지 못하던 때였다. 스승 이화도에게 사사한 무혈신공을 통해 결사신권이라는 독문무공을 만들어냈으나, 정작 그 독문무공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찰싹!

“아! 아픕니다!”

강철은 쓰라린 팔뚝을 비벼대며 아픈 시늉을 했다. 무신 이화도는 손에 든 회초리로 강철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놈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래? 무혈신공의 호흡법은 그게 아니야. 후우― 후우― 이게 무혈신공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셔 봤자 제가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사람 숨 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어허, 이놈이 그래도! 그게 아니라니까. 자, 따라 해봐라. 후우― 후우―”

별수 없이 강철도 자세를 잡고 스승의 호흡법을 따라 해보았다. 그런데 스승이 하라는 대로 숨을 쉬자 확실히 무혈신공의 기운이 온몸 곳곳에 자리하는 기분이었다. 그게 왠지 더 열이 받았다.

이화도는 강철의 눈빛에서 그것을 읽었는지, 강철의 반대쪽 팔에 또 찰싹- 하고 회초리를 휘둘렀다.

“아! 이번엔 왜 때려요!”

“철이 이놈아. 내공이라는 게 그렇게 막무가내로 불어넣는다고 끝이 아니야. 넌 무공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그냥 힘을 강하게 해주는 거?”

“이놈이. 내가 몇 년을 가르쳤는데도 아직도 배움이 그 정도란 말이냐?”

이화도가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으로 말하자, 강철도 괜히 서운한 기분이었다.

“아니, 뭐 제대로 말해준 적이 있어야 답을 하죠. 답은 정해져 있으니 전 대답만 해라 뭐 이겁니까? 그리고 결사신권은 제가 만든 권법이라구요.”

“그 권법은 내 내가기공을 바탕으로 만들었지. 떼잉, 쯧쯧… 알았다. 그럼 한 번만 알려줄 테니 잘 듣거라.”

강철이 경청하는 자세로 귀를 기울이자, 이화도가 만족했는지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무공을 단련할 때, 철이 네가 가진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거라.”

“제가 가진 게 뭔지요?”

“그래. 네가 가진 게 뭔지 생각해 보고, 그것들을 모조리 네 온몸에 담아내 봐.”

이화도는 회초리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갑자기 자세를 잡았다. 그것은 명명백백한 강철의 독문무공, 결사신권의 자세였다.

덕분에 강철도 조금 놀라 이화도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어떻게 결사신권을?”

“결사신권은 네가 만들어낸 독문무공이지. 그게 대단한 것은 알겠다. 허나….”

이화도는 강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강철은 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 주먹을 가만히 맞아주었다.

퍽!

쉬이익―

콰앙!!

그 길로 강철은 저 멀리 날아가 땅에 곤두박질쳤다. 강철은 맞아봤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 기존 스승님이 사용하던 무혈신공의 기술이 아니다. 결사신권의 권법인 ‘박살(撲殺)’이었다.

강철로서는 놀라 나자빠질 일이었다. 스승님이 대체 어떻게 결사신권을 쓴단 말인가?

그 답을 해주겠다는 듯, 이화도는 자세를 풀고 강철을 내려다보았다.

“권법이 뭐 별거냐? 결사신권(抉死神拳)은 네 전부를 온몸에 싣는 거야.”

* * *

카가가가각!

아이젠이 회상을 마쳤다. 그는 지금 칼날처럼 낭창거리는 회혼(灰混)의 기운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현무는 그 모습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두 존재의 덩치 차이로만 보자면, 현무가 아이젠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하다. 더군다나 현무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아이젠을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었다.

마치 단련된 성인과 갓난아기 정도의 차이.

그런데, 현무는 어째선지 눈앞의 작은 소년 아이젠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지 않았다.

[‘이 녀석. 조금 전이랑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잖아.’]

그때 아이젠이 입을 열었다.

“그럼 어디. 어떤 힘을 내나 한번 볼까?”

회혼은 홍화의 뜨거운 열기와 그린 오러의 바람의 성질을 동시에 띠고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성질이 섞이며 새로운 형태, 칼날의 오러를 만들어냈다.

아이젠은 자세를 잡고 현무를 향해 주먹을 뻗을 준비를 마쳤다.

“결사신권 회혼(灰混), 박살(撲殺)!”

쉬이이익!

원래의 현무라면 지금 날아드는 공격쯤은 가볍게 피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빠르다!’]

현무는 피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공격을 피해내기에 그는 너무 커다랬기 때문이다. 아이젠의 주먹은 현무의 머리를 향해 정면으로.

퍼억!

날아들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각!

아이젠의 박살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한 방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회혼의 기운까지 담겨 있으니, 현무는 마치 머릿속이 칼날로 헤집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크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절로 나오는 것은 덤이었다.

현무는 재차 오른발에 한기를 담았다. 그리고 한기가 미처 모여들기도 전에 발사해 아이젠을 멀리 튕겨냈다.

투웅! 퉁! 퉁!

아이젠도 별수 없이 그 일격에 맞아 나가떨어져 멀리 튕겨날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금세 다시 자세를 잡고 일어났다.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머리에서 피는 조금 흐르고 있었지만.

“피가 흐르는데? 얼려 버리지도 못할 만큼 급했나 보지?”

[크윽, 이 자식.]

피가 흐르는 것은 아이젠뿐만이 아니었다. 현무의 머리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회혼에 베인 탓이다.

회혼은 정확히는 오러일 뿐, 진짜 날붙이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현무는 실제로 베인 것이다. 아이젠의 회혼에.

‘어쩌면 이것이 결사신권의 완성 형태였는지도 모르겠어.’

아이젠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며 내심 짐작했다.

전생 이강철이었을 때의 그는, 오로지 무혈신공만을 끌어올려 주먹에 담아냈다. 그것만으로도 투신이라 불릴 만큼 압도적인 위치에까지 올랐지만, 이강철의 평생 목표였던 생사경(生死境)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는 천마 도강문과의 혈전 끝에 죽었고.

다시 눈을 뜨니 아이젠의 몸이었다. 전생을 떠올렸다고는 하나, 정확히는 아마 환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젠의 추측에 불과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이젠은 그간 저 나름대로 고민해 봤다. 자신은 어째서, 전생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생사경을 향한 그의 열망이 현생에까지 와닿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사신권을 극한까지 단련하여도 생사경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이 지금 이 회혼의 기운에 담겨 있다.

‘홍화, 그리고 그린 오러. 내가 가진 힘을 모두 담아낸다.’

스승님, 당신이 그때 말씀해 주신 것은 이런 상황이었습니까?

몸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기운을 발산한다. 그것이야말로 아이젠이 결사신권을 최종 형태로 완성할 수 있는 것. 창졸간에 이름을 회혼이라 붙인 것도 제법 재치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회혼(灰混: 회색으로 섞다). 생사경의 실마리를 조금은 찾아냈는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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