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알브레히트가 말했다.
“네 녀석의 그 기술, 아마 일시적으로 오러를 강화하는 기술이로군. 하지만 그런 기술은 으레 부작용이 있게 마련. 아마 오래 사용할수록 반동이 크게 오는 것이겠지?”
“백 점이요. 잘 아시네.”
“지금은 단숨에 강해질 방도일지 몰라도, 결국엔 너의 목을 옥죌 것이다.”
알브레히트의 신형이 흐트러졌다.
눈을 깜빡였다 뜨면, 빅샤크는 어느새 아이젠의 머리맡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런 기술을 사용해도 내게는 천 년은 이르다, 아이젠!!”
파앙!
아이젠이 본능적으로 칼날을 쳐내지 않았더라면 그의 머리는 반으로 쪼개졌을 것이다.
물론 알브레히트는 죽이지는 않겠다 했으니 실제로 쪼개지는 않았겠지만.
차치하고서라도, 아이젠은 바람결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위험했다.’
오싹오싹!
닭살이 돋았다.
그런 한편 아이젠은 알브레히트에게서 배울 점을 찾았다.
‘전생에서 내가 생사경에 오르지 못했던 건, 글자 그대로 힘을 추구하기만 했기 때문인가?’
만약 알브레히트처럼 온몸에 힘을 골고루 분배할 수 있다면.
하여 아이젠 역시 하나의 고목처럼 단단한 힘을 갖출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이젠 역시 더 높은 경지까지 올라설 수 있으리라.
아이젠은 그것을 깨달았고.
알브레히트는 그런 아이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알겠는가.’
알브레히트는 아이젠에게 가르침을 하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스승의 역할을 자처하는 중이랄까.
알브레히트는 두 아들의 대용품으로 아이젠을 돕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또래인 건 사실이었으니.
알브레히트는 자신을 도운 이 아이가, 소가주전에서 일정 수위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다곤 해도 직계의 게오르크 공자나, 1방계의 타케오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게오르크 공자는 동 나이대에서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현재 모든 이들이 소가주전의 우승 후보로 가장 강력히 점치는 것이 바로 게오르크였다.
물론 맞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1방계의 타케오 반 그린우드. 비록 게오르크보다 세 살 어린 스물네 살의 나이이지만, 실력만큼은 게오르크에게도 지지 않는 강자이다.
‘물론 그 아이에게는 크나큰 신체적 결함이 있다. 하나 그걸 스스로 극복만 할 수 있다면 역시 소가주전에 올라설 수 있을 테지.’
그 외에도 쟁쟁한 후보들이 많다. 2방계의 뮬러, 3방계의 아우구스트, 모두 가문에서 강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아이들.
그러나 알브레히트는 그들 후보 자리에 아이젠도 낄 자리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검을 쓰지 않는 아이라.’
집쥐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룬잭에게서 처음 들었을 땐 헛웃음만 나왔다.
참철검가 그린우드에서 검을 쓰지 않는다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야 있다. 하지만 검을 쓰지 않는다면 어련히 알아서 찌그러져 지내야 할 것 아닌가.
감히 소가주전까지 나와?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다 그럴 수 있다 쳐도, 테오발트 현 가주가 검을 쓰지 않는 아이젠의 행보를 허락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야 알브레히트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으나.
‘내게서 배움을 뽑아가거라, 아이젠.’
그리고 더욱 강해져라!
알브레히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는 아이젠의 몸 한구석 어딘가를 잘라 불구로 만들어버릴 각오로 덤비는 것이었다.
쉬익!
빅샤크가 아이젠의 팔을 한 뼘 차이로 빗겨 갔다.
알브레히트가 온 힘을 다하는 각오로 싸워주지 않으면 아이젠은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알브레히트는 정말 죽일 각오로 아이젠을 상대하고 있었다.
아이젠이 말했다.
“저 안 죽인다고 하셨던 말 기억하시죠? 방주님.”
“그래.”
알브레히트가 또다시 빅샤크에 그린 오러를 불어넣었다.
“참고로 난 약속을 잘 못 지키는 편이다.”
부웅!!
알브레히트의 온몸에 깃든 힘이 한층 더 진해졌다.
아이젠이 보기에 알브레히트의 지금은 참으로 기이하다.
100이라는 힘의 총량이 있다고 치자. 그럼 아이젠은 지금 주먹에 50, 다리에 30, 기타 나머지에 20 등의 힘을 분배해 알브레히트와 겨루고 있다.
그런데 알브레히트는.
마치 온몸에 100의 힘을 전부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린 오러가 진해진 지금은, 100이 아니라 200의 힘을 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리 알브레히트가 아이젠보다 강자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배울 점이 많겠어요, 방주님.’
아이젠은 알브레히트처럼 힘을 운용해 보기로 했다.
화악!
아이젠의 온몸에서 사신강림이 거두어졌다.
마치 불꽃이 꺼지듯, 그의 몸 안에서 홍화의 기운이 통째로 사라진 것.
알브레히트도 그것을 눈치채고 반보 뒤로 물러섰다.
아이젠이 무얼 하나 지켜보자는 의도이기도 했다.
“후우…….”
아이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고요함 속에서.
아이젠은 단전 위에 단숨에 힘을 쌓아 올렸다.
“이 기술을 이런 곳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리스크가 상당해, 아이젠이 이강철일 때도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
하지만 일단 사용하면 사신강림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을 내는 결사신권 비장의 한 수.
아이젠은 무혈신공의 묘리를 단전 위 작은 점 안에 모았다.
“결사신권 사신강림, 강망태신(江望太神).”
원래라면 아이젠의 온몸에 실렸어야 할 홍화가, 콩알만 한 점 안에 밀도 높게 몰려드는 순간이었다.
……두쿵!
맥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치 이곳 계율의 관, 참철폐관이 통째로 맥동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소리가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퍼지는 것이다.
아이젠이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있자.
알브레히트도 긴장했는지 빅샤크를 강하게 꼬나쥐었다.
주륵.
알브레히트는 자신의 땀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너, 조금 전과 분위기가 달라졌구나.”
알브레히트의 감상이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알브레히트는 현재 아이젠에게서 어떠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강망태신으로 인해 아이젠의 내공은 하나의 작디작은 점으로 수축하여, 기감으로도 읽어낼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알브레히트는 전장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이다. 그 역시 리타스나트 공화국과의 전쟁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 최전선 출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전쟁통에서나 맞닥뜨렸던 이 싸늘한 기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아이젠에게, 무언가가 있음을.
아이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신강림을 써봐야 천 년은 이르다고 하셨던가요?”
“……그랬지.”
“1분.”
“뭐라?”
“앞으로 1분간 저는 방주님을 뛰어넘을 겁니다.”
자신만만한 선언.
평소라면 헛소리로 치부하며 비웃음으로 넘겼을 테지만.
아이젠의 단언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1분이 지나면?”
알브레히트가 묻자.
아이젠이 결사신권의 자세를 잡으며 대꾸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죠, 뭐.”
팡!
아이젠의 신형이 증발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증발’한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금세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이젠은 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뒤? 위? 밑?
아이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채였다.
그러다가.
퍽!
“큭?!”
알브레히트는 무언가에 턱을 크게 맞고 뒤로 밀려났다.
빠르게 빅샤크를 앞으로 들었으나, 아이젠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
알브레히트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초고속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지레짐작했다. 한데, 자신의 눈으로도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초고속이라면 대체 얼마나 빠르다는 것인가?
이 정도라면 테오발트 현 가주조차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만한 속도.
콰앙!
알브레히트의 등이 움푹 파였다.
그의 허리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휘었으나.
“크음!”
알브레히트는 빠르게 빅샤크를 휘둘러 등 뒤를 공격했다.
휙!
그러나 아이젠은 이미 거기 없었다. 빅샤크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팟!
한순간 아이젠이 알브레히트의 앞에 나타났다.
“방주님.”
“……뭐지?”
아이젠은 다리를 딛고 서고, 양팔을 앞으로 뻗어 타격기의 자세를 잡았다.
“장난은 그만하겠습니다.”
슉!
아이젠의 양 주먹이 마치 사라진 것처럼 허공에서 지워졌다.
알브레히트는 또 속지는 않기로 했다. 아이젠의 주먹은 지금 초고속으로 자신에게 덤벼들고 있는 것.
그렇다면 알브레히트도 빅샤크를 들어 막아내야 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막지?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 0.2초.
알브레히트는 재빠르게 속으로 되뇌었다.
‘참철검술 6성, 오러 아머!’
참철검술의 수위가 6성까지 올라가면, 오러를 온몸에 두를 수도 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참철검술과는 딱히 관계없는 기술처럼 여겨지지만, 그린 오러를 온몸에 두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레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오러 아머의 효과는.
타앙!
이름 그대로 방어의 효과.
아이젠의 주먹은 알브레히트의 온몸에 얇게 도포된 오러 아머 위를 타격했다.
그때 나는 소리는 마치 철을 때릴 때와 같았는데.
아이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결사신권, 박살(撲殺) 연타!’
탕! 탕! 타앙! 탕! 탕! 탕!
마치 총알 튕기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며, 아이젠의 주먹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알브레히트의 오러 아머를 타격했다.
타격 횟수는 압도적으로 빠른 폭으로 증가했다. 오십 대, 백 대, 이백 대, 삼백 대.
아이젠의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알브레히트는 오러 아머 덕에 피해를 받진 않았지만 관성으로 인해 뒤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지이익. 지익.
바닥에 발을 끌며 알브레히트가 뒤로 밀려나고.
타앙! 탕! 타앙!
어느덧 아이젠에게서 오백 번째의 주먹이 뻗어 나갔을 적엔.
쩌적!
알브레히트의 오러 아머에 실금이 가고 있었다.
“음!”
알브레히트는 조금 당황하여 뒤로 물러섰다.
그때, 그의 병이 다시 도졌는지.
“윽!”
그는 비틀거리며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오른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쿠당탕!
그가 계율의 관 바닥에 허물없이 쓰러지자.
아이젠도 공격하기를 멈추었다. 멈춘 그의 양손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이젠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흐르는 족족 말랐다. 마찰열로 인한 열기 덕에 방 안이 훈훈해졌고, 그 훈훈한 열기는 아이젠의 땀마저 증발시키고 있었다.
“후우.”
아이젠이 한숨을 짧게 내쉬더니 알브레히트를 내려다보았다.
“얼른 일어나세요, 시간 없습니다.”
“냉정한 놈 같으니라고.”
알브레히트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동안.
아이젠은 생각했다.
‘강망태신은 사신강림의 강화 형태.’
중원 무림의 어느 날, 이강철이었던 그는 사신강림이라는 신체 강화 기술에서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사신강림의 더욱 극단적인 형태인 강망태신이라는 기술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