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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 넷째는 역대급 무공천재-102화 (102/201)

102화

【 계율의 관 】

“뭐어?”

바네사는 놀란 얼굴로 모니카에게서 편지를 낚아챘다.

그리고 의자를 밀고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히 편지를 살폈다.

[―그런 이유로, 이반 체호프 공자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제 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결례를 범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내용은 대충 그런 식이었다.

바네사는 모니카를 돌아보았다.

“괜찮겠어?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노예 출신으로는 놓치기 아까운 신분 상승의 기회일 텐데?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괜찮아요! 전, 저는요.”

모니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이어 말했다.

“아이젠 도련님 옆에서, 그분과 함께 강해져 나가고 싶어요.”

“……이유는?”

“아이젠 도련님이 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기쁘니까요.”

울먹이기까지 하며 말하는 모니카의 모습에.

바네사도 감화되었다.

그녀는 문득 검은뿔 기사학교에서 자신과 함께 수련했던 아이젠을 떠올렸다.

‘아이젠, 그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를 모시는 하인까지 감상에 빠지게 만드는가.

피식― 바네사는 웃어 보였다.

모니카는 그 웃음에 담긴 의도를 아직 알지 못했으나.

뒤이어 나온 바네사의 말에는 모니카도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마침 일주일 동안 대련 상대도 필요했는데. 검을 쥐는 법부터 시작해 볼까?”

* * *

‘……알브레히트 5방주님.’

아이젠이 맞닥뜨린 것은 알브레히트 5방주였다.

알브레히트의 옆에 서 있는 것은, 3방주인 페르디난트 반 그린우드.

페르디난트는 울부짖고 있었다.

“내 아들이!! 프란츠가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고!! 프렘린들의 소행이야.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으면 내 마음이 풀리지 않겠어!!”

“진정하게, 페르디난트. 아들을 잃은 슬픔은 나도 잘 알고 있어. 어찌 모르겠나? 하지만 이것이 그린우드야. 엄중한 규율을 소중히 여기게.”

“윽, 하지만, 하지만! 으흑. 으흐흑…….”

페르디난트 3방주는 위엄까지 집어던지고 바닥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그러자 하인들이 페르디난트를 모시고 돌아갔다.

알브레히트는 떠나가는 페르디난트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젠과 눈을 마주쳤다.

아이젠이 멋쩍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5방주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래, 아이젠. 너야말로.”

“저야 뭐.”

알브레히트는 아이젠에게 성큼 다가와 섰다.

“소식 들었나 모르겠군. 프란츠가 프렘린들에게 당해 오체분시된 모양이야. 제기랄, 시체도 수습하기 곤란할 정도였다고 해.”

“방금 여기서 들었네요. 안됐습니다.”

“그래. 안된 일이지…….”

아이젠은 프란츠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상처들이 생각났다.

그는 온몸이 칼에 베인 상처로 가득했는데.

그건 페르디난트 3방주에게 입은 상처였다. 그런데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저렇게 슬퍼하는 페르디난트의 모습을 보니, 그도 마냥 냉혈한인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나저나, 죽었다고? 프렘린한테?’

아이젠의 생각에 프란츠는 강하다. 아니, 물론 자신보다야 훨씬 약하지만.

그래도 프렘린 몇 마리를 상대로 질 만한 녀석으로는 안 보였는데.

‘그 정도로 약한 놈이었나?’

아이젠의 판단에는 아니었다.

프렘린 수십 마리가 덤벼들었다면?

그랬다면 당연히 이길 수 없었겠지만, 프란츠라면 애초에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아이젠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나?”

문득 알브레히트가 물어왔다.

아이젠이 그를 돌아보았다.

“같은 생각이라면?”

“프란츠는 그 정도에 당할 아이가 아니다.”

“……음. 네. 제 생각에는요.”

“나도 프란츠 그 아이를 본 적이 있네. 프렘린이 상급 마물이라곤 해도 그 정도에 당할 아이는 아니야.”

“뭔가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래.”

“흐음. 하지만 이 이상 추론하는 건 무의미하고요.”

“그래. 시체에 증험 따윈 남지 않으니까.”

아이젠이 찝찝한 인사를 남기고 돌아가려는데.

알브레히트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이젠 폰 그린우드.”

“네?”

“너도 본선 2차전에 진출했겠지.”

“네, 뭐.”

“그럴 줄 알았다. 일주일간의 준비 기간 동안은 뭘 할 셈이지?”

“글쎄요. 그냥 수련이나 하려고 했습니다만.”

알브레히트가 성큼 다가섰다.

아이젠으로서는 코앞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었는데, 알브레히트의 덩치가 상당해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자네만 괜찮다면 내가 상대해 주고 싶은데.”

“네?”

아이젠이 알브레히트를 올려다보았다.

“3방주님이 직접요?”

“그래.”

“……오호라.”

아이젠은 짧은 사고를 마치고 씨익 웃어 보였다.

“살살 안 하실 거죠?”

* * *

그노시스에는 이름 붙은 지역이 크게 두 곳 있다.

하나는 대장장이들의 마을 스미스쏜즈.

다른 하나의 이름은, 에버쏜즈. 이곳은 그린우드의 핏줄이 아닌 자에게는 출입이 허락되지 않는다.

알브레히트 5방주는 앞장서며 그리 말했다.

“물론 그린우드만 출입할 수 있다고 해서, 또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그럼 저는 괜찮고요?”

“나와 함께인데 안 괜찮을 리가 있겠나.”

에버쏜즈는 그노시스 바깥과는 달리 사막 지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 쌀쌀한 정도였다. 짐작건대 아마 에버쏜즈 내부에 찬 공기가 흐르는 것이 틀림없다.

저벅저벅― 아이젠은 알브레히트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

“뭐 하는 데죠? 여긴.”

“따라와 보면 안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

건조물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젠은 그저 알브레히트의 뒤를 따라 걸을 뿐이었다.

물론 다른 보좌하는 하인들은 일절 대동하지 않고서.

“저기다.”

마침내.

저기 저 멀리, 드디어 사람이 만들었다고 할 법한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이라 해야 할지, 정확히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으로 보였지만.

그 문이 에버쏜즈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누운 채 놓여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알브레히트와 아이젠은 그 문을 내려다보았다. 철문이었다.

문득 피스풀 지하감옥에서의 독방이 떠오르는 아이젠이었다.

‘그때도 이런 철문이었는데.’

생각하는데 알브레히트가 아이젠을 돌아보았다.

“이곳의 이름을 알고 있나?”

“아뇨. 이런 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지. 이곳의 이름은 ‘계율(戒律)의 관’. 지난 천 년간 그린우드의 수련 장소로 이용되어온 공간이다.”

천 년이나? 그렇다면 이곳 역시 지안니 대에 만들어졌다는 뜻이 된다.

아이젠은 괜히 아이기스를 한번 만져보게 되었다.

알브레히트가 철문 손잡이를 붙들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아이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열어보겠나?”

“제가?”

“네가.”

알브레히트가 철문에서 물러나고.

아이젠은 살짝 몸을 푼 뒤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힘껏 잡아당기는데.

“음!”

끼이이이―

철문이 비틀리는 소리가 났지만 열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무게가 상당한 모양.

알브레히트가 피식 웃었다.

“왜, 아무리 너라도 그 정도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는 모양이지?”

“흠. 그럴 리가요.”

아이젠은 괜히 승부욕이 붙어, 잠시 철문에서 몸을 뗀 뒤 뻐근한 어깨와 뒷덜미를 풀었다.

우드득― 우드득―

그리고 잠시 후, 아이젠은 온몸에 홍화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결사신권 4성, 홍화(紅花)의 경지.’

―부웅.

가볍게 온몸에 실린 홍화의 기운을 끌어안고.

아이젠이 다시 한번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힘껏 잡아당겼다.

“……으음!”

―끼기기긱. 끼기기기…….

철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최초에는 겨우 1cm 정도 높이로 열렸지만, 이내 10cm, 30cm, 50cm 높이까지 열려.

“읏차!”

―우당탕탕!

마침내 철문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그러자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나타났다.

아이젠이 헉헉거리며 웃자.

알브레히트가 그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대단하군. 자네라면 열 수 있을 줄 알았어.”

“아까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고 했던 게 이런 이유였나요?”

이 정도 무게라면 바네사 누님이나 한스는 들어 올리지도 못할 거다. 게오르크라면 모를까.

아이젠도 힘이 장사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전생을 각성하지 않은 자신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하긴, 전생 각성을 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소가주전에 나올 일도 없었겠구나.’

그보다 더 앞서, 그는 애초에 게오르크에게 독살당해 죽었을지도 모른다.

독살의 배후를 알아낸 이상, 아이젠이 주저할 이유는 없다.

‘소가주전 본선의 합격자는 총 8명.’

8명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직계 장남, 게오르크 폰 그린우드.

직계 장녀, 바네사 폰 그린우드.

직계 차남, 한스 폰 그린우드.

1방계 장남, 타케오 반 그린우드.

2방계 장남, 뮬러 반 그린우드.

3방계 차남, 아우구스트 반 그린우드.

4방계 장남, 베르너 반 그린우드.

그리고 직계 삼남, 아이젠 폰 그린우드.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기권해 자진 탈락했거나 사망했다.

‘베르너의 동생 브루노는 순위권 내에 들지 못해서 탈락했다고 했지. 프란츠는, 의문사를 당했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이 지경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가주라는 양반을 보면, 전선에서의 활약이 꽤나 바쁜 모양이긴 한가 보다.

아이젠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알브레히트를 돌아보았다.

알브레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아무나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는 아니니까.”

“방주님이 못 드니까 저 시킨 거 아니에요?”

“내 나이가 쉰이 넘었다곤 하나 이 정도쯤이야 거뜬하다. 널 테스트해 본 것뿐이지.”

알브레히트는 앞장섰다. 그러더니 에스코트하는 듯 젠체하는 자세로 팔을 내밀었다.

“자, 따라와라.”

아이젠도 그를 따라 걸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 계단은 어두컴컴하고 싸늘했다.

다만 어둠에 눈이 어느 정도 익기 시작하니, 대강 보이기 시작했다.

―탕. 탕. 탕.

계단도 철로 만들어졌기에 두 사람이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아이젠은 그 와중에도 유랑보(流浪步)를 사용해 발소리를 죽이는 연습을 해보았다.

―탕. 탕…… 탕…….

그러자 알브레히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흑기사처럼 걷는군.”

“모니카 따라 한 건데요.”

“모니카? 그게 누구지?”

“아닙니다. 헛소리 좀 해봤어요.”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두 사람은 커다란 공동 안에 설 수 있었다.

직육면체의 넓은 공간은, 말하자면 운동장만 한 크기였다. 높이는 3m 정도라 답답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사방이 모두 철로 만들어져 있는 걸 보면 이 방 역시 철제.

만약 일반적인 철이라면 지진 등이 났을 때 이 안에 있는 사람은 수몰되고 말 거다.

즉, 아이젠의 생각에 이곳은.

“계율의 관, 다른 이름으로는 참철폐관(斬鐵廢館)이라고 하지.”

만년한철로 만든 공동이었다.

‘참철폐관이라.’

참철은 ‘철을 벤다’는 뜻이기에 참철폐관이라는 단어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만년한철로 만든 검을 참철검이라 부르고 그린우드의 이명이 참철검가인 것처럼, 단어를 일부러 좀 맞춘 모양이다.

“자, 이곳에서 이제 뭘 하면 되죠?”

아이젠이 넌지시 묻자.

알브레히트가 빙긋 웃었다.

“뭘 할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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