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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08화 (108/201)

108화

[필요 없어.]

아이젠이 호기롭게 권했음에도.

아이기스는 단호한 말투로 거절했다.

[난 너랑 싸우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니야. 지안니가 죽었다고? 그럼 성묘라도 해야겠어.]

그렇게 아이기스는 아이젠을 지나쳐 가려 했다.

그러나.

덥석!

아이기스가 아이젠의 옆을 스쳐 지날 때, 아이젠이 아이기스의 팔뚝을 붙잡았다.

“아서라. 가긴 어딜 가?”

그런 한편 아이젠은 아이기스의 팔뚝이 굉장히 얇다고 생각했다.

비교하자면 마치 전생을 처음 각성했던 때의 아이젠만큼이나 빼빼 말랐다.

이 안에 뼈가 들어 있긴 한 건가? 싶을 정도.

물론.

‘애초에 사람이 아니지만.’

아이기스는 사람이 아니다. 아티팩트가 현현한 것일 뿐.

그런데 아이젠은 아티팩트가 사람의 형태로 현현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아이기스쯤 되는 아티팩트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건가.’

아이기스는 본디 초대 가주 지안니의 참철검.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지금 와서는 알 방법이 없었으나.

어쨌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무구인 듯싶었다.

꿈틀― 아이기스의 눈썹이 흔들렸다.

[놔.]

“못 놓겠다면?”

[놓으라고 했다.]

“못 놓겠다고 했는데.”

[말대꾸하지 마!]

팟!

아이기스는 손에 쥔 참철검으로 아이젠을 공격했다.

그런데.

슈욱.

공격이 어쩐지 힘아리가 없다.

‘뭐야.’

이 정도면 아이젠으로서는 눈 감고도 피할 수 있을 정도.

아이젠은 날아드는 참철검의 칼날을 가볍게 붙잡았다.

“뭐야, 너. 설마 약한 건 아니지? 실망시키지 마.”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아이젠 자신도, 자신의 말이 틀렸음을 늦지 않게 깨달았다.

오싹!

아이기스에게서 오싹한 기운을 느낀 것.

개는 개장수 앞에서 꼬리를 말고, 노예는 노예 상인 앞에서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다고 한다.

아이젠은 개와 노예가 느끼는 두려움을, 지금 아이기스에게서 느끼고 있었다.

다만 개나 노예와 아이젠이 다른 점이 있다면.

‘두근거려!’

아이젠은 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때였다.

[약해? 내가?]

아이기스의 목소리가 매섭게 변했다.

매섭다고 해봤자 소년미 낭낭한 음성이라, 딱히 겁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아이기스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힘.

아이기스의 목소리에는 오러가 담겨 있었다.

‘아티팩트가 오러를 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건가?

미지의 힘을 탐닉할 생각에 아이젠은 미소만 지어졌다.

[이게 봐줬더니 건방지게!]

파앙!

아이기스의 몸은 전에 없이 빨랐다.

알브레히트 5방주만큼은 아니었지만, 사울 장로라면 한 수 접어줘야 할 만큼 빨랐다.

아이기스의 참철검은 허공에서 흐릿해지더니 아이젠을 향해 덤벼들었고.

‘그래, 이래야지.’

아이젠은 곧바로 전투 태세에 임했다.

‘결사신권, 교아(鮫牙)!’

흩어지는 참철검을 눈으로 포착할 수 없었으므로, 아이젠은 교아를 사용했다.

그러자.

투확!

아이젠의 손바닥 사이에 참철검이 걸렸다. 마치 그물에 물고기가 걸려들 듯이.

[이익!]

아이기스가 저항하며 칼날을 빼냈다. 그리고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아이젠이 느끼기에, 아이기스에게서 참철검술의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하긴 당연한 건가? 이 녀석은 그냥 참철검 그 자체일 뿐, 참철검술은 그린우드만의 특권이니까.’

얼기설기 초식조차 없는 검법은, 아이젠에게는 가벼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쉬익!

아이젠이 주먹을 뻗어 칼날을 스치고.

[읏?]

마침내 아이기스의 얼굴을 타격하려는 그때.

[날 깔보지 마!]

아이기스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휘오오오오오!

아이젠은 느꼈다. 이대로 팔을 끝까지 뻗었다간, 자신의 오른팔이 얼어붙어 버릴 거다.

그러나 이 이상 팔을 거둘 수는 없다. 이미 결사신권의 힘이 담긴 주먹인지라 당길 수 없었다.

아이젠은 재치를 발휘했다.

‘유랑보(流浪步)!’

팔을 거둘 수 없다면 다리를 물러서면 될 일.

아이젠은 유랑보를 사용해 아이기스에게서 멀리 떨어졌고.

휘이이이이이!

마침내 아이기스에게서 느껴졌던 무시무시한 기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한기였다. 영설산의 눈만큼이나 차가운 한기.

아이기스는 온몸으로 한기를 내고 있었다.

“그게 네가 가진 힘이냐?”

아티팩트라면 으레 고유한 능력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법.

일례로 알브레히트 5방주의 마검 빅샤크는 접촉한 대상의 오러를 빨아먹는 힘을 가졌다.

그와 비슷하게, 아이기스의 능력은 전신에서 한기를 내뿜는 것. 그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아이젠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저 한기를 내뿜는 능력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지?

지안니로부터 아이기스 브레이슬릿을 선물받았을 때, 아이젠은 이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되려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서 아이젠은 오로지 두 주먹만으로 무림을 제패했던 투신이었으므로, 아티팩트 같은 것은 구태여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

그리고 아이기스에 담긴 힘을 확인한 순간, 역시 마찬가지로 딱히 자신의 홍화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면에서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하였는데.

[왜, 빌려달라더니 탐이 나나 보지?]

아이기스의 물음에 아이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멋있긴 한데 별로? 근데 있으면….”

아이젠이 자세를 잡더니 마저 말을 이었다.

“여름에 시원하긴 하겠다.”

파앙!

아이젠의 왼쪽 주먹이 하늘을 날았다.

아이기스의 한기에 담긴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해 보기 위한 주먹이었다.

‘결사신권, 권왕백무 : 관(貫)!’

쉬이익!

아이젠의 주먹이 칼날처럼 바람을 가르고.

아이기스의 명치에 맞닿으려는 그때.

[얼어라.]

‘얼어붙는다!’

아이기스의 손은 순식간에 동상 상태로 젖어 들었다.

하여 아이젠은 관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주먹을 뒤로 빼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유랑보를 사용해 주춤 물러선 것은 덤이었다.

“…….”

[제법인데? 눈이 좋아.]

아이기스가 비웃듯이 말했다.

아이젠은 조금 전에 뻗었던 왼손을 쥐락펴락 해보았다. 손이 시뻘게진 상태로 퉁퉁 부어 있었다.

‘단지 차가운 정도라면 삽시간에 이 정도의 동상을 입지는 못해.’

만약 단지 0.5초라도 아이젠이 늦게 주먹을 거둬들였다면.

아이젠은 손가락 마디를 최소 두 개 정도는 잘라내야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아이기스에게서는 현재 엄청난 수준의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미지근한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몇 도나 되지?”

[내 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생각 마. 절대영도의 신체인 내게 맞닿는 순간 얼음 동상이 되어버릴 테니까.]

“절대영도란 말이지? 알았어.”

섭씨 영하 273도. 아이젠으로서는 손도 댈 수 없는 온도다.

아이젠이 제아무리 권법의 천재라고 한들, 닿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아이젠은 또 아니었다.

“그럼 뭐.”

아이젠이 두 주먹에 힘을 실었다.

“안 닿고 때리면 되잖아.”

결사신권, 환교신권(患矯神拳)!

투웅!

아이젠의 왼쪽 주먹에서 내공이 압축되어 날아갔다.

대포알처럼 공기 중을 흩뜨리며 날아간 환교신권은.

[응?]

퍼억!

아이기스가 그 정체에 대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그의 얼굴을 적중했다.

아이기스는 뒤로 기우뚱― 넘어갔다가.

쿵! 두 다리를 딛고 섰다.

[윽! 뭐야!]

“아프지?”

아이기스는 피를 흘리진 않았다. 사람이 아닌 이상 몸에 피가 흐르진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응?”

아이기스는 이마에서 뜨끈한 피를 흘려내고 있었다.

그것도 인간처럼 새빨갛기 그지없는 피를.

아이젠은 절로 몸에 힘을 풀게 되었다.

“뭐야, 너. 사람……은 아닐 테고.”

아이젠이 의문을 담아 묻자.

아이기스는 아픈 눈을 부릅뜨고 꼿꼿이 섰다.

[내가 왜 나에 대해 네게 알려줘야 하지?]

“내가 궁금하니까?”

[난 안 궁금해. 네 정체 따위는.]

“진짜? 널 나한테 선물해 준 게 지안니 초대 가주님인데도?”

[그런 말은 믿지 않아. 지안니는 머저리가 아니야. 아무나한테 날 넘기지 않아.]

“그럼 답 나왔네. 네 생각과 달리 지안니 초대 가주님이 머저리였거나, 아니면 내가 ‘아무나’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겠지.”

[……가만, 초대 가주? 지안니, 그 녀석이 지금 초대 가주라고 불리나?]

아이기스는 의외의 부분에서 반응했다.

그는 잠시 말을 곱씹는 듯하더니, 이내 피식 미소 지었다.

[그 자식, 결국 그린우드라는 이름의 가문을 세웠나 보네.]

“그래. 그리고 내가 그분의 100대손 정도 된다. 아니, 50대손 정도이려나?”

[그런데, 그렇다는 녀석이 왜 검을 쥐지 않고 있지? 지안니는 검을 다뤘어. 예를 들면 나 같은 검.]

“그건 사정이 좀 있는데.”

아이젠은 설명은 생략하기로 했다.

굳이 이런 자리에서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고.

“계속할까.”

아티팩트는, 힘으로 굴복시키면 그만이다.

[내가 너와 싸울 이유는 없어. 내가 손 하나 까딱하면 넌 내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걸.]

“그래?”

[그래. 지금 이렇게.]

“―!”

멈칫!

아이젠의 몸이 굳었다.

마치 통째로 찬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아이젠은 부들거리며 움직일 수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생소한 상황이었지만 아이젠은 당황하지 않았다.

“뭘 한 거지?”

[아무것도. 그냥 손 하나 까딱했을 뿐.]

“하. 재밌는데.”

빠지직!

어디선가 유리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젠은 온몸 바깥으로 홍화의 기운을 분출해.

푸화악!

굳어 있던 몸에 윤택함을 더해줬다.

그러자 아이젠의 몸이 부들거리면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겠다. 내 몸을 얼린 거로군.’

아이기스는 손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 아이젠의 몸을 통째로 얼려 버린 것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기술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이 정도 수준의 빙결 마법이라니.

‘아이기스는 단순한 아티팩트 참철검이 아니라, 빙결 마법이 실려 있는 보검이었나.’

팟!

아이젠이 다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에게는 아직 오른손의 환교신권이 남아 있었다.

“받아라!”

투웅!

아이젠의 주먹에서 다시 환교신권이 쏘아지고.

[―!]

아이기스는 이번에도 멍청히 선 채로 공격을 받았다.

퍼억!

역시나 마찬가지로, 아이기스는 얼굴에 환교신권을 맞고 기우뚱 넘어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섰다.

[아프잖아, 이 자식!]

지금까지의 상황에서, 아이젠은 위화감을 느꼈다.

아이기스는 조금 전부터, 서 있던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것.

조금 전 아이젠을 스쳐 지나 계율의 관 바깥으로 나가려 했던 걸 보면,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닐 텐데.

‘왜지?’

왜 움직이지 않지?

두 가지 가설이 있다. 하나는 아이기스가 움직이지 않고도 충분히 아이젠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둘째는, 아이기스는 빠르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아이젠은 두 번째 가설에 힘을 실었다.

“너, 둔치구나.”

[뭐라고?]

아이젠은 주먹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사신강림(死神降臨)을 사용해.

푸화악!

홍화의 기운을 온몸으로 끄집어냈다.

“둔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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