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두근―
아이젠은 가슴이 설레오는 것을 느꼈다.
알브레히트가 스릉― 하고 허리춤에서 마검 빅샤크를 뽑아 들었다.
아이젠이 농담했다.
“설마 아직도 두 아드님을 죽인 게 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실 테고.”
“내가 자넬 은밀하게 죽이려고 이곳에 데리고 온 것 같나?”
“하하.”
“허허.”
알브레히트는 이제 사사로운 이유로 아이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사로운 게 아니라면?
“아이젠 폰 그린우드. 내게 살살 안 할 거냐고 물었지?”
“그랬죠.”
“정답이다. 난 살살 할 생각이 없어.”
―부웅!
알브레히트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온 그린 오러가, 빅샤크에 실렸다.
빅샤크는 연둣빛 오러에 휩싸이더니, 마치 홍화가 아이젠의 몸 안으로 흡수되듯 오러를 칼날 안에 삼켜버렸다.
“그거 알고 있느냐, 아이젠? 현 그린우드의 방계들은 모두 참철검술에 응용을 담고 있지.”
“네, 압니다.”
아이젠도 대충 본 바가 있었다.
3방계는 곡도를 사용한다. 프란츠와 아우구스트 두 사람 모두 아이젠 앞에서 곡도를 들고 있었으니.
4방계는, 무슨 힘을 사용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베르너에게서도 아이젠은 모종의 다른 힘을 느꼈었다.
1방계와 2방계는 어떤 응용을 담고 있을지 아직은 짐작만 할 뿐이었으나.
5방계의 응용은 지금 이곳에서 확인을 할 수 있을 듯했다.
“5방계의 응용, 그것은 바로 ‘힘’. 지켜보아라, 아이젠. 연풍의 오러에 힘을 담게 되면 이렇게 된다.”
알브레히트는 그렇게 말하고 빅샤크에 다시 오러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콰아아아!!
빅샤크의 도신 바깥으로, 회오리가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소용돌이를 타고 칼날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
아이젠의 눈에 그것은 작은 태풍처럼 보였다.
“……대단한데요.”
아이젠도 제법 놀라 그리 말하자.
알브레히트가 검을 매섭게 쥐어 잡았다.
“겨뤄보겠느냐? 돌아가겠다면 기회는 지금뿐이다. 포기하고 일주일 동안 너 스스로 단련하는 방향도 있어.”
저릿저릿―
아이젠은 알브레히트의 그린 오러가 이곳 참철폐관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알아챘다.
특이하게도, 알브레히트의 연풍 오러는 ‘연풍(軟風)’이라는 이름처럼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바람이 되어 있었다.
피부로 맞이하면 온후한 기운마저 드는 뜨거운 바람 말이다.
‘해보겠느냐고?’
아이젠도 알브레히트에게 보답하고자, 자신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홍화의 기운이 몸 안 가득 들어차고, 아이젠이 근육 한 가닥 한 가닥에 힘을 흘려 넣을 때.
그의 입이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열렸다.
“전력으로 부탁드립니다.”
“죽이진 않으마. 하지만 반송장이 되어도 책임은 질 수 없다.”
아이젠이 씨익 웃었다.
“그게 제가 바라던 겁니다.”
―쉭!
짧은 마찰 소리와 함께 한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
거의 찰나의 시간 만에 두 사람의 실루엣이 뭉그러진 것처럼 허공 중에 나타났고.
―파아앙!!
검과 주먹이 부딪치는 소리가 대기를 진동시켰다.
물론 정확히는 대기가 아니고 이곳 참철폐관이었지만.
―찌릿찌릿!
아이젠은 팔뚝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알브레히트 5방주님은 피쉬트랩 던전에서는 내게 오러를 쓰지 않으셨지.’
그랬다가는 마테오 백작에게 걸려서 징계를 받게 되었을 테니.
하지만 계율의 관에서는 아니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알브레히트는 힘을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로서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덤벼라, 아이젠!”
“그럴까요!”
―쉬쉭!
알브레히트의 검이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이내 그의 검이 수백 갈래로 찢어지는 것처럼 보이더니, 아이젠을 향해 한 발 한 발이 날아들었다.
“연공난무!”
―슈파파파팟!
아이젠은 어금니를 깨물며 뒤로 몸을 던져야 했다.
‘이런 미친!’
저 수백 갈래의 칼날 중 단 하나에라도 베였다간 아이젠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이다.
아이젠은 박살로 저것들을 쳐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험은 감수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아이젠은 뒤로 쭈욱 밀려나 그것들을 피했다. 공간이 넓기에 최대한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것.
―캉! 캉! 카앙! 캉!
만년한철로 만든 벽에 알브레히트의 참격이 부딪혀 흩어졌다.
‘이게 연공난무?’
아이젠은 문득 카인이 생각났다. 카인의 연공난무를 본 적이 있었고, 바네사의 연공난무도 본 적이 있다.
알브레히트의 연공난무는 그 두 사람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방주님?”
“허락하지 않으마. 단…….”
알브레히트가 검을 휘두르며 내뱉었다.
“날 한 대라도 공격할 수 있다면 재가하지.”
―쉬익!
빅샤크가 아이젠의 모든 오러를 집어삼킬 것처럼 덤벼왔다.
아이젠이 웃었다.
“한 대요?”
그는 양 주먹을 끌어당겼다.
“백 대로 하시죠. 시원하게.”
―파앙!
아이젠의 주먹이 알브레히트의 빅샤크와 맞닿는 순간.
―카가가가가각!
계율의 관 내부에서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났다.
주먹과 빅샤크의 오러가 부딪치며 불똥을 튀기는 것이었다.
“백 대라! 그것도 좋지!”
“맞고 우시면 안 됩니다, 5방주님.”
“크하하! 풋내기 주먹 따위야 간지럽기라도 하면 다행이겠구나!”
알브레히트가 외쳤다.
그리고 이내.
‘빨린다.’
아이젠의 주먹에서 홍화가 조금씩 잦아 들어갔다.
빅샤크의 능력은 대상의 오러를 흡수하는 것.
“잊었느냐, 아이젠!”
알브레히트가 호전적으로 소리 질렀다.
아이젠은 씨익 미소로 화답했다.
“잊지 않았습니다.”
파앙―!
아이젠이 손목을 비틀자 빅샤크가 손등 위로 미끄러졌다.
아이젠은 그대로 주먹을 뻗어, 알브레히트의 얼굴을 향해.
‘결사신권, 박살(撲殺)!’
주먹을 날렸다.
―퍼엉!
알브레히트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아이젠의 주먹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아니. 반응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반응하지 ‘않은’ 건지.
“겨우 이 정도냐!”
알브레히트는 넘어지지도 않고 금세 정신을 차렸다.
아이젠의 박살에 맞으면 웬만한 사람은 뼈가 다 으스러지고, 급소를 허용하면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데.
알브레히트는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태연자약했다.
‘역시 강하시군!’
아이젠은 오히려 기꺼운 마음이었다.
알브레히트가 마검 빅샤크를 두 손으로 꽉 쥔 채, 아이젠을 향해 덤벼들어 왔다.
“그 정도로는 소가주전 우승은 꿈도 꾸지 마라, 아이젠 폰 그린우드!!”
―쉬이익!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아이젠은 주먹에 다시 홍화의 기운을 흘려 넣었다.
‘결사신권, 권왕백무(拳王百舞)!’
백 대를 때리기 위해.
아이젠은 백 번의 권기를 날렸다.
―슈슈슈슈슈슉!
―퍼버버버버벅!
아이젠의 주먹은 일제히 알브레히트에게 명중했다.
그러나 사실은 모조리 빅샤크의 칼날만을 타격할 뿐이었다.
권왕백무가 빅샤크를 때릴 때마다, 빅샤크의 칼날은 부러지기는커녕 권왕백무에 담긴 홍화를 모조리 흡수했다.
알브레히트가 만족한 듯 웃음 지었다.
“잘 먹었다.”
“어라.”
“돌려주마!”
―부웅!
알브레히트가 빅샤크를 휘둘렀다. 그러자.
―크와아아아!
빅샤크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얼핏 들으면 마치 그런트의 비명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빅샤크가 의지를 가진 채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네 힘에 네가 당해봐라!
하고.
아이젠은 양팔을 교차해 빅샤크의 검기를 막았다.
빅샤크에 둘린 오러는, 명백히 연분홍빛이었다.
―파앙!
홍화가 아이젠의 양팔에 적중하는 순간.
아이젠은 그 자세 그대로 크게 뒤로 밀려났다.
계율의 관은 바닥조차 철로 되어 있어 마찰력이 적다. 그 탓에 아이젠은 원래라면 조금만 밀려났을 거리일지언정, 미끄러져 더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몸이 멈추자 아이젠이 양팔을 해제했고.
‘알브레히트 방주님은?’
곧바로 알브레히트의 위치부터 찾았다.
알브레히트는 허공에 높이 떠올라 있었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했으나 높이 조절을 잘했는지 그렇지는 않았다.
알브레히트의 빅샤크가 매섭게 휘둘렸다.
‘박살!’
―콰앙!
아이젠은 주먹을 뻗어 빅샤크의 힘을 상쇄했다.
‘빠르다. 그리고 강해.’
5방계의 참철검술 응용은 ‘힘’이라 했다.
그 말대로 알브레히트의 힘은 상당히 대단했다. 가히 전생 아이젠에 버금가는 수준이라 할 만했다.
‘아마 이것도 꽤 봐주고 계시는 거겠지.’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아이젠은 이미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계율의 관에 알브레히트가 아이젠을 데려온 목적은 어디까지나 수련.
알브레히트가 어째서 자신의 단련을 도와주는 건지, 아이젠은 그것은 알 수 없었으나.
‘오싹오싹한데.’
아이젠은 까딱하면 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상황 속에서, 오싹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아이젠에겐 독보다는 약이었다.
‘오히려 좋다고!’
아이젠은 알브레히트를 손바닥으로 밀쳐내고.
그와 대치 상태에 섰다.
“왜 그러냐, 아이젠. 백 대를 때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럴 겁니다.”
아이젠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마치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온몸에 홍화를 강력하게 불어넣었다.
아이젠의 전신에서 홍화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사신권, 사신강림(死神降臨)!’
―푸화악!
아이젠은 사신강림을 사용하는 한편, 알브레히트를 경계했다.
“음.”
알브레히트는 예상외로 덤벼오지 않고 거리를 둔 채였다.
아이젠이 생각해 보니, 알브레히트는 자신의 사신강림을 본 적이 없다.
마혼 버디와 싸울 때 알브레히트는 고치에 둘둘 말려 있었기에 아이젠이 무슨 기술을 쓰는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젠은 상대가 경계하는 순간을 노려 공격하기로 했다.
‘목롱보(目弄步).’
―슈팟!
아이젠의 신형이 잠시 일렁이더니 사라지고.
“음!?”
알브레히트가 물러서는 그때.
아이젠은 알브레히트의 등 뒤에서 나타나 주먹을 뻗었다.
‘권왕백무 : 관(貫)!’
―퍼엉!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알브레히트가 아이젠의 주먹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이번만큼은 일부러 맞아준 게 아니었다.
“크음!”
알브레히트는 신음했다. 다만 그뿐, 딱히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금세 다리를 바닥에 딛고 섰을 뿐이다.
“풋주먹이로다!”
‘풋주먹? 풋사과 같은 주먹이란 뜻인가.’
알브레히트는 무게중심을 반대쪽 발에 싣고.
아이젠에게 빅샤크를 휘둘렀다.
아이젠은 양손을 세로로 세워, 빅샤크를 손바닥 사이에 끼워 잡았다.
―착!
“음?!”
“윽.”
―부들부들!
두 사람이 힘을 사이에 두고 경쟁할 때.
아이젠은 생각했다.
‘방주님, 힘이 대단한 건 둘째 치고.’
빅샤크와 맞닿아 있는 아이젠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알브레히트의 온몸에, 힘이 고루 분산되어 있음을.
‘사람이라면 응당 몸에 실리는 힘의 분량이 다른 법인데.’
주먹에 힘을 주면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발에 힘을 주면 발에 힘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알브레히트는 온몸에 힘을 똑같이 주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단단한 고목인 것처럼.
그렇기에 지금 주먹에 힘을 싣고 있는 아이젠으로서는.
―비틀!
다리에 힘을 빼앗겨 균형을 잃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다!”
알브레히트가 그대로 빅샤크를 내리자.
―태앵!
아이젠은 차선책으로 검을 튕겨내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팟! 팟! 팟!
몇 발자국 크게 뛰어 뒤로 점프한 아이젠은.
알브레히트의 힘을 안배하는 능력에 꽤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